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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83화 (8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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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다음 날, 에스페가 수정구로 누군가에게 연락하자 잠시 후 꼬장꼬장한 노인이 문을 두드렸다.

‘저 영감이었어?’

마법사를 보자마자, 그가 누구인지 단 번에 깨달았다. 자존심이 강해서 마법사 길드에 들어가지 않고, 홀로 아크 메이지라는 칭호를 얻은 자. 그리고 자존심이 너무 높아, 마법의 신인 아르카나를 모욕하여 아르카나의 분노에 눈을 감은 자.

무려 죽음이 확정된 아크 메이지에게 빚을 지워두고 있었을 줄이야. 라트는 다시 한 번 에스페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에스페가 사정을 설명하자 노인은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을 짓더니 거기까지 텔레포트로 보내주려면 마나의 반절을 써야하느니, 어쩌니 하면서 불평을 쏟아냈다.

그러나 확실히 에스페에게 큰 빚을 졌는지 불평을 내뱉으면서도 안 한다는 말은 하지 않고 마법진을 그리기를 2시간.

“기왕 보내주는 거, 그냥 파르스까지 보내주마.”

외곽에 있는 성이나, 파르스나 어차피 마나의 소비가 큰 건 똑같았기에 선심을 쓰듯 파르스로 보내주겠다고 말한 노인은 마법진 위로 올라오라고 말하더니 리오스에게 수면 마법을 걸었다. 어린 아이는 장거리 텔레포트의 후유증을 견디기 힘들다고 말하면서.

그리고 노인이 주문을 읊기 시작했고, 주문이 끝나는 순간 머리가 찢기는 것 같은 어지러움이 라트를 덮쳤다.

확실히 리오스 같은 어린 아이가 견딜 수 없을 만도 했다. 자고 있지 않았더라면, 고통 때문에 구토를 했을 거다.

시야가 돌아오자, 그 앞에는 셀룬의 수도 파르스의 모습이 펼쳐져있었다.

“아, 말을 두고 왔다.”

약 반 년 만에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으로 귀환한 첫 마디치고는 뜬금없었다.

*****

“다녀왔습니다.”

“왔느냐.”

마차를 타고 연금술사 길드로 돌아온 라트는 짐을 푸는 것보다 스승에게 먼저 찾아갔다. 겨우 6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스승은 그 전보다 훨씬 수척한 모습으로 라트를 반겼다.

“사저는 스승님 안 도와주고 뭐해요?”

자신이 도와주지 않으니, 케이네라도 스승을 도와줘야한다는 이기심의 발로. 분명 그녀가 제스맹을 도와주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 라트는 자신도 모르게 투정을 부렸다.

“케이네는 전쟁 고문으로 갔다.”

“예?”

배틀 알케미스트가 아닌 평범한 연금술사가 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현장에서 포션을 만들고, 장비를 수리해주는 일 뿐이다. 그런 일이라면 다른 연금술사를 보내도 됐을 텐데.

“왜 굳이 사저가…….”

“케이네가 원한 일이다. 나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명성이 필요하다고 말하 구나.”

제스맹은 케이네를 대견하다는 듯, 그러나 반대로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옆에 계신 분들은.”

“에스페라니티타, 숲의 현자라고 불리는 몸일세. 위명 높은 유일한 대연금술사를 만나, 기쁘기 그지없군.”

먼저 입을 연 것은 에스페였다. 그녀는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그러나 로브를 벗지는 않았다. 혹시나 스승님께 인사를 드릴 때는 로브를 벗지 않을까, 조금 기대했었는데.

“차림새가 익숙하다싶더니 역시나 현자님이셨군. 제스맹 기느투스라고 하오.”

제스맹은 그녀의 정체를 듣자, 그녀가 로브를 입고 있는 것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숲의 현자가 저런 로브로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는 게 워낙 유명한 이야기이니까, 그럴 만도 하지.

“그런데 현자께서 이런 곳에는 어인 일로?”

“그대의 제자가 본량의 흥미를 이끌었다. 당분간 여기서 머물고 싶은데, 빈 방이 있나?”

“호오, 흥미를 이끌었더라.”

