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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04화 (10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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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다음날 아침, 라트가 말한대로 거센 비바람이 온 밀림을 뒤덮었다. 훗날 메아치리는 밀림의 환경에 익숙한 파르스의 몇몇 병사조차 이 날 내린 폭우는 역사상 몇 없을 정도로 기록적인 폭우라고 회상할 정도였다.

    “소식은 전부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제군들 저 언덕에 파르스의 군대가 있다.”

    진군 직전, 공작은 하늘이 뚫린 듯 거칠게 쏟아지는 빗방울을 여과없이 맞으며 병사들에게 연설을 행한다. 공작의 말에 병사들 사이에 술렁거림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더욱에 제군들 사이에서 악명높은 미르차르드 후작도 이곳에 있다고 한다.”

    병사들의 술렁거림이 더욱 커져감에도 불구하고 공작은 그것을 제제하지 않고 계속해서 연설을 이어간다.

    “익숙지 않은 환경, 익숙지 않은 지형에서 적의 군대와 맞서 싸우는 것이 두려운가? 죽음이 두려운가?”

    침묵 속에 섞인 것은 긍정이었다. 그 누가 죽음이 두렵지 않을까. 죽음만큼 막연한 것은 없다.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 그것으로 끝이 나니까.

    “나도 그렇다.”

    본디 죽음을 부정하고, 병사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줘야 할 존재인 지휘관이 지금 이 순간, 죽음이 두렵다고 긍정할 줄이야.

    “그러나 나는 죽음보다 더욱 두려운 것이 있다. 우리가 이곳에서 져, 전쟁이 더더욱 길어진다면. 제군들 뿐 아니라, 제군들의 소중한 것들이 유린당할지도 모른다.”

    “호오.”

    케이네가 듣지 못할 정도로 조그마한 목소리로, 라트는 감탄을 내뱉었다. 루아타 공작, 정확한 풀네임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게임 내 비중이 적은 NPC 중 하나다.

    아니 비중이 적다고 하기 보다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NPC다. 원래대로라면 그는 엘리가 죽는 순간 미치고 마니까. 그렇기에 감탄했다.

    수많은 NPC가 전투 직전에 연설을 하는 건 들어봤지만, 루아타 공작은 이런 식의 연설을 하는 구나, 하고.

    “나는 그게 너무나도 두렵다. 집에 두고 온 부인이 과부가 돼는 것이 두렵다. 이곳에 있는 내 딸이 적들에게 잡혀 포로가 되어, 능욕당할 것이 너무나도 두렵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병사는 출신조차 불분명한 징집병이 아닌 전부 출신이 확실한 정규병이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연인이 있고, 부모가 있으며, 나아가 자식이 있다. 지켜할 것이 있는 이들이다. 그리고 지켜할 게 있는 사람은 확실히, 무섭지.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하기 이전에, 이곳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고향에 두고 온 소중한 이들이 고통 받을 것을 두려워하라.”

    조금 전까지 술렁이던 병사들은 모두가 입을 다문 채 공작을 바라보았다. 공작이 전쟁터에 자신의 딸을 데려온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지금 가장 두려운 건 공작이다. 이곳에서 지면 소중한 딸을 눈앞에서 잃을 수 있으니까.

    공작의 말에 호응하는 이들은 없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여전히 침묵을 지킨다.

    “그 두려움을 안고 나아가 승리하라. 그리하면 제군들의 두려움을 종식시킬 수 있으니.”

    빗방울 소리만이 이곳을 잠식하고 있을 뿐. 그럼에도 알 수 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공포가 사라졌다는 것을.

    ‘화술과 관련된 기능이라도 있는 건가?’

    몇 마디 하지 않았지만, 루아타 공작은 이곳에 있는 수많은 병사들의 마음을 단번에 굳건히 만들었다.

    이해했다. 공작이 미치지만 않는다면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가져올 수 있는 인물이라는 걸.

    그래서 루만 태자가 엘리를 이용해서 공작에게 해를 끼치려고 했던 것까지도.

    “진군하라.”

    조용하나, 이곳에 있는 모두가 공작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래 이제 뒤는 없다.

    지금 진군하지 않으면, 폭우에 의해 언덕을 제외한 대지는 물에 휩쓸려 우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범람한 물에 잠식될 테니까. 기회는 한 번 뿐.

