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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에스페에게 동굴로 가는 자세한 설명을 들은 라트는 달빛이 머무르고 있는 산길을 걸었다.
왠지 조금 불안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현자의 말에 따르면 동굴에는 그림자 꽃을 제외하면 살아있는 건 산짐승 밖에 없다고 했으니까. 괜한 기우겠지.
한 20분 정도 걸었을까? 에스페가 말한 동굴의 입구에 도착한 라트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적막한 어둠이 깔린 그 장소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는 건 그다지, 불안하지 않다. 그런데 그 벌어질 상황이 불길하게 느껴진다. 날카로운 직감이 경고를 알린다. 이 동굴 안으로 들어 가야한다, 그러나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어쩌라는 거야.’
직감이 이렇게 양극화된 느낌을 준 적이 없었기에 라트는 침음을 삼켰다.
그러나 그림자 꽃은 밤 꺾어야만 그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었고, 그 석판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으니까. 라트는 결국 동굴에 들어가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걸음을 옮긴다.
‘어디보자.’
연금술로 만든 랜턴이나, 위급한 상황에서 사용할 횃불은 구비해두었기에 그걸 꺼내려고 했지만, 그림자 꽃은 빛이 스며드는 순간 그 효과가 바란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어쩔 수 없지.’
결국 빛에 의지하지 못한 채, 시커먼 어둠에 몸을 맡긴다.
막상 동굴 안에 들어서자, 불길함을 알려왔던 직감이 사그라졌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불길한 직감이 들었던 걸까?
‘인기척은 안 느껴지는데.’
생각보다 깊은 동굴이었고 안쪽에 뼈다귀 몇 개가 굴러다니고 있었지만,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나 야생동물이 있을 수도 있어서 대비하려고 했지만, 안에 그 무엇도 없다면야, 대비를 할 이유도 없다.
그림자 꽃은 보통 낮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걸음을 더욱 빨리하여, 동굴의 끝으로 향한다.
“찾았다.”
생각보다 간단하게 그림자 꽃이 만연한 장소를 찾은 라트는 그림자 꽃 한 송이를 꺾어서 인벤토리에 넣은 후, 그러다가 기왕이면 많이 가져가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 송이를 더 꺾었을 때, 잠잠해졌던 불길함이 송곳처럼, 라트의 심장을 찔렀다.
‘뭐야!’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가슴이 답답해, 억눌러져서 찌그러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직감이 불길함을 알려오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숨이 막힐 정도로, 이런 압박감을 느낄 정도로 불안을 알려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발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라트의 귓가에 속삭인다. 누군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두근거린다. 이런 감각, 처음 느껴봐. 답답한 마음에 당장이라도 숨을 크게 들이쉬고 싶었으나, 혹시나 자신의 숨소리가 저쪽에게 들릴까봐 그럴 수 없었다.
싸울까? 대검을 꺼내려고 했던 라트는 이내 장소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이런 좁은 동굴에서 대검을 사용하는 건 자살 행위다.
게다가 상대방은 혼자가 아니다. 메아리가 점점 크게 들려올수록, 발소리의 주인공이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라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숨을 곳을 찾는 것인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숨을 곳은 없다. 일직선으로 이어진 조금 깊고, 좁은 동굴에서 숨기 마땅한 장소가 있을 리가 없지. 숨을 장소도 없다, 그렇다고 싸우자니 불리한 장소, 게다가 직감이 싸우면 안 된다고 알려온다.
그리고 도망쳐서도 안 된다고 알린다. 그냥 도망치면 그만임에도, 이곳에 숨어있으라고 머릿속을 흔든다.
‘도대체 왜 이래.’
라트는 이중적인 경고를 보내오는 직감에 짜증을 내면서 벽을 바라보았다. 결국 이곳에 숨어있어야 한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동굴의 벽에 손을 대고, 혹여나 자신의 목소리가 울릴 것을 주의하며 아주 조용히 주문을 읊는다.
“만연하라.”
동굴의 벽, 자연적으로 돌로 만들어진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해서, 돌이 자신을 감싸게끔 환상을 조종한다. 소리가 들리면 안 돼, 아주 조금씩, 천천히. 소란이 일어나지 않게끔.
미니게임을 끝내자, 라트가 바라는 대로 돌이 천천히 늘어나서, 라트를 감싼다. 그 속도는 느리기 짝에 없었으나, 속도가 느린 만큼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다.
