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13화 (113/229)

0113 / 0229 ----------------------------------------------

1부

흐린 하늘 아래 열과 오를 맞춘 병사들의 행군이 보인다.

‘불길하다.’

말을 타고 행군에 동참하고 있던 라트는 우중충한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비는 내릴 것같지 않지만, 불길한 날씨였다.

‘누구에게 불길한 날씨일까.’

이 날씨는 누구에게 불길함을 알리고 있는가. 수도가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인 파르스인가. 그게 아니면 두 군단 중 하나의 군단이 운명을 걸고 싸워야하는 셀룬일까.

정답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불길해.’

이상하게도 런트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속에서 불길함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이런 불길함을 느낀 이유는 오늘은 케이네와 엘리가 라트의 옆에 있을 수 없기에 혼자서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새끼가 너무 쉽게 포기한 게 이상하단 말이야.’

메아리치는 밀림에 있던 파르스의 병력은 분명 셀룬의 군단과 동등했다. 셀룬이 전력 상 유리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제스맹의 지원에 의해 생긴 장비 때문이었다.

그 정도 병력 규모라면 예상이지만 수도 방비군 일부가 차출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루만 태자는 너무 쉽게 그 전투를 포기했다. 포기하고, 먼저 도망쳐버렸다.

물론 승산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미르차르드 후작이 라트에게 이겼더라면 조금은 승산이 보였을 전투인데. 미르차르드 후작과 라트의 결투가 어떻게 됐는지 알기도 전에 도망쳤다.

‘이상하단 말이야.’

메아리치는 밀림에서 몬스터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이상하다. 그리고 런트가 피난민을 수용하는데 한계에 이르렀음에도 계속해서 피난민을 받고 있다는 점도 이상했다.

‘무슨 짓을 꾸미는 거냐.’

셀룬의 국왕은 노쇠한 것치고 상당히 유능한 국왕이다. 그와 반대로 파르스의 국왕은 무능하기 짝이 없다. 아니 무능하다고 볼 수는 없지.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성군으로 칭송받았을 왕이다. 그러나 전쟁의 시대에 성군의 자질을 가진 왕은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왕국 전쟁이 벌어졌을 때 파르스의 군세를 알게 모르게 총지휘하는 건 루만 태자였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루만 태자는 전쟁에 굉장히 유능하다. 비상한 머리를 타고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 비상한 머리와 권력을 지켜내겠다는 욕심이 합쳐져 효율을 중시하느라 악독한 작전을 많이 낸다는 거지. 덕분에 커뮤니티 내에서는 팬도 많았지만, 반대로 안티도 많은 NPC였다.

아무튼 그렇게 머리가 좋은 놈이 일반적으로 보자면 국운을 건 전투를 그렇게 쉽게 포기하다니. 게다가 그림자 까마귀도 별다른 활약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설마 의도적으로 후작을 버린 건가?’

이렇게 생각하면 맞아떨어진다. 런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 중이지만, 그 일이 후작은 절대로 보면 안 되는, 후작이 봤다가는 바로 작전을 방해할 도를 넘어선 일이라면?

만약 이게 진짜라면 의도적으로 후작을 버려서, 죽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진짜 그런 거라면 둘이 다시 마주했을 때가 기대되는데.’

“런트다! 런트의 성벽이 보인다!”

선두에선 병사 중 한 명의 외침에 라트는 생각을 멈추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 앞에 펼쳐진 건 한 왕국의 수도에 걸 맞는 장엄한 성벽이었다.

요 이틀간 새벽부터 행군을 했기에 모든 이들이 지쳤지만, 그들의 얼굴에 피로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긴장감만이 팽배히 자리잡고 있다.

원래대로 천천히 진군했더라면 오늘 밤 혹은 내일 낮쯤에나 도착했겠지.

강행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작전의 주된 골자는 런트에 제대로 된 방비가 이뤄지기 전에 강습하는 것이었으니까.

원래대로라면 이 정도까지 빠르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겠지만, 루만 태자가 도망친 덕에 셀룬의 군세가 런트로 진군하고 있음을 파르스도 알아차렸을 테니 그만큼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서, 성문이 열려있습니다!”

그 말에 조금 동요하고 말았다. 항복이라도 할 생각인가? 그러나 성벽 위에 백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째서 성문이 열려있는가.

“무슨 생각이지.”

여기까지 끌고온 공성 병기, 대포를 사용하려고 했던 루아타 공작은 휑하니 열려잇는 성문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시가전이라도 할 생각일까요?”

“그렇지만, 시가전은 성문이 뚫렸을 때나 사용하는 최후의 방법이지 않습니까.”

일반적으로 수성은 두 가지 가정을 이룬다. 첫 번째로 튼튼한 성벽을 방패삼아 적군을 맞이하는 것. 튼튼한 성벽이 가지는 지리적 이점은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사정이 여의치 않아 성벽 혹은 성문이 파괴되었을 때 돌입하는 게 시가전이다. 훌륭한 전략가는 시가전을 마다한다.

