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14화 (11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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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전군! 물러서지 않는다! 그러나 매달려있는 사람들을 풀어주기 전까지 싸우지도 않는다!”

    “받듭니다!”

    한순간에 혼란으로 범벅이 되었던 군단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공작이라면 시간이 충분하다는 가정 하에 이곳에 있는 모든 몬스터에게 경직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만 된다면 저 끔찍한 장면을 그만 봐도 되겠지. 루만 태자가 이딴 짓을 벌일 줄은 몰랐지만, 그렇게 된다면 루만 태자가 계획한 일은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아직도 불안하냐고.’

    과연 루만 태자가 여기까지만 계획했을까? 겨우 이런 작전을 위해서 성문을 열어놨다고? 그 놈은 멍청하지 않아. 루아타 공작이라면 이런 일 정도는 처리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렇다면 숨겨진 수는 무엇인가. 이곳에서 군세의 발목을 잡은 이유는 뭐지?

    ‘어?’

    한순간 라트는 뒤쪽을 바라보았다. 군세의 진격이 멈췄기 때문에 후방에 남겨진 병력은 아직 성문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모습에 머리가 망치를 맞은 것 마냥 얼얼해졌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혹자는 그 물음에 잘 제련된 장비라고 말할 것이고, 혹자는 잘 훈련된 정예병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뛰어난 지휘관이라고 말하겠지.

    다 맞는 말이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틀렸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보급이다.

    식량이 없으면 누구도 싸울 수 없다. 그리고 보통 군단의 식량은 후방에 배치해두기 마련이다.

    “후작 대리, 나와 같이 왕성으로.”

    “실례!”

    세르먼트 후작의 말을 무시한 채, 황급히 후방으로 말을 본다. 그 와중 병사들이 너무 몰려있어서 말이 지나갈 공간이 없자 말을 버리고, 달렸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러면서 부정한다. 자신이 생각이 틀렸음을, 고개를 저어가며 격렬히 부정했다. 그러나 부정을 하면 할수록 누군가의 비웃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빌어처먹을!”

    후방은 안 돼.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고 있는 여성이 있다.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 자신에게 정을 준 사람이 있다.

    어쩌면 기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감이 고한다, 불안함을 계속 느낀 이유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옳기 때문이라고.

    병사들을 헤치고 간신히 후방에 이르렀을 때, 때마침 한 여인이 천천히 저 멀리서 향해 걸어왔다.

    후드를 쓰고 있지만, 라트는 직감적으로 그 여인이 인간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공작이 그랬다, 왕성에 국왕과 태자가 있다고.

    그렇다면 이 사태를 일으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몬스터 테이머는 어디있는가.

    “전원, 전투 준비!”

    “예?”

    “전투 준비하라고! 빨리!”

    안전한 후방에 있다고 생각했기에 병사들은 라트의 명령에 의문을 표했다.

    다른 귀족의 명령이었다면 그 즉시 전투를 준비했겠지. 그러나 라트는 이제 겨우 전투에서 몇 번 활약했을 뿐이다. 모든 병사들이 라트가 누군지 알 리가 없다.

    일일이 설명하고 자빠져있을 시간이 없어. 시가지 안에 몬스터가 500마리밖에 없다고 했을 때 알아차리고, 공작에게 미리 경고를 했어야 했는데!

    “두려움에 떨어라, 인간들아.”

    나지막이, 그러나 확실히 들려오는 목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여인에게 끌렸다. 여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오면서 그 손을 내뻗었다.

    “너희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그러자 지진과도 같은 떨림과 함께 무언가가 땅속에서부터 치솟았다.

    “그레, 이트……웜?”

    지하로부터 기어 나온 거대한 그레이트 웜이 입을 벌리자, 그 안에서부터 수많은 몬스터들이 찬찬히 쏟아진다.

    “지랄하고 있네,”

    그레이트 웜의 입에 몬스터를 숨겨놨다니. 후작의 마나 스캔을 피하기 위함인가?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제대로 먹혀들었다.

    “전원, 전원 전투 준비!”

    그제야 상황이 심각함을 알고 전투를 준비하는 병사들의 모습 사이에서 라트는 케이네를 발견했다.

    ‘누나만 데리고 도망칠까?’

    지금으로썬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방을 지키지 못하면, 전쟁의 판도는 알 수 없게 된다.

    이런 작전을 짰다면 이미 런트에는 약탈할 식량이 없다는 뜻이다. 아마도 모든 식량을 불태웠으리라.

    “그레이트 웜이라니.”

    “후작님, 도와주십시오!”

