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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80화 (8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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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주방에 있는 화롯불에 책을 던졌다. 불에 휩싸여, 조금씩 타들어가는 책의 모습을 관망한다. 책이 반 정도 타들어가, 더 이상 형체를 복원할 수 없는 지경에 달했을 쯤 에스페가 주방으로 들어왔다.

“책을 태운다는 건, 그 책을 완벽히 이해했다는 자신인가?”

“뭐, 그렇지.”

숲의 현자는 완벽한 중립 NPC다. 라트가 압도적인 재능을 뽐냈다고 해도, 그것을 악의적으로 이용할 NPC는 아니었다.

“무시무시하군.”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에 라트는 입을 다물었다. 게임 시스템의 보정을 재능이라고 친다면 라트의 재능은 그야말로 경외할만한 수준이다.

대연금술사, 재스멩 기느투스조차도 무색의 연금술을 한 번 사용하고 나서 느끼는 피로 때문에 수없이 많은 땀을 흘렸는데 청년는 그저, 간단한 미니 게임으로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은가.

“자네, 인간이 맞긴 한가?”

“인간이 아니면 뭔데.”

“폴리모프를 사용한 드래곤이라고 생각중일세.”

정말 우습게도 이번에는 반대로 에스페 쪽에서 라트가 인간이 아닌, 드래곤이 아닐까 의심을 했다. 아까 전과는 반대된 상황에 남자는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 맞아.”

내가 드래곤이면, 얼마나 편할까. 모든 메인 퀘스트를 너무나도 손쉽게 끝낼 수 있을 거다.

아니지, 드래곤이었다면 진 엔딩을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얻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냥 꿈같은 소리다. 드래곤은 유저가 고를 수 없는 종족 중 하나니까.

“진심인가? 그렇다면 나의 심장을 걸고 맹세한다고 말해보게.”

철두철미한 에스페의 행동에 라트는 휘파람을 불었다. 용의 맹세는 스스로를 억압할 정도로 강대하다.

더욱이 용의 심장. 드래곤 하트라고 불리는 드래곤이 태어날 때부터 약속받은 무한한 마력의 원동력이자, 그들의 힘의 원천을 걸고 하는 맹세라면 용에게도 치명적이다.

“내 심장을 걸고 맹세하지. 난 인간이야.”

그러나 맹세라는 건 어디까지나 용이나, 혹은 그와 동급인 고귀한 종족에게나 해당되는 사항일 뿐. 다른 종족은 맹세를 여겨도 문제는 없다.

오히려 거짓말을 권장하는 신이 있을 정도니까, 할 말 다했지.

“정말로 인간이었군. 하하하하.”

라트가 별다른 망설임 없이 심장을 대고 맹세하자, 그리고 그 즉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현자는 힘없이 웃으면서 의자에 주저앉았다.

“자네의 재능이 두렵군. 그대가 마법사였다면, 드래곤의 경지에 올랐을지도 모르겠어.”

“안타깝게도 마법에는 재능이 없어.”

“그렇겠지. 마법에 재능이 있다면, 본량이라고 해도 연금술보다는 마법을 배웠을 테니까.”

옳은 말이다. 유저들은 물론이오, 이 세계에서도 연금술의 인식은 너무 박하다.

같은 생산직이라도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대장장이와 세공사에 비해, 연금술사는 마법사나 사제와 같이 마력을 사용하면서도 그들이 다루는 이적을 흉내낼 수조차 없으니까.

“무색의 연금술이라는 걸 몰랐다면 말일세. 아니 무색의 연금술을 알았다고해도 분명 마법을 배웠을 거야.”

이것 또한 옳은 말이었다. 무색의 연금술이라면 연금술사도 마법사나 사제와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무색의 연금술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연금술이었고, 더욱이 아티펙트가 없는 이상 사용하기 까다로운 연금술이기도 했다.

“그대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런데 눈앞의 남자는 어떤가. 겨우 30분 만에 무색의 연금술의 이론을 간파하고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다. 이 남자라면 연금술사의 인식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칭찬이지? 고마워.”

“그대는 그대가 보여준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 모양이군. 다른 이들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말게나. 동경을 넘어서서, 시기심에 미칠 터이니.”

“그건 알고 있어.”

