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09화 (109/229)

0109 / 0229 ----------------------------------------------

1부

소드 엠프레스 시리즈, 전설의 대장장이 팔레보르가 웨폰 엠페러 시리즈와 함께 만들어낸 역작 중 역작이다.

소드 엠프레스 7종, 웨폰 엠페러 12종 모두 신화 등급에 달하며 그 효과는 무시무시하다.

그 중 하나인 소드 엠프레스 시리즈의 6번, 공평함의 검(Sword of Impartial)은 검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디자인이라서 어떤 이는 팔레보르가 완성하지 못한 검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공평함의 검이 가진 효과를 모르는 이들이 지껄이는 말에 불과하다.

그 효과를 안다면, 단언컨대 공평함의 검이 소드 엠프레스 시리즈의 6번인 것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리라. 공평함의 검의 특수 효과인 중립을 지키는 공평함은 바로.

“크아아아!”

비명이 메아리친다. 쏟아지는 수많은 검의 폭풍우를 단 한 자루의 검에 의지한 채 전부 막아냈음에도 미르차르드 후작은 비명을 질렀고, 동시에 수많은 알림창이 나타났지만, 라트는 그것을 미쳐 신경쓰지 못했다.

중립을 지키는 공평함은 사용자가 입고 있는 데미지를 상대방에게 똑같이 갚아주는 힘이다.

이것만으로도 무시무시하지만, 진정으로 이 능력이 무서운 이유는 막아도 소용없다는 거다.

검에 닿아도, 갑옷에 닿아도 상관없다. 대상이 입고 있는 옷, 혹은 쥐고 있는 무기에 닿는다고 해도 이 효과는 발동된다.

중립을 지키는 공평함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저 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작은 발이 묶여 있었기에 이 공격을 피하지 못해서 저렇게 된 거다.

“후우.”

주저앉아 담배를 내뿜는다. 간신히 이겼다. 3년 동안 터득한 모든 기능을 이용해, 심지어 그 새끼한테 얻어낸 공평함의 검까지 사용해서야 간신히 이겼다.

“크윽.”

속박이 풀리자, 침을 흘리며 바닥으로 쓰러지는 후작. 지금까지 라트가 입은 데미지를 똑같이 받았더라면 저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다.

‘조금 많이 연성하기는 했지.’

이게 진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공평함의 검을 수십 자루 연성하고 말았다.

후작이 죽었는지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중립을 지키는 공평함으로는 대상에게 데미지를 줄 수는 있지만, 죽일 수는 없으니까.

“하아, 담배도 다 태워졌나.”

때마침 파이프 홈 안에 넣어놨던 담배가 전부 타버렸는지, 담배 연기가 더 이상 빨리지 않자, 미련 없이 담뱃대를 인벤토리에 넣고 체력 포션 여러 개를 꺼낸다.

공평함의 검을 사용하기 위해서 일부러 체력 포션을 복용하지 않은 덕분에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먼저 상처 입은 몸에 체력 포션을 뿌리고, 그 후 남은 포션은 전부 마셨다.

“이제야 좀 살 거 같네.”

몸이 점차 치유되자 천근과도 같았던 몸이 점차 가벼워진다.

“저쪽도 끝났겠지.”

체력 포션 덕분에 신체는 회복됐지만, 정신적인 피로 때문인지 몸은 아직 천근처럼 무겁기만 하다. 그렇지만 이대로 주저앉아있을 수만은 없기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

저 멀리서 병사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오자, 라트는 고개를 돌렸고 이내 입을 벌렸다. 먹구름으로 인해 대낮임에도 어두운 이 밀림에 붉은색 빛이 번쩍인다.

“저게 뭐야.”

메아치리는 밀림 일대에 내리고 있는 비. 그냥 비도 아니고 굉장한 폭우가 내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저게 무엇인가.

거센 불길이 언덕을 서서히 태워간다. 내리는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화염, 이치에 벗어난 그 모습을 보고 도대체 무어라 말할 수 있는가.

“영원의 불길. 공작님의 짓인가.”

8서클 화속성 마법, 영원의 불길. 시전자의 마력이 남아있는 한 빗 속 아니, 물속에서라도  타오르는 불꽃을 만들어내는 마법.

“끝났네.”

공작의 절기 중 하나가 펼쳐졌음을 깨달은 라트는 후작에게로 다가갔다. 저 마법이 발동된 순간 켈랑 쪽 군세에게 지리적 이점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패배.

셀룬의 병사들은 무장부터가 켈랑의 병사들과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귀족의 숫자 또한 차원이 다르지. 전쟁에 참여한 귀족들은 대부분 상당한 경지에 도달했다.

그런 귀족들까지 있으니 루만 태자나 이곳에 있는 그림자 까마귀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고 해도 전세를 뒤집을 수는 없을 터.

‘골렘은 어떻게 됐으려나.’