성벽이 뚫린 시점에서 패색이 짙은 전투이고, 시가전에 이뤄지면 그만큼 도시가 파괴되어 막대한 손해가 나기 때문에 이긴다고 해도 이긴 전투가 아니게 되니까.

“성벽 위에 누가 있는 것 같지도 않군요. 매복일까요?”

“매복이라기엔 너무 엉성합니다만.”

‘화계는 아니겠지.’

서로 의견을 나누는 귀족들 사이에서 라트는 조용히 고심했다. 우선 화계는 절대로 아니다. 수도를 불태울 리 없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루만 태자라면 충분히 그런 짓을 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이 정도 군대를 상대로는 화계도 소용이 없다. 이 군단에 고서클 마법사만 해도 몇 명인데.

화계를 벌여봤자, 마법사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법으로 불을 제압하면 그만이니까.

‘그렇다면 매복?’

굳이 성벽을 포기하고 매복을 할 이유가 있나. 매복에 당한다고 한들, 병력의 차이 때문에 순식간에 혼란이 잠재워질 것이고 매복한 병사들을 처리할 수 있을 거다.

‘설마 수도를 버리고 튀었나?’

이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지만, 이것도 너무 억측이다. 수도를 버리고 도망쳤다고 해도 저렇게 성문을 열어놓을 이유는 없다.

“마나 스캔을 해봤는데, 저 안에 몬스터가 있는 것 같다.”

“그거야, 예상한 일 아닙니까.”

켈랑 왕국에는 희귀한 직업인 몬스터 테이머가 있으니, 이것도 상정 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몬스터로 보이는 마력과 사람으로 보이는 마력이 굉장히 가깝게 있군.”

“병사들과 몬스터가 함께 싸우려는 걸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성벽을 버릴 이유는 없지 않은가.”

“몬스터의 숫자는 얼마나 됩니까.”

“대략 500마리 정도다. 꽤 강한 몬스터도 있다. 그리고 몬스터와 가까이 있는 사람의 숫자는, 몬스터보다 20배 많다.”

공작의 말에 라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켈랑에 있는 몬스터 테이머가 길들일 수 있는 몬스터의 숫자는 500마리를 훌쩍 넘겨 800마리가 넘어간다.

그런데 왜 500마리밖에 없는 거지? 몬스터를 길들일 시간이 부족했던 걸까?

“저희 군단의 숫자에 비하면 적군요.”

옳다. 셀룬의 군세에 비하면 저들의 전력은 터무니없이 적어.

성벽에서 싸웠다면 혹시나 몰랐겠지만, 이 정도 군단이라면 시가전에서 몬스터 300마리와 약 6천의 군세 정도는 격파할 수 있을 터.

“진군 명령을 내릴까요?”

“조금 수상쩍기는 하지만, 일단 들어가는 수밖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나 수도 안에 있는 병력을  손쉽게 점령할 수 있는 상황이기에 루아타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와 동시에 진격 명령이 내려졌다.

“전군, 파르스의 수도가 눈앞에 있다. 돌격하라!”

그 명령에 병사들이 발을 내딛어 흙먼지를 일으킨다.

‘일단 부딪쳐볼 수밖에.’

케이네야 안전한 후방에 있고, 엘리는 항상 공작 근처에 있으니까 무슨 일이 닥친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 없다. 그래 걱정할 필요 없어.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오다 못해 심장을 억죄기 시작한다.

“공작님 옆에 꼭 붙어있어.”

“응.”

그래서 혹시나 몰라 엘리에게 충고를 날린 뒤 라트는 성문을 향해 말을 몰았다. 군세가 성문에 도착하자, 그 때부터는 혹시나 함정이 있을까 속도를 줄였다.

목적지는 저 멀리 보이는 왕성. 저 안에 파르스의 국왕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저곳을 점령한 순간 런트는 셀룬의 손아귀에 떨어진다.

나라에 있어 수도를 점령당하는 건 치욕 중 치욕이다. 또한 중앙 사령부, 사람의 몸으로 치면 머리가 사라지는 꼴이니 수도를 점령한 순간 이번 전쟁은 끝난다고 봐도 좋았다.

성문을 넘어서 시가지가 펼쳐지기 시작하자 공작이 무언가를 느꼈는지 눈을 찌푸렸다. 조금씩이지만, 땅이 울리고 있다. 무언가가 온다.

“전원 전투 준비!”

“전투 준비!”

명령과 함께 북과 피리가 울리자, 모든 병사들이 자신의 병장기를 들어올렸다. 마법사들은 마법을 준비하고 궁병은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그 기세는 당장 하늘이라도 찌를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다. 흠잡을 것 없는 완벽한 전투태세.

그러나.

다음 순간,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기세가 꺾였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와 마주해서? 아니다. 아크 메이지라 불리는 루아타 공작이 선두에 있는 군세다. 8서클 마법사를 막을 수 있는 몬스터가 과연 몇이나 될까.

