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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06화 (106/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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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마치 산을 보는 것 같은 압도적인 위용을 보이는 푸른 언덕이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 위에 있는 건 수많은 병사, 그리고 기사. 그들은 흙으로 쌓아올린 진 안에서 적을 마주했다.

“궁병 준비.”

지휘자의 명에 따라 시위에 화살을 건다.

“발사!”

쏟아지는 비와 맞물려 지상으로 내려가는 화살은 심판과도 같았다. 분명 수많은 이가 죽음을 맞이하리라, 그렇게 믿었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쉴드.”

그러나 그것은 잠깐의 기대였을 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너무나도 가볍게 꺾인다. 적의 맨 앞줄에 서있던 남자가 가볍게 주문을 외운 것만으로 모든 화살은 튕겨져 지상에 꽂혔다.

“역시 루아타 공작인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러 마스터는 자신의 검을 뽑은 채 입술을 깨물었다. 상대는 아크 메이지의 칭호를 가진 자. 과연 자신이 나선다고 해서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대다.

그렇다면 굳이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이곳에서 차분히 공작의 마력이 소모되는 것을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공작의 마법이 무섭기는 하지만, 이쪽도 마법사는 있었으니까. 디스펠 마법으로 어떻게든 버틸 수는 있겠지. 공작이 아군 측 마법사가 디스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려는 낌새가 보이면 그 때 내려가면 그만이다.

“전군, 돌격하라!”

“셀룬을 위하여!”

한 차례 화살비를 막아낸 공작은 지체 없이 전군에게 돌격 명령을 내렸다.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 여기를 뚫고 단숨에 런트까지 진격해야만 한다.

공작의 명령 아래 수많은 군세가 언덕으로 향한다. 언덕을 올라 진정으로 마주하는 적. 말은 필요 없다, 오로지 삶과 죽음을 가를 뿐.

‘급하군.’

미르차르드 후작은 루아타 공작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한 차례 마법이라도 사용할 줄 알았더니 무식하게도 돌격 명령을 내리다니.

런트로 급히 진격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이건 자살 행위다. 비 때문에 화약 무기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 천혜의 요새를 쉽게 뚫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자살 행위로군.”

후작의 옆에서 상황을 살피던 루만 태자가 비릿한 미소를 짓더니, 자신의 뒤통수를 매만졌다. 전날 라트에게 얻어맞은 것이 아직도 쓰라린 모양이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루아타 후작이 있는 이상 방심은 금물이니. 어떻게 할까요. 태자님.”

“루아타 공작이 나서지 않는 이상은.”

태자는 나서지 말라는 말을 하려는 것을 멈추고 전장을 바라보았다. 매서운 기세로 언덕을 오르는 셀룬의 병사들, 그러나 분명 토벽에 가로막히겠지.

토벽이 무너진다고 해도 상관없다. 맨 앞줄의 토벽이 무너진다고 해도, 이중삼중으로 토벽을 만들어놨으니까.

이곳에서 셀룬의 군단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운이 좋았다. 이곳에서 루아타 공작의 군단을 전멸시키고, 차츰차츰 수도로 진군하는 브로켄 후작의 군단을 그 작전으로 처리한다면.

‘이번 전쟁은 우리의 승리다.’

승리, 이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자신이 생각하고도 너무나 달콤해서 곱씹을 정도로 그 단어가 가져다주는 의미는 너무나도 컸다.

자신이 있다. 이곳에서 이길 수 있다. 초초한 건 저들이고, 이쪽은 여유가 넘치니까.

바로 그 때.

이변이 일어났다.

“저, 저게 뭐야!”

“골렘이다, 어제 나타났던 골렘이야!”

토벽과 주변의 돌덩이, 그리고 나무를 흡수하여 몸체를 이룬 거대한 골렘이 나타나 남은 골렘을 무너트리고 셀룬의 병사들이 언덕을 오를 수 있게 한다.

그 뿐만 아니다.

“궁병, 전원 골렘을!”

마법사들은 루아타 공작과 그의 휘하 아래에 있는 마법사들을 견제해야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궁병 뿐.

지시에 따라 골렘을 향해 화력을 퍼부으려고 준비하던 궁병 사이로 무언가가 날아오더니, 날아온 무언가의 주변에 있던 궁병 전원이 얼어붙었다.

“무슨…….”

