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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89화 (89/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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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최대한 병사들이 없으리라고 여겨지는 구석 자리에서 나온 덕분인지, 다행이도 주변에 병사들은 없었다. 이대로 은밀하게 잠입해서, 성문을 열면 그걸로 끝이었지만.

    병사들이 없을만한 곳을 고른 덕분에 성문과의 거리를 상당히 떨어져있었다. 그리고 성문 쪽은 횃불을 든 병사들이 꾸준히 순찰을 돌고 있는 상황. 암살자나, 도둑 직업군이 아닌 이상에야 잠입은 힘들지도 모른다.

    ‘시민들은…….’

    국가의 존망을 건 전쟁에 참가한 이들이라면 모를까, 무고한 시민들을 해친다면 명성이 깎이게 된다. 명성이 깎이지 않더라도,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아. 그래서 관찰력 기능을 최대로 끌어올려서 주변 민가를 살펴본다.

    민가 쪽에서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지하 혹은 성 뒤에 있는 산맥 쪽으로 대피라도 한 건가. 그렇다면야 이쪽은 환영할 일이다.

    잠입에 관련된 기능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잠입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소란을 일으켜서 주의를 돌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어떻게 주의를 돌릴 생각인가.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하던, 생명의 연금술을 사용하던 소란은 단발성에 지나지 않는다. 잠입을 하기 위해서는 지속성이 짙은 소란이 필요해.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지.

    미소와 함께 인벤토리에서 주먹보다 조금 큰 구슬을 꺼내든다. 이게 파괴된다고 생각하면 뼈가 좀 아프기는 하지만, 작전을 완수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최대한 소란을 일으켜.”

    구슬을 바닥에 던지며 명령하자, 구슬은 마치 알았다는 듯 조용히 진동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만족하며 몸을 숨기는 순간, 구슬에서 마력이 뿜어지더니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전부 흡수한다. 기껏 만들어놓고 최근까지 써먹을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이야.

    어느 사이에 주변의 사물들을 삼켜, 그것으로 몸체를 형성한 골렘은 소리 없이 울부짖으며 지상을 내리쳤다. 그 소란에 순찰을 돌던 병사들은 물론이오, 지친 몸을 뉘였던 병사마저도 잠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적습이다!”

    무려 오우거와 비견할 수 있는 몸체를 가진 골렘이다. 오러 익스퍼드라도, 6서클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라고 해도 쉽사리 처리하기는 힘들 터. 최소 30분 정도는 충분히 시간을 끌어줄 수 있겠지.

    그러나 골렘이 하나 툭 튀어나왔다고 해서 소란은 쉽사리 번지지 않는다. 지금도 그래, 소란 때문에 순찰을 돌던 병사와 잠을 자던 병사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벌써 몇몇 병사와 기사가 골렘의 앞을 막아서고 있지 않은가.

    ‘이럴 때는 정석이지.’

    담배에 불을 붙임과 동시에 로브로 불빛을 가린다. 생명의 연금술로 연성한 것 중 고체가 아닌 기체나 액체는 현실에 관여한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 지하에서 공기를 만들어 호흡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만들 것은 바로 불,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재해 중 하나인 화재를 일으킬 생각이다.

    “후우.”

    담배 연기가 허공에 내뿜어졌고, 그것이 겁화로 변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거주지였을 집이 활활 타들어간다. 갑자기 화재가 일어나자 안 그래도 골렘의 출현 때문에 당황했던 병사들이 더더욱 당황에 빠진다.

    ‘조금 더.’

    병사들과 마주치치 않게 조심히 어두운 길거리를 배회하며 불을 일으킨다. 한쪽에서는 골렘, 다른 한쪽에서는 화재가 일어나자 나팔을 불며 잠들어있는 병사들을 깨운다.

    “으아아, 불이다! 불이야!”

    “이게 뭔 일이다냐?”

    “그런 말할 시간에 불부터 꺼! 이 새끼들아!”

    “불을 꺼라! 모두 우물에서 물을 퍼 날라!”

    소란과 소란이 겹쳐 더더욱 큰 소란을 만들어낸다. 그 덕분에 순찰을 하던 병사들도 우왕좌왕 불을 끄고 있다. 기사나 귀족은 혼란에 빠진 병사들을 통제하느라 정신이 없다.

    “첩자다, 그래 분명 첩자가 있는 게 분명해. 첩자를 찾아라!”

    들려오는 목소리에 라트는 조소하고 말았다. 철옹성에 누군가 침입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해서, 이 안에 첩자가 있다고 생각하나보다.