    “비가 너무 거센데.”

    “그러게.”

    방수처리를 한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음에도 얼굴에 자꾸만 빗방울이 스며들자 라트는 곤란하다는 듯이 혀를 찼고, 엘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비가 내릴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 폭우가 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맘때쯤 메아리치는 밀림에 들어와 봤어야지.

    이런 환경 속의 진군임에도 불구하고 병사 중 단 한 명도 불평을 내뱉는 이가 없다. 그들은 몸소 비를 맞아가며, 공작의 연설이 성공적으로 먹혔음을 증명하는 중이다.

    귀족들도 비장한 각오를 보이기 위해서인지 비를 막는 마법은커녕 로브조차 걸치지 않고 비에 몸을 맡기고 있다.

    ‘비가 이렇게 내리면 담배도 못 필 거 같은데.’

    곤란한 상황이다. 이쪽은 모든 전력을 쏟아서 붙는다고 해도, 미르차르드 후작을 이길 수 있을지 모르는데, 이 정도 폭우가 내릴 줄이야.

    “곤란해 보이는 얼굴이네.”

    “엑? 얼굴이 보여?”

    엘리의 물음에 라트는 진심으로 놀랐다. 최대한 비를 맞지 않기 위해서 뒤집어쓴 두꺼운 로브다. 이 폭우 사이에서 얼굴이 제대로 보일 리가 없는데, 얼마나 눈이 좋은 거야?

    “여자의 직감.”

    이어지는 대답에 놀라움을 넘어서서, 조금 무서워졌다. 어젯밤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여자의 직감이라는 게 정말로, 무섭다.

    “그래서 왜 곤란해 하는 거야?”

    “담배를 못 피우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도 담배가 생각이, 아.”

    엘리는 라트가 담배 연기를 이용해서 연금술을 펼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비가 내리고 있으니, 담배를 태울 수 없다. 그 뜻은 라트가 사용할 수 있는 힘 중 하나를 쓸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확실히 곤란할만 했다.

    “그런 고민은 진작 말했어야지. 담뱃대 줘봐.”

    “응? 방법이 있어?”

    “파이프 홈에 공기는 순환되면서 빗방울이 들어가지 않게만 해주면 되는 거잖아. 방수 마법이랑 방어 마법을 연계하면 어떻게든 될 거야.”

    역시 마법은 이럴 때는 편리하구나. 엘리에게 인벤토리에 있던 담뱃대를 넘기자, 엘리는 담뱃대를 잠시 살펴보더니, 주문을 읊었다.

    “됐어. 시험 삼아서 한 번 펴봐.”

    “연기만 잘 타나 시험하고 바로 집어넣을게.”

    엘리가 건네준 담뱃대에 불을 붙이자, 이런 빗속에서도 담배는 아랑곳하지 않고 타들어가, 허공에 스멀스멀 연기를 내뿜었다.

    ‘됐어.’

    빗속에서 담배를 태울 수 있다. 걱정이던 것이 해결되자, 라트는 조금 전까지 굳은 표정을 지워버리고 활짝 웃었다. 사소한 것이 해결됐을 뿐, 당장 큰 문제는 아직까지 남아있음에도 지금은 웃을 수 있었다.

    “충격을 받으면 마법이 깨질지 모르니까, 조심해.”

    “진짜 고마워.”

    “이 정도로 고맙기는.”

    곧바로 담배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슬쩍 뒤를 바라보았다. 여기서는 보이지도 않지만, 저 뒤에는 케이네가 있겠지. 이 정도 비가 내리는 날, 아무리 미르차르드 후작이라고 해도 강물이 언제 불지 모르는 상황에서 강을 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니까 케이네의 안전은 안심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내 안전 아니, 엘리의 안전이다.

    “꺅!”

    갑작스러운 천둥 소리에 엘리는 비명을 질렀지만, 빗소리에 그 비명이 묻혔다. 오로지 단 한 명, 라트만이 엘리가 놀라서, 말에 떨어질지 몰라 그녀의 어깨를 감싸줬을 뿐.

    “고, 고마워.”

    “이 정도로 고맙기는.”

    조금 전 말을 답습하며, 앞을 바라본다. 심각할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리고 있다. 지금쯤이라면 강물이 범람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강을 넘는 건 생각보다 수월할지도 모른다.

    “와, 이젠 번개까지 치네.”