큰 피해는 아니다. 이곳에 있는 궁병의 숫자에 비교하면 얼어붙은 궁병의 숫자는 미미하기 그지없다.

“마법이다.”

날아온 것이 마법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작은 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누가? 저쪽의 마법사 무리는 이쪽의 마법사 무리가 확실히 견제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이런 마법이 날아올 수 있는가.

게다가 날아온 방향도 문제다. 저 방향은 셀룬의 군세가 있는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에서 날아왔다.

“저곳에 미리 병력을 빼놓은 건가.”

한순간, 마력탄이 날아온 방향을 감지한 후작은 대기하고 있는 기사 몇 명에게 신호를 보냈다. 분명 밀림 속에 마법사 몇 명을 찢어놓은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쪽도 병력을 찢을 수밖에.

“너희가 처리하고 와라.”

“명을 따릅니다.”

후작의 명령에 기사들은 곳바로 후작이 가리킨 방향으로 뛰어나갔다. 많은 병력을 보내면 수비에 지장이 생길지도 모르니, 소수의 기사들을 보낸 것이다.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토벽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할 거다. 그렇게 된다면 일어나는 건 정면충돌. 물론 언덕을 굳건히 지킨다는 지리적 이점은 변하는 바 없지만, 토벽이 무너진다면 이쪽의 피해는 더더욱 커진다.

어느 정도 피해는 감수해야겠지만, 이런 식으로 피해가 누적되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나머지는 궁병과 함께 골렘을 처리한다.”

“충.”

남은 기사 무리에게 골렘의 처리를 명령한 미르차르드 후작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나선다면 골렘따위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찰나의 틈을 타서 루아타 공작이 마법을 사용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있다. 루아타 공작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는지, 전장에 직접 나서지 않고 병력을 지휘하고 있을 뿐이다.

“이상하게도 그 자가 보이지 않는군요.”

“그 자라면, 무례하게도 태자님의 옥체에 손을 댄 그 놈 말입니까?”

루만 태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후작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몸을 훑고 지나감을 느꼈다. 그래 그 자가 없다. 그 정도 실력이라면 이 전장에서 실력 발휘를 할만도 하다.

태자에게 들었던 바에 따르면 그 자의 마법은 굉장히 특이하다고 했다. 땅과 나무를 세심하게 조종하는 마법이라니,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그 세월 동안 수많은 전투를 경험했지만, 그런 마법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거기에 골렘이라니.’

부하들의 말에 따르면 어제 셀룬의 본대를 습격했을 때도 골렘 때문에 큰 피해를 주지 못했다고 했다. 게다가 나무와 땅이 멋대로 움직여 본대를 보호했다고 했었지.

그 사건의 중심에 대검을 든 녹색 머리의 남자가 있다는 보고도 기억해냈다. 그렇다면 저 골렘은 그 남자의 힘인가?

‘그 자가 연금술사라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검사라면 모를까, 연금술사라니. 연금술사에게 그런 힘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만약 연금술사이면서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거라면?

“크악!”

그 순간 다시 한 번 날아온 마력탄이 한 기사의 발을 얼렸고.

“아, 안 돼!”

동료 기사의 외침을 무시하고 거대한 골렘의 손이 발이 묶인 기사를 짓누르자, 푸른 언덕은 구슬프다는 듯, 피눈물을 흘렸다.

발이 얼지 않았더라면 당하지 않았겠지. 아직도 반대쪽 밀림에 숨어있는 마법사 무리를 찾지 못한 건가?

하긴 이제 막 밀림에 들어갔을 테니 벌써 마법사들을 찾는 건 무리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후작은 불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어서 자신의 애검을 매만졌다.

그리고 20분이 지났음에도 골렘이 마력탄의 지원을 받아 날뛰고 있자, 후작은 불길한 기분이 맞아 떨어졌음을 느꼈다.

“디스펠은 불가능한가!”

“그, 그렇습니다.”

벌써 수차례 날아오는 마력탄에 디스펠을 시도해보려던 마법사는 고개를 저으며 디스펠이 불가능함을 알렸다. 디스펠이 불가능한 마법이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아니, 이게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밀림에 숨어있는 마법사들을 처리해야한다는 거지.

“후작.”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토벽까지 무너지자 루만 태자는 인상을 찡그리며 후작을 바라보았다. 밀림에 숨은 마법사들을 처리하러 갔을 기사들은 아직까지 깜깜 무소식.

‘당한 건가.’

