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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95화 (9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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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하아? 그대들이 오러 익스퍼드를 상대로 질 리가 없잖느냐.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잠시 실례를.”

    순식간에 태자의 옆에 있던 두 병사에게 다가간 암살자는 단검을 들어 올리더니, 소리 없이 그들의 목을 베었다.

    “어, 어째…….”

    정확히 기도를 베었는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병사 두 명이 땅에 쓰러져 목을 붙잡는다.

    “허허.”

    갑작스레 눈앞에 참극이 벌어졌음에도 태자는 턱을 쓰다듬으며 짐짓 웃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병사 한 명이 소중할 때 아까운 병사를 두 명이나 죽이는데?”

    아깝기는 개뿔이. 언제든지 충전할 수 있는 소모품을 대하는 태도인데. 실제로 태자는 이번 전쟁에서 이긴다면 병사는 얼마든지 충족할 수 있다고 생각 중이었다.

    “저 담배를 보아, 전대 가주님을 상대한 자 같습니다.”

    ‘기밀을 엄수하기 위해서 병사들을 죽였군.’

    루아타 공녀의 암살 사건은 기밀 중 기밀이다. 켈랑 쪽에서는 이 일에 대해서 극구 부인하고 있으며, 오히려 셀룬이 암살 사건을 조작하고 우리에게 전쟁을 선포했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이 근처에 또 누가 있을지 모르는데, 어지간하면 쓸데없는 충돌은 피하고 싶었다. 현재 자신의 전력을 계산해본다면 9명의 암살자는 어떻게든 이기고, 태자를 포로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직감이 알려온다.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숨어있는 게 들통났으니,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한다고.

    “아~ 루아타 공녀를 구했다던 그?”

    암살자의 말에 태자의 눈썹이 살짝 높아진다. 전대 가주의 실력은 현 가주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오러 익스퍼드급 실력자는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는 실력자였다.

    그렇다면 저 남자의 실력은 최소한 오러 익스퍼드급 실력자가 아니라는 소리일 터.

    “우리를 물 먹인 놈이 너였구나?”

    그러나 남자는 일국의 태자였다. 오러 익스퍼드를 뛰어넘은 실력자들은 수없이 많이 봐왔다. 그래서 남자의 실력에 주목하다기 보다는 남자가 한 일을 주목했다.

    “물을 먹여?”

    “그래 그 일만 통했더라도, 우리 켈랑이 이런 사태까지 겪지는 않았을 거다. 훌륭히 우리에게 물을 먹였…….”

    거기서, 무언가가 끊어졌다. 처음으로 라트는 직감이 알려오는 위험을 무시하고는.

    “입 다물어.”

    그 누가 보더라도 두려움을 느낄 살기를 흘리며, 싸늘하게 일갈했다.

    물을 먹였다고? 사람을 죽이려고 한 일을 방해했는데, 고작 그 정도 표현인가. 엘리를 계획을 위한 부속품으로 생각하는 작태이지 않은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짜증과 분노가 치민다.

    “이런. 화가 났나보군.”

    폭풍전야와도 같은 조용한 살기를 느꼈는지, 태자는 유쾌한 말투를 그만두고 진중히 말한다.

    “될 수 있다면 잡아와라. 그렇지만 위험하다 싶으면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을 거 같군.”

    “존명.”

    명령이 떨어지자 양 손에 단검을 들어 올린 아홉 명의 암살자가 라트를 향해 적의를 드러냈다.

    ‘골렘을 쓸까?’

    아니야, 그럴 수는 없지. 골렘에 휘말려서 태자가 죽을 수도 있다. 켈랑의 태자는 셀룬의 태자와 마찬가지로 일반인이다. 아니, 일반인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지. 머리가 굉장히 좋은 편이니까. 그러나 겨우 그것뿐이다. 이 세계에서는 자신의 몸조차 지킬 수 없는 나약한 자다.

    그러니까 골렘은 보류다. 저 새끼는 내 손으로 찢어죽이지 않으면 속이 풀리지 않을 거 같아.

    “합동술로 단 번에 끝낸다. 모두 생포할 생각은 버리고 죽일 각오로 해라.”

    “하!”

