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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87화 (87/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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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케이네에게 공작과 나눈 이야기를 설명해주자, 그녀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제스맹의 대리를 증명하는 패를 라트에게 넘겨주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조금 있으면 군사 회의가 시작될 테니까. 케이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자 엘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는 잘 끝났어?”

    “아마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케이네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제스맹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게 라트의 탓이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과연 스승님이 죽는 순간에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건 그 때 가봐야 알겠지.’

    씁쓸한 한숨을 내뱉으려고 했지만, 엘리가 옆에 있기에 자중한다.

    “패는 받았고?”

    “받았지, 이거 봐.”

    “그럼 아버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가자.”

    공작의 막사로 향하면서 엘리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가 다정한 눈빛을 보이며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답하고, 물어본다. 엘리와 이야기를 계속할수록 누군가 살벌한 시선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음을 느꼈지만, 괘념치 않는다.

    목적지에 도달하자, 라트는 엘리에게 먼저 들어가라는 말을 전한 후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

    씁쓸한 마음을 달래기에는 역시 담배만한 것이 없다. 담배를 빨아드리는 여유를 보이며, 누가 나에게 살벌한 시선을 보냈을까 궁금하여 주변을 둘러본다.

    ‘저 놈인가?’

    고풍스러운 갑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기사, 아니 귀족이겠지. 라트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자는 계속해서 살벌한 시선을 보내다가,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자신의 어깨를 잡자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더니 이내 그와 함께 공작의 막사로 들어갔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담배를 태우던 라트도 이내 담배를 전부 태우고 막사 안으로 들어선다.

    “왔나.”

    이미 막사에는 수많은 귀족들이 자리에 앉아있었고, 그들은 모두 라트를 바라보았다.

    “오셨습니까, 은공.”

    그 중 공작의 가신들은 라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공작님 저 분은 누구십니까?”

    귀족들은 라트가 누구인지 몰라, 어벙한 표정을 지으며 공작에게 라트의 정체를 묻는다.

    “내 딸 아이를 구해준 이다.”

    몇몇이들이 침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인다. 엘리가 켈랑 왕국에 의해 암살당할 뻔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켈랑에 선전포고를 한 명목 중 하나가 바로 그것 때문이 아니던가.

    “그리고 기느투스 후작의 대리이기도 하지.”

    “예?”

    공작이 눈짓을 하자, 라트는 케이네에게서 받아온 패를 보였다. 몇몇 귀족들은 그의 오른손목에 있는 팔찌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기느투스 후작의 두 번째 제자이자 그의 대리라면 이 회의에 참가할 자격은 충분하다.

    작금 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기느투스 후작이 후원해준 장비 덕분이니까.

    “앉으시구려.”

    귀족 중 한 명이 라트에게 비어있는 자리를 권하자, 라트는 그곳에 앉았다. 몇몇이는 관심을 보이고, 몇몇이는 호의를 보인다.

    그리고 조금 전 라트를 살벌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남자는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왔다. 그 남자와 함께 들어온 남자는 그런 시선을 보내지 않았지만.

    ‘누구더라.’

    저들이 공작과 가까운 곳에 앉아있는 것으로 보아, 콧수염을 기른 남자는 상당히 높은 귀족. 그리고 라트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자는 그의 자식일 게 분명하다.

    왠지 누구인지 생각이 날 것 같은데.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회의를 시작하겠다는 말과 동시에 라트는 잡생각을 그만두었다. 당장은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게 먼저니까, 회의에 집중해야한다. 내일쯤이면 이루크 성에 도착하니까, 지금 나누는 회의를 토대로 이루크 성을 공략할 작전을 세울 거다.

    “이 지도가 현재 이루크 성과 그 주변을 나타내는 지도입니다.”

    거대한 산맥에 후방을 맡기고, 전방에는 거대한 성벽이 세워져있다. 러프 요새와 마찬가지로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설계된 성이고 동시에, 그 근방에 있는 항구 도시들의 안전을 보호 하는 성이다.

    후방의 산맥은 굉장히 거대하기 때문에 올라가는 게 힘들다. 그렇다면 병력을 앞세워 전방을 공략할 수밖에 없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러프 요새보다 공략하는 것이 까다롭다.

    “대포로 성벽을 부수고 돌격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귀족 중 한 명이 이루크 성을 공략하는 것이 너무나 간단한 일이라는 듯이 말한다. 철통과도 같았던 러프 요새도 대포에 의해 붕괴되었기에, 자신감이 넘치는 모양이다.

