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102화 (10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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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회의장으로 들어오기 전, 잠시 하늘을 바라본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맑디맑은 날씨였는데, 석양이 짐과 동시에 우중충한 하늘이 찾아왔다.

“비가 오겠는데.”

메아리치는 밀림은 밀림답게 비가 내리는 기간이 있다. 이 기간동안 한 번 내린 비는 어지간해서는 멈추지 않는다. 좋지 않아, 라고 속삭이면서 라트는 자리에 착석하려고 했으나.

“자네는 중앙으로 오게나.”

공작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라트를 만류하고 그를 중앙에 세웠다. 귀족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쏠리자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주목받는 일은 언제나 익숙하지 않아.

원래 살던 세계에서도 그리고 이곳에서도 나름 소시민적인 삶을 영융했으니까. 아, 엘리와 친해진 시점부터 소시민적인 삶을 살았다고 하기는 뭐한가? 스승님도 그렇게 돈에 쪼들리지 않으셨고. 그렇게 따지면 부모님도 경제적으로 어려우신 편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자네가 겪은 일에 대해서 말하게.”

그런 쓸때없는 없는 생각을 영위하던 중, 공작은 라트에게 지시를 내렸다.

‘내가 직접 말해야되는 거였어?’

공작이 간단하게 설명을 해줄지 알았는데,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직접 말해야하다니.

‘어떻게 말해야되더라.’

공작이 나에게 비밀리에 첩보 활동을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식으로 말하면 되겠지?

“혹시나 이 밀림에 적이 있을까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공작님과 어젯밤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자 공작님께서 저에게 비밀리에 주변을 살펴보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새빨간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심장이 조금 떨리는 감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귀족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라트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군을 이탈해서 이 일대를 살펴봤습니다.”

“명령서는 있습니까?”

“비밀 작전이라 명령서는 당연히 남기지 않았네.”

“그렇다면 이 자가 비밀 명령을 나갔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죠?”

피츠로이 백작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귀족이 라트를 쏘아보았다. 조금 전 프레만에게 굴욕적인 상황을 만들어준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피츠로이 백작에게 아부를 떨고 싶은 건가.

“제가 군에 이탈했다면 이런 시간에 본진을 찾아올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같은 반응이 나오리라고 예상했기에 라트는 마음속으로 미르차르드 후작에게 감사를 표하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라트가 이곳에 왔을 때는 진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제야 자리를 잡고 진을 차리고 있던 곳에 도착하려면 정보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아, 잠깐만. 기왕 이렇게 된 거, 마법을 걸도록 하지.”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라트에게 불신의 시선을 보내자, 보다못한 공작은 라트에게 마법을 걸었다.

“진위여부 확인 마법일세. 거짓말을 하면 고통을 받게 되지.”

‘뭐 어쩌자고?’

여기서 진위여부 확인 마법을 사용하면, 현재 거짓말을 하고 있는 라트는 당연히 고통을 받게 된다. 고통을 씹어 삼키면서 말을 하라는 건가? 어이가 없어서 공작을 바라보려는 순간.

“이제 자네가 보았던 것을 전부 말해주게나.”

공작의 말이 먼저 라트의 귓가에 들렸다. 내가 보았던 것?

‘아.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진위여부 확인 마법을 사용하고 보았던 것을 말해주라고 함은, 그 전에 말했던 것에 대해서는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그리고 라트가 가져온 정보는 이들이 라트가 비밀 작전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에 대한 관심을 끊게 만들 수 있는 엄청난 정보다. 충격적인 정보를 알려줘서 시선을 분산시키자는 건가. 역시 루아타 공작, 머리가 뛰어나다.

“어딘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곳에서 루만 브리나오 리오레아 켈랑 태자와 미르차르드 후작을 만났습니다.”

이야기를 이어갈수록, 이곳에 모인 모든 이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허공을 바라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재 셀룬의 군단은 공격을 위해서 메아리치는 밀림에 들어왔다. 지리를 모르는 곳에서 셀룬의 군대를 물리치고 그들의 수도인 런트로 진군을 해야 한다.