    합동술인가, 세 명이서 그림자 까마귀의 전대 단주와 동수를 이룰 수 있다면, 아홉 명이라면 전대 단주 세 명과 겨루는 건가? 거참 무섭네, 무서워서 오줌을 지릴 거 같아.

    아, 그런데 지금 니들 뭐라고 했어? 죽일 각오로 하라고? 나를 죽이겠다고?

    정말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지껄인 거야?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단 말이지.

    “만연하라.”

    안타깝지만, 그 생각은 잘못됐다.

    암살자들이 합동술을 펼치는 것보다, 라트가 한 발 빨랐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합동술을 펼치기 위해서는 자리를 잡아야하지만, 라트는 그저 바닥에 손을 댄 후 무색의 연금술을 시동하는 주문을 외우면 그걸로 끝이니까.

    아니지 한 가지 더 있다.

    [35181.8513×5163.512]

    ‘181,661,911.3697656’

    무색의 연금술을 복잡하게 사용할수록 미니게임의 난이도는 높아진다. 그러나 분노 때문인지 자신이 미니게임을 어떻게 풀었는지도 인지하지도 못하고 답을 내뱉자, 무색의 연금술이 발동되었다.

    “이게 무슨!”

    “땅 때문에 몸이!”

    대지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아홉 개의 손바닥이 암살자들을 잡아채더니, 그 상태로 다시금 땅속으로 들어간다. 덕분에 머리 아랫부분은 땅에 파묻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된 암살자들이 당황과 경악에 물들었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 저들이 아무리 뛰어난 암살자라고 해도 이런 기습에 반응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잘난 암살자도 다리와 손이 묶이면 병신이지.

    무색의 연금술을 알고 있는 자들은 한정적이다. 무색의 연금술을 모르는 이들 중에서 이런 공격이 닥칠 줄 알아채는 이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들의 눈에는 라트가 연금술사가 아닌, 마법사로 보일 거다. 그러나 마법이라도 이런 찰나의 순간에는 발동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연금술의 비기.

    “아악!”

    “쿠웁, 오곡!”

    제각각의 비명소리가 나무를 뚫고 지나간다. 땅에 몸이 파묻힌 것이 끝이라면 그 정도로 복잡한 계산식이 나올 리가 없지. 남자는 소리 없는 광소와 함께 땅에 파묻힌 암살자들을 바라보았다.

    “오옵, 구우웁!”

    굵은 나뭇가지가 입은 물론이오, 기도까지 범하여 숨을 쉴 수 없게 된 여자 암살자는 입가에서 타액이 방울져 떨어지고, 치켜뜬 눈 사이로 눈물마저 흘린다.

    “으읍! 읍! 우갸아악! 캭, 캬학!”

    지하에 나있는 조그마한 공간으로 빠져나온 나무뿌리에 계속해서 배를 얻어맞는 여자 암살자는 비명을 참느라 애를 썼지만, 내장이 뒤틀리기 시작하자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른다.

    그 밖에도 안구가 찔렸으나 뇌까지는 찔리지 않아 고스란히 눈이 파열되는 고통을 맛보는 자, 점점 조여 오는 나뭇가지에 의해 몸이 으스러지고 있는 자, 조금씩, 아주 조금씩 신체의 일부분이 베이고 있는 자까지.

    제각각 다른 고통을 선사해줬으니, 어찌 웃지 않고 베길 수 있을까. 내 분노는 태자가 이끌어냈지만, 실질적으로 엘리를 죽이려고 했던 것은 너희가 몸을 담고 있는 조직이다.

    그러니 연대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달게 고통을 받아들여.

    “손속이 제법 잔인하군.”

    “덕분에 말이야.”

    “그래 이제 나를 죽일 셈인가?”

    켈랑의 태자에게 더 이상 여유로움은 없다. 그를 호위하던 암살자들은 전투 불능, 몇몇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몇몇은 살아남는다고 해도 다시는 암살자로 복귀할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줬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아직도 여유롭게 라트를 바라보고 있는가. 어째서 나와 대면하고 있는가.

    꽁지가 빠져라 도망쳐보라고.

    눈앞에 닥쳐온 재앙에 몸부림치면서 도망치란 말이다.

    “나, 루만 브리나오 리오레아 켈랑을 죽이겠다고 물었다. 이름 모를 자여.”

