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85화 (8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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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포탈을 타고 러프 요새로 이동하자, 델스의 말대로 몇 명의 병사가 라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장비가 파손된 모습과 엉망이 된 주위의 풍경이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지를 증명한다.

수비를 위한 최소한의 병력만 남아있는 것을 보니 군대는 벌써 다른 곳을 공략하기 위해서 떠난 모양이다.

“리프 요새의 수비를 맡고 있는 레본 자작일세.”

병사 사이에서 제법 고풍스러운 갑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라트의 앞으로 나섰다. 레본 자작이라 기억에 남을 정도로 대단한 NPC는 아니지만, 딱히 추악한 모습도 보이지 않는 괜찮은 귀족이었던 것 같다.

“라트입니다.”

“알고 있네. 자네가 기느투스 후작님의 두 번째 제자이고 공녀님을 암살하려던 역전 무리를 막은 일은 꽤 알려졌다네.”

“현재 전선은 어떻게 됩니까?”

“리프 요새를 기점으로 군대를 두 개로 나누어 진격 중이라네.”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이었고, 수많은 귀족들이 전공을 세우기 위해서 이 전쟁에 참여했다. 당연히 전선이 하나만 있을 리가 없다.

“공작님은 어디로 가셨죠?”

“루아타 공작님은 어젯밤 북부에 있는 이루크 성으로 가셨네.”

이루크 성이라면, 여기서 날랜 말을 타고 이틀은 족히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도 출발 시간이 어젯밤이라고 했으니까, 쉬지 않고 말을 몰면 밤  중에는 공작과 합류할 수 있겠지.

“잠시만 기다리면, 곧 말이 올 걸세.”

“감사합니다.”

이곳에 있는 병사들은 리프 요새를 지켜야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이루크 성까지는 라트 혼자서 가야한다. 이들이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라트에게 말을 주는 것과, 공작이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는 것뿐이다.

“신분패는 굳이 필요 없으실 것 같군.”

레본 자작이 신분패를 꺼내려다가 라트의 팔찌를 보더니, 신분패를 다시 집어넣었다.

다른 왕국이라면 모를까, 셀룬에 있는 이들은 라트가 차고 있는 팔찌가 기느투스 후작의 제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팔찌라는 걸 알고 있다.

단지 제스맹에게 두 번째 제자가 생겼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셀룬에 한해서 이 팔찌는 신분패가 필요 없을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특히나 지금같이 병사들이 제스맹의 순수한 철을 가공해서 만든 병기구의 위력을 체감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델스가 굳이 라트에게 신분패를 주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겠지.

“말을 대령했습니다!”

“여기 있는 말 중 가장 날랜 말이라네.”

한 병사가 말을 끌고 오자, 레본 자작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떠나기 전에 망가진 장비 중에 순수한 철로 만들어진 것들만 가져와주세요.”

“무엇을 하려고?”

“전부 고쳐드리고 가겠습니다.”

휘몰아치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몸을 맡기기로 했으니, 될 수 있는 한 많은 공적도를 올릴 생각이었다.

공적도를 올리면, 국왕에게 보상을 받을 수도 있고 나아가 귀족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 일이 어찌될지 모르니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그, 그래 줄 수 있나?”

후방을 맡게 됐으니 연금술사들의 마력을 생각해서 장비를 수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내심 불안함 마음을 가지고 있던 레온 자작은 말을 기대에 더듬었다.

“예. 우선 자작님이 입고 계신 갑옷부터 수리해드리겠습니다.”

엘리트 병사를 제외하고는 순수한 철로 만든 장비는 무기 밖에 지급받지 못한 병사들과 달리 귀족들은 기본적으로 갑옷까지 순수한 철로 만든 것을 입고 있었다.

그렇기에 라트는 남작에게 다가가 그의 갑옷에 손을 대고 연금술을 펼쳤다.

잠시 빛이 일어나더니, 부서지고 금이 가있던 갑옷이 멀쩡하게 고쳐지자 레온 자작은 놀라움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라트를 바라본다.

“빨리 병사들을 불러주시겠습니까? 시간에 쫓기는 몸이라서.”

