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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이 자는 탈영병 입니다, 공녀님. 지엄한 군법에 처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지엄한 군법이라. 상당히 위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라트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쪽을 흘깃 바라본 프레만은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탈영병이라뇨? 라트는…….”
“그만.”
엘리의 말을 막아선 것은 프레만이 아닌 라트였다.
“표면상 탈영병은 맞아. 변명해줄 필요는 없어, 엘리.”
무슨 사정이 있었건, 라트는 탈영병이 맞았다. 본대를 이탈한 것도 자신의 실수였고, 재빨리 본대로 귀환하지 못한 것도 어디까지나 자신의 실수였으니까.
그러나 자신이 탈영병이 맞음을 인정했음에도 웃고 있는 것은 라트였고, 표정이 구겨진 것은 프레만이었다.
공녀,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공작의 후계자. 셀룬 나아가, 노르스 대륙에서 공녀를 얕볼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런 고귀한 자를 당연하다는 듯 애칭으로 부른다. 자신이 사모하는 이를 애칭으로 부른다.
프레만의 표정이 썩어나가는 건 당연했고, 라트가 웃는 건 너무나도 자명했다.
“그래, 나는 표면상 탈영병이 맞아. 그러는 넌 뭔데?”
싸늘한 물음에 시간이 얼어붙는다. 바깥에서는 진지 공사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기에 시간이 멈춘 것은 분명 아니었으나, 이 막사 안에 있는 자들의 시간은 틀림없이 얼어붙었다.
“무슨 뜻이지?”
“아, 애송이한테는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나?”
물음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표정으로 묻는 프레만을 향해 비웃음을 날린다. 정녕 내 물음의 의미를 모르는 건가? 이렇게 멍청한데, 어떻게 귀족이라고 할 수 있나.
“아, 애송이가 아니라 어릴 적부터 검만 배워서 뇌가 근육인가?”
“날 모욕하는 건가!”
비아냥거림에 비웃음을 더하자, 프레만은 속절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모욕이라, 그건 누가 누구에게 당한 것인가. 네가 나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면 실망이 크다, 프레만 베칼 피츠로이. 아비에 비해서 형편없이 지혜가 낮아.
“모욕은 니가 먼저 했고.”
라트는 비웃음을 그치고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눈앞의 남자를 노려본다.
“헛소리!”
“아니, 헛소리가 아니야. 이 전쟁에서, 이 군단 안에서 네 위치는 뭐지?”
그가 이해할 수 있게 뜻을 풀어 다시 한 번 물었다. 그 물음에 엘리와 케이네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입을 벌렸지만, 프레만은 라트의 말에 담긴 뜻을 파악하지 못했고.
“파츠로이 백작의 장남, 백작 후계자다.”
어리석은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건 네 미래의 위치일 뿐이고. 지금 너는 뭐냐고.”
다시 한 번 이어지는 싸늘한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래, 미래라면 모를까, 지금 당장 이 새끼는 아무것도 아니다. 파츠로이 백작의 장남? 미래의 백작? 지랄하지 말라고 그래. 이 군단 안에 있는 귀족의 수만 도대체 몇 명이던가.
그 중 군단의 요직을 맡지 못하고 가신이나 책사, 혹은 일개 사병을 자처하고 나선 이가 도대체 몇 명인가.
“작위조차 받지 못한 애송이가.”
손가락을 들어 올려 프레만의 뒤에 있는 병사들을 가리킨다. 저 병사들은 피츠로이 백작의 사병이 아닌 정규군이다. 저기 있는 정규군은 물론이오, 프레만도 진지 공사에 동원된다고 해도 모자를 판.
“정규군을 통솔하고 있다니. 이거야 말로 지엄한 군법에 어긋나는 일이잖아.”
정규군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작위가 있는 귀족 중에서도 어느 정도 군단을 통솔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귀족뿐이다. 그 외 나머지 귀족들은 작위가 있다고 한들, 정규군을 멋대로 부릴 수 없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렇다는 거고, 실제로는 멋대로 부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작위가 있는 귀족에 한해서만 가능한 일이고, 작위조차 없는 귀족이 감히 어떻게 정규군을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저 놈이 오러 베철러건, 베너렛이건, 익스퍼드건. 관계 없어.
마스터 수준이 아닌 이상 작위도 없는 자가 감히 어떻게 정규군을 부리려고 드는가.
