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07화 (107/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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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후작의 행동은 전부 꿰고 있다. 오러를 담은 고함을 이용해 상대방의 움직임을 멈추고 그 즉시 상대의 목을 베는 것이 그의 절기였으니까.

    그렇기에 알고 있다. 이 고함은 듣지만 않으면 혹은 고함이 다른 소리에 묻히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실제로 게임 중 난청상태에 걸렸을 때 후작의 고함에 당하자, 캐릭터는 아무런 문제없이 움직이지 않았던가.

    그러니 믿는다.

    수없이 게임을 해왔던 시간을 믿는다. 그 동안 쌓아왔던 경험을 믿는다. 그리고 지난 3년간 자신이 해왔던 노력을 믿었다.

    죽을 수 없다. 죽는다는 생각은 할 수 조차 없다. 나만의 목숨이 아니니까. 이 목숨은 두 개니까.

    “이 놈이 감히!”

    자신의 검이 막혔다는 사실에 분노했는지, 후작은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해 검 째로 라트를 베어버리려고 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이대로 당할 리가 있나. 재빠르게 공작이 걸어준 마법진에 손을 대서 마법을 발동시킨다.

    그러자 검신이 녹색으로 물들었고, 조금씩이지만 갉아 먹히던 미스릴 검신이 미르차르드 후작의 오러 블레이드를 받아내기 시작한다.

    “이 놈이!”

    감히 오러 마스터의 검을 받아 내다니. 눈앞에 일어난 현실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후작이 눈을 치켜떴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확실하게 라트의 대검은 후작의 오러 블레이드를 받아내고 있었다.

    물론 그것 뿐이다. 신체를 강화해주는 물약을 총 다섯 종류나 먹고도 이를 악물고 버틸 뿐. 그 이상의 행동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않은가. 오러 익스퍼드는커녕 오러를 하나도 배우지 못한 이가 이렇게 오러 마스터와 검을 맞댈 수 있다니.

    이걸로 충분하다. 왜냐하면.

    대검을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트는 검사가 아니니까.

    “만연하라.”

    주문과 함께 공간이 비틀린다. 주변에 있는 흙과 나무는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적을 찌르려든다.

    “큭!”

    변화하는 자연 앞에 후작은 침음을 삼키며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몸 성하게 빠져나갈 수 없었을 터.

    “네 놈 정체가 뭐냐.”

    거기서 최초로 눈앞의 남자가 송사리가 아닌, 적임을 인식한 후작은 전투태세를 풀지 않은 채 물었다.

    누군가 이 남자는. 언뜻 보기에는 조금의 오러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건 마나. 그렇지만 이런 마법, 듣도 보지도 못했다. 거기에 이런 마법을 사용하는 남자라니.

    이런 자가 있었다면 필시 기묘한 마법을 사용하는 마검사가 있다는 소문이 대륙에 파다하게 퍼졌을 거다.

    그렇기에 정체를 물었다.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런 힘을 사용함에도 아직까지 대륙에 알려지지 않았나. 도대체 누구이기에 셀룬의 편을 드는가.

    “라트.”

    비릿한 웃음과 함께 음산한 말소리가 후작의 귀를 간질인다.

    “대연금술사 제스맹의 제자인, 배틀 알케미스트다.”

    그리고 일말의 거짓조차 담지 않은 새하얀 진실을 선포한다.

    “배틀 알케미스트, 네가 연금술사라고?”

    “그래.”

    “거짓말 마라 이 놈! 그런 연금술, 들어본 적도 없다!”

    부정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반응. 자연을 연성하는 연금술이라니, 있을 수가 없다. 이런 힘이 있었다면 연금술사가 그만한 천대를 받지 않았을 터.

    “지금보고 있잖아.”

    그 말에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

    “만연하라.”

    바로 옆에 있는 나무를 집고 주문을 외우자, 다시 한 번 공간이 격변한다. 흙이 휘몰아치고, 나무가 요동친다.

    “이딴 잔재주 따위!”

    “잔재주인지 아닌지, 직접 보라고!”

    후작은 검을 들고 무색의 연금술로 인해 자신을 덮치는 자연을 모조리 베어내가며 라트를 향해 돌진한다.

    “국왕 폐하를 위하여! 너의 목을 가져가겠노라!”

    연금술 중 가장 전투에 적합한 무색의 연금술의 힘에 대적하는 그 모습을 보니, 힘의 격차는 확연함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이쪽이 훨씬 더 불리해.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가슴이 뛰는가.

    “과연 방패.”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대검을 더더욱 강하게 쥔다. 미르차르드 후작, 켈랑의 방패라고 불리는 남자.