차라리 방어전이었다면 지리를 모르는 약점이 상쇄될 수 있을 지도 모르나, 공격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틀려지지.

“메아리치는 밀림의 간단한 지도입니다.”

조잡하기 짝이 없는 간단한 지도였지만, 이 정도도 감지덕지 할 수밖에 없다. 설마 이곳에서 적군을 만날 줄은 몰랐으니까. 시간도 없었고.

“후작 대리의 말대로라면 현재 이 언덕에 파르스의 군대가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공작의 예상대로 이제 라트가 진짜로 비밀 작전을 받아서 군을 이탈했는지에 관해 관심을 가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단 한 명, 이를 갈고 있는 자가 있기는 했지만, 그는 조금 전 사건 때문에 차마 나설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큰일이군요.”

파르스의 군대는 현재 런트로 진격하기 위한 길목 사이에 있는 언덕에 진을 피고 있는 중이었다. 런트로 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이 언덕을 점령해야하는 상황.

‘역시 가장 좋은 건 화계지.’

“불을 지르는 건 어떻습니까?”

라트와 같은 생각을 한 자가 있었는지 불을 지르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공작은 고개를 저었다.

“라쉐의 분노를 받고 싶지 않다면 그만두게나.”

‘엥? 라쉐의 분노?’

“그 전설이 진짜였습니까?”

전설? 라쉐는 대지를 다스리는 신이고, 이곳은 북부이면서도 남부의 기후를 가지고 있다. 무언가 떠오를 법도 한데? 아, 뭐더라?

“그렇다. 혹시나 경거망동한 행동은 삼가게나.”

“알겠습니다!”

힘찬 대답과 동시에 주변에서 술렁인다.

“무슨 전설?”

“야만인이 섬기는 신인 라쉐와 관련된 전설이라 잊힌 전설이 하나 있다네.”

주변 귀족들의 이야기를 들은 라트는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그다지 상관없는 요소 중 하나라 멍청하게도 지금까지 잊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북부에 이런 밀림 지대가 생길리가 없다. 그런데 어째서 이 북부에 밀림이 생겼는가. 마법이라고 해도 이런 대규모 환경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다. 그러니 이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선 신의 축복 혹은 저주가 내렸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메아리치는 밀림에는 한 가지 오래된 전설이 있다. 너무 오래전 이야기고 하필 관련된 신도 야만인이 섬기는 신인 라쉐와 관련된 이야기이기에 대부분의 사람이 잊어버렸지만, 이 밀림 지대는 라쉐가 어떤 까닭으로 밀림의 중심에 온화한 불길의 심장을 심어서 형성된 장소다.

만약 이곳을 불태운다면 신의 분노를 받게 된다. 아무튼 이 세계의 신들은 너무 쪼잔해서 문제야. 그리고 문제는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거다.

게임 상 플레이어가 이 전설에 대해서 알게 되는 건 야만인과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서 특수한 조건을 만족할 때뿐이다.

무려 신이 남긴 아이템이 숨겨져 있는데 어째서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냐고? 간단하다. 온화한 불길의 심장이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환경을 무시하고 이런 밀림을 조성하는 아이템, 거기에 밀림을 조성하는 것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온화한 불길의 심장을 이용해서 무슨 아이템을 만들 수 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쓸모가 없다.

그래서 라트는 놀라운 눈으로 공작을 바라보았다. 자신조차 간과하고 있던 걸을 알고 있었을 줄이야.

“그렇다면 이 강을 건널 수밖에 없네요.”

다른 귀족이 탐탁지 않다는 듯, 지도를 바라보았다. 메아리치는 밀림의 한 중간에 있는 거대한 강. 이 강을 건너서 조금 더 진군하면, 적의 군대가 있는 언덕이다. 통상적으로는 건너기 쉬웠겠지만.

“아마 적군도 이 강을 방어하고 있을 겁니다.”

“메아리치는 밀림의 강물은 억세다고 들었는데, 괜찮을까요?”

