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03화 (10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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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아참, 그대에게 묻고 싶은 게 있군.”

    라트의 표정이 굳어지고 있는 걸 본 루아타 공작은,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게 라트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엇입니까?”

    “다리는 무슨 재료로, 몇 개나 만들 수 있지?”

    군을 통솔하는 입장 상 확실히 알아둬야 할 정보다. 라트는 입맛을 다시더니, 손가락으로 가장 물살이 강한 곳을 가리켰다.

    “돌로 만든 다리, 10개. 다리 한 개당 넓이는 2m 정도로 만들 수 있습니다.”

    “무, 뭐?!”

    “허허허. 연금술이?”

    마법은 사용하기에 복잡하고 까다로운 만큼 응용하기가 어렵다. 플레이어들은 전혀 모르지만, 이 세계의 마법사들은 복잡한 술식을 풀어서 마법을 사용한다. 응용을 하기 위해서는 그 식을 바꿔야하고.

    궤도를 바꾸는 간단한 응용이 아니라, 땅 속성 마법을 이용해서 다리를 만드는 식의 응용은 굉장히 어렵고, 지속하는데 마력도 많이 소모된다.

    그러나 무색의 연금술은 그럴 필요가 없다. 마력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주변의 지형을 바꾸는 힘이니까.

    “충분하겠군.”

    수많은 귀족이 라트의 대답에 경악을 금치 못했으나, 공작만이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문제는 그 다음이로군.”

    강은 해결됐으니, 다음 문제는 바로 언덕이다. 강에서 수비하는 게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파르스의 모든 군대는 언덕으로 돌아갈 거다. 진을 구축한 언덕을 뚫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다.

    그렇다고 이들을 내버려두고 런트로 진격하자니 후방이 두려워.

    특히나 미르차르드 후작은 가능하면 이곳에서 끝장내고 싶은 것이 루아타 공작의 바람이었다.

    “다들 좋은 의견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말해주길 바라네.”

    그제야 강 말고도 뚫어야할 난관이 하나 더 남아있다는 것을 깨달은 귀족들은 침착하게 지도를 바라보았다. 병력은 셀룬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병사의 질도 마찬가지로 셀룬이 뛰어나다.

    그렇지만 지형이 문제다. 그리고 이곳에서 큰 피해를 입으면, 파르스의 수도인 런트를 공략하는데 지장이 생긴다.

    “밀림이 아예 불타는 게 아니라면, 라쉐도 어느 정도 이해해줄 테니, 대포를 사용하는 건 어떻습니까?”

    “런트에서 얼마나 탄약을 쓸 줄 모르는데, 이곳에서 폭탄을 낭비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라쉐께서 혹여나 분노하시면 그야말로 곤란하지 않나.”

    “대포같은 화기는 못쓸 겁니다.”

    라트는 그들의 말을 끊으며, 화기는 쓰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어째서?”

    “밀림에서는 때때로 우기가 찾아옵니다. 비가 오면 당연히 화기는 사용하지 못하죠.”

    “비가 온다고?”

    “돌아버리겠군.”

    한숨이 공간을 뒤덮는다. 밀림의 비는 매섭다. 평탄한 대지를 물로 뒤덮을 정도로 거세, 인간이 휩쓸린다면 순식간에 물고기 밥이 될지도 모른다.

    “정말로 내일 비가 온다면, 단기 결전을 결사해야겠군.”

    공작의 말에 모든 한숨이 사라졌다. 우기를 피하기 위해서 이 언덕에서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단기 결전으로 최소한 3일 안에 강을 건너고 저 언덕을 빼앗아야한다.

    “제일 문제는 미르차르드 후작인가.”

    그 이후로 수많은 의견이 오갔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정면승부를 하는 쪽으로 의견이 좁혀졌다. 언덕을 선점하고 있는 이상, 뒤를 칠 수도 없고 기습도 무의미하다.

    투명 마법을 사용해서 기습을 할 수 있기는 하지만, 투명 마법은 최대 100명 정도 밖에 걸지 못한다. 겨우 100명의 병사로 뒤를 기습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간이 촉박한 이상, 적들의 보급을 끊어서 말려 죽이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답은 정면 승부뿐이다.

