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77화 (77/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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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이 일은 우선 나와 자네만 알고 있는 게 좋겠군.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글란츠 백작이 말을 삼켰지만, 이어질 뒷말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이 일이 다른 이들에게 알려진다면 전쟁이 끝나고 만다. 수백 년 동안 이어지던 태평성대의 시절이 지나고 마침내 도래한 전쟁.

    그 전쟁의 한복판에서 비옥한 국토를 얻는 걸 발판으로 삼아 왕국의 성장에 박차를 가하려던 사라이 왕국 입장 상, 전쟁이 갑자기 종결되면 상당한 치명타겠지.

    역시, 백작님이라고 할까. 상황 판단이 빠르다. 흑마법사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다.

    그 전까지 린느탐보프 왕국을 점령하고 핀스크 왕국과 전쟁을 벌이면 된다는 계산을 끝낸 모양이다. 그 백작님이니까, 핀스크 왕국을 그냥 내버려두지도 않을 거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후우.”

    한숨을 내쉰 백작은 눈을 가늘게 뜨고 라트를 주시한다. 그가 하는 말에는 일말의 거짓도 없었다. 적어도 백작 본인은 그렇게 느꼈다. 적어도 흑마법사들과 관련된 이야기는 모두 진실이었다.

    “자네의 말 사이에는 거짓말이 섞여있어서 석연치 않지만, 흑마법사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다는 게 내 판단이네.”

    그렇기에 조금의 거짓이 섞여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음에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거짓말을 하는 부분도 모리아의 계시와 연관 짓는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가 모리아의 계시를 정말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신이 나가지 않은 이상 모리아의 이름을 팔아먹을 놈은 없다. 그리고 눈앞의 청년은 지극히 정상으로 보였다.

    ‘역시 알아차렸나.’

    보기 좋게 속였다고 생각했으나, 역시나 거짓말이나 사기와 관련된 기능이 없어서, 백작같이 감이 좋은 사람을 속일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거짓은 진실 사이에 숨겼고, 백작도 거짓을 진실로 받아드리겠다고 납득했으니까. 딱히 할 말은 없다. 그저 백작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면 그만이다.

    “그럼 마지막 주제로 넘어가도록 하지. 물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아, 맞다. 최초 백작과 만나게 된 이유는 물 때문이었지. 이야기의 주제가 산으로 가는 바람에 잊고 있었다. 라트는 쓰게 웃으면서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대략 200리터짜리 드럼통 10개. 한 사람이 최소 하루에 물 0.5리터 정도를 마셔야한다고 계산하면 4천 명은 능히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그러나 현재 에르모스에 찾아온 군인의 숫자는 약 1만. 그들이 먹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양이다.

    “이런 나무통으로 10개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적당한 곳에 나무로 만들어진 드럼통을 꺼냈다.

    “호오. 그 정도라면 내일까지는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아도 되겠군.”

    네? 아니 도대체 하루에 물을 얼마나 적게 드시기에 내일까지 버틸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하세요? 사막이 30% 영토를 차지하는 나라라 물을 적게 마시는 훈련이라도 하는 건가?

    “전부 사겠네. 여식의 얼굴을 봐서, 값은 정가로 지불하겠네.”

    미친, 라트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으로 욕을 내뱉을 뻔한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군대에 물을 팔려고 했던 이유는 값을 조금 적게 받더라도 이 물을 전부 처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가로 지불하겠다니. 사막에서 물은 생명수다. 1리터에 10실버라는, 평민은 쉽게 사지 못하는 가격을 자랑한다. 그런데 2000리터나 있는 물을 정가로 사겠다니.

    ‘200골드.’

    그냥 강에 있는 물을 떠왔을 뿐인데, 순식간에 자신이 3년 동안 귀환 스크롤과 희귀한 연금술 재료를 구입하면서 까먹었던 돈이 복구되었으니, 조금 양심이 찔린다.

    “표정이 좋지 않은데. 불만이 있나?”

    “아니요, 절대 아닙니다.”

    불만이 있을 리가 있나. 백작이 일부러 상대에게 이득이 되는 거래 조건을 달아주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불만이 있는 놈은 또라이지.

    “우선 가지고 있는 물을 전부 보여주게. 상태를 좀 봐야겠어.”

    당연한 말씀이다. 라트는 곧바로 인벤토리에 있는 드럼통을 모두 꺼냈다.

    그러자 백작은 드럼통이 있는 곳까지 다가가서, 뚜껑을 열어보았다. 드럼통 10개에 담겨있는 물 모두, 조금 전 오아시스에서 떠왔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맑기 그지없다.

    “상태가 좋군. 이 정도라면 리터 당 15실버까지 쳐줘야겠는데.”

    “10실버면 충분합니다.”

    리터 당 10실버 이상은 제가 죄송스러워서 도저히 못 뜯어먹겠어요.

    그리고 여기서 돈을 더 받아먹으면, 부탁을 할 수도 없다. 백작에게 한 가지 더 부탁할 것이 남아있기에 라트는 손 사례를 치며 돈을 더 주겠다는 백작의 말을 사양했다.