“피츠로이 백작님이 그리 시키더냐? 아니, 현명하신 백작님이 그럴 리가 없지. 그럼 니 독단이겠네?”
“닥쳐라, 평민. 그 더러운 입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꺼내지 마라! 뭣들 하느냐 어서 저 자를 포박하지 않고!”
수세에 몰리니까, 신분을 탓하는 건가? 그래 아주 좋은 반응이다. 귀족주의에 빠진 글러먹은 새끼의 전형적인 반응이지 않은가.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했어.”
프레만의 고함에 라트에게 다가가려고 하던 병사들은 엘리의 경고에 의해 또다시 걸음을 멈췄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엘리에게 쏠렸고,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음심이 가득한 눈으로 엘리를 바라보는 프레만이었다.
“말 잘했어.”
그렇기에 웃어주었다. 아직까지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어리석은 이에게 한껏 비웃음을 날린다. 이쯤에서 사과를 했다면 나도 그냥 넘어갈 생각이 있었지만, 사과를 할 생각은커녕 그 웃기지도 않은 짓거리를 계속한 생각이라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나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거기 병사.”
프레만의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앞선 라트의 말을 들었기 때문인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병사들을 향해 입을 연다.
“이 자가 나를 평민이라고 부른 걸 확실하게 들었지?”
굳이 엘리나 케이네가 아닌 프레만의 뒤쪽에 있는 병사에게 사실을 확인시킨다. 나중에 딴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저 새끼가 도망칠 수 없도록.
“그, 그렇습니다.”
프레만의 눈치를 보면서도 질문에 착실하게 대답하는 병사를 보고 라트는 미소를 지으며, 인벤토리에 있는 패를 꺼내들었다.
“지금 그 발언, 기느투스 후작님을 무시한 발언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프레만 베칼 피츠로이 경?”
프레만의 표정이 굳어진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라트의 신분은 평민이 맞다. 그러나 지금은 전시 상황, 후작의 대리임을 증명하는 패가 있다면 대리라고 해도 그 자는 대리인 귀족과 같은 신분으로 취급된다.
그렇기에 현재 라트의 신분은 평민이 아닌 귀족, 그것도 후작과 동급인 신분이었다.
“그따위 패를 가지고, 평민 새끼가 감히 귀족인 나를!”
“그따위 패?”
스승이 케이네에게 준 패고, 케이네에게 받아가라고 지시한 패다. 스승은 라트에게 전쟁에서 필요한 모든 환경을 제공해주었고, 라트는 그 환경을 십분 이용해 활약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따위 패라니?
“가정교육을 도대체 어떻게 받았기에 아직도 저런 소리가 나오지? 피츠로이 백작가의 교육 수준이 심히 의심스러워. 안 그래?”
라트는 프레만이 아닌, 뒤쪽에 있는 엘리와 케이네를 바라보며 동의를 구했다.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는 명백한 프레만의 실수다. 그럼에도 굳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그를 더욱 열 받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 뭐, 솔직히 말해서 엘리가 어지간히 예쁘니까, 음심이 가득 찬 눈동자로 바라보는 건 이해할 수 있어. 그렇지만 그것도 한두 번 그래야지. 계속해서 남의 여자를 그런 끈적끈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더욱이 스승님의 패를 그따위 패라고 칭하지 않았던가.
“이 새끼가!”
자고로 세상에서 가장 기분 나쁜 말은 자신을 욕하는 게 아닌. 부모를 탓하는 거다. 자신의 품행 때문에 부모가 비난받는다면 그 누구라도 분노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저 새끼처럼 멍청하고, 우직한 놈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지.
즉각 라트의 말에 반응하여 뽑아든 검을 낮게 세우고, 부모를 모욕한 자를 향해 달려드는 프레만을 바라보며 라트는 웃었다.
분노해서, 이성을 잃은 채 돌진하는 한 마리 맹수에게 어찌 겁을 먹겠는가. 이곳에 오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곳에 막 당도했을 때라면 또 모를까.
겨우 이 정도로 겁을 먹기에는 지난 3년하고도 6개월 간,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으억!”
검을 든 상대로 검을 뽑아들지 않은 채 궤적을 그리는 검면을 손으로 쳐서 날려버리고는 발로 배를 힘껏 걷어찼다. 힘이 조금 과했는지, 프레만이 천막 바깥까지 날아가 버렸다.
“비켜.”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천막 안 모두가 당황했으나, 라트는 멍하니 뒤쪽을 바라보는 병사들을 밀치고 천막 밖으로 나가, 바닥에 쓰러진 프레만을 바라보았다.