    “병력을 두 개로 나눈다. 한 쪽은 강에 있는 병사들을 최대한 귀환하지 못하게 하고, 다른 한 쪽은 언덕을 친다. 혹여나 이의가 있다면 말하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이게 최선이라는 것을 아니까. 한순간의 판단으로 상황이 이렇게 나빠지기는 했지만, 이 상황을 타파할 수만 있다면 런트를 공략할 수 있다. 어쩌면 파르스의 국왕을 포로로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전쟁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귀족들은 메아리치는 밀림으로 군을 돌린 공작과 그런 의견을 낸 세르먼트 후작을 원망하기보다는 투지를 갈았다.

    전쟁이라는 건 바로 그 다음날 아니, 한 시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니까. 그렇기에 원망도, 후회도 있어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투지, 그리고 승리를 향한 갈망뿐이다.

    “그럼 해산하고, 모두 최대한 준비를 하길 바라네.”

    회의가 종료되자, 이곳에 처음 모였을 때 보여줬던 풀어진 표정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굳은 표정으로 공작의 막사를 떠났다.

    “후우.”

    밖으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문채 하늘을 바라본다. 시기를 생각해봐도, 하늘을 봐도 분명 내일은 비가 올 것이다. 과연 이 비가 누구의 편을 들어줄까.

    “또 담배야?”

    막사에서 나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엘리를 향해 라트는 미소를 지었다. 담배가 뭐 어때서,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런 말은 하지 못한 채, 담배를 인벤토리에 넣고 그저 하늘을 바라본다.

    “네 말대로 진짜 비가 오려나봐.”

    “올 거야.”

    반드시 온다, 그리고 그 비와 함께 수많은 죽음이 이 땅에 뿌려지겠지.

    ‘운이 진짜로 안 좋았어.’

    설마 이런 곳에서 전투가 일어날 줄은 몰랐다. 어지간한 전장이라면 괜찮은 전략을 내겠지만, 메아치리는 밀림에서는 단 한 번도 전투를 해본 적이 없어서 전력을 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전략 부분에서는 하도 게임을 많이 한 덕분에 필승 전략을 짤 수 있다고 하지만, 군을 통솔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기에 라트는 지금처럼 자신 휘하에 군을 두지 않은 채 홀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 새끼를 죽여야지. 엘리를 죽이려고 했던 원흉의 얼굴이 떠오르자 라트는 이를 갈았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존재가 내뿜는 공포 때문에 결국 죽이지 못하고 도망쳤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분명 미르차르드 후작은 루만 태자의 호위역으로 이곳에 왔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그 새끼를 죽이기 위해서는 미르차르드 후작을 넘어서야하는 건가.

    ‘어쩔 수 없지.’

    현재 이 군단에서 오러 마스터를 막을 자는 없다. 마법사는 당연히 논외고. 기사나 귀족 중에서 가장 경지가 높은 자를 꼽아봐야 오러 익스퍼드다. 오러 익스퍼드가 오러 마스터를 상대로 몇 분이나 버틸 수 있을까? 그럴 바에야 스탯이 가장 높은, 변수를 만들 수 있는 내가 미르차르드 후작을 상대하는 게 옳다.

    “위험한 생각하고 있지?”

    ‘무당이세요?’

    날카롭기 그지없는 여자의 촉이 칼날로 변해 라트의 심장을 찔렀다.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도대체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라트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연인을 바라보았다.

    라트가 죽으면 자신도 죽는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엘리는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기보다는 순수하게 라트를 걱정하고 있었다.

    “위험한 생각은 무슨.”

    천연덕스럽게 시치미를 때보지만, 엘리는 표정을 풀지 않고 라트를 노려보는데 여념이 없다.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언니한테 이른다?”

    “안 하고 있다고.”

    만약 미르차르드 후작과 맞붙을 생각이라고 말하면, 엘리는 필시 라트를 말리려고 들 것이다. 그리고 만약이지만, 이 이야기를 엘리가 케이네에게 말한다면?

    ‘누나는 분명 울 거야.’

    케이네는 울면서 라트를 말리려고 들 것이다. 케이네가 운다면? 와, 나를 위해서 아낌없이 모든 걸 주려고 하는 천사께서 울면서 말리는데 고집을 계속 부리면 그게 사람 새낍니까. 개새끼지.

    “그냥 내일부터 나랑 같이 뒤에 있는 게…….”