급박한 상황이 지나자, 전장에 내버려둔 코어형 골렘이 살짝 걱정되기 시작했다. 만약 전장에 내버려둔 골렘이 박살났다면, 이제 남은 코어형 골렘은 케이네가 준 것까지 합쳐서 겨우 두 채 뿐이다.

아깝지 않다면 거짓. 코어형 골렘 하나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물론이오, 비용과 노력까지 생각하면 아깝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내가 진 건가.”

분명 아까까지 정신을 잃고 있던 후작이 떨리는 목소리로, 흔들리는 눈동자로 물었다.

“와, 징그럽다 진짜.”

적어도 3일은 기절해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 정신을 차릴 줄이야. 물론 몸을 제대로 가누지는 못할 테니까, 속박에는 지장이 없지만.

소름 돋는 회복력에 그만 질려버리고 말았다.

“말했지, 이기겠다고.”

제법 자신만만하게 말하지만, 알고 있다. 다시 한 번 후작과 싸운다면 자신이 진다는 것을. 이번 대결의 결과가 라트의 승리로 끝난 이유는 단지, 이쪽은 후작의 전력을 알고 있고, 저쪽은 라트의 전력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었지.”

그러나 패배는 패배. 후작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정신을 잃었음에도 쥐고 있던 검을 바닥에 떨어트려 자신의 패배를 시인했다.

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워들어 후작의 허리춤에 매달려있는 칼집에 넣어준 라트는 그의 몸을 일으켰다.

“댁은 이제 포로야.”

“나를 포로로 잡아서 무엇을 하려고? 나는 너희에게 정보를 넘겨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건 잘 알고 있다.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모진 고문을 당한다고 해도 후작은 정보를 누설할 사람이 아니다.

폭력과 고결함 그리고 명예를 상징하는 신인 바이올런의 종속으로서 후작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 끝까지 입을 다물 것이다.

“정보를 불게 할 생각은 없어.”

심문을 하기 위해서 후작을 데려가는 게 아니다. 심문을 하려면 차라리 루만 태자 쪽이 좀 더 적합하다.

“그럼 어째서? 내가 체력을 회복해서 탈출하는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이 자리에서 죽이는 게 낫지 않은가.”

그건 그렇지. 셀룬이 왕국 전쟁에서 승리하는 시나리오대로라면 후작은 이 전쟁에서 죽어야 한다.

‘그렇지만 댁은 여기서 죽기에는 아까운 인물이라서 말이야.’

그의 인품이나 실력을 생각하면 이 자리에서 죽기에는 아까운 인물이었다. 그리고 또한 라트는 그에게 부탁할 게 있었다.

“전투는 끝났어. 저 불길을 보면 대충 감이 잡히지?”

“저건 공작의 마법인가? 어마어마하군.”

패자의 발로인지, 후작은 아무런 부정 없이 라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치에 벗어난 저 불길을 보면 긍정말고 남은 선택지는 없겠지.

“다시 한 번 기사의 명예를 걸고 약속해줘야 할 일이 있다. 미르차르드 후작.”

“싫다면?”

“일단 들어는 봐.”

“그래, 듣는 것 정도라면 좋다.”

걸려들었다. 생각대로 일이 풀리자 라트는 함박웃음이 지어지는 걸 숨기지 않고 입을 열었다.

“난 개인적으로 수도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해.”

루만 태자는 미르차르드 후작이라는 호위와 같이하지 않고 이 밀림을 돌아다녔다. 그것도 그림자 까마귀와 함께.

그 말은 즉슨, 미르차르드 후작이 보면 안 될 어떤 짓을 꾸미고 있다고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그 새끼는 게임 상에서도 존나 비열하니까.’

결코 루만 태자가 엘리를 암살하려고 해서 이런 평가를 내리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게임 상에서 루만 태자는 켈랑 왕국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더러운 짓도 마다하지 않는 타입이었으니까.

“심상치 않은 일?”

“그래.”

다만 이번에는 무슨 짓을 꾸미려고 하는 지 잘 모르겠다.

평상시라면 뒷공작 및 이간질 그리고 암살을 이용해 군세를 약화시키는 방법을 썼지만, 현재 셀룬의 군세는 그 정도 방법으로는 결코 약해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루아타 공작이 미치지 않았기에 구심점이 완벽하게 잡혀있기도 하고, 제스맹이 목숨을 걸고 연금술을 이용해 병사들의 무구를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일지 감이 안 잡힌단 말이야.’

현재 켈랑의 상황은 풍전등화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북부에서는 난공불낙이라고 불렸던 이루크 성이 너무나 손쉽게 무너졌고, 남부의 영토도 브로켄 후작의 지휘 아래 휩쓸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루만 태자는 여유로웠다.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티나 팍팍 났단 말이지.

“만약 그 심상치 않은 일이 만약 댁이 한 서약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나에게 힘을 빌려줘.”

“자네에게 힘을 빌려 달라함은 나더러 셀룬에 투항하라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해도 되고.”

