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05화 (10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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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공작과 엘리, 그리고 라트를 비롯한 몇몇 이들은 다리를 건넜지만, 아직까지 모든 인원이 다리를 건너지 못한 상황. 다행이라면, 예상대로 적들이 이 근처에는 없다는 거다.

    “공작님.”

    “왜 부르는가.”

    그 짧은 틈을 이용해 라트는 엘리 몰래 공작에게 말을 붙였다.

    “미르차르드 후작을 상대하실 수 있습니까?”

    공작은 매우 뛰어난 마법사, 아크 메이지라고 불리는 자다. 노르스 대륙에 있는 모든 왕국은 물론이오, 유일무이한 초강대국 셰크티 제국에서도 손을 꼽을 정도의 실력자.

    그런 그에게 오러 마스터인 미르차르드 후작을 상대할 수 있냐는 물음은 어쩌면, 실례되는 발언일지도 몰랐다. 8서클에 도달한 마법사가 오러 마스터를 상대할 수 없을 리가 있나.

    “흐음.”

    그러나 라트의 물음에 공작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라트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상대는 할 수 있다.”

    어찌보면 자존심을 건드리는 발언이다. 그럼에도 공작은 그러한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고, 진중히 라트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그러나 이길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역시 그런가.’

    들려오는 대답에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잘 알고 있다. 월드 세리아를 수없이 많이 플레이해본 하드코어 유저 중 한 명인 라트다. 다른 유저들이 모르는 버그성 플레이도 알고 있을 정도다. 지금은 조건이 맞지 않아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지만.

    다시 말해 지금 이게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고 해도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보통 오러 마스터와 아크 메이지의 싸움은 가위바위보와 같다.

    가위바위보라고 해서 거리를 벌리고 싸우면 아크 메이지의 승리, 근접전에서 싸우면 오러 마스터의 승리 같은 뻔한 싸움은 아니다.

    근접전이라고 해도, 아크 메이지는 공간 이동 계열 마법을 이용해서 오러 마스터에게서 벗어나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오러 마스터가 압도적으로 불리하지 않냐고?

    아니 그렇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세계의 오러 마스터에게는…….

    “미르차르드 후작의 비기는 나도 모르니까 말이다.”

    비기, 그래 그것이 있었다. 이 세계의 오러 마스터에게는 한 가지씩, 비기가 존재한다. 공포의 함성이 그 비기가 아니냐고?

    아니다. 그것은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선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미르차르드 후작이 그 힘을 조금 더 갈고 닦았을 뿐.

    “역시 그렇습니까.”

    공작의 말에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공작의 전력과 미르차르드 후작의 전력을 생각해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지. 라트의 머릿속에 있는 공작의 전력은 지금과 같은 공작이 아니라, 푸른 귀신이라고 불리던 광인의 힘이었으니까.

    푸른 귀신과 미르차르드 후작의 싸움이라면 결과는 45:55로 미르차르드 후작이 살짝 유리하다.

    “미르차르드 후작의 비기도 모른 채 일대일로 싸운다면 나도 위험할 수 있다.”

    옳은 소리다. 아마도 제정신인 공작이 미르차르드 후작과 싸워봐야 승률은 5:5겠지. 그래서 라트는 두통을 느꼈다.

    미르차르드 후작을 상대하기 위한 제일 좋은 방법은 공작이 나서는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지금 전장의 상황은 셀룬 쪽이 영 좋지 않은 상황이다. 변수인 비가 있다고 하지만, 이미 진지를 쌓은 적을 상대하는 건 불리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그들을 무시하고 곧바로 런트로 진격하지니, 후방이 무섭다. 그러니 이번 전투는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전장에서 적에게 더 깊은 절망을 안겨줄 수 있는 건 아크 메이지일까, 오러 마스터일까.

    ‘당연히 아크 메이지지.’

    소수 대 소수의 전투라면 모를까 대군과 함께 싸우는 전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아크 메이지의 활약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소수전에 특화된 마법도 많지만, 그와 반대로 다수를 상대하는 마법도 굉장히 많으니까.

    반대로 오러 마스터는 전장의 상황을 뒤바꿀 수 있는 힘은 있지만, 아크 메이지와 같은 화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작이 미르차르드 후작을 상대한다면, 셀룬은 불리한 전투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공작이 미르차르드 후작을 상대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게 된다.

    ‘하기로 했잖아.’

    전날 자신이 하려고 했던 일을 기억한 라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다면 자신이 미르차르드 후작을 상대로 시간을 벌고, 공작은 이번 전투에 참여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무섭냐고? 당연히 무섭다. 전날 보았던 오러 마스터의 무시무시한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마음먹었다. 무섭다, 망설여진다, 죽음을 각오하는 건 언제나 무서운 일이다. 특히나 자신이 목숨을 잃으면 사랑하는 여인도 목숨을 잃지 않는가.