    성벽을 바라본다. 그 위에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병력 밖에 남아있지 않아. 아마도 적이 소란을 틈타 쳐들어온다고 해도 절대로 뚫리지 않는 성벽이 있는 이상, 저 정도 병력만 있다고 해도 소란을 잠재울 때까지는 적습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찌 조소하지 않을 수 있으랴. 침입자가 있다는 걸 고려하지도 않아, 성벽을 너무나도 맹신하고 있는 그 모습은 정말이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맹신이었다.

    “가보실까.”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성벽을 향해, 성문을 향해 다가간다. 중간 중간 병사 무리와 마주쳤지만, 모두가 소란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쉽사리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골렘을 바라본다. 창에 오러를 덧씌운 남자가 골렘을 맹렬히 공격하고 있었다.

    ‘쿠룬 백작이군.’

    제일 경계해야할 인물이 저렇게 골렘을 상대해주고 있다니. 고맙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아마도 저 골렘은 회수하지 못하겠지. 너의 희생은 평생까지는 아니더라도, 당분간 기억해주도록 하마.

    짧은 기도와 함께 골렘을 마음속에서 보낸 라트는 더더욱 속도를 높여 성문을 향해 달린다. 그와 동시에 인벤토리에서 대검을 꺼내들었고, 연금술을 이용해 팔찌를 미스릴 갑옷으로 변형시켰다.

    “거기 잠깐!”

    “잠깐은 무슨, 잠깐.”

    살을 베는 소름끼치는 감각이 대검의 검신을 타고 손끝에 전해진다.

    ‘수상한 자를 멈춰 세우는 게 아니라 활을 쐈어야지.’

    단 일격에 성문 앞을 가로막고 있던, 침입자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 방심하고 있던 병사들을 참살시켰다.

    “치, 침입자다!”

    성문 주위에는 당연히 횃불이 설치되어있기에 라트의 모습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아래쪽을 내려 보던 병사 중 한 명이 라트를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미 늦었어, 다른 병사들은 성벽 위에 있고, 이미 성문은 이미 라트의 코앞에 있다.

    “전원, 당황하지 말고 발사 준비!”

    명령에 따라 허겁지겁 활을 들어 올리면서도, 병사들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지휘관만은 절대로 당황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성문을 열기 위한 장치는 성벽 위에 있다. 더욱이 성문은 마법으로 강화되지 않은 대신 강철로 만들어졌으며, 그 크기 또한 상당히 크다. 오러 익스퍼드라고 해도, 쉽사리 부술 수는 없는 그런 성문이었으니까.

    ‘설마 끝까지 성을 맹신할 줄이야.’

    그 치태를 보고, 라트는 다시 한 번 조소하고 말았다. 이미 난공불낙이라고 불리는 성에 침입자가 들어왔다. 그들의 믿음이 이미 한 번 깨진 상황. 그럼에도 또다시 성의 방어력을 믿다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는 필시 슬프지도 않은 비극, 웃기지도 않은 희극이리라.

    “발사!”

    화살이 날아옴에도 라트는 태연하게 연금술로 검의 형태를 변형시키고 성문을 조준했다. 오러가 담긴 화살이라면 모를까, 평범한 철 화살 따위에 미스릴 갑옷이 뚫릴 리가 없다.

    예상대로 갑옷을 뚫지 못하고 허무하게 땅에 떨어지는 화살과 함께 방아쇠를 당기자, 총신에서 열을 머금은 마력탄이 쏘아져, 철문을 두들긴다.

    ‘한 방으로 부수기는 무리구나.’

    마력탄에 직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성문은 약간의 금이 생겼을 뿐 여전히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상관없어, 한 번으로 부술 수 없다면 두 번, 안 된다면 세 번. 아직까지 골렘은 건재하고 도심 사이에 피어난 불꽃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또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긴다. 그 때마다 폭발이 일어났고, 성벽 위에서 화살을 쏘라고 지시를 내리던 지휘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간다.

    “내려가, 전원 내려가서 저 자를 막아라!”

    떨리는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또 다시 총신에서 불이 뿜어졌고, 마력탄이 성문에 직격하는 순간, 이미 너덜너덜해진 강철의 성문은 허무하게 박살이 나고 말았다.

    [반복된 행동으로 사격술 기능이 생성되었습니다.]

    ‘드디어 생겼나.’

    이 대검을 만들고 1년, 드디어 사격술 기능이 생겼기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검은 원래대로 되돌리고 내려오고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작전은 완료, 성문이 부서졌으니, 아군이 이쪽으로 돌격할 거다.