    이루크 성이 어떤 성인지 알고 있는 귀족들은 발언을 한 귀족을 멍청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불가능합니다.”

    이루크 성의 성벽은 그렇게 간단히 뚫을 수 없다. 러프 요새가 셀룬과의 전쟁을 위해서 만든 요새라면, 이루크 성은 켈랑의 역사와 함께 만들어진 그들의 자존심과도 같은 성이니까.

    “성벽에 새겨진 방어 마법만 도합 1만개가 넘어갑니다. 성에 있는 마력석이 떨어지지 않는 한, 대포나 투석기로는 성벽을 뚫을 수 없습니다.”

    1만개의 방어 마법이 새겨진 성벽이라는 말을 듣자 그 사실을 모르던 귀족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켈랑의 마법사들은 일정한 경지에 오르면 반드시 이루크 성의 성벽에 방어 마법을 새기고, 방어 마법을 발동시킬 수 있는 마력석을 성에 헌납해야하는 관례가 있다.

    처음에는 미약했으나 그것이 세월이 흐르고 흘러, 현재에 이르러 1만개의 방어 마법이 새겨졌다. 1만개의 방어 마법은 서로 회합되어 성벽뿐이 아니라, 공중에서 날아오는 요격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고.

    “답은 성문을 뚫는 것뿐입니다.”

    성벽과는 반대로 항시 사람들이 통행해야하는 성문에는 별다른 방어 마법이 걸려있지 않다. 당연히 설계상 성문이 약점인 건 켈랑의 건축가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성문을 성벽 깊숙한 곳에 숨겨 공성병기로는 피해를 입히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도 성문을 뚫을 수 있다면, 병사들을 성으로 들여보내서 성 안에 있는 군사들을 제압할 수 있다. 성문만 뚫는다면 1만개의 방어 마법도 무용지물이 된다.

    문을 뚫으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문을 뚫기 어렵다. 루아나 공작을 포함한 마법사들이 몇 주 동안 마법을 퍼붓는다면 성벽을 파괴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체된다.

    ‘마법에 걸린 건 무색의 연금술로 연성할 수는 없고.’

    무색의 연금술은 자연을 연성하는 연금술이다. 그러나 마법은 자연이 아닌, 능력. 그렇기에 마법, 혹은 마법에 걸린 물건은 연성할 수 없다는 걸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어?’

    그래 마법에 걸린 물건 그러니까 성벽은 연성할 수 없는 게 확실하다. 그리고 쇠붙이로 만들어진 성문도 연성할 수 없는 게 확실했다.

    그러나 안에 잠입할 수 있다면? 언뜻 보기에는 난공불락의 성이지만, 안에 잠입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불연 듯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이루크 성의 지도를 살핀다.

    ‘가능하겠는데?’

    절대로 뚫리지 않는 성벽을 믿었는지, 보통 성과는 다르게 주변을 매꾸는 해자조차 없다. 그렇다면 성에 잠입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니, 가능하다. 예전이라면 불가능했겠지만, 지금이라면 충분해.

    “자네, 좋은 생각이 있는 모양이군.”

    시시각각 변하는 라트의 표정을 살피던 공작은 마침내 라트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자 그에게 질문을 던졌고, 자신의 작전을 숨길 까닭이 없었기에 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에 잠입하겠습니다.”

    “성에 잠입? 무슨 재주로 그런 말을 하는가. 방어 마법이 둘러졌다함은 안으로 텔레포트도 할 수 없다는 뜻인데.”

    가장 먼저 반발하고 나선 것은 라트에게 살벌한 시선을 보낸 남자의 옆에 앉아있던 귀족이었다.

    “후작 대리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네, 피츠로이 백작.”

    피츠로이 백작이었나. 라트는 살며시 눈길을 돌려 콧수염을 기른 귀족을 바라보았다. 피츠로이 백작은 엘리가 죽어서 루아타 공작이 광인이 됐을 때 가장 먼저 정세를 잡은 귀족이다.

    본래 공작의 그늘에 가려 제 기량을 선보이지 못하던 백작은 공작이 미치자, 그의 아래 있던 모든 귀족들을 흡수해서 단 시간에 세력을 불렸다.