    그러나 라트가 하지 않으면, 셀룬이 이길 수 있는 확률은 현저하게 줄어들게 분명하다. 셀룬의 오러 마스터인 브로켄 후작이 이 전장이 없는 게 천추의 한이었다.

    “무슨 고민을 하기에 그렇게 얼굴이 심각한가.”

    “……제가 미르차르드 후작을 상대하겠습니다.”

    “뭐?”

    조금 떨리는 목소리, 전혀 의외의 말이 들려오자 공작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라트를 바라보았다.

    그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다. 그의 실력이 오러 익스퍼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던 공작이다.

    그러나 오러 마스터는 격이 다르다. 그 격이 다른 존재를 상대로 싸우겠다니.

    “기각이다.”

    그는 친우의 제자이며,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남자다. 그런 이를 미끼 같은 역할로 쓸 수는 없다. 더욱이 그가 죽으면 자신의 하나 뿐인 딸도 죽는다.

    그러니 더더욱 미르차르드 후작과 그를 싸우게 둘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공작님이 미르차르드 후작을 상대하신다면 아군은 굉장히 불리한 상황에서 싸워야합니다.”

    때마침 내리는 비 때문에 화약은 사용할 수 없다. 라트에게는 마력탄이 있지만, 이런 넓은 전장에서는 그렇게 많은 피해를 줄 수 없다.

    이런 전장에서 빛을 발하는 게 바로 마법. 그렇다면 공작이 이 전장에서 활약해야 셀룬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이성적으로 판단해라, 후작 대리.”

    이성적으로라, 그 말에 라트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이성적으로 판단할 거였다면 사실 이 밀림에 들어오면 안됐다.

    스승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나, 보내지 않았나를 기준으로 밀림에 들어온 것은 공작이지 않은가.

    물론 진짜 그 이유 때문에 메아리치는 밀림을 통해 런트로 진격하려는 건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밀림에 적의 본대가 있는 바람에 상황이 이렇게 꼬이고 말았다.

    “전 충분히 이성적입니다 후작님.”

    “이성적이라면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내가 미르차르드 후작과 싸운다고 해도, 우리 본대는 충분히 적을 이길 수 있다.”

    그런가. 공작의 말에 라트는 침묵을 지켰다. 확실히 공작을 대신해서 자신이 최선을 다한다면, 그리고 이쪽 귀족들이 제 능력을 적절히 발휘한다면 이기지 못할 싸움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해.

    “저희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야합니다.”

    “그건……. 옳은 말이다.”

    공작은 단번에 라트의 진의를 알아듣고 말끝을 흐렸다. 이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적은 그저 이 전투에서 승리하면 그만이지만, 아군은 이 전투가 끝난 후 켈랑의 수도인 런트까지 진격해야 한다.

    런트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본대의 전력을 살려야한다. 이곳에 켈랑의 본대가 있다고 하지만, 그 수는 반도 되지 않으며 아직 켈랑의 전력이 나타난 것도 아니지만.

    그러니 이 불리한 상황에서 적의 최고 전력을 자신이 붙잡고 우리 측 최고 전력을 날뛰게 만들어 전력을 보존하는 것이 상책 중 상책.

    “그것 때문에 자네와 내 딸을 잃을 수는 없다.”

    이어지는 공작의 말에 라트는 웃었다.

    “저는 죽을 생각이 없습니다.”

    “미르차르드 후작을 상대로 버틸 수 있다고?”

    버틴다, 오러 마스터를 상대로 연금술사가 버틸 수 있다는 말인가. 루아타 공작은 살짝 굳어진 표정으로 라트를 바라보았다.

    이 말은 허언인가, 아니면 진실인가. 하찮은 자만인가, 아니면 긍지 높은 자신인가.

    “이길 생각입니다.”

    그 다음 순간 공작 아니, 이 전장에서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할 말이 라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길 생각이라고?”

    “그렇습니다.”

    “미르차르드 후작을? 오러 마스터를 그대가 이길 생각이란 말인가?”

    그렇다. 라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공작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실력을 의심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르차르드 후작이 누구인가.

    셀룬 왕국 최고의 실력자인 루아타 공작이나 브로켄 백작이 목숨을 걸어야 양패구상을 할 수 있는 이가 아니던가. 그런 실력자를 이기겠다고?

    그러나 라트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허언도 아니었고, 자만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다는 말인가?

    “대신 세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공작님.”

    “무엇인가.”

    “하나는 오러 블레이드에 맞설 수 있는 버프 마법을 제 검에 걸어주십시오.”

    ‘과연.’