제스맹은 라트를 기특하다는 듯이 바라보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 건물에는 언제든 수련생을 받기 위해서 빈 방이 꽤 있는 편이니 별로 문제될 거리는 없다.

“리오스에요.”

리오스는 어젯밤, 에스페에게 존댓말을 배웠기에 제스맹에게 하대를 하지 않았다.

“머리 풀어도 돼, 리오스.”

“응? 진짜로?”

“어.”

스승은 믿을 만한 사람이다. 아니,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리오스는 라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귀를 가리고 있던 머리끈을 풀어버렸다.

“호오, 살아생전 엘프를 다시 만나는 날이 올 줄이야. 어떻게 만났느냐?”

라트는 스승에게 리오스와 만난 이야기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제스맹은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차면서 엘프 소녀를 바라보았다.

“저 어린 나이에 부족을 잃었다니.”

“이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이곳에서 보살피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라. 어디보자.”

라트를 따라온 두 여자가 길드에 머무르는 것을 흔쾌히 허락한 제스맹은 수정구를 이용해, 길드의 잡일으 도맡아 하고 있는 루샤를 불러서 두 사람이 머무를 방을 안내해달라고 말했다.

루샤와 에스페 그리고 리오스가 방에서 떠나자, 제스맹은 순수한 철을 연금하는 것을 멈추고 애틋한 눈으로 라트를 바라보았다.

“그래, 여행은 순탄했느냐?”

“별로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두 번째 조건을 발견한 것은 좋았지만, 석판이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그리고 신성 스탯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 그다지 순탄치 않은 여행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껄껄껄.”

라트의 볼멘 소리에 제스맹은 오랜만에 호탕하게 웃을 수 있었다.

“언제나 순탄한 여행만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지.”

거친 손이 라트의 손을 매만진다. 그것이 스승 나름의 애정 표현이라는 것을 알기에 라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떤 일을 겪었는지 말해줄 수 있느냐? 오랜만에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구나.”

제스맹의 요청에 라트를 고개를 끄덕였다. 흑마법사, 그리고 흑사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제외하고 리오스와 여행한 일과 에스페가 이곳까지 따라온 이유를 한참동안 설명하는 중, 제스맹은 무엇이 즐거운지 하염없이 웃고 있었다.

“꽤 많은 일을 겪었구나. 그래서 이제 무엇을 할 생각이더냐.”

“전쟁에 참여하려고 합니다.”

돌아오는 대답에 웃음이 그쳤다. 제자와 스승 사이에 정적이 찾아온다. 제스맹은 굳은 표정으로 라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라트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어, 그의 확고한 의지를 표방해줄 뿐이다.

“……불 좀 주겠느냐?”

“예.”

제스맹이 담배를 입에 물자, 라트는 황급히 인벤토리에서 성냥을 꺼내, 스승이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제스맹은 한동안 담배를 태우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허공을 응시했다.

“제자 두 명 모두 전쟁의 업화에 제 발로 들어가려고 하다니.”

안타까움, 한탄, 그리고 불안함을 내포한 말은 그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았다. 제스맹 본인을 향한 말이었으니까.

“케이네야 후방에서 안전한 보호를 받고 있다지만, 너는 전방에 나설 생각이겠지?”

라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입을 열어서는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쟁만큼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을 알 수 있는 수단은 드물지만. 반대로 그만큼 위험한 곳이다, 라트.”

“알고 있습니다.”

“후우.”

알고 있음에도 굳이 가겠다는 건가. 차라리 혼자서 여행을 다닌다면, 이렇게까지 걱정을 하지는 않을 것인데. 라트가 전쟁에 나선다면, 케이네와 달리 필히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게 될 터다.

그것이 싫었다. 자신의 제자가 전쟁에 고통 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제자의 뜻은 너무나도 올곧아서, 자신이 뭐라고 한들 꺾이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잠시, 기다려보아라.”

그렇다면 그를 위해서 다리를 놓아주는 수밖에. 달리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판단한 제스맹은 책상에서 또 다른 수정구를 꺼내들었다.

그것이 굉장히 멀리 있는 상대와도 연락할 수 있는 수정구라는 것을 파악한 라트는 스승이 누구에게 연락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루아타 공작이겠지?’