    전형적인 욕심 많은 귀족, 그러나 그 능력이 제법 뛰어나기에 탐욕스러운 본심을 보인다고 해도 아무도 욕할 수 없는 귀족이 바로 피츠로이 백작이다. 공작이 미치지 않았으니 그 야심을 들어낼 수 없게 돼버렸지만.

    ‘그럼 옆에 있는 건 아들이겠네.’

    피츠로이 백작의 아들 또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야심이 있고, 능력도 제법 괜찮은 놈이었다. 저 어린 나이에 오러 베철러의 경지에 올랐을 정도다. 아마도 시간이 지난다면 오러 베너렛, 어쩌면 소드 익스퍼드의 경지까지 도달하겠지.

    ‘왜 나한테 살벌한 시선을 보낸 거지?’

    엘리와 친하게 지내서 그런 건가? 혹시 저 놈도 엘리에게 마음이 있었던가? 루아타 공작이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광인이 되기 때문에 공작가의 사정은 자세히 알아보지 않아서, 자신에게 살벌한 시선을 보낸 이유가 무엇인지 선뜻 유추할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야심은 있지만, 공작이 있는 이상 그 야심을 펼칠 수가 없는 피츠로이 백작은 공작의 제제에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나한테 사과를 해야 할 게 아닐 텐데?”

    “끄응. 말을 끊어서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런 말을 하시는 게 정상이니까요.”

    라트는 간단히 사과를 받고, 오히려 백작의 의문을 타당하다고 말했다. 공작의 그늘에 가려졌다고 하지만, 괜히 잘나가는 귀족과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왠지 피츠로이 백작의 아들내미가 조금 더 살벌하게 자신을 노려보기 시작했지만, 조용히 무시하고 성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자, 귀족들이 라트에게 이채로운 눈빛을 보내온다.

    “그게, 정말 가능한가?”

    “정말 가능하다면 이루크 성을 쉽게 공략할 수 있을지도?”

    “있을지도, 가 아니네. 남작. 성문이 열린다면 공성전을 치룰 필요 없이 그냥 진격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모두가 라트의 작전에 반신반의하면서도 그것이 성공한다면 이루크 성을 쉽게 공략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열띤 토론을 한다.

    “조용.”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공작은 토론이 점점 과열되어가자, 입을 열었다.

    “후작 대리가 말한 작전을 제 1안으로 삼겠다. 이의가 있는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전략이라고 해봐야, 다른 지원은 필요하지 않는다. 라트 혼자서 성에 잠입한다고 하니, 손해 볼 일이 없다. 반대할 필요가 없는 작전이었다.

    “그럼 제 2안에 대해서 논의해보도록 하지.”

    라트의 작전이 기발하다고 하지만, 전쟁이라고 함은 언제나 변수가 일어날 수 있기에 공작은 라트의 작전이 실패할 것을 대비해서 다른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렇게 밤 중, 열띤 토론을 나누던 귀족들은 제 2안을 넘어서 제 3안까지 토의를 하고서야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었다.

    “자네는 잠깐 남게나.”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공작의 지시로 인해 라트는 막사에서 나가는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채 자리를 지켰다.

    잠시 후 귀족들이 전부 나가고 공작과 그의 가신들 그리고 엘리만이 자리에 남자 공작은 가신에게 몇 가지 자료를 가져오라고 지시하더니, 그 자료를 라트에게 넘겼다.

    “성 안에 있는 사람 중 주의해야할 이들의 인상착의와 경지를 정리한 자료네. 이 자료에 있는 이들 말고 다른 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 너무 맹신하지는 말게나.”

    다른 귀족들이야 이미 알고 있는 정보지만, 이제 막 전쟁터에 도착한 라트는 이런 정보를 알고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라트를 따로 남긴 거였다.

    왕국 전쟁 퀘스트야 질리도록 해봤기에 이루크 성에 어떤 NPC가 있을지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확실한 게 좋다고 생각했기에 자료를 살피던 라트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루크 성에 마르차르드 후작 없군요.”

    마르차르드 후작, 켈랑에 있는 유일한 오러 마스터. 방어가 용이하다고는 해도 지리상 중요한 거점인 이루크 성에 마르차르드 후작이 없다고?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 작품 후기 ============================

    흐구님 1장, 붉은열매님 1장 후원 쿠폰 감사합니다.

    오늘은 제가 할아버지를 따라서 일을 좀 다녀와서 한 편만 올릴게요....가능하면 오후에 한 편 더 올리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럼 여러분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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