    공작은 라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러 블레이드, 오러 마스터의 척도이자 오러 마스터가 무시무시한 이유 중 하나다. 오러를 감싼 무기는 같은 오러를 감싼 무기 혹은 그만한 마법을 이용해서 막는 것 말고는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오러 블레이드가 없어도, 일반 병사들은 오러 마스터를 막아낼 방법이 없지만, 오러 익스퍼드라고 해도 오러 블레이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이유는 오러 블레이드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라트의 검이 미스릴로 만들어졌다고는 하나, 오러 블레이드 앞에서는 고작 수십 합이나 견뎌낼 수 있을까?

    그런 오러 블레이드를 견뎌낼 수 있는 마법이 있다면 적어도 오러 마스터를 상대로 선방은 할 수 있을 터.

    “그리고 이번 전장에서도 제 단독 행동을 윤허해주시기 바랍니다.”

    단독 행동이야 정해진 수순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건에 넣었다.

    “겨우 그 정도면 되나?”

    라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공작은 마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그 정도다. 선방은 가능하겠지만, 이길 수는 없다. 신체 능력이 다르다. 전투 센스가 다르다. 애당초 경지가 다르다는 것은 어지간해서는 극복할 수 없는 리스크다.

    그런데 겨우 그 정도를 가지고 미르차르드 후작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건가.

    “네. 그리고 또 한 가지 부탁은…….”

    잠시 말을 끊은 라트는 엘리를 바라보았다. 공작과 자신이 무슨 말을 나누고 있는지 궁금한 표정이다. 아니 궁금한 속에 약간의 슬픔이 깃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대강 눈치는 챈 것 같다.

    씁쓸하게 웃는 것으로 엘리의 시선에 답해주고 입을 연다.

    “미르차르드 후작의 권리를 저에게 주십시오.”

    잘하면 미르차르드 후작을 생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될 경우 포로의 권리는 당연히 공작에게로 넘어간다.

    공작에게 있어서 미르차르드 후작은 적의 뛰어난 실력자, 살려둘 이유는 없다.

    그러나 라트는 미르차르드 후작을 살려둬야 한다고 직감했다. 미르차르드 후작을 생포해서 런트까지 갈 수 있다면.

    그는 분명 셀룬에게 힘을 빌려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지.”

    라트가 정말로 미르차르드 후작을 포로로 잡아온다면, 그의 권리를 라트에게 줘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포로는 잡은 자의 권한이니까.

    “그럼 자네의 검을 줘보게.”

    이야기가 끝나자, 공작은 라트에게 검을 넘겨받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오러 블레이드에 맞설 수 있는 마법은 흔치 않다. 그러나 아크 메이지의 경지에 오른 루아타 공작이라면, 그 흔치 않은 마법도 사용할 수 있지.

    조금의 시간이 흐르자 대검에 기묘한 문양이 생겨났고, 공작은 라트에게 다시금 검을 넘겨주었다.

    “이 부분을 만지면 마법이 발동될 거다. 8서클 강화 마법이니 충분히 오러 블레이드에 맞설 수 있겠지. 마력은 당연히 내가 부담할 것이고.”

    마력을 본인이 부담해준다는 말에 라트는 눈을 조금 찌푸렸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마력이야 이쪽에서 부담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신의 명상법도 있고 마나 포션도 넘쳐흐를 정도로 많으니까.

    그러나 이것은 라트의 부담을 어떻게든 줄여주겠다는 공작의 호의였기 때문에 조용히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공작님 전군 건너왔습니다.”

    “……출발하도록 하지.”

    라트에게 할 말이 남아있었지만, 급히 자신을 부르는 부하의 말에 공작은 침음을 삼키며 적군이 있을 언덕을 향해 진군 명령을 내렸다.

    ============================ 작품 후기 ============================

    프로연중러 돌아왔습니다.

    수술도 끝날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없이 글을 안쓴 이유는, 제가 후기에 몇번 이야기를 남겼지만, 어머니가 재혼하시는 것 때문에 바쁘다고 징징거렸던 걸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겁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재혼하신다고 저희 아버지가 안계시냐..하면 그건 아니었습니다. 물론 저는 아버지라고 생각을 안하지만요.

    그런데 3개월 전 그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아무렇지 않았는데 막상 상을 치루려고 하니까 멘탈이 깨졌습니다. 뭐 때문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네요. 사실 제가 유리멘탈이기도 하고.

    그래서 도망쳤습니다. 글 쓰는 거에서 도망친 게 아니라, 그냥 현실에서 도망쳐서 시골로 내려갔었습니다. 솔직히 지금 와서는 왜 도망쳤는지 이해도 못하겠네요.

    아무튼...정신 차리고 돌아왔습니다. 기다려주신 많은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실망하신 많은 독자님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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