‘빨리, 빨리!’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라트는 아직도 자신을 완전히 가리지 못하고 움직이는 돌을 식은땀을 흘리며 바라보았다. 돌이 천천히 모습을 변하게 하는 건 옳았으나, 이 속도라면 저들이 도착하는 순간에도 바위는 움직이고 있을 거다.
‘제발 빨리 좀 돼라!’
입술을 깨물면서 신경질적으로 바위를 노려본다. 이제 와서 다시 무색의 연금술을 써서 바위가 변하는 속도를 빠르게 했다가, 봉변이라도 일어나면 큰일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신을 감싸고 있는 바위를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늦었어.’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마음이 타들어간다. 늦었다, 발소리의 주인들은 바위가 완전히 라트를 감싸기 전에 이곳에 도착할 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도망칠까?
“아! 여기 뼈다귀가 있어.”
진지하게 무색의 연금술을 이용해서 길을 뚫어서 도망칠까 생각한 순간 소름끼치게 밝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발걸음 소리가 멎어들었다.
“동물의 뼈다귀다.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 산짐승이 여기 있었던 모양이야.”
이어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임무 중이다, 시리아. 제발 정신 좀 차려라.”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쪽으로 오고 있는 자들은 총 세 명인가? 그나저나 시리아, 왠지 익숙한 이름이다.
‘설마 그 년인가?’
라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겠지, 그 쌍년이 노르스 대륙에 왔을 리가 없다.
“아니! 뼈다귀를 발견해서 말한 게 왜 정신을 차리라는 결론까지 도달하는 거야?”
“평소 네 행실을 생각해봐라.”
“지금을 흉보는 건 좋지만, 과거를 흉보는 건 소심한 남자나 하는 짓이라는 거 알아?”
“나는 소심한 남자니, 그리해도 괜찮다는 뜻이군.”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이 없잖아.”
“둘 다, 빨리 오기나 해라.”
여자와 남자의 다툼을 중재한 남자는 다시금 동굴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정말 다행이도 그들이 발걸음을 멈춘 사이 바위는 라트의 시야를 완전히 가로막고, 움직임을 멈췄다.
‘행운 재능 10의 위력인가.’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킨 라트는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식은땀을 훔치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바위벽에 귀를 대었다. 점점 가까워지던 발걸음 소리가 바로 옆까지 들리는 순간.
“도망쳤나? 나침번을 다시 사용할 수 있나, 페르시?”
걸음 소리가 사라졌고, 다시금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와 남자의 다툼을 중재한 남자의 목소리다.
‘잠깐만, 페르시?’
시리아라는 이름에 이어, 페르시라는 이름까지, 굉장히 익숙한 이름에 라트는 침을 삼켰다. 설마, 설마 그들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카르세이나 대륙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어야할 사제새끼들이 노르스 대륙에 올 리가 없잖아.’
시리아, 그리고 페르시. 악신을 모시는 사제들이자, 셰크티 제국 반란의 흑막 집단에 속한 NPC 중에서도 네임드 NPC의 이름이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지는 카르세이나 대륙, 그들이 노르스 대륙에 올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저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동명이인이 같은 장소에 두 명이나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한 달에 두 번 이상 사용하면 망가지는 걸 알면서 그리 묻나? 참고로 여분의 나침반은 없네.”
“곤란하군.”
“시리아, 너의 권능은?”
‘진짜다.’
권능이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라트는 눈을 감았다. 그들은 진짜 악신을 모시는 사제다. 권능이라함은 극소수의 종족만이 배울 수 있는 종족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시리아라고 불린 여성의 정체는 바로 흡혈귀, 흡혈귀의 권능 중 하나는 바로 피의 기운을 느끼는 것이다. 그 어디에 숨어있다고 해도 피를 감지하는 권능을 익힌 흡혈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완전히 허탕. 헤톤, 내가 장담하는데 그 새끼가 아니야.”
“뭐?”
시리아는 불만스러운 목소리에 헤톤이라고 불린 남자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 되묻는다.
“나침반에 반응한 놈이 그 새끼가 아니라고.”
“그게 무슨 뜻이지.”
이번에는 페르시가 나서서 정확한 뜻을 묻자, 시리아는 상세한 설명을 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쥐새끼 한 마리가 숨어있기는 한데, 회색 놈의 피 냄새가 아니야.”
쥐새끼 한 마리는 당연히 라트를 뜻하는 것일 터다. 이미 시리아의 권능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에, 라트는 자신이 숨어있는 것을 들켰음에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러나 두려움은 산재한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레벨로는 저들을 이길 수 없다. 저들 중 한 명만 있어도 이길 수 있을까 의문인데, 3명이 붙어있는 이상 승산은 없다.