    “비 때문에 적도 아군도 구분되지 않겠는데.”

    “이 정도 비라면, 어쩌면 도움이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쪽에서 공작과 그의 가신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슬쩍 엿들었다.  방어를 하는 쪽이라면 모를까, 공격을 하는 쪽에선 어지간히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비가 역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건가? 어째서?

    “그건 홀리께서만 알고 계시겠지.”

    한참동안 가신들이 잡담을 가장한 조촐한 전술 토론을 하던 중, 공작은 가신들을 조용히 시키며, 손을 들어올렸다.

    “정지.”

    벌써 강 쪽인가. 그럼 일 해야지.

    “읏샤.”

    말에서 뛰어내려서 강을 찾는다. 비 때문에 코앞이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다. 간신히 강을 찾은 라트는 예상대로 강물은 범람하여 근처에 있는 나무를 집어삼키고 있는 모습에 침을 삼켰다.

    이런 상황이라면 파르스 측의 군대도 설마 셀룬의 군대가 강을 넘어오리라고 쉽게 예상할 수는 없는 상황. 과연 저 반대쪽에 파르스의 병사가 있을까?

    아마도 없을 거다. 있다고 해도, 최소한의 병력으로 망을 보고 있을 거다. 그렇다면 이 강을 넘는 건 쉬운 일이다.

    ‘좀 높게 만들어야겠는데.’

    원래는 연금술사이기에 그리고 케이네 때문이라도 후방에 있어야할 라트가 굳이 전방 부대에 있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으니까.

    “할 수 있겠나?”

    강물이 생각보다 너무 불어서, 공작은 짐짓 걱정되는 표정으로 라트에게 물음을 던졌다. 라트가 여기서 다리를 만들 수 없다고 하면, 그야말로 죽도밥도 되지 않는 상황이다.

    “염려마세요.”

    그런 공작의 걱정을 불식시키기 위해, 라트는 씩 하고 웃으면서, 범람하는 강의 앞에 섰다. 그리고 허리를 굽히고, 양 손을 바닥에 댄다. 빗물에 젖어, 질척이는 진흙의 촉감이 썩 좋지 않았다.

    “큭.”

    그런 생각이 든 걸 실소한다. 촉감이 무슨 상관인가. 이 전투를 속행하기 위해서,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나아가 스승의 신념을 이뤄주기 위해서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튼튼한 다리를 만드는 거다. 앞으로 치러야할 일에 비하면 이건 너무, 쉽다.

    “만연하라.”

    오로지 라트만이 눈에 보이는 경계가 퍼져나간다. 이 경계 안에서, 허락된 자연지물은 모두 라트에게 연금술을 펼칠 수 있는 재료가 된다. 나무는 안 돼, 말이 지나가야 하니까. 흙도 안 된다, 말보다 더 무거운 대포가 지나가야 하니까.

    역시나 가장 좋은 소재는 돌이다. 근방의 바위, 땅속에 잠들어있는 자갈등을 이용하자. 다리의 구조 같은 건 모르니, 저 물살을 견딜 수 있는 다리를 만드는 방법은 모른다.

    그렇다면 물살이 닿지 않게, 반원 모양의 다리를 만들면 그만이다. 무너질까 걱정이라면 양끝을 최대한 지하 깊숙이 박아놓으면 되겠지.

    “오오.”

    환상으로 다리의 윤곽을 만들어내고 미니게임을 끝내자, 서서히 다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함과 동시에 좌중들이 감탄을 내뱉는다. 이런 날씨 속에서는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돌로 만들어진 다리에 경탄한다.

    이 세계의 마법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세계의 마법 중 지형을 바꾸는 마법은 마력을 이용해 강제적으로 잠시 동안 자연을 바꾸는 개념이다. 시간이 지나서 마법에 사용했던 마력이 전부 사라지면, 뒤바뀌었던 자연은 원래대로 돌아간다.

    웃긴 현상이지. 학자들은 마법의 신인 아르카나와와 대지와 함께 자연을 권장하는 신인 라쉐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리고 사실이기도 하지.

    다리가 전부 완성되자, 공작이 가장 먼저 다리를 건너기 시작함과 동시에 라트 또한 엘리와 함께 다리를 건넜다.

    ============================ 작품 후기 ============================

    불법 텍본 빼애애애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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