    포박 당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이 포로인마냥 멍하니 상황을 관찰하고 있던 후작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라트는 급히 그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했다.

    공작은 현재 전방에 있는 몬스터들에게 집중하고 있느라 이곳으로 오지 못한다.

    다른 몬스터라면 몰라도, 그레이트 웜은 위험하다. 게다가 몬스터 테이머가 준비해놓은 게 그레이트 웜만은 아닐 터.

    라트 혼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후작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건 작전이지 않은가. 내가 그대를 도와줄 이유는 없다.”

    그러나 후작은 고개를 저으며 요청을 거절했다.

    ‘아직 후방에는 상황이 전달되지 않은 건가.’

    분명 전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된다면 후작은 라트에게 힘을 빌려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전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할 여유는 없다.

    갑작스러운 거대한 몬스터의 출현, 그리고 그 입에서 쏟아지고 있는 몬스터들에 의해 병사들은 갈팡질팡하고 있으니까.

    “전방으로 가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직접 보고 돌아오십시오.”

    “음?”

    “빨리 가서 보고 오라고!”

    라트에게서 심각함을 느꼈는지, 후작은 빠르게 전방으로 향했다. 후작이 떠나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몬스터들을 향해 달렸다. 혼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병사들을, 그리고 케이네를 지키기 위해서 저 몬스터들을 막아야했다.

    “만연하라.”

    라트의 명령에 따라 땅이 일어나 방벽을 만들어낸다. 그레이트 웜이라며 모를까, 일반적인 몬스터라면 이 방벽을 쉽게 부수지는 못할 거다.

    지금 그레이트 웜이 움직이면 입에서 나오고 있는 몬스터도 피해를 입으니,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겠지.

    ‘이걸로 한시름…….’

    어떻게든 한시름 놨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게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가.

    콰직, 하고 너무나도 간단하게 부서지는 바위 방벽.

    부서진 틈 사이로 한 마리의 오우거가 모습을 비췄다.

    ‘오우거까지 테이밍했고?’

    오우거를 길들이는 건 그레이트 웜을 길들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아예 지성이 없고 거대한 몸뚱이 때문에 상대하는 게 버거운 그레이트 웜과 달리 오우거는 약간이지만, 지성이 있으며 그레이트 웜보다 작음에도 그 힘은 그레이트 웜과 동급이니까.

    도대체 얼마나 오래 전부터 이 작전을 계획하고 있었기에 오우거까지 준비해놓은 건가.

    “전군 도망…….”

    오우거의 전력은 오러 마스터에게는 상대가 안 되지만, 오러 익스퍼드급이 40~50명은 달라붙어야 간신히 처리할 수 있는 몬스터다.

    병사들이 싸우려고 해봐야, 선두에 오우거를 세운 몬스터 무리에 개죽임이 될 뿐이다.

    그래서 후퇴를 명령하려고 했지만, 그 말은 이어질 수 없었다. 충격이 온 몸을 뒤덮음과 동시에 라트의 몸뚱이는 허무하게 날아가 성벽에 처박혔고, 성벽이 와르르 무너져 라트의 몸을 깔아뭉갰다.

    “라트!”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케이네가 라트의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아니야, 절대 아닐 거야.”

    오러 마스터를 상대로 이긴 적이 있는 라트다. 겨우 이 정도에 당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오우거의 발길질에 제대로 얻어맞은 이상 몸은 성하지 못할 터.

    “빨리, 빨리 구해야 돼. 구해서 포션을!”

    케이네는 라트가 파묻혀있을 성벽 무더기로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고 했지만.

    “안됩니다, 케이네님! 지금은 도망치셔야 합니다!”

    옆에 있던 연금술사가 케이네의 손목을 잡았다. 도망쳐도 살아남을지 모를 상황이다. 그런데 도망치지 않고 몬스터가 있는 쪽으로 가겠다니, 말릴 수밖에 없었다.

    “이거 놓으세요. 놔, 놓으라고! 저기에 내 동생이 있단 말이야!”

    “안됩니다!”

    “이거 안 놔? 난 내버려두고, 너나 도망치라고!”

    저기, 소중한 동생이 있다. 나에게 처음, 가족의 정을 알려준 사람이 있다. 내 마음을 흔드는 목숨보다 중요한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도망치라는 말인가.

    케이네는 간신히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던 연금술사의 손길을 뿌리치고 무너진 성벽 쪽으로 달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달리려고 했다.

    “위험하십니다!”

    늑대 괴물 한 마리가 케이네를 물어뜯으려고 하자, 연금술사는 자신의 몸을 던져 케이네를 구했다.

