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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91화 (9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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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다음 날은 승리를 기념한 휴식, 그리고 그 다음날 다시금 군사 회의가 시작되었다. 켈랑의 북부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이루크 성을 공략했으니 앞으로의 행보를 정하는 것이 회의의 중요 주제였다.

    “여전히 미르차르드 후작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중요한 주제는 정해졌으나, 그 전에 한 번 더 전쟁의 향방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미르차르드 후작의 사병들도 행방이 묘연합니다.”

    도대체 미르차르드 후작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적국의 유일한 오러 마스터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사실에 몇몇 귀족들은 함박웃음을 지었으나, 라트는 심각한 표정으로 지도를 바라보았다.

    미르차르드 후작 혼자만 사라졌다면, 그가 사고를 당했다는 걸 고려해볼 수도 있지만, 그의 사병들마저 사라졌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설마 아니겠지만, 별동대를 조직해서 셀룬의 국토를 노리거나, 보급로를 기습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남쪽에서 알려온 정보에 따르면 분명 남부의 요충지를 방어하고 있어야할 켈랑의 제 3군단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병에 이어서 켈랑의 남부에 있어야할 제 3군단까지 사라졌다는 말인가. 그제야 함박웃음을 짓던 귀족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행히 별동대를 조직한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별동대를 조직했다고 해도, 북부로 온 저희 연합 군단에는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결과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피해가 있다고 해도, 그건 남부로 향한 연합 군단에서 발생하겠지, 남부와 정반대방향에 있는 북부 쪽에는 피해가 없을 거라는 건가.

    ‘확실히 그렇기는 한데.’

    조금 불안하기는 하지만, 옳은 소리다. 한 나라의 군단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다면, 반드시 그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셀룬의 첩자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그들이 별동대를 조직했다면 분명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었겠지.

    “현재 남부 연합 군단도 순조롭게 전진 중이라고 합니다. 이상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전쟁이 돌아가는 상황을 알리는 게 끝이 나자, 회의는 곧바로 본 주제로 들어섰다.

    군사 회의라고 하지만, 정작 이번 회의에서 발언할 수 있는 귀족은 한정적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굳이 나서서 발언을 하고 싶어 하는 귀족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도 그럴 것이 군 전체의 행보를 정하는 회의다. 여기서 말을 잘못했다가는 덤터기를 쓰게 될 수도 있다.

    덕분에 회의 자체는 지루해질 수밖에 없었으나, 라트는 불평은커녕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얌전히 자리를 지켰다.

    “이대로 북부의 도시를 모두 점령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서로가 정확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지루한 회의 중 드디어 피츠로이 백작이 첫 번째 안건을 꺼냈다. 켈랑의 북부에 있는 항구 도시를 모조리 점령해서 외곽 쪽부터 천천히 갉아먹겠다는 속셈이다.

    켈랑을 완전히 함락시키기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으나 그만큼 안전한 방법이었다.

    “그것도 좋지만, 이대로 런트를 향해 달리는 것이 어떤가.”

    피츠로이 백작의 안건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아크메이지 칭호를 받은 루아타 공작이나, 오러 마스터에 오른 브로켄 후작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셀룬에서 명망이 높기로 유명한 세르먼트 후작이 곧바로 두 번째 안건을 건의했다.

    “그건, 너무 위험한 방법이 아닙니까. 세르먼트 후작.”

    “위험한 만큼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네.”

    이 시점에서 수도를 친다면 켈랑은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릴 게 분명하나 다른 귀족들이 꺼림칙스러운 반응을 보일 정도로, 첫 번째 안건과 달리 위험을 감수해야한다.

    이루크 성에서 런트로 가는 길목에는 성은커녕 도로조차 없다. 항구에서 들어오는 물건들이야 이루크 성에서 포탈을 이용해서 수도로 가져가면 그만이기에 무역로를 따로 활성화시키지 않은 것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후작께서는 그곳을 헤치고 가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켈랑과 셀룬은 노르스 대륙의 북부에 있기에 지리적으로 상당히 추운 곳이지만, 이상하게도 켈랑의 북서부에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있었다.

    일 년 12달. 그 위치만 겨울이 오지 않고 항상 더운 날씨를 유지하는 말도 안 되는 장소. 혹자는 신의 축복을 받은 곳, 혹자는 마왕의 저주를 받은 곳이라고 칭하는 장소.