    “잘 알고 있네.”

    그 여유로움은 죽음을 처연하게 받아드릴 수 있다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아직도 믿는 수가 있다는 건가. 둘 중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고.

    한 발자국, 태자를 향해 걸어간다.

    “항복이다, 나는 널 이길 수 없다.”

    루만은 양손을 들어 올리고 항복의 신호를 보내왔다. 더 이상 감춰놓은 패가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어째서 그의 얼굴은 여유로운가. 장난기가 사라졌음에도 어째서 계속해서 웃고 있는가.

    “부디 신사적으로 포로를 대해주게.”

    “거절한다.”

    태자의 요청을 일거에 거절한 라트는 사나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다시 한 발자국 태자를 향해 걸어간다.

    “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어.”

    신사적인 대우는 신사적인 행동을 한 이에게만 허락된다. 일국의 공녀를 암살하려고 했으며, 그 일이 실패해서 곤란하다는 마냥 지껄이는, 비신사적인 행동하고 있는 너에게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이런, 나름 영애들에게 신사라는 소리를 듣는 몸인데 말이야.”

    안타깝다는 뒷말을 삼키며 루만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눈앞의 이름 모르는 이를 바라보았다. 눈에 보이는 확연한 분노와 그에 맞물리는 살기에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다.

    루아타 공녀 암살 사건에 이런 분노를 보일 정도라면 루아타 공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가신이거나, 혹은 공작부인과 관련이 있는 자일수도 있다.

    아니, 이자는 공작이나 공작부인과 관련된 자가 아니다. 공작의 주변 인물은 모조리 조사했기에 루만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그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름 모를 이가 다시 한 발자국을 내딛는다. 대검의 길이를 생각해봤을 때 남은 거리는 앞으로 한 발자국. 그 한 발자국을 옮기는 사이에 루만은 정답에 도달했다.

    “혹시 죽었어야할 공녀의 연인인가?”

    들려오는 대답은 없다. 다만, 이름 모르는 이의 살기가 더더욱 짙어졌다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죽었어야할 공녀라니,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이잖아.

    “정답이로군.”

    “나불대는 주둥아리를 영원히 닥치게 해주마.”

    직감이 다시 한 번 위험을 알려왔다.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린다. 지금이라도 도망치면 살 수 있다고 알려온다.

    그러나 도망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짜증을 유발하고 있는 자를 죽이는 게 최우선이니까.

    분노를 일으키는 이의 면상을 찢어발기고 싶어, 여기서 이 남자를 죽이지 않으면 미칠 것 같다.

    그래서 직감이 알려오는 위험조차 무시하고, 마지막 한발자국을 내딛으며 대검을 들어 올려 루만의 목을 베려는 순간.

    “태자 저하!”

    한줄기 날카로운 소리가 라트를 찔렀다.

    “이런, 아쉽게도 너에게 허락된 시간이 끝났다.”

    여전히 손을 들어 올리고 있으면서도 루만은 생긋 미소를 지었다.

    “죽이려면 빨리 죽였어야지.”

    다른 이에게는 유쾌한 미소처럼 보일지 몰라도, 저 미소는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그 비웃음을 참지 못하고 대검을 떨어트려 그의 목을 취하려고 했으나.

    “역적 놈이 감히 태자 저하를 음해하려고 드느냐!”

    다시 한 번, 거대한 목소리가 강타하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단순한 일갈이다. 그래 겨우 그뿐인데,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이게 도대체.’

    간신히 눈을 돌려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본다.

    칙칙한 흑색 머리카락, 오롯이 적을 꿰뚫어보는 매서운 눈동자. 한손에는 그 무엇이라도 벨 수 있을 것 같은 검을 들고 있으며, 가벼운 가죽 갑옷을 입고 있음에도 틈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남자를 마주하자, 공포를 이기지 못해 눈을 감는다.

    남자를 보는 순간, 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어째서 직감이 계속 위험을 보내왔는지 깨달았다.

    노르스 대륙에서 단 7명뿐이며, 켈랑 왕국의 유일한 오러 마스터.

    니콜라벨리 헤르멘 미르차르드.

    절망이 허무할 정도로 당돌하게 라트의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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