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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98화 (9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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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대화가 끝났으니, 이제 정말로 태자를 놓아주어야 한다.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태자를 죽이기 위해서 직감을 무시하고 싸운 건데, 정작 그를 죽이지 못하다니. 하긴, 직감을 무시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태자를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고.

    아니 태자를 죽인다고 해도, 살아남기는 힘들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태자를 죽이는데 뜸을 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대로 놓아주기에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칼등으로 태자의 등을 살짝 후려쳤다.

    “어억!”

    “네 놈! 무슨 짓이냐! 태자 저하를 풀어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풀어줬잖아.”

    라트가 땅바닥에 쓰러진 태자를 가리키자, 후작은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얌전히 풀어주겠다는 소리는 한 마디도 안했는데.”

    그러나 라트가 한 발 더 빨리 입을 열어서, 후작의 고함을 사전에 차단했다. 그래 얌전히 풀어주겠다는 소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지멀쩡하게 풀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지.

    “크으윽.”

    칼등에 얻어맞고 바닥에 쓰러진 충격 때문에 기절할만도 했것만, 태자는 고통의 신음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하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다, 후작.”

    “멍이 들 정도로만 쳤으니 당연히 괜찮겠지.”

    뼈에 손상이 나지 않게끔 힘 조절을 했으니까. 기절시킬 생각으로 때렸는데, 기절하지 않은 걸 보니 일반인치고는 정신력이 좋은 건가? 그래도 분명 멍이 났을 테니까, 한동안 똑바로 눕기도 힘들테고, 등받이 의자에 앉아있을 수도 없을 거다.

    지금 당장은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하자.

    “그럼 난 이만 실례.”

    여기서 볼일은 전부 끝났으니 미르차르드 후작이 알려준 셀룬의 본대가 있는 언덕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유롭게 행동하고 있지만, 라트의 몸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이로써 세 번째인가. 첫 번째는 2년 전 축제 때, 엘리를 구하려고 하다가.

    두 번째는 며칠 전 그림자 꽃을 따기 위해서 동굴러 들어갔다가 흑사제들을 만나서. 그리고 오늘 일까지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정확히 세 번째로 죽을 뻔했다.

    세 번이나 겪은 일이지만, 아직도 익숙하지 않는 일이다. 하긴 죽을 상황에 익숙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대범하게, 여유롭게 행동하는 척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오죽하면 들고 있던 담배를 태우는 것도 잊어버려서, 담배가 식어버리지 않았는가.

    “후우.”

    식어버려, 불이 꺼진 담배에 다시금 불을 붙여서 한 모금 들이쉬자 머리가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한다. 직감을 무시하고, 태자를 죽이려고 했다니. 정말이지 멍청한 행동이었어.

    ‘어정쩡하게 행동해서 산건가.’

    직감을 무시했다지만, 최종적으로는 직감을 무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태자를 곧바로 죽이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시간을 끌었다. 만약 그 자리에서 태자를 죽였더라면, 미르차르드 후작의 손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운이 좋았어.’

    행운 재능 덕분인가? 이 세계에 오고 나서부터 정말이지 묘하게 운이 좋았다.

    운이 좋았던 상황이야 에스페를 만나기 전에 리오스를 만난 것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뽑을 수 있겠지만, 역시 가장 운이 좋았던 것은 제스맹과 케이네, 그리고 엘리를 만난 일이겠지.

    오늘도 그래, 만약 태자가 자신의 호위로 붙은 미르차르드 후작과 대동했다면 라트는 분명 목숨을 잃었을 터.

    ‘도대체 무슨 짓을 계획하고 있어서, 후작과 같이 다니지 못하는 거지.’

    태자를 처음 봤을 때, 그가 병사와 나누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진지에 있는 미르차르드 후작에게는 들키지 않게 한 번 더 주의해라. 원래 계획이라는 건 마지막에 틀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래 분명 미르차르드 후작에게 들키지 않게 주의하라고 했었다. 그렇다는 건, 바이올런의 종속인 후작에게 절대로 들켜서 안 되는 계획을 짜고 있다는 뜻이다. 도대체 무슨 미친 계획을 짜고 있어서 후작에게 그 계획을 들키지 말라고 주의를 줬는지, 상당히 궁금한 일이다.