    “메아리치는 밀림을 뚫고 가자고요?”

    “진심으로 하시는 소리십니까?”

    거대한 밀림, 통칭 메아리치는 밀림이라고 불리는 장소. 어떤 의미에서는 적이 대기하고 있을 경우 이루크 성보다 공략하는 것이 까다로운 장소다. 특히나 셀룬같이 지리적인 조건으로 인해 밀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라는 더더욱 그렇다.

    그나마 이 발언이 후작의 입에서 나온 것이기에 이런 점잖은 반응들이 나오는 것이지, 실권이 없는 귀족의 입에서 이런 의견이 나왔다면 욕설과 비난이 난무했을 것이다.

    ‘메아리치는 밀림이라.’

    게임 상에서도 그 정도로 복잡한 장소는 손에 꼽을 정도로 굉장히 복잡한 맵이다. 과연 실제로는 얼마나 넓고, 복잡할까. 약간의 기대, 그와 동시에 조금의 불안함이 스쳐지나간다.

    전쟁 중인데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적국의 오러 마스터와 사라진 그의 사병 그리고 3군단까지.

    마치 우리가 노리는 게 있으니, 너희는 알아서 몸을 사리라고 하는 꼴이다.

    ‘상처 입은 맹수 같아.’

    상처를 입은 맹수는 정상적으로 싸울 수 없기에 적이 다가오면 평소보다 더욱 흉포한 모습을 보여, 적이 도망치게 만든다. 지금 켈랑이 하는 짓이 딱 그 꼴이었다.

    “켈랑이 만만한가?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놈들이 아닐세. 무언가 노리고 있는 게 있을 거야. 그러니까 미르차르드 후작 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

    상처 입은 맹수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그 기세에 말려들지 말고 곧바로 심장을 노려야한다.

    “이럴 때일수록 겁먹지 말고, 적의 심장을 노려야 한다고 생각하네만.”

    연륜을 통해 그것을 파악했는지, 세르먼트 후작은 주변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안건을 피력한다. 후작의 안건이 채용돼서, 그 안건대로 수도를 점령할 수 있다면 전쟁은 더할 나위 없이 빨리 끝날 것이다.

    수도를 잃은 켈랑이 과연 1년이나 버틸 수 있을까? 그렇지만 아무래도 미르차르드 후작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게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수세에 몰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태동하지 않고 조용히 전쟁을 관망하고 있는 몬스터 테이머들도 수상하기 짝이 없다.

    “마지막으로 명심하게나. 그대들이 용기를 낸다면, 이 전쟁을 더욱 빨리 끝낼 수 있다.”

    후작이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마치자, 아까 전까지는 분명 불신만이 가득하던 귀족 중에서 후작의 의견을 긍정적으로 고려하는 이들이 보인다.

    백작이 낸 의견은 위험은 없으나, 결과가 크다고도 할 수 없다. 반대로 후작이 낸 의견은 위험을 부담하나, 그만큼 결과는 확실하다.

    ‘예상 외로 표결이 막상막하겠는데.’

    좌중의 분위기로 보아, 표결은 반반 정도다. 신중한 이들은 백작의 의견에 찬성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후작의 의견에 찬성하고 있겠지. 그렇다면 결정권은 총사령관인 루아타 공작에게 달려있다.

    “피츠로이 백작의 의견에 찬성하는 이는 손을 들게.”

    성급히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우선 표를 보겠다는 건가. 공작의 말에 반수가 손을 들어올렸다.

    “손을 내리게. 다음은 세르먼트 후작의 의견에 찬성하는 이는 손을 들게나.”

    “동일합니다, 주군.”

    예상대로 표결은 반반이었다. 그렇다면 최종결정자는 공작뿐이다, 그렇게 생각한 라트는 과연 공작이 무슨 의견에 손을 들어줄지 기대하는 순간.

    “안타깝게도 기권은 없네. 자네는 어떤 의견에 손을 들 생각인가.”

    공작이 허를 찌르고 들어왔다. 모든 이들이 시선을 돌려 라트를 바라본다. 가신이나 경험을 위해서 혹은 전공을 노리고 아버지를 따라온 후계자들은 당연히 표를 선사할 권한이 없다.

    그러나 라트는?