    “그건 안 되는 거 알지?”

    엘리의 말에 라트는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공작의 최측근을 비롯하여 엘리또한 라트와 루아타 공작이 이번 전쟁에서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승리, 그래 승리도 중요하지.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연금술사의 평가를 높이는 거다.

    그것이 스승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불연 듯 이 세계에 떨어져서 아무것도 없었던 나를 이 날까지 편하게 지내게 해주고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르쳐준 스승님께 해드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역시 안 되겠지?”

    그것을 알기에 엘리는 씁쓸하게 웃었다. 스스로 친우의 목숨을 앞당겼다고 생각하여, 매일 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눈으로 봤기에 알고 있다. 라트의 심정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그래도 위험한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 혼자서 이루크 성에 침입했을 때도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알아?”

    “노력해볼게.”

    노력은 해보겠다고 말했지만, 역시나 약속은 하지 않는다. 라트가 스스로 위험을 자처할 게 눈에 보인 엘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장에서 위험을 자처한다는 건, 죽을 수도 있다는 소리다. 사랑하는 남자의 곁에 있음에도 그 남자가 죽을 곳을 향해 가는 걸 말릴 수 없다니.

    그러나 말릴 수도 없고, 그의 옆을 지킬 수도 없다. 라트와 자신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절실히 체감하고 있기에. 라트의 옆에 있으면 자신은 짐이 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래서 슬펐다. 눈물이 흐를 정도로. 그럼에도 엘리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에게 눈물을 보일 수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힘내, 그리고.”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응원, 그리고.

    “죽지 마.”

    자신의 바람을 조그맣게 말하는 것뿐.

    “안 죽어, 절대로.”

    남자는 웃으며 연인의 조그마한 바람에 확답하며,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게 해둔 운명의 실을 보이게 만들었다.

    “이것 때문에라도, 절대로 안 죽어. 널 구해주겠다고 말한 내가 널 죽게 할 리가 없잖아.”

    엘리가 죽으면 라트가 죽는다.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다. 절대로 죽게 내버려두지 않아,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한 라트가 엘리를 죽게 내버려둘 리가 없다.

    미르차르드 후작을 상대하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르차르드 후작을 막겠다는 뜻이다. 정면 승부로 미르차르드 후작을 이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잘하면 이길 수 있을 거 같기도 하지만.’

    미르차르드 후작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한다. 수틀리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까지, 내 몸을 극한까지 몰아쳐야한다. 그런 도박수는 사용하고 싶지 않아.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니까.

    “그것도 그러네. 히히.”

    그저 확답임에도 불구하고 안심이 됐는지 엘리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우울한 표정을 지우고 유쾌하게 웃었다.

    “아가씨, 슬슬 주무실 시간입니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세스라가 천막 밖으로 나와 엘리에게 다가왔다. 천막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져서 혹시나 무슨 일이 있나 찾아온 모양이다.

    “라트님과 대화가 즐거움은 알고 있으나, 라트님도 내일 전투를 치러야하실 몸이니 이쯤 해두시길.”

    “알고 있어.”

    “죄송합니다, 라트님. 그러나 라트님도 슬슬 주무셔야할 듯 합니다.”

    붉은 머리의 기사는 라트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양해를 구했다. 조금 있으면 오러 익스퍼드에 도달할 정도로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여기사이지만, 그의 힘을 알기에 그리고 그와 엘리의 관계를 알기에 예의를 차리는 것이다.

    슬슬 내일의 전투를 위해서 자야할 시간이지. 잠이 오지는 않지만, 억지로라도 잠을 자야할 시간이다.

    “그래 자야지.”

    “그럼 나도 들어 가볼게, 잘자.”

    “너도.”

    짧은 인사가 교차했고.

    “내 꿈꾸고.”

    “그랬으면 좋겠다.”

    “후후후.”

    애정이 뚝뚝 묻어나오는 대화에 여기사는 헤프게 웃고 말았다. 첫사랑처럼 달콤하고, 첫사랑처럼 풋풋한 대화다. 전쟁터에 어울리지 않는 대화, 그래서 대화는 너무나도 극적이었다.

    ============================ 작품 후기 ============================

    그리고 사람이 30시간을 자면 잠이 안와서 이렇게 연참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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