“아! 당장 성에 있는 병사들을 순서대로 이곳으로 불러라. 한 번에 부르지 말고, 천천히 질서 있게.”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공적도가 오르지 않는다. 제아무리 수많은 활약을 했다고 한들, 자신이 속한 왕국이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공적도는 날아간다.

전쟁에서 공적도를 얻기 위해서는 무조건 승리해야하며, 전쟁에서 승리하면 그 후 활약상을 집계해서 공적도를 주는 방식이다.

‘공적도도 올리고, 연금술 기능 레벨도 올리고. 일석이조네.’

병사들이 내미는 무기를 연금술로 수리하면서, 이후 셀룬과 켈랑의 전쟁이 어떤 양상으로 흘러갈지를 그린다.

이번 전쟁에서 셀룬이 지게 내버려둘 생각은 없다. 공적도를 제쳐두고서라도 스승이 자신의 수명을 맞바꿔 준비한 전쟁이다.

‘절대로 지게 두지 않아.’

이 전쟁에서 셀룬이 진다면, 스승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자신의 수명을 포기한 게 되는가. 연금술의 끝에 홀로 도달하고 싶어 하던 대연금술사가 제자의 헛된 말 한마디 때문에 과거의 꿈을 떠올리고 전쟁에 관여했다.

그래, 스승님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전부 자신 때문이었다. 스승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그저 라트가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기를 바라고 해준 말이다.

‘그러니까 이긴다.’

스승의 수명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스승이 젊을 적 꿈꿨던 누구보다 강한 연금술사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절대로 셀룬을 지게 내버려두지 않을 생각이다.

만약 진다면, 나는 평생토록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

“고맙네. 내 이 일은 꼭 상부에 보고하도록 하겠네.”

대략 30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서 금이 성내에 자신이 고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수리한 라트는 자작의 감사를 받으며 이루크 성으로 말을 몰았다.

수리를 하느라 시간을 좀 소비하기는 했지만, 예상대로 저녁쯤에 군의 진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구냐.”

진지의 입구로 다가가자, 엄격한 훈련을 받았는지 군기가 넘치는 병사들이 라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라트가 오른쪽에 끼고 있는 팔찌를 보여주자 급히 고개를 숙이더니, 병사 중 한 명이 라트를 진지 중에서 가장 큰 막사로 라트를 안내했다.

“왔는가?”

막사 안에 있는 사람은 역시나 루아타 공작이었다. 혹시나 엘리가 여기 있을까 싶었지만, 막사 안에 있는 건 공작 뿐이다.

“안녕하십니까, 공작님. 아니 총사령관님이라고 불러드릴까요?”

“마음대로 하게.”

이 군대를 통솔하고 있는 사람은 루아타 공작이다.

반으로 갈라진 다른 군대를 통솔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셀룬 왕국에서 유일하게 소드 마스터 경지에 오른 브로켄 백작이겠지. 한 쪽은 대마법사가, 다른 한 쪽은 소드 마스터가 자리하고 있다니.

‘상대 입장에선 끔찍하겠다.’

“앉게.”

시시한 감상평은 공작의 권유로 인하여 끝나고 말았다.

“모리아께서 자네를 전쟁 속으로 밀어 넣으셨나보군.”

“아니요. 제 의지로 왔습니다.”

전쟁에 참여하려고 하는 건, 모리아의 계시 때문이 아니다. 앞서 해야했던 일들은 전부 거짓으로 포장할 수 있었지만, 지금부터 해야할 일은 거짓으로 포장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라고? 그럼 어째서 전쟁에 참여하려고 왔는가.”

“스승님의 오래된 꿈을 이뤄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전쟁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수없이 많다. 전쟁을 빨리 종결시켜야 카르세이나 대륙에서 일어날 제국 반란 퀘스트에 초기부터 관여할 수 있다. 그리고 하이엘프를 만나기 위해서도 전쟁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한다.

그러나 그런 이유보다는 역시, 스승의 꿈을 이뤄주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 꿈을 떠올리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그런가.”