정확히는 나한테 힘을 빌려달라고 했지만, 셀룬에 뼈를 묻을 생각이니까 결과적으로는 그 말도 맞았기에 딱히 후작의 말을 정정하지 않았다.

“내가 맹세를 해서 돌아오는 이점은?”

“만약 수도에서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혹은 일이 벌어졌어도 댁이 바이올런과 한 서약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댁한테 손 하나 대지 않고 그대로 놓아주지. 이 정도면 충분한 이점이지 않아?”

무려 적국의 오러 마스터를 발언에 후작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놓아, 주겠다고? 그건 자네가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야. 댁의 생사여탈권은 내가 쥐고 있거든.”

이 제안을 꺼내기 위해서 루아타 공작에게 미르차르드 후작의 권리를 받아냈다. 흔들림 없는 라트의 눈동자에 그의 말이 진실임을 안 후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다, 내가 기사의 명예를 걸고 맹세를 한다고 치자. 그러나 네가 약속을 지킬 거라고는 어떻게 믿지.”

그거야, 간단한 방법이 있지.

“비밀의 신인 애니그마와 대지의 여신인 라쉐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다.”

잠시 모리아의 이름을 걸까도 생각했지만, 라트는 정상적으로 이름을 팔아먹어서는 안 되는 신의 이름을 꺼냈다.

눈앞의 남자는 긍지 높은 자. 이런 이를 상대로 거짓말을 치고 싶지는 않았다.

[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했습니다. 두 신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역시나 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자마자 나타나는 알림음.

운명의 여신인 모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신들은 자신의 이름을 거는 것에 상당히 민감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좋다. 나도 기사의 명예를 걸겠다.”

맹세는 쉽사리 입 밖으로 뱉어졌다.

루만 태자와 국왕 폐하에게 굳게 충성하고, 충성하는 만큼 그들을 믿고 있는 미르차르드 후작은 수도에서 자신의 맹세에 어긋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나오셔야지.”

그러나 과연 어떻게 될까. 라트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아직까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후작을 이송하고 본대에 합류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

본대로 합류하자마자, 병사들은 물론이오, 귀족들이 라트를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전투에서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미르차르드 후작이라는 거물을 포로로 잡아왔다. 이번 전투의 일등 공신이 누구인지 정해진 순간인데, 어찌 선망의 시선으로 보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개중에는 질투 혹은 원망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확실한 건 개선장군이 돌아오면 이런 시선을 느낄 거라는 것이다.

“라트!”

두 명의 여인이 너나할 것 없이 동시에 라트에게 다가왔다. 그 중 한 명은 라트의 품에 안겼고, 그 중 한 명은 화를 내는 건지, 기뻐하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라트를 바라본다.

“또, 누나한테 말도 안하고 위험한 짓을!”

‘누나한테 말을 왜해. 말을 하면 밤새 전전긍긍, 전투에서도 전전긍긍할 게 눈에 보이는데.’

“바보야! 갑자기 사라져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엘리의 눈물을 닦아준다.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낼 수 없었지만, 만약 라트가 케이네나 엘리에게 미르차르드 후작과 싸울 것이라고 미리 말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눈에 훤했다.

아마 둘 다 목숨을 걸고 라트를 말리려고 들었을 거다. 말리지 못했다면, 자신을 걱정하느라 전투에 제대로 집중하지도 못했겠지.

지금 반응을 보니 알리지 않은 게 정답이었다.

“후작대리님. 포로는 어떻게 할까요?”

공작의 가신 중 한 명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미르차르드 후작을 바라보며 물었다.

“잘 모셔주세요. 도망치지도 반항하지도 않을 거니까.”

“알겠습니다.”

공작의 가신이기에 미르차르드 후작의 권리가 라트에게 있음을 알고 있는 가신은 고개를 숙이며 라트의 부축을 받고 있던 후작을 데리고 갔다.

잘 모시라고 했으니까, 묶어두거나 어디 구석으로 데려가서 고문을 하지는 않을 거다.

“그런데 공작님은?”

“자네!”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병사들 사이에서 루아타 공작의 모습이 나타났다.

“……정말로 이겼군.”

믿을 수 없는 표정인 건 공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공작은 이쪽 전투가 완전히 마무리되기도 전에 라트를 돕기 위해서 급히 라트가 미르차르드 후작을 유인하겠다고 한 곳으로 공간이동을 했었다.

그러나 남아있는 것은 전투의 흔적뿐이었다.

급히 라트의 마력이 느껴지는 곳으로 다시 공간이동을 하고서, 지금 이 상황이다. 미르차르드 후작의 뒷모습, 그리고 라트의 멀쩡한 모습을 번갈아본다.

“이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기에 루아타 공작은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스릉하님 20장, 루이레아님 1장, 아놔아놔님 5장, Raha000님 10장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 독자님들도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

다음 편은 지금 써서 새벽 내에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