    케이네 대신 자신의 배가 몬스터의 송곳니에 꿰뚫렸지만, 억울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뻤다.

    제스맹 기느투스의 제자, 연금술사에게 있어 케이네의 존재는 보배와 같으니까. 자신의 희생으로 제스맹 기느투스의 지식이 이어진다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도망, 치십……시오.”

    피를 토하며, 죽어가고 있음에도 케이네에게 도망치라고 말하는 게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몬스터의 입이 게걸스레 움직이자, 그의 신체가 고깃덩어리로, 몬스터의 한낱 식사로 변해간다.

    그 처참한 모습에 케이네는 주저앉고 말았다. 스스로 지원해서 전쟁에 나왔다지만, 이런 일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다.

    전투가 일어날 때는 항상 후방에 있었기에 한 번도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본적이 없었다. 끔찍해, 역겨워, 두려워, 무서워, 다리가 풀려버렸다.

    ‘힘이 들어가지 않아.’

    정말 우습게도, 라트를 구하려고 갈 수도 없고 자신을 위해 몸을 던진 이름 모를 연금술사의 말대로 도망칠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케이네님!”

    그러자 다른 연금술사들이 케이네에게 다가와 급히 그녀의 몸을 부축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로 도망친단 말인가. 전방은 전방대로 난리가 난 상황에서 도대체, 어디로?

    “도망치십시오! 이 뒤로!”

    창과 검을 든 병사들이 급히 연금술사들을 뒤로 보내고 다가오는 몬스터와 맞서 싸운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하기 그지없다.

    일반적인 몬스터 무리라면 병사들도 어느 정도 맞설 수 있었겠지. 어쩌면 이겼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두에 서있는 오우거가 단순히 몽둥이를 휘두른 것만으로 최후방을 지키던 병사들의 대열이 완전히 무너졌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어디로 도망쳐야 한단 말인가.

    “크오오오오오!”

    오우거의 함성이 고막을 찢었다. 그 압도적인 기운에 케이네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간들이, 심지어 몇몇 몬스터마저 자리에 주저앉는다.

    몸에 저릿저릿 거린다. 몇몇 이들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도 어떻게든 도망가기 위해 흙을 묻혀가며 땅바닥을 긴다.

    이 사태를 만든 주범인 오우거는 천천히 케이네에게 다가왔다.

    “인간, 암컷, 맛있다.”

    그 앞에 쓰러져있는 인간들을 발로 짓밟으며 케이네에게 다가온 오우거는 끔찍하게 웃었다.

    “야들야들하겠지. 잘 먹겠다.”

    거대한 손이, 조금씩 케이네를 향해 다가온다. 예상치 못한 죽음이 서서히 똬리를 틀며 목을 죄인다.

    그러자 조금씩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공포에 젖어, 그리고 자신 때문에 목숨을 잃었던 연금술사의 모습이 떠올라서, 죄송스러워 울었다.

    “라트.”

    몸을 움직일 수 없어 바닥에 주저앉은 채, 눈앞을 가리는 거대한 오우거의 손을 보며 그의 이름을 부른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던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도와줘!!”

    마지막 남은 힘으로 도와달라고 외쳤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슬펐다. 라트가 자신을 구해주지 않아서 슬픈 게 아니었다. 자신이 도와달라고 함에도 일어나지 못하는 동생이 걱정되어 슬펐다.

    ‘정말 푹 빠졌구나.’

    이런 상황에서도 라트를 걱정하다니. 어렴풋이 자신이 라트를 좋아하고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좋아하고 있을 줄이야.

    마지막의 마지막. 괴물의 손이 코앞까지 하자 케이네는 눈을 감았다. 입술이 떨려온다, 이가 떨린다. 무서워, 너무 무섭다.

    그런 상황임에도 먼저 떠오른 건 라트의 얼굴이었다.

    “사랑해.”

    정말 신기하게도, 조용히 진심을 고하자 떨림이 멎어든다.

    마지막이니까 이 정도는 말할 수 있겠지. 이제 후회는 없다, 아니 후회는 있어. 동생와 함께 하고 싶다. 청년과 같이 있고 싶었다. 그에게 이 마음을 고백하고 싶었다.

    살고 싶어, 이것이 진심이리라.

    그렇지만 다가오는 죽음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그저 겸허히 최후를 맞이하는 수밖에.

    괴물의 손이 움켜져, 그녀를 쥐려는 순간.

    “야.”

    그리고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가. 우리 누나 울렸냐?”

    소름끼칠 정도로 차갑게 말하며 오우거의 손을 멈춰 세운 남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쓸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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