길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케이네와 달리, 라트는 길드에 있는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했다. 라트의 사회성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제스맹이 의도적으로 길드에 있는 수련생, 그리고 프로보스트와 라트를 떨어트려놓았다. 그들이 라트의 재능을 보는 순간 느낄 감정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심성이 착하고, 뼛속까지 연금술사의 기질을 보이는 케이네조차도 라트를 동생으로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재능에 질투를 내비췄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그 정도로 압도적 아니, 절망적이라고 해도 좋을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알고있는데도 숨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너는 연금술사가 아니니까.”

“본량이 연금술사가 아님은 확실하지만, 본량조차도 이론을 이해하는데 몇 주의 시간이 걸린 책을 단 번에 이해한 그대의 재능에 악의적인 소문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아니, 넌 그렇게 못해.”

책이 완전히 타들어, 완연한 재가루가 되어 화롯불 사이에서 춤추고 있는 것을 확인한 라트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서 의자에 앉아있는 에스페를 바라보았다.

“인간은 시기심의 동물일세. 역사가 그걸 증명해왔지. 그런데 어떻게 그걸 장담할 수 있지?”

“너는 내가 리오스를 데리고 있는 것을, 지금까지 보호해준 걸 빚이라고 생각하니까.”

정곡을 찔렸다는 듯, 현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지긋이 청년을 바라보았다. 깊은 백색 눈동자, 초록색 머리카락, 까무잡잡한 피부, 조금 새하얀 입술.

보기 드문 눈을 가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평범하게 생겼음에도 왠지,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왜,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본량과 저 소녀는 아무런 관계도 없네.”

태연하기 그지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자신의 모든 것이 간파하고 있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인간은 시기심의 동물이지. 가진 바 수명이 짧고, 빠르게 늙어가기 때문에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릴 수밖에 없는 자들이야.”

인간은 이성과 지성을 갖추고 있는 종족들 중 가장 짧은 수명을 가지고 있다. 백 년은 기본으로 살아가는 다른 종족과 달리 서민들의 평균 수명은 기껏해야 50, 귀족이라고 해도 70~80은 될까?

그렇기에 다른 종족에게 시기심을 느끼고 평화롭게 지내던 자들과 전쟁을 벌여, 죽이고, 찢고, 범해서. 그들을 외지로 쫒아내 버리지 않았던가.

“그러나 다른 종족은 틀리지.”

인간에 의해 피해를 입었음에도 이종족들은 복수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서 떠났다.

다른 종족들은 인간과 달리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인간을 적대함에도 그들과 전쟁을 벌일 정도로, 한순간의 감정에 몸을 맡겨 상황을 대국적으로 판단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 않으니까.

“그렇지? 영원한 희망.”

라트는 평범하게 웃었지만, 에스페에게 그 미소는 너무나도 소름끼치게 보였다. 자신의 이름이 엘프어로 만들어진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저런 확신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 그것보다 겨우 성인이 된 얼굴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도대체 엘프어를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가.

엘프가 인간에게 삶의 터전을 잃고, 그들과의 교류를 완전히 끊은 지 어연 500년. 인간의 영토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깊숙한 숲에 숨어사는 엘프들을 제외하면 모든 엘프는 주인 없는 산맥에서 살아가는 중이다.

그렇기에 엘프의 언어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인간들 사이에서 잊혀 졌는데, 이 남자는 어떻게?

“그대, 사실 드래곤이지? 하트를 포기할 정도로 유희를 즐기고 있는 그런 정신 나간 드래곤인게지? 제발 그렇다고 해주게나.”

“안타깝게도, 사람이야.”

그래 정말 안타깝게도 나는 사람이다. 마법에 재능이 없는 연금술사이자, 아직 오러와 마나를 동시에 다룰 수 없는 인간. 라트의 단언에 에스페는 의자에 얼굴을 파묻었다.

잠시 후, 조금 진정이 된 것인지 에스페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래, 그대가 드래곤이었다면 본량을 찾아올 이유도 없겠군.”

라트가 드래곤이었다면, 질문을 하기 위해서 이런 산속까지 찾아올 이유가 없다. 아무리 현자의 지식이 뛰어나다고 해도,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드래곤보다 지혜로울 리가 없으니까.

