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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86화 (86/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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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라트!”

    막사를 걷고 들어가자, 엘리가 라트의 얼굴을 확인하고 곧바로 그의 품에 안겼다. 조금씩 몸을 떨고 있는 모습이 왠지 겁먹은 아이 같아서, 저도 모르게 그녀를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보고 싶었어.”

    울먹이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는 모습에 라트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흘러내린 그녀의 머릿결을 정리해주었다.

    “나도 보고 싶었어.”

    지난 반 년 스승과 케이네의 모습을 그리워하기도 했지만, 가장 그리워했던 사람은 역시나 엘리였다. 살며시 고개를 내려 그녀의 뺨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춘다.

    “사랑해.”

    그리고 귀여운 귓불에 대고 달콤한 밀어를 속삭였다. 무덤덤한 고백이었으나, 겨우 그것만으로 엘리는 몸을 떠는 걸 멈췄다.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청년을 바라보며 아름답게 웃었다.

    “나도 사랑해.”

    서로의 눈을 응시한다. 그것만으로 마음이 진정되는 기분이 들어. 아니, 진정되는 것을 넘어서 황홀해지는 느낌마저 받는다. 그 시작이 누구라고도 할 것 없이 서로의 입을 맞추며, 남자와 여자는 달콤한 재회를 만끽했다.

    “괜찮아?”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으니 입술을 땐 후, 가장 먼저 묻는 것은 안부였다.

    사람이 죽는 모습이야, 암살 시도를 겪으며 많이 봐왔다고는 해도 생에 최초로 전쟁에 참여해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압박감을 차원이 다르다.

    그렇기에 물어볼 수 있는 건, 고작 안부뿐이었다. 수많은 목숨들이 생사를 넘나드는 한복판의 모습은 라트조차 아직 체험해보지 못한 것이니까.

    “괜찮아졌어.”

    괜찮아졌다함은, 아까까지는 괜찮지 않았다는 뜻이다. 조금 전까지 불안함에 시달리고 있던 엘리였으나, 라트의 얼굴을 본 순간 신기하게도 불안함이 전부 씻겨 내렸다.

    “그럼 다행이고.”

    다시 한 번 등을 토닥여주자, 엘리는 이제 됐다는 듯 자리에서 떨어졌다. 조금 더 투정을 부리고 싶고, 그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으나 이곳에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리아님의 계시는 어떻게 하고 온 거야?”

    “잠시 미뤘어. 이 전쟁이 더 중요해서.”

    라트는 쓰게 웃었다. 스승님이나, 공작이나, 엘리나 새빨간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만큼 모리아라는 이름의 값어치는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 이름의 값어치를 대단하게 여기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신에게 존경과 공포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모리아의 이름을 팔아먹는다고 해도, 돌아오는 분노는 없다. 아니, 어쩌면 라트는 이 세계에서 사는 사람이 아닌 이방인이기에 모리아가 내버려두는 걸지도 모른다.

    “그럼 병사로 참가하는 거야?”

    “아니 사저한테 스승님의 패를 받을 생각이야.”

    “아! 케이네 언니한테 라트가 여기 오는 걸 안 알려줬네.”

    케이네가 전쟁에 참가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와닿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떤 감정이 꿈틀거렸다. 이건 도대체 무슨 감정이지?

    “갑자기 미안해지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그렇지.”

    “미안할 일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너한테 미안한 게 아니라 언니한테 미안한 거야. 언니도 널 많이 보고 싶어 했단 말이야.”

    엘리의 말에 라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발아하는 것을 느꼈다. 사저를 보고 싶었던 마음은 라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케이네와 재회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그건 엘리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녀의 안위는 공작이 직접 챙길 것이니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케이네를 다르다.

    “가자, 케이네 언니한테 데려다줄게.”

    “그래.”

    엘리와 함께 막사 밖으로 나가, 케이네를 찾아가면서 라트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언니 저 왔어요.”

    “왔어? 잠깐만, 이것만 좀 처리하고.”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케이네가 머무르고 있는 막사에 도착한다. 엘리가 인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케이네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망가진 장비를 수리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 옆에는 포션을 제조하는 장비가 열심히 돌아간다.

    전쟁터에 참가한 연금술사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저런 일 뿐이다.