    “후우.”

    담배 연기가 폐를 자극한다. 그 느낌이 너무나도 달콤해서, 자신도 모르게 황홀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난공불낙,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몇 달이라는 시간을 허비해야 간신히 점거할 성을 이렇게 간단하게 무너트렸다는 사실에 몸을 떤다.

    “죽어라, 이 역적!”

    역적인가? 옳은 말이다. 셀룬에서는 영웅, 켈랑에서는 역적이라고 불릴만한 업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겸허하게 자신을 역적이라고 부르는 걸 받아들였다. 그래, 역적이라는 말을 받아들여야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죽으라는 말은 받아들일 수 없다.

    “커헉.”

    다가오는 병사의 폐에 대검을 박아 넣자, 공기가 빠져나가는 음산한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힘과 동시에 병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자신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려 대검을 바라본다. 그것으로 끝, 하나의 목숨이 그렇게 생을 마감한다.

    성문이 뚫렸다, 소란으로 인해 성벽 위에 병사도 거의 남아있지 않아. 이렇게 된 이상 성벽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거나 매한가지. 상황을 판단한 지휘관은 라트를 향해 노기를 내보이며 검을 들어 올리고 라트를 향해 달려온다.

    “내 죽어도, 너만은 죽이고 가겠다!”

    소름끼치는 원망이 날카로운 창이 되어, 라트를 찌른다. 감정이 실체화될 수 있다면, 능히 그 원망만으로 라트를 죽일 수 있겠지.

    그렇지만 감정은 실체화되지 않아, 그리고 이곳은 전장이다. 강하지 않은 이들은 강한 이들에게 죽을 수밖에 없는 약육강식이 만연한 세계.

    “죽이느니, 뭐니, 그런 건 입이 아니라 힘으로 이야기하라고.”

    조용하나, 확실히 들린 읊조림에 분노했는지 지휘관은 맹렬히 공격을 퍼붓는다. 어리석다, 병사를 지휘해야할 자가, 감정에 몸을 맡기고 앞선에 설 줄이야. 실력이 뛰어나다면 이런 행동을 이해라도 할 수 있어. 그러나 이 남자의 실력은 기대 이하다.

    잠깐 동안 검의 부딪치는 소란이 일어난다. 그것은 정말로 잠깐에 불과했다.

    “크흑, 네, 네 이놈…….”

    대검으로 남자의 검을 막고, 그 즉시 미스릴 갑옷으로 둘러진 손을 이용해 검신을 붙잡음과 동시에 그의 어깨 죽지를 베어버리자, 남자는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원망 때문인지, 핏발이 선 눈동자로 라트를 응시했다.

    “다들 이 역적을 어서, 쳐라!”

    필시 곧바로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 그럼에도 남자는 원망으로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최후의 명령을 내렸다. 그 모습은 정말로 끔찍하고 장엄했으나, 안타깝게도 병사들은 그의 명령을 듣지 않고 뒷걸음질을 친다.

    “지휘관이 죽었는데 잘도 나서겠다.”

    황망한 표정으로 어째서, 라고 중얼거리는 남자를 향해 한 마디를 남긴 라트는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곳은 전장,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자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일반 병사들이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렇기에 지휘관은 병사를 대신해서 그 무게를 감당해준다. 병사들은 지휘관의 명령을 충실히 따른다. 그렇기에 전장에서 지휘관의 존재는 중요하다. 지휘관이 죽으면, 병사들의 사기는 꺾이기 마련이니까.

    “멍청한 지휘관 덕분에 생각보다 더 쉽게 끝나겠는데.”

    싱겁다고 생각하며 성문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 이 달밤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기병대가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선봉은 기병대인가. 성벽 위를 바라본다. 사기가 떨어지고는 있으나, 아직까지 지휘관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병사들은 성을 향해 달려오는 기병대를 보고, 시위에 화살을 걸고 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도대체 어디를 보고 있는 거냐. 기병대가 이쪽으로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여기 있어, 바로 코앞에 적이 있다고.

    그런데 어째서 나를 노리지 않고, 굳이 멀리 있는 적을 노리는가. 아, 설마. 나를 부정하고 싶은 거냐? 성문이 뚫린 것을 부정하고 있는 건가?

    정말로 그런 거라면, 친히 절망을 안겨주마.

    새하얀 달빛이 비추는 밤. 피가 칠해진 갑옷을 입은 청년은 유유자적, 겁을 먹은 병사들을 베어나가며 성벽 위로 올라갔다.

    적의 눈에 보인 그 모습은 악몽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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