이 정도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날아오는 마력탄이 건제하다는 것은 당한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많은 병력을 밀림 쪽으로 보낼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이상 기사를 보내기에는 이쪽에 남은 기사의 수가 넉넉지 않았다.

‘어제 당한 기사들이 간절하군.’

어제 루만 태자의 명령으로 셀룬의 본대를 기습했을 때 당한 기사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안타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들이 살아있었다면 이런 고민은 하지도 않았을 것인데.

‘어떻게 해야 한다.’

분명 유리한 싸움이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2개의 변수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잠시 고민을 하던 후작은 이 상황을 여유롭게 관전하고 있는 루만 태자를 향해 다가갔다.

***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언덕을 응시하며 마력탄을 날리던 라트는 마력석의 마력이 다됐음을 느끼고 손잡이 부분에 있는 카트리지를 빼버리고, 다른 마력석이 들어있는 카트리지를 장착했다.

그의 뒤에는 기사들의 시체가 늘어져있었다. 소드 익스퍼트에 달하지 못한 기사들이다. 이 정도로는 자신을 막지 못한다는 걸 저쪽도 슬슬 깨달았겠지.

그러나 지금 전장에서 소드 익스퍼트급 기사를 함부로 빼낼 수는 없겠지. 공격 측과 수비 측이 절묘하게 이뤄진 균형이 한 순간에 박살날 테니까.

그렇다고 자신을 이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을 터다. 마력탄은 마법이 아니니 디스펠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라트를 막을 방법은?

‘후작이 직접 오겠지.’

전장의 지휘자이지만, 루아타 공작을 견제하기 위해서 직접 전장에는 발을 딛지 않은 자는 후작뿐이다. 그 점을 잘 알기에 라트는 후작을 유인하기 위해서 이곳에 있었다.

후작을 유인하는데 성공하면, 그 뒤는 루아타 공작이 알아서 해주겠지. 루만 태자의 곁에 있는 다른 그림자 까마귀 놈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공작이라면 처리할 수 있을 터다.

‘왔네.’

다시 한 번 마력탄을 발사한 라트는 등 뒤에서 서늘한 감각이 느껴지자마자 재빨리 자리에서 벗어났다.

라트가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과 동시에 그 자리에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들린다.

“역시 너였나.”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라트를 바라보는 남자는 단언컨대, 이 전장에서 가장 강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가 내뿜는 살기에 이를 악문다.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되뇌었던 것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그럼에도 자신의 대검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전투를 준비한다.

무섭다, 어찌 무섭지 않으랴. 그러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야할 이유가 있다. 승리를 위해서 그리고…….

“재미있는 검이로군.”

저것이 마력탄을 쏘아내는 무기였음을 깨달은 후작은 이곳에 라트 혼자뿐이라는 것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

“날 유인한 건가?”

“댁만 없으면 우리가 이길 수 있으니까.”

라트는 후작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해서 무엇하리, 이미 그는 자신이 유인됐음을 깨달았는데.

“어처구니가 없군. 날 유인했다고 하지만, 이대로 널 처리하고 곧바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글쎄올시다. 그게 댁 마음대로 되려나?”

“자신만만하군.”

쉽사리 죽어줄 생각은 없다. 아니, 죽을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렇다면 버티려는가? 그것조차도 아니다.

‘나는 이기기 위해서 서있는 거다.’

이긴다, 반드시 이긴다. 그렇게 되뇌며 재빨리 강화 물약을 마신다.

“고작 그런 걸로!”

‘온다.’

전날 공포에 휩싸이게 했던 그것이, 공포의 함성이 온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답은 정해져있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지 않은가.

인벤토리에서 폭탄을 꺼내서 지근거리에서 폭파시킨다.

“고작 그런 걸로 날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공포의 함성이 청각을 유린하려고 했으나, 그것보다 먼저 굉음이 들려왔다. 던진 폭탄의 효과는 굉음. 폭발은 거의 없지만, 천둥과도 같은 굉음이 밀림을 덮쳐 메아리를 자아낸다.

그 굉음 덕분에 공포의 함성을 듣지 못한 라트는 재빨리 검을 들어올려 후작의 검을 막아냈다.

“무슨!”

“이걸로 하나는 클리어.”

내가 도대체 이 게임을 몇 시간이나 해왔다고 생각하는 거냐. 수 십? 수 백? 나는 이 게임을 수 천 시간동안 해온 유저다. 그래서 나는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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