“쿨럭, 쿨럭. 흐억, 쿨럭.”
제대로 배가 차였는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헛기침을 연발하면서 어떻게든 숨을 쉬려고 몸부림을 치는 남자를 향해, 라트는 비웃음을 날린다. 정말이지, 비웃음을 날리지 않고는 배기질 못하겠다.
“주제도 모르고 나대기는.”
현재 라트의 근력 스탯은 엘릭서와 아이템 효과까지 받아 180에 수렴한다. 현재 80레벨에 다다랐다는 걸 상기한다고 해도, 동일 레벨 전사나 검사보다 근력 스탯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아마 근력 재능이 10이었다고 해도, 지금 레벨에 이만한 근력 스탯에는 도달하지 못했겠지.
그 정도 근력 스탯을 가진 라트의 발에 힘껏 차였으니, 프레만이 숨을 못 쉬고 저렇게 발버둥을 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네, 네놈, 내가 누군지, 쿨럭, 알고!”
프레만이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자, 주변의 모든 이들이 이쪽을 바라본다. 아니, 프레만이 천막에서 여기까지 날아왔을 때는 힐끔힐끔 쳐다보는 수준에 그쳤다면 지금은 대놓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니가 뭔데. 니 주제를 좀 알아라, 제발.”
지금이 평범한 일상이었다면, 라트도 이렇게까지 행동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시, 대리 신분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긴급 상황.
작위도 없는 귀족이 정규군을 움직여 탈영병을 잡는다고 한다. 피츠로이 백작이 시킨 일이라면 또 몰라. 지 멋대로 구는 애송이한테 친절하게 대해줄 생각은 전혀 없다.
“라트!”
“너 괜찮아?”
분명 차인 것은 프레만이었음에도, 케이네는 물론이오, 엘리조차 라트의 안부를 묻는다. 어이없다면 어이없는 상황이나, 이 상황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케이네는 고사하고, 엘리의 애정이 라트에게 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프레만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얼굴이 분노에 섞여 흉측하게 변해간다.
“나는 멀쩡해.”
내가 일방적으로 배를 걷어찼는데, 안 괜찮을 리가 있나. 루만 태자와 미르차르드 후작과 만난 일 때문에 조금 피곤하기는 하지만, 이런 놈한테 어떻게 될 정도는 아니다.
“어떻게, 어떻게!”
숨이 막혀옴에도, 마음속 응어리진 무언가를 토해내기 위해 프레만은 비명을 질렀다.
“내가 아니라 그런 평민과!”
라트와 엘리를 번갈아보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부정한다. 이번 엘리의 반응으로 알아버렸다. 왕국의 유일한 공녀가, 공작의 후계자가 평민과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그 더러운 입 다물도록 하세요, 피츠로이 경.”
“이럴 수는 없어! 나는, 나는 오러 마스터가 될 남자다. 저런 연금술사 놈과는 차원이 다른!”
귀족 우월주의에 이어서는 질투와 시기심이 섞인 오러 우월주의인가?
너도 참, 꼴사납다. 그런 생각과 함께 라트는 공작의 천막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만큼 소란이 일어났으니, 슬슬 공작이 나올 것이다.
예상대로 공작은 바깥으로 나오더니, 한껏 눈을 찌푸리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해주겠나?”
“저 새끼가 군을 이탈해서, 군법으로 다스리기 위해 잡으려고 했습니다, 공작님.”
이제껏 일그러졌던 프레만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난다. 공작이라면 이야기가 통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
“그런데 저 미천한 놈이 감히 저에게 발길질을 했습니다.”
“그래, 그런가.”
공작의 반응에 넌 이제 죽었어, 라는 표정으로 라트를 바라보는 프레만을 본 라트는 마찬가지로 이죽거렸다. 그래 공작이 네 편을 들어줄 것 같지? 그런데 어쩌나?
“네가 왜 그런 일을 하고 다니지? 그런 권한이 작위도 없는 귀족에게 있을 리가 없다만.”
공작은 나랑 한통속이야,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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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웬수에요 웬수...3년만에 필름 끊기게 마시고 일어나보니 허리는 나가 있고, 앉아 있질 못해서 글을 못쓰고.....에휴...여러분 술을 멀리하는 착한 어른이가 됩시다...내일 낮에 무조건 한 편 더올립니다 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