    “언니가 깜짝 놀랄 손님도 데려왔어요.”

    “깜짝 놀랄 손님……? 라트!”

    엘리의 말에 고개를 돌린 라트는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라트의 모습을 보더니 깜짝 놀라서 수리하고 있던 장비를 내팽개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은 건강하게 잘 지냈어? 스승님은 뵙고 왔어? 여긴 어쩐 일로 온 거야?”

    호들갑스럽게 라트에게 다가오면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3년 전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이제는 케이네보다 훨씬 큰 라트의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이 언뜻 보면 언밸런스했지만, 그 손길에 깊은 애정이 담겨있어서 어색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누나 너무 흥분했어. 하나씩만 물어봐, 하나씩만.”

    아직도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 라트는 흥분했는지 질문을 쏟아내는 케이네를 진정시켰다.

    “어떻게 흥분을 안 해. 반 년 동안 못 보던 동생이 갑자기 나타났는데.”

    “편지는 남겼잖아.”

    “답장을 못하는데 무슨 소용이 있니. 정작 내가 궁금한 건 못 물어보는 일방적인 편지였잖아.”

    평상시라면 하루도 지나지 않아 편지가 도착했을 테니 답장도 보낼 수 있었겠지만, 전쟁 중인 까닭에 타국으로 보내는 편지는 까다로운 심사를 거친다.

    그 덕분에 답장은 고사하고 편지를 읽을 수 있다는 걸 감사하게 여겼지만, 막상 눈앞에 라트가 보이자 그런 감사함은 사라지고 말았다.

    “케이네 언니가 너 엄청 걱정했어.”

    “엘리만큼은 아니지만. 나한테 라트가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잖아.”

    “아, 아니거든요!”

    “뭐라고 했더라. 사랑하는 낭군님, 어서 돌아와서 저를…….”

    “어, 언니이이!”

    엘리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케이네의 입을 가로막으려고 하는 모습에 왠지, 이곳이 전쟁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라트는 마음속에서 싹이 트려고 하고 있는 감정의 정체를 알았다.

    “몸은 건강하게 잘 지냈어. 별 다른 일도 없었고.”

    분명 별 일이 없었다고 알리는 말임에도 차갑기 그지없었기에 엘리와 케이네는 장난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스승님은 당연히 뵙고 오는 길이야. 그리고 내가 온 이유는 누나도 짐작하고 있잖아.”

    케이네가 전쟁에 참여했다는 소식을 들을 후부터 마음을 휘적거리던 감정이 엘리의 입에서 케이네의 이름이 나오자 발아하였고, 마침내 개화한다.

    “나야 그렇다 치고, 그러는 누나는 도대체 왜 전쟁에 참가한 거야.”

    그 감정의 이름은 분노, 전쟁과 무관한 케이네가 어째서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왔는지, 이해를 할 수 없기에 라트는 차가운 분노를 전한다.

    “엘리. 잠깐 자리 좀 비켜줄래?”

    “미안, 엘리. 잠깐만 자리 좀 피해줘.”

    라트가 케이네에게 화가 났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명확하다. 그리고 그 분노의 이유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상대방을 원망하는 것이 아닌, 걱정하기에 나오는 분노다.

    엘리는 잠시 케이네와 라트를 번갈아가며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천막에서 나갔다.

    “휴.”

    “이제 대답을 좀 해봐.”

    한숨을 내뱉는 케이네를 향해 대답을 재촉한다. 무슨 생각으로 전장에 나온 건가. 나야 내 한 몸을 지킬 힘 정도는 있다. 그러나 케이네는?

    평범하지는 않으나, 평범한 연금술사의 지표의 끝을 바라보며 달리고 있는 케이네는 자신을 보호할 수단이 없다.

    “뜸들이지 말고 빨리!”

    “명성이 필요하니까.”

    돌아오는 대답이 예상을 넘어선 것이었기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무슨 뜻에서 저런 말을 하는 건가.

    “실력은 중요해. 그렇지만 누나는 스승님의 후계자로써 명성도 필요해. 그래서 전쟁에 참여했어. 이 전쟁에서 도움이 되면 자연스럽게 명성이 올라갈 테니까.”