    정보가 아무 것도 없으니 섣불리 추론을 할 수도 없다.

    “하아.”

    남은 담배를 반쯤 태웠을까? 짱짱했던 태양은 저물어가기 시작했다. 후작이 가리켰던 언덕과 상당히 가까워져, 저 멀리에서 진지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이제 케이네와 엘리에게 한 소리 듣는 것만 남았다. 그런 시답잖은 생각과 함께 언덕으로 가던 도중 라트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그는 입에서 의문을 내뱉는다. 그리고 다시금 사방을 둘러보다가, 시야를 가리는 나무가 불편했는지, 이제는 아예 무색의 연금술을 이용해 나무의 위로 올라갔다.

    “없어.”

    나무 위로 올라간 직후 계속해서 주변을 살펴봤음에도 찾고 있는 건 보이지 않는다. 밀림, 숲으로 뒤덮인 장소. 저 멀리 늪지대가 보이고, 가시덤불도 보인다. 야생동물이 몇 마리 거닐고 있는 모습도 똑똑히 보인다.

    그래 언뜻 보기에 이곳은 완벽한 밀림 지대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게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집중해서 살펴봐도, 보이지 않아.

    ‘왜 몬스터가 한 마리도 안 보여?’

    메아리치는 밀림은 특이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는 만큼 다양한 몬스터들이 서식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 몬스터가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 뿐인가? 병사들과 함께 진군을 했을 때야 사람의 수가 많으니 몬스터가 겁을 먹어서 근처에 접근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도망치는 켈랑의 병사들을 추적할 때도 몬스터는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곳까지 걸어오고 있는 와중에도 몬스터와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메아리치는 밀림은 동물이나 몬스터가 살기 좋은 환경이었다. 덕분에 이곳에 있는 몬스터들은 다른 필드에 있는 몬스터보다 조금 더 강하고, 선공 몬스터이기도 했다.

    선공 몬스터가 혼자 걸어가고 있는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뒀을 리가 없어.

    그런데도 몬스터 한 마리도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하아.”

    나무 위에서 내려온 라트는 담배를 제 자리에 멈춰 서서 담배를 태우며 생각을 정리했다.

    메아리치는 밀림의 몬스터가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조종을 받는 처지가 됐다고 하는 게 옳다.

    ‘몬스터 테이머.’

    과거에는 아니었으나, 현재 켈랑은 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마법사가 적다. 그럼에도 켈랑이 타국에게 무시를 당하지 않는 이유는 마법사가 부족함에도 마법사보다 희귀한 직업인 몬스터 테이머가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몬스터 테이머가 한 명 뿐이었지만, 지금은 수도뿐이라지만, 몬스터 테이머 길드가 있을 정도로 많은 편이다. 그들을 이용해서 메아리치는 밀림의 몬스터를 전부 테이밍했다고 하면, 몬스터가 사라진 일은 쉽사리 납득이 갔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 몬스터를 전쟁에 이용하지 않는가. 현재 메아리치는 밀림은 격전지로 변모하였다. 테이밍한 몬스터를 이용한다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인데, 어째서.

    “무슨 짓을 꾸미는 거야, 그 새끼.”

    불길한 예감이 손을 뻗어 라트의 등골을 쓰다듬었다.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켈랑의 태자가 꾸미고 있는 짓이 굉장히 위험하다고 느껴진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곳, 메아리치는 밀림에서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 들어올 때까지 직감이 아무런 소식도 알려오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켈룬의 수도인 런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빨리 가야겠어.”

    퍼득 한시라도 빨리 루아타 공작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된다는 생각이 들자, 피우던 담배를 인벤토리에 넣어버리고 저 멀리 보이는 공사 중인 진지를 향해 달렸다.

    *****

    진지에 도착하고 난 후 내 신원을 알리자, 병사들이 라트를 끌고 가더니 공작에게로 데려갔다.

    “하아. 운이 나빴군. 아니지, 니콜라벨리 놈과 만나서 몸 성히 돌아왔으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루아타 공작의 말에 따르면 라트가 본진에서 이탈하는 바람에 수색대를 보내야하는가 고심하던 중에 당사자가 떡하니 본진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정보, 고맙군.”

    쓴 소리를 들을 뻔했지만, 겪은 일에 대해서 말하니 공작은 라트를 격려해주고, 칭찬해주었다.