-자네가 나한테 먼저 연락을 하는 날이 올 줄이야. 무슨 일인가?-

예상대로 수정구에서 루아타 공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트가 당장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징병에 응하거나 혹은, 친분이 있는 귀족의 힘을 빌리는 것뿐이다.

“내 두 번째 제자가 돌아왔다네, 로이.”

-뭐?-

뜬금없이 연락한 친우의 입에서, 뜬금없는 말을 들은 루아타 후작은 말을 잇지 못했다. 제자가 돌아왔으면 해후나 즐길 것이지, 어째서 자신에게 연락을 했는가.

“그리고 전쟁에 참가하고 싶다고 하는 군.”

-그런가.-

제스맹의 목소리에 착잡함이 깃든 것을 파악한 루아타 공작은 마찬가지로 착잡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이유라면, 자신에게 연락을 할 만도 했다.

-아버님 지금 기느투스 후작님이 뭐라고…….-

‘엘리?’

수정구에서 엘리의 목소리가 들리자, 잠시 심장이 뛰었다. 그러나 두근거림은 곧바로 멈추고 의문이 찾아온다.

어째서 엘리가 전쟁터에 있는 거지? 암살의 위험에 처했던 딸을 어째서 전쟁터로 데려간 거야? 루아타 공작의 성격 상, 딸을 항상 위험이 도사리는 전쟁터에 데려갈 리가 없는데.

-네가 들은 게 맞다. 실력도 신분도 보증되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지. 즉시 사람을 보내겠네, 제스맹.-

“아니, 즉시는 말고. 이보게, 로이! 에잉, 이놈은 참을성이 없어. 쯧쯧.”

하룻밤 정도는 집에서 자게하려고 했는데, 루아타 공작이 할 말을 마치고 연락을 끊어버리자, 제스맹은 그의 행태에 불만을 표하며 수정구를 다시 책상에 넣어버렸다.

“여독을 풀 세도 없이 다시 떠나게 생겼구나.”

“저야 시간을 아낄 수 있으니 좋죠.”

“……애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초조해하지마라.”

라트가 본디, 무언가에 쫓기는 듯이 시간에 집착하고 있음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행동은 굉장히 초조해보였다.

분명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 제스맹은 자신의 인생에서 우러러 나오는 조언을 건넨다.

“초조함은 경각심을 일깨우는 좋은 감정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초조함에 잡아먹힐 수도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 아이와 현자는 내가 잘 보살피고 있으마.”

명심은 무슨, 초조함을 전혀 버리지 못하는 라트의 모습에 제스맹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이 젊은 혈기에게만 허락된 것임을 알기에 제스맹은 제자를 꾸중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속으로 애니그마의 축복이 제자에게 깃들기를 빌며, 조금 있으면 떠날 라트를 안심시켜주었다.

“아, 그리고. 이건 여행에서 돌아온 제자를 위한 선물이다.”

제스맹이 내민 것은 세 병의 포션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포션이 아니라 엘릭서였다. 지난 6개월 간 제자가 돌아오면 주려고 만들어놨던 것이 분명하다.

이 한 병의 값어치는 얼마인가. 이 한 병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야하는가. 그런데 그 포션을 이번에도 선뜻 자신에게 주는 제스맹의 모습에 무언가, 벅차올라서, 그래서.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어, 멍하니 스승을 바라본다.

“한 병은 내가, 다른 한 병은 케이네가, 그리고 다른 한 병은 네가 만들던 걸 내가 완성시켰다. 어서 받아라.”

라트나 케이네야 6개월동안 엘릭서를 한 개 이상 만들 수 없지만, 제스맹의 연금술 실력이라면 두 개는 물론이오, 4~5개의 엘릭서를 한 번에 제조할 수 있을 거다.

그래, 바쁘지만 않으면 말이지. 케이네도 없는 지금, 스승은 말 그대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를 정도로 바쁠 터다. 엘릭서를 만들 시간이 남아돌았을 리가 없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 제자를 위해 짬을 내서 엘릭서를 제조한 스승의 노력에 감격스러워, 몸을 떨면서 엘릭서가 담긴 병을 받았다.

============================ 작품 후기 ============================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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