루아타 공작은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라트를 바라보았다.

“케이네양은 모르고 있지만, 자네는 알고 있지. 제스맹의 수명이 이 시간에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걸.”

공작의 말에 라트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표정을 보니 알고 있는 거 같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만 봐도 대답을 알 수 있었기에 공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자신이 입고 있는 갑옷을 바라보았다.

순수한 철에 적절한 불순물을 넣어서 단단하고 유연함을 유지하는 갑옷. 무려 제스맹 기느투스의 레시피로 만들어진 철로 만들어진 갑옷이다. 평범한 갑옷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어찌 갑옷뿐이랴. 무기 또한 평범한 대장장이의 손을 거친 무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손재주가 좋기로 유명한 드워프가 만든 무기와 견주어도 꿇리지 않을 정도다.

“무시 받지 않는, 강력한 연금술사. 좋은 울림이지 않은가.”

그런 무기를 거의 모든 병사가 장비하고 있다. 기사는 물론이오, 엘리트 병사는 귀족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철로 만든 갑옷을 지급받았다. 이 모든 것이 지난 2년 동안 한 사람의 연금술사의 손에서 이룩된 업적이다. 그리고 그 연금술사는 지금……

“내 무리한 부탁으로 친우가 죽음을 향해 내달리고 있네.”

과도한 무리로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과 마주하고 있지. 너무나도 슬픈 일이다. 그러나 공작은 그 슬픔을 내색하지 않았다. 반드시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와, 친우의 웃는 낯짝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친우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다. 그리고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겠지.”

속세에 초탈한 제스맹이 전쟁에 이리도 관여하게된 결정적인 이유. 그것은 바로 눈앞에 있는 청년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청년도 스승의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우리 둘의 목적은 서로 같다.”

한쪽은 무리한 부탁으로 친우의 죽음을 앞당겼다. 다른 한쪽은 자신의 꿈을 말하여 속세에 초탈한 스승이 다시 한 번 어리석은 꿈을 꾸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이 순간, 일개 평민과 공작의 목적은 일치한다.

“저는 선봉에 서고 싶습니다.”

“자네의 능력은 제스맹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네. 그러나 평민 신분으로는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기 어렵지.”

평민은 어디까지나 일개 병사의 신분으로 전쟁에 참여할 수 있다. 군에서 오래 머문 베테랑 병사나 백인장을 맡을 수 있지. 겨우 그 정도 신분이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케이네양에게 있는 제스맹 기느투스 후작의 대리패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네.”

그래서 넌지시 라트가 전쟁에서 활약할 수 있는 힌트를 넘겼다. 서로가 친우와 스승의 오래된 숙원을, 그 꿈을 이뤄주려고 하니까.

“케이네양은 연금술사들이 있는 막사에 있다네. 밖에 있는 병사에게 물어보면 쉽게 찾아갈 수 있을 거야.”

여기까지다. 제스맹이 후한 칭찬을 해주던 남자이니, 여기까지 말해도 무슨 뜻인지 알아먹겠지.

“회의는 오늘 밤이네.”

“감사합니다.”

역시나 공작의 뜻을 알아차렸는지, 라트는 그에게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후작의 대리로 전쟁에 참여할 수 있다면, 일개 병사 신분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공을 세울 수 있다.

“그리고 내 딸은 옆에 있는 막사에 있으니, 들어가서 위로를 좀 해주게나.”

“알겠습니다.”

엘리는 옆에 있는 막사에 있는 건가. 사저에게 가기 전, 먼저 엘리를 보고 가야겠다. 전쟁은 끔찍하다, 자국을 위해 싸운다는 핑계꺼리로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어찌 끔찍하지 않을까.

전선에 나서지 않는 케이네는 몰라도, 공작의 옆에 붙어있을 엘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모습에 상당한 마음고생에 시달리고 있겠지.

“혹시 엘리가 마법을 사용했습니까?”

공작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적을 죽이면, 그만큼 많은 아군이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전장이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공작이 어째서, 엘리를 위로해달라고 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라트는 공작의 막사에서 벗어나 엘리가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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