    신분은 평민이라고 하나, 무려 기느투스 후작의 대리 신분을 맡고 있는 처지다. 당연히 누군가의 의견을 지지할 자격이 있다. 만약 이 회의가 그젯밤, 라트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던 때라면 누군가 라트에게는 투표 자격이 없다고 반발하고 나섰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지. 어젯밤 이루크 성을 공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남자다. 겨우 그것만으로도 이 회의에 낄 자격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이렇게 나오시겠다.’

    루아타 공작은 그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못한다. 피츠로이 백작은 루아타 공작의 오른팔 비슷한 위치에 있는 귀족이고, 세르먼트 후작은 루아타 공작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셀룬에서는 저명한 귀족이다. 한 쪽 의견을 들어주면, 다른 한 쪽에게는 미움 받을 수밖에 없다.

    지휘관은 그 누구의 의견도 듣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할 때도 있어야하지만, 반대로 그 누구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어야하는 위치다. 그렇기에 공작은 결정권을 라트에게 떠넘겼다.

    “저는 우둔하여 백작님과 후작님의 의견 모두 타당하고 느끼기에 어느 쪽에 손을 들어드려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권은 없네.”

    공작이 떠넘긴 결정권을 다시금 공작에게 패스하려고 했으나, 공작은 사전에 그것을 막아버렸다.

    ‘아니 도대체 왜 이래?’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라트는 거북함을 느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공작은 생각해둔 방향이 있을 거다.

    공작이 자신의 가신들과 따로 회의를 하고 있다는 건 엘리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 방향대로 움직이면 되는 것을 왜 굳이 나를 끌어들이는 가.

    한쪽의 편에 서면, 다른 한쪽에게 무안을 주는 꼴이라고는 하지만, 국왕을 제외하면 셀룬에서 견줄 자가 없는 루아타 공작이 도대체 뭐가 무섭다고.

    ‘나한테 부담을 씌우겠다는 건가?’

    공작의 옆에 앉아서 안절부절 자신을 바라보는 엘리를 살며시 바라보았다. 엘리도 지금 라트가 얼마나 곤란한 상황에 처했는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원망스럽다는 눈으로 공작을 바라보고 있으나, 그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다.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해야지. 군사 회의 도중에 군기를 어지럽히는 발언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아니야. 공작이 나한테 부담을 줄 이유는 없어.’

    엘리의 남자친구, 미래의 사위이기 때문이 아니다. 서로 같은 곳을 향해 달려가는 동지다.

    공작이 괜히 라트에게 부담을 짊어지게 했다가, 일이 틀어지면? 갑자기 결정권자가 되어버린 라트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연금술사의 위신을 올리겠다는 목적이 무너지고 만다.

    ‘그렇다는 건.’

    살며시 고개를 들어 올려 공작을 바라보자, 그는 진중한 눈빛으로 라트를 주시하는 중이었다. 그 눈빛에 이미 답이 정해져있다는 것을 느꼈다.

    공작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자. 공작은 이번 전쟁을 치밀하게 준비해왔고, 그렇기에 이번 전쟁에서 이기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그림자 까마귀가 엘리의 암살을 도모한 덕분에 켈랑 왕국에 대한 증오심도 깊다.

    “저는 세르먼트 후작의 의견에 손을 들겠습니다.”

    그렇다면 이게 정답이겠지. 라트의 예상대로 이었는지, 공작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모두의 시선이 라트에게 쏠려있었기에 그 모습을 본 것은 라트 뿐.

    “그럼 31대 30으로 세르먼트 후작의 의견이 수가 더 많군.”

    “그, 그렇지만 공작님. 겨우 한 표 차이입니다.”

    “잠시만요.”

    겨우 한 표 차이, 다른 30명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거기서 라트가 스스로 입을 열었다.

    “기권은 없다고 하셨죠, 공작님? 그렇다면 공작님도 투표하셔야하지 않습니까?”

    “옳은 소리다.”

    공작은 분명 기권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총사령관이라지만, 공작은 한 명의 귀족. 투표를 할 권리는 확실히 있다. 라트의 물음에 공작은 미소를 지었고.

    “나도 세르먼트 후작의 의견을 지지한다. 맹수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맹수굴로 찾아갈 담은 있어야하지 않겠나.”

    표결은 32대 30이 되었다.

    ============================ 작품 후기 ============================

    일어나보니 새벽 6시.....요즘 왜 이렇게 많이 자는지 모르겠습니다. 잠은 많이 자도 피로가 풀리는 건 아니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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