문제는 적이 이런 자연의 요새를 내버려둘 리가 없다. 필시 이곳에서 적을 막으려고 들 것이다.

“배를 만들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수교를 놓기에는, 적의 반항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이것 참.”

피츠로이 백작을 필두로 모두가 강을 넘어서는 걸 까다롭게 느끼는 듯, 골머리를 썩고 있는 중이다. 그들을 신경쓰지 않고 라트는 여유롭게 지도를 바라보았다.

강을 뚫는 건 별로 그다지 문제가 없다. 그보다는 다음이 문제지. 흐르는 강을 넘고 나서는 적들이 진지를 구축한 언덕에 도달할 것이다. 저 언덕을 도대체 어떻게 뚫을 수 있단 말인가.

언덕이라는 지형 덕분에 기병대를 운용할 수도 없다. 밀림을 불태우는 건 금지이기에 화염 마법을 사용할 수도 없어. 물론 루아타 공작이 화염 마법 밖에 다루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곤란한 건 사실이다.

마법은 마법으로 상쇄시킬 수도 있으니까.

화기를 사용하는 것도 곤란하다.

“무엇을 그리 고민하지?”

강을 어떻게 넘어가느냐에 대해서 귀족들이 끊임없이 토론을 펼치자, 루아타 공작은 무심하게 말하며 라트를 바라보았다.

“후작 대리가 이루크 성 공성전에서 보여줬던 능력은 모두 잊어버린 건가?”

모두의 시선이 라트에게 향하자,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강을 넘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색의 연금술을 이용해서 다리를 만들어서 넘어가면 그만이다.

그것도 적이 절대로 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최소한의 병력만을 둘 물길이 가장 쌘 부분에 다리를 만들면 최소한의 피해로 강을 건널 수 있다.

“땅굴을 이용해서 넘어가자는 소리십니까?”

그러나 라트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귀족들은 공작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굳이 땅을 팔 필요가 있나. 후작 대리가 다리를 만들어주면 그만인 것을.”

“연금술이 그런 일……도 할 수 있습니까?”

미르차르드 후작이나 루만 태자와 다르게 라트가 기느투스 후작의 제자라는 걸 알고 있는 귀족들은 연금술이 그런 행위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 공작과 라트를 번갈아가면서 바라보았다.

“기느투스 후작의 말에 따르면 후작 대리가 익힌 연금술은 특별하다고 하더군.”

“다리를 만드는 게 가능한 건가? 후작 대리?”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라트는 마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강을 건너는 방법이야 자신이 솔선수범하면 된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이런 식으로 시선이 쏠리는 건 달갑지 않다.

특히나 저 새끼,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프레만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가능합니다.”

그래도 질문을 들었으니, 답은 해줘야지. 라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많은 귀족들이 탄성을 자아냈다. 수교가 아닌 다리를 만들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강을 건너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잘하면 피해 없이 강을 건널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긍정적인 의견이 오간다. 바보들, 라트는 짧게나마 귀족들을 매도하고 다시금 지도를 바라보았다. 강이 제 1난관이기는 하지만, 제일 큰 난관은 역시나 언덕이다.

그리고 미르차르드 후작, 라트는 조금 전 자신에게 생명의 위험을 느끼게 해줬던 오러 마스터의 모습을 떠올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두려움, 공포와 함께 치욕과 굴욕이 마음을 뒤덮는다.

어쩌면 미래가 탄탄한 프레만 베칼 피츠로이에게 그런 식으로 굴욕을 준 까닭도 라트가 지금 정상이 아니라서 그럴 지도 모른다.

태연한 척 하고 있지만, 생명의 위험을 느낀 건 사실이다. 그렇기에 두려웠다. 반대로 굴욕적이었다. 겨우 NPC 그들의 힘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직접 마주하니, 무섭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는 일말도 없었다.

이 얼마나 굴욕적인 일인가.

============================ 작품 후기 ============================

여러분 사람은 30시간 이상을 잘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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