몬스터 테이머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그런 강력한 몬스터까지 길들이는 건 무리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하늘마저 찌를 것 같았던 그 기세가 사라졌는가.

“살려주세요! 살려줘요!”

“제발, 제발 이것 좀 풀어줘어어어어!”

“엄마, 아빠, 으아아앙!”

소름끼치는 절규가 들려온다. 지금까지 성을 점령하면서 울음소리는 수없이 들어왔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조금 달랐다.

“쿠루룩.”

“아아아악!”

몬스터 무리 중 오크 한 마리가 들고 있는 쇠도끼로 등을 긁자 비명이 들려온다.

“캬오!”

거대한 고양이처럼 생겼지만 진흙으로 만들어진 가죽을 가진 몬스터인 머드 퓨리 캣이 꼬리를 휘두르자 몇 사람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그 모습에 병사들이, 그리고 귀족들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셀룬의 자식이 역겨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이게 무슨 짓이냐!”

이 자리에는 몬스터 밖에 없지만, 이쪽을 보고 있는 자를 향해 지금 이 상황을 만들어낸 인간을 향해 루아타 공작이 분노로 일갈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저 몬스터와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공작의 예상과 달리, 몬스터와 같이 있는 이들은 병사가 아닌 평범한 파르스의 시민이었다.

깨달았다. 어째서 사람으로 느껴지는 마력이 괴물에게 가까이 있었는지. 저러니 가깝게 있을 수밖에 없지.

그러니까 가까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아니 꼭 붙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쇠사슬에 묶여 몬스터의 몸에 강제로 매달려 있으니까!

‘미친 새끼.’

이게 루만 태자가 벌이려고 했던 일인가. 메아리치는 밀림에 몬스터가 없던 이유도, 수도에 피난민을 받은 이유도 전부 이걸 위한 것이었나.

그래 미르차르드 후작은 죽어줘야 했겠지. 이런 작전, 미르차르드 후작이 결코 찬성할 리가 없으니까.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반대했을 것이다.

바이올런의 종으로서도 이런 일을 말렸겠지만, 미르차르드 후작이라는 남자는 자신의 긍지를 걸고도 이런 일은 말렸을 게 분명하다.

‘어떻게 해야 되지?’

눈앞에 벌어진 참상, 인간이 몬스터의 몸에 매달려 고기 방패가 되어있는 상황. 고기 방패가 된 이 모두가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지옥과도 같은 참극.

“감히 이런 짓을. 주신 홀리가 두렵지 않느냐!”

도대체 이게 무엇인가. 전쟁에서 이기려고 이런, 이런 역겨운 짓까지 감내하겠다는 건가. 신이 무섭지 않나? 신전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기에 이런 짓을 말리지 않았나.

그 의문에 답해줄 이는 없다. 이곳에 있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시민과 몬스터뿐이니까.

“캬아아악!”

한 마리의 몬스터가 적의를 드러내자, 곧바로 모든 몬스터가 적의를 보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그러자 군세가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저게 그냥 몬스터였다면 용맹하게 싸웠으리라. 그러나 인간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몬스터를 어떻게 찌를 수 있는가.

적국의 백성이라고 하지만, 그들에게는 죄가 없다. 신전에서도 전쟁은 허용하지만, 학살은 금하고 있었고 귀족들도 어지간히 정신이 나가지 않은 이상 일반 백성을 상대로는 학살을 자제하는 편이었다.

그러니 물러선다, 찌를 용기가 없었기에.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구걸하고, 절규하는 사람을 같은 사람이 어떻게 찌를 수 있는가.

또라이가 아닌 이상, 정신이 살짝 나간 이가 아닌 이상에는 저 모습을 보고 그 누가 자신의 무기를 들 수 있냔 말이다.

“마법사 전원!”

점차 뒤로 물러나는 병사들을 사이에서 공작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었다.

모든 몬스터들이 급소 부분을 포함한 온 몸에 빈틈없이 주렁주렁 사람들이 매달려있다. 저걸 공격하라고? 무리다, 무리였다. 인륜적으로 저걸 공격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있을까?

적의를 보내는 인간이라면 셀룬을 위해 친우의 꿈을 위해서 가차 없이 죽일 수 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이들은 죄가 없다. 그저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다.

“쉴드를 사용해서 몬스터의 진격을 막는다!”

“충!”

명령이 떨어지자, 곧바로 쉴드가 나타나 군단과 몬스터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허나 이걸로는 당분간 시간은 벌 수 있겠지만, 고작 그것뿐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 있는 모든 괴물에게 경직 마법을 쓸 테니 시간을 벌어라!”

“알겠습니다!”

“세르먼트 후작과 피츠로이 백작! 지금 당장 별동대를 조직해서 왕성으로 달리시오. 아마 그곳에 국왕과 태자가 있을 터!”

다시 한 번 마나 스캔을 사용해 파르스의 국왕과 태자의 위치를 알아낸 공작은 그리 명령을 내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