    공식적으로 켈랑 최강이라고 불리는 사나이이며, 그 평가에 걸 맞는 힘을 가지고 있는 자.

    “만연하라!”

    이 떨림은 두려움이 아니다.

    지난 3년간의 노력을 박살낼 수 있는 상대와의 싸움이다. 그리고 지난 3년간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는 상대이기도 하다. 그러니 두려움에 떨 이유는 없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은 떨고 있는가.

    “갈!”

    그의 절규가 밀림에 메아리치자, 정말 우습게도 몸의 자유를 뺏기고 말았다.

    “큭.”

    폭탄은 그저 임시방편이 불과하다. 저래보여도 오러 마스터의 절기다.

    한 번 상쇄했다고 해서 두 번째도 상쇄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러나 예상했다. 그렇기에 먼저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하지 않았나. 자연이 매섭게 몰아치며 후작의 진로를 방해한다.

    움직여라, 무색의 연금술로 시간을 벌어놓지 않았나. 그러니까 이 시간동안 움직여, 움직여서 다가오는 공포와 맞서 싸우란 말이다!

    “내가.”

    자신이 지난 3년간 해왔던 노력이 쓸데없는 것이 아님을 지금까지 잘해왔음을,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있음을. 빌어먹을 운명의 여신에게 맞설 수 있음을.

    지금.

    “증명한다.”

    거짓말처럼 몸이 다시 움직이지 시작한다. 마치 지난 3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리는 것처럼.

    라트는 급히 뒤로 물러서면서 무색의 연금술로 후작과의 거리를 번 직후 인벤토리에서 담배를 꺼내 급히 불을 붙였다.

    오늘 아침 엘리가 빗속에서도 담배를 태울 수 있게끔 마법을 걸어줬기에 가능한 일이다.

    왠지 엘리가 힘내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뭐 정작 엘리가 이 상황을 알았더라면 기겁을 했겠지만.

    “전투 중 담배라니, 뭐하는 짓거리냐! 이 버릇없는 놈아!”

    ‘시끄러워.’

    엘리의 아리따운 모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 중에 들려오는 후작의 호통에 라트는 인상을 찌푸렸다.

    “후우.”

    숨길 것은 없다. 전력을 다해야 이길 수 있는 상대이지 않은가. 폐 속 깊이 머금어진 담배 연기가 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거대한 미스릴 덩어리로 변모하여 후작의 위로부터 떨어졌다.

    “웃!”

    갑작스레 하늘이 어두워지자 위를 바라본 후작은 깜짝 놀라 바닥을 굴러 미스릴 덩어리를 피했다. 오러 마스터의 몸이라지만, 저 무식하게 거대한 덩어리에 깔리면 몸이 성치 않았을 것이다.

    곧바로 사라지는 미스릴 덩어리, 그러나 그것이 환상이 아닌 진짜임을 알리듯 바닥이 움푹 패여 있었다.

    “이것도 연금술이냐?”

    고개를 끄덕인다.

    “솔직히 말해봐라. 너 연금술사가 아니라 무슨 드래곤이 유희하는 중이지? 아무것도 없는데서 미스릴을 만들다니. 창조가 아니냐.”

    “이게 있잖아.”

    담배 연기를 뱉음과 동시에 생명의 연금술을 사용해서 토벽을 만든다.

    “만연하라.”

    그 토벽에 손을 대서 무색의 연금술을 발휘한다. 무색의 연금술은 다 좋은데, 무조건 손이 자연과 접촉하고 있어야 발휘할 수 있는 게 문제다. 그러나 이렇게 사용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겠지.

    “어처구니가 없군.”

    몰아치는 흙바람에 후작은 한숨을 내쉬었고.

    “만연하라.”

    라트는 다시 한 번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하여 수많은 나무 꼬챙이를 만들어 사방에서 후작을 노리게끔 만들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되뇐다.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라, 피할 곳 없이 완벽하게 포위되어, 한 마리 먹잇감으로 전락한 오러 마스터가 있지 않은가.

    한순간, 자연은 라트의 명에 따라 공포를 집어삼켰다. 흙바람이 후작을 휘감았고, 수많은 나무 꼬챙이가 후작을 덮친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것으로 끝. 뒤로 돌아도 하등 문제가 없었겠지. 그러나 라트는 표정도 전투 자세도 풀지 않고 후작을 아니, 후작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내숭 피우지 말고 나와!”

    외친다, 이 자가 이렇게 허무하게 쓰러질 리가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겨우 이 정도로 이길 수 있는 상대라면, 겁먹을 이유도 없었다.

    후작의 전략을 전술을 전력을 너무나도 잘 아니까, 그래서 알 수 있다. 이 남자는 겨우 이 정도로 쓰러질 자가 아니다. 이 정도 공격은.