“정말로 인간이라니. 본량의 상식이 완전히 박살난 기분이다.”

에스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방에서 나가려다가 라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 따라오고 뭐하나. 이제 그대가 본량에게 질문을 할 차례다.”

라트는 얌전히 에스페를 따라 주방에서 빠져나왔다. 거실 겸 침실에서는 리오스가 우유를 전부 마시고 남은 과자 부스러기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배가 고픈 모양이구나, 아이야. 그러나 과자는 어디까지나 간식, 끼니를 때우기 위한 먹을거리가 아니다.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프다고 말하여라.”

“이걸로 식사하면 안 되는 거예요? 엄청 맛있는데.”

“맛은 있으나, 영양은 부족하기 그지없다. 오늘은 이미 배가 부른 것처럼 보이니, 식사를 하라고 할 수는 없겠구나. 앞으로 주의하여라.”

“네에.”

조금 시무룩하게 대답하는 리오스가 매우 귀여워서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통통한 뺨을 만져주고 싶었지만, 현자의 분위기가 너무 진지했기에 그저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만 했다.“

“그대는 어찌하겠는가. 본량은 입맛이 없다.”

“나도 딱히.”

우연찮게, 기대치도 않은 곳에서 무색의 연금술의 새로운 속성을 배울 수 있었기에 식사를 하지 않아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집주인이 배가 고프지 않다는데, 혼자서 식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도 했기에 정말로 배가 고프면 인벤토리에 들어있는 빵이라도 뜯어먹을 생각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렇다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그대가 본량을 찾아온 이유, 본량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혹시 이런 석판을 본 적 있어?”

드디어 이곳에 온 본론을 말하기 위해, 라트는 인벤토리에서 석판 조각을 꺼내서 현자에게 보여주었다.

“악신, 트로모스의 석판이지 않은가. 이것은…… 음? 잠깐만. 그 석판과는 양식이 조금 틀린데. 이걸 어디서 발견했는가?”

석판 조각을 본 현자의 눈이 시시각각으로 달라진다. 처음에는 당연히 악신의 석판이라고 생각하고 설명을 하려고 했던 현자는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석판 조각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흑마법사들이 숨어있는 곳에서 발견했어.”

“흑마법사가 이런 걸 가지고 있었다고?”

자세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라트에게서 석판 조각을 빼앗아든 현자는 책상에 앉아서 돋보기로 석판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이 석판에서는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데. 게다가 이 문자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악신과 관련이 된 문자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석판에 새겨진 문자가 너무 흐릿해서, 자세히 알아볼 수는 없지만.

“이걸 발견하고 내 몸에 신성한 기운이 감돌았어. 지금도 그런 느낌이 들고. 혹시 아는 게 있으면 말해줘.”

NPC에게 신성 스탯이 생겼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조금 돌려서 말했다. 이렇게 말한다면 현자인 에스페는 알아먹을 수 있을 것이다.

“……잠시만 기다려다오.”

석판, 그리고 신성함이라. 그렇다면 이것이 악신과 관련된 물건이 아님은 확실하다고 여긴 에스페는 급히 천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참이나 천장을 뒤졌음에도 원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인상을 찌푸린다.

“하필 이럴 때 전부 떨어졌는가.”

아무래도 찾고 있는 무언가를, 전부 사용해버린 모양이다.

“그대여, 미안하지만 지금 당장 이쪽 방향으로 쭉 올라가면 보이는 동굴에 있는 그림자 꽃을 따올 수 있겠는가? 이 문자를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확실히 구분하기가 힘드네.”

그림자 꽃이라. 갑작스러운 부탁에 에스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림자 꽃으로 시약을 만들면 과거의 그림자를 불러올 수 있다.

그 시약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문자를 확인해볼 생각인가.

“지금 시간이라면 그림자 꽃이 폈을 시간이기도 하고, 부탁하겠네.”

“동굴이 어디있는지 자세히 알려줘.”

낮에는 그림자의 꽃은 피지 않는다. 그림자 꽃은 오로지 밤에만 피어나고, 피어날 때 채집해야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한다. 이 석판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다면 진 엔딩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일이라서, 라트는 괘념치 않고 그림자 꽃을 따오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약 10분 정도 후에 다음 편이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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