    “명성은 지금도 충분하잖아.”

    케이네의 명성은 셀룬 왕국에 널리 퍼졌다. 아니, 그 뿐인가. 타국에서도 대연금술사의 첫 번째 제자, 그의 후계자라는 자리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런데 어째서 명성을 얻기 위해 이런 위험한 곳으로 발을 들이밀었는가.

    “제스맹 기느투스의 첫 번째 제자라는 명성? 그건 어디까지나 스승님의 그늘일 뿐이야.”

    “그치만!”

    “그리고 전쟁은 사람을 급속도로 성장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도 해. 요 몇 달간 실력이 많이 늘었어. 이 전쟁이 끝날 때쯤이면 라트가 만들던 그 골렘을 만들 수 있게 될지도 몰라.”

    라트의 말을 끊어버린 케이네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옳은 소리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간은 급속도로 성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위험을 부담하는 양날의 검, 케이네와 같은 온실 속의 화초가 할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반발하려고 했다. 케이네의 말을 부정하려고 분노하려고 했다.

    “스승님께서 앞으로 살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 라트는 알고 있지?”

    그러나 케이네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억장이 무너지고 만다. 조금 전까지 분명 휘몰아치고 있던 분노가 그 한마디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알고, 있었어?”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슬픔과, 당황스러움 뿐이다.

    “라트는 가끔 누나를 바보로 아나봐. 누나는 바보가 아니야. 나날이 수척해지는 스승님의 모습을 바라봤어.”

    나날이 수척해지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졌다. 그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직감한 날, 얼마나 많이 울었던가.

    그러나 스승에게는 그런 모습을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 자신이 슬퍼하면, 스승님도 슬퍼할 테니까.

    “라트가 1년 전, 울었던 이유가 그거였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케이네에게 스승이 죽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을 감춘 이유는 제스맹이 그걸 원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것도 있지만, 그녀에게서 스승이라는 존재를 빼앗았다는 생각에, 그 죄책감에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길어봐야 앞으로 2~3년. 그 전까지 누나는 스승님의 후계자로써 걸 맞는 모습을 갖춰야해. 그래서 스승님께서 라트더러 누나에게 연금술을 가르쳐주라고 한 거고.”

    그러나 케이네는 이미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 숨기는 것이 웃긴 일이다. 스승은 나날이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다른 이는 몰라도 항상 그를 옆에서 지켜보는 케이네라면 스승이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미안해.”

    떨리는 입술 사이로 간신히 사과를 전하자, 케이네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라트가 미안해하는 거야? 아, 조금 전에 화를 낸 걸 사과하는 거야? 나를 걱정해서 화를 내준 거잖아. 누나는 기뻤어.”

    “그거 말고, 스승님…….”

    그 날, 라트는 울면서 케이네에게 하소연을 했었다. 그 때의 기억은 희미하지만, 아마 케이네는 제스맹이 라트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쟁에 관여하는 중이라는 걸 알고 있을 거다.

    “스승님의 뜻이야. 라트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죄책감이 등을 타고 오른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케이네는 라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구슬프게 웃었다.

    “그 정도 연세를 드시고, 앞뒤 분간을 하지 못하실 리가 없잖니. 네가 미안해 할 일이 아니란다.”

    라트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스승은 자신이 원해서, 이 일이 목숨을 걸만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관여하는 것뿐.

    대연금술사는 타인에 의해 휘둘릴 사람이 아니다.

    “이곳이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어. 무서워서 잠을 못잔 날도 있을 정도야.

    그리고 담담히 첫 번째 주제로 돌아와, 라트의 걱정에 대해서 답했다.

    리프 요새에서 공성전을 벌일 때,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너무나도 무서워서 밤잠을 설친 날이 며칠이던가. 실제로 위험했던 상황도 있었고 그 때마다 자신이 괜한 짓을 한 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래도 라트가 왔으니까 이젠 별로 무섭지 않아.”

    그러나 그건 어제까지의 생각일 뿐이다.

    “내 동생이 누나를 지켜줄 거라고 믿으니까.”

    구슬픈 미소가 환하게 변하자, 라트는 아무런 말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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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2연참 성공....바로 자러 가볼게요...여러분 잘 자요 빠이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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