    켈랑의 군대, 게다가 루만 태자와 미르차르드 후작까지 이곳에 있다는 정보를 물고 왔으니 칭찬을 들어 마땅한 일이다. 게다가 그 미르차르드 후작과 만나서 살아남았다니, 격려해줘야할 일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본대에서 이탈할 게 잘한 일은 아니지만.

    “그런데 길을 잃어버렸으면 붉은실을 이용해서 엘리를 찾아오면 되는 거 아니었나?”

    “어? 아!”

    공작의 말에 라트는 탄성을 내뱉으며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었다. 워낙 이 게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익숙지 않은 요소인 붉은실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야 자네가 본진을 이탈한 덕분에 그런 정보를 가져와서 오히려 좋다고 느끼는 중이지만, 딸아이는…….”

    미묘한 웃음을 보이는 공작을 보고 엘리가 이미 라트가 본대에서 이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역시나 엘리한테도 한 소리 들어야하는 건가.

    붉은실을 기억해내지 못한 덕에 중요한 정보를 가져올 수 있었지만, 반대로 붉은실을 기억해내지 못해서 분노한 연인과 마주해야하다니.

    엘리에게 한 소리 듣는 거야, 나중에 감당하기로 하고. 우선은 공작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먼저다.

    “공작님, 이곳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못 느끼셨습니까?”

    “이상함 점? 그다지 이상한 점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하긴, 도합 6만에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군단이다. 이런 군단과 함께 움직인다면 아무리 선공 몬스터라도 당연히 겁을 먹고 접근하지 않는다. 만약 라트가 본대에서 이탈하지 않았더라면, 그 역시도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여기까지 오는 길에 몬스터 한 마리도 보지 못했습니다.”

    라트의 말에 공작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갑자기 마나의 기운이 느껴짐과 동시에 모습을 감췄다.

    아마 텔레포트 마법으로 급히 밖으로 향한 것이겠지. 여유로운 마음으로 공작을 기다리고 있자, 5분 정도 후 공작이 다시금 라트의 앞에 나타났다.

    “몇 마리 있기는 하지만, 남은 몬스터는 잔챙이들 뿐이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스캔을 사용해봤다.”

    라트의 말대로, 메아리치는 밀림에 몬스터는 코빼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육안을 믿지 못해서 심지어 스캔 마법을 이용해 메아리치는 밀림 전역을 수색했음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몇몇 송사리 몬스터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 몬스터도 저 멀리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을 뿐이다.

    공작이 직접 몬스터가 없음을 확인하자, 라트는 자신의 의문을 공작에게 말했다. 몬스터가 사라진 건 분명 몬스터 테이머의 짓일 터다. 그런데 어째서 메아리치는 밀림에 몬스터가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가.

    “확실히, 이상한 일이군.”

    루아타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라트의 의견에 동의했다. 테이밍된 몬스터는 이 전장에서 어마어마한 변수로 돌변할 것이다.

    그러나 이 근방에 아니, 메아리치는 밀림 전체를 통틀어 몬스터의 기척은 없다. 이 말은 즉, 켈랑 측에서는 메아리치는 밀림에서 테이밍을 한 몬스터 사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몬스터들이 남부로 내려갔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오늘 낮, 진지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통신 수정구를 이용해 브로켄 백작과 연락을 해봤지만 몬스터를 봤다는 말은 일절 없었다.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다.

    “이상한 일이라고 하니, 오늘 들어온 정보 중에 이상한 일이 또 있더군.”

    “뭔데요?”

    “이번 일과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켈랑 왕실에서 피난민을 런트로 데려가고 있다더군.”

    “피난민을 런트로요? 그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런트의 인구 수용량이 넘어섰음에도 계속해서 피난민을 데려가고 있다면, 게다가 싫다고 하는 피난민들을 강제로 데려가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그렇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 전쟁이 발발했을 때 피난민들을 수도에 수용하는 건 있을 법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용량을 넘어섰음에도 피난민을 계속 데려가고 있다고? 게다가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해서까지?

    도대체 왜?

    그리고 이 두 가지 일은 무슨 연관이 있는 거지?

    ============================ 작품 후기 ============================

    오후 쯤에 1편 더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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