    “제법이지 않은가. 전투태세를 풀었으면 곧바로 잡어 먹으려고 했더니.”

    대지의 파도가 갈라짐과 동시에 후작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십 아니, 수백은 됐을 터인 나무 꼬챙이들은 깔끔하게 잘려 있었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저 정도 공격을 저렇게 깔끔하게 막아낼 수는 없다.

    피해를 입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몇 개는 잘라내고 몇 개는 피하고, 몇 개는 몸으로 막아야 되는 공격이었다.

    “그게 댁의 비기지.”

    그 불가능을 가능케 한 건 분명 그의 비기이겠지.

    “루아타 공작에게서 들었나?”

    이번에는 저쪽이 미소를 지었고, 라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공작에게서 듣지 않았지만, 알고 있다. 어찌 모를 수 있을까.

    오러 마스터와 오러 익스퍼드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오러 블레이드.익스퍼드의 오러 소드 따위는 깔끔하게 잘라버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예기를 가진 힘.

    그리고 남은 하나는 오러 마스터들 사이에서 비기라고 불리는 힘이다. 그들은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서 그들의 소망,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힘, 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이는 어떤 것보다 빠른 속도를.

    어떤 이는 그 무엇이라도 자를 수 있는 예리함을.

    어떤 이는 그 무엇이라도 부술 수 있는 힘을.

    어떤 이는 그 누구라도 해도 겁을 먹고 달아나게 하는 무시무시한 살기를.

    어떤 이는 절대로 지치지 않는 체력을.

    그리고 눈앞의 남자는 국왕의 방패가 되어 모든 것을 막을 수 있음을 소망하여 손에 넣었다.

    인지할 수 없는 사각에서 행해지는 공격이라고 해도 검으로 막을 수만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막을 수 있는 비기.. 커뮤니티 내에서는 칭하기를.

    ‘최강의 방패.’

    그래 분명 그리 불렸다. 몸이 떨려온다. 최선의 공격을 막아낸 눈앞의 적을 보고 어찌 몸을 떨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공포 때문에 떠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몸을 떠는가.

    “푸하!”

    인벤토리에서 마나 포션을 꺼내 들이마셨다. 이번 전투가 끝나면 공작에게 감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무색의 연금술과 생명의 연금술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마나가 부족하다. 그런데 이 검에 깃들어진 마법까지 감당해야 했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네.’

    “그래 이제 잔재주는 끝났나?”

    잔재주라. 그의 말에 라트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3년간 도달한 것이 저 남자의 눈에는 잔재주로 보이는 건가.

    “직접 보라고 했는데.”

    좋아 그렇다면 잔재주로 보이지 않게 만들어줄 수밖에.

    “만연하라.”

    “잔재주라고 말했을 터다!”

    라트가 다시금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하자 후작은 눈을 찌푸리면서 라트를 향해 달려갔다. 슬슬 그의 속셈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 요상한 힘을 사용해서 시간을 벌려는 거겠지.

    지금까지는 놀아줬지만, 이제는 아니다. 더 이상 시간의 여유가 없다. 재빨리 라트를 죽이고 본진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

    그렇게 생각한 후작은 다음 순간, 의문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필시 시간을 벌려고 이런 짓을 하는 것이라고, 분명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함과 동시에 라트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니, 의문을 뱉을 수밖에.

    시간을 벌려고 하던 것이 아니었던가? 시간을 벌려면 이 요상한 힘을 사용하고 도망치는 것이 옳지 않나.

    그런데 어째서 저 남자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거지?

    그 의문을 해소하기도 전에 갑자기 라트의 아래에 있는 땅이 요동치며 들어 올려 졌고 그 반동을 이용해 라트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어리석긴!”

    공중에서 이동할 수단도 없으면서 일대일 전투에서 공중으로 날아오는 건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상대의 공격을 피할 수 없지 않은가.

    그래 요상한 힘을 사용하지만, 순수한 검술 실력은 그리고 판단 능력은 겨우 이 정도였던 거다. 이런 자에게 시간을 끌었다니.

    후작은 그렇게 판단했고 지상으로 낙하하는 라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실로 완벽한 타이밍. 그 어떤 검사라도 이 공격은 피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되던 그 찰나의 순간, 라트의 바로 옆에 나뭇가지가 뻗어져 발판이 만들어졌다.

    그 발판을 밟아 옆으로 도약해서 후작의 공격을 피한다. 팔 쪽에 조금 스친 상처가 생겼지만, 그 정도는 괘념치 않아.

    그리고 다시금 뻗어진 나뭇가지를 발판으로 이용해 후작을 향해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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