저들이 자신을 노린다면, 나는 이곳에서 살아 돌아갈 가능성이 없다. 처음부터 무색의 연금술로 길을 뚫고 도망쳤다고 해도, 저들에게 따라잡혔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는 건…….”
“회색의 연금술사가 다시금 노르스 대륙으로 숨었다는 정보가 허위였다는 건가. 하아.”
‘악신의 사제가 왜 회색의 연금술사를 찾지?’
이건 또 새로운 정보다. 그들이 사람을 찾는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회색의 연금술사를 찾는 건가. 그리고 나침반이라니?
저들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라트가 알지 못하는 정보가 들어온다.
“아무래도 무색의 연금술을 익힌 새로운 연금술사가 등장한 거 같군. 처리할까.”
처리한다는 말에, 위협은 담겨있지 않다. 그저 여기 있으니까 처리한다,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뿐. 그러나 겨우 그런 말에도 라트는 거세게 뛰는 심장을 억누를 수 없었다.
초기화 패널티, 한 번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잖아.
“회색 놈이 아니면 그다지 신경 쓸 필요 없잖아. 그걸 익혀봐야 어떻게 써먹는다고.”
페르시가 미처 행동을 하기 전에 시리아가 그를 말렸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리고 페르시, 이 근처에는 그녀가 있다.”
“아. 그렇군.”
‘저 쌍년이 웬일로 사람을 죽이는 걸 마다하지?’
정말로 의외의 일이다. 라트가 알고 있는 시리아는 사람을 살려두는 성격은 아닌데. 일단 살았다는 생각이 더 강했기에 아주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 새끼 찾겠다고 반란 계획도 미뤄두고 다들 노르스 대륙으로 온 건데. 하필 이럴 때 전쟁이 터질 게 뭐람. 우리 카르세이나로 돌아갈 수나 있어?”
미친, 뭐? 악신의 사제가 전부 노르스 대륙으로 왔다고? 그렇다면 지금 카르세이나 대륙은 메인 퀘스트인 제국 반란이 시작되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원인이 무색의 연금술을 익힌 자신 때문이라고. 도대체 플래그가 어떻게 꼬여가고 있는 거야.
“포탈은 무리다. 아무래도 모두와 연락을 한 후, 배편을 알아봐야할 거 같다.”
“아~ 배는 싫은데……. 그냥 화풀이로 죽이고 갈까?”
순간, 핏빛의 살기가 라트를 억죄인다. 살기라는 무형의 기운에 색이 입혀질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살기는 선명한 붉은색을 띄고 있었다.
“그만하고 돌아가자, 시리아. 일이 바쁘다.”
“응? 왜? 숨어있는 쥐새끼 좀 처리하고 가고 싶은데.”
조금 전 페르시가 라트를 죽이려고 한 것을 막은 게 시리아였다면, 이번에 라트를 죽이려고 하는 시리아를 막아선 것은 페르시였다.
“여긴 그녀가 있는 곳과 가까운 장소다. 우리도 나름 위험을 감수하고 여기까지 왔다는 걸 명심해라. 괜한 소란을 일으키면 곤란해.”
“음? 아하! 맞다, 여기 마지막 남은 여왕님이 계시는 곳이었지?”
“페르시의 말이 맞다. 그 여자를 건드리면 우리도 곤란한 건 확실해. 돌아가자.”
“으으. 오랜만에 싱싱한 피 맛 좀 보나 싶었는데.”
시리아는 짐짓 안타까운 듯, 라트가 몸을 가리고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분명 바위로 가로막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녀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라트는 몸을 움츠렸고.
“운 좋은 줄 알아, 쥐새끼씨.”
비웃음을 한 번 흘린 흡혈귀는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동굴 밖을 향해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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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거의 다 써가던 글을 날려 먹어서, 다시 쓴다고 고생을 좀 했습니다...으으..빌어먹을 컴퓨터..하긴 5년이나 썼으면 이제 슬슬 보내줘야 하는 건가..
이번 화는 주인공이 레벨에 비해 강력하고 이제 게임 초반부임에도 엄청나게 강력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경각심을 주기 위한 화였습니다.
그나저나 독자님들 중에서 훌륭한 페도가 많은시네요. 그래서 리오스는 이터널 로리로 할까, 진지하게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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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Panial님 100장, 소설에미쵸님 10장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날린 글도 대충 복구했으니, 글쟁이는...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