    “거절할 것 없네. 이 정도 품질이라면 당연히 15실버는 줘야 수지에 맞지 않나.”

    “다시 말씀드리지만, 10실버면 됩니다. 대신 부탁이 하나 더 있습니다.”

    “100골드 짜리 부탁이 있다고?”

    100골드 짜리 부탁이라, 100골드 짜리라면 100골드 값어치를 가진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100골드보다 훨씬 값어치 있는 부탁이다.

    백작이 말해보라는 듯 턱짓을 하자, 라트는 입을 열었다.

    “제가 급히 가야할 곳이 있어서, 포탈을 이용하고 싶습니다.”

    “그대의 신분을 보증해달라는 소리군.”

    “그렇습니다.”

    백작이라면 도시 봉쇄령이 내려졌다고 해도, 라트와 리오스를 충분히 다른 도시로 보낼 수 있는 권한이 있을 거다.

    여기서 이룰 수 있는 목적은 모두 이뤘으니, 최대한 빨리 숲의 현자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 흘러가는 시간은 잡을 수 없어서, 안타까운 것이기에.

    “내가 자네를 어떻게 믿고?”

    반쯤은 진심, 반쯤은 장난삼아서 하는 말이다.

    본인이 만족할만한 대답을 한다면 보내줄 것이고, 본인이 만족하지 못하는 대답을 한다면 라트의 신분을 보증해줄 수 없다는 건가.

    자신이 케이네와 관련된 사람이고, 흑마법사에 관련된 정보를 넘겨줬으니, 어지간하면 수락해줄지 알았는데.

    ‘하긴 신분 보증은 전혀 다른 문제인가.’

    자신이 문제를 일으키면, 신분을 보증한 백작이 덤터기를 뒤집어쓰니까. 백작도 신중히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

    라트는 잠시 어떻게 대답을 할지 고민하다가, 이내 그 고민을 접어버렸다. 백작이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상, 진심으로 부딪치는 게 최고의 방법이다.

    “사저의 이름을 걸겠습니다.”

    “내 여식의? 자네가 무슨 자격으로 내 여식의 이름을 걸겠다는 건가.”

    “케이네뤼카흐 폰 글란츠가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서의 자격. 그리고 적어도 글란츠 도련님보다는 케이네뤼카흐 폰 글란츠를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자격으로요.”

    두 사람 사이의 시간이 얼어붙었다. 백작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지긋이 라트를 노려보았다. 몇 초 동안의 정작, 그러나 하루밤과도 같은 기나긴 침묵.

    그 끝을 알린 건, 글란츠 백작이었다.

    “하하하하하.”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웃으며 고요를 잠재운다. 조용한 웃음은 이내 광소가 되어, 방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조금 전까지 보인 광소가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백작은 광소를 그쳤다.

    “광오하다.”

    가족이 아님에도, 가족이라고 생각하다니. 이 어찌나 오만한 말인가.

    그러나.

    “그러나 정답이다.”

    정답이었다. 자신의 아들은 케이네를 동생으로, 가족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저 언젠가 다른 가문으로 팔려나갈 가축, 그 이상의 취급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백작 본인도 마찬가지였을 터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겉으로는 그런 모습으로 보였겠지. 그래서 딸아이가 결국은 도망치듯 떠나지 않았는가.

    “그래, 정답이다. 가족이 아닌 자가 가족보다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니. 외람되고, 왜곡된 말이라고 밖에 할 수 없으나, 진실이지.”

    백작은 씁쓸하다는 듯 웃으면서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보고, 그 누가 이 남자를 오러 마스터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실패한 가정을 둔, 실패한 가장의 모습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대의 뜻대로 신분을 보증해주지.”

    “감사합니다.”

    위로는 하지 않았다. 그것은 백작이 자초한 일이니까. 그리고 자신은 그를 위로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를 위로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단 한 사람이지만, 그 한 사람은 지금 이 자리에 없다.

    “수표다. 여기든, 어디든, 사라이 왕국의 은행이 있는 도시라면 골드로 바꿀 수 있을 거다. 곧바로 떠날 생각인가?”

    “예.”

    백작이 준 수표를 받은 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숲의 현자가 있는 곳까지 가서 의문을 해소한 후에 셀룬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리오스 같은 어린 아이, 특히나 종족이 엘프인게 밝혀지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짐을 두고 여행을 계속할 수는 없으니까.

    “아무나 들어와라.”

    “충!”

    조용하나, 문 바깥까지 들릴 정도로 거대한 목소리에 병사 한 명이 방으로 들어왔다.

    “쿠르에게 말해서, 이 남자가 포탈을 이용할 수 있게끔 해줘라.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터이니.”

    “받듭니다.”

    백작의 명령에 아무런 이의를 제가하지 않고, 병사는 라트를 안내했다. 쿠르라고 불린, 조금 전 백작에게 전언을 알린 남자도 백작의 명령이라는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라트가 포탈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아저씨, 쓸쓸해보였어.”

    “그래.”

    그러나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닌 자신의 탓이다. 라트는 이제는 습관처럼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리오스, 이제 할아버지가 주신 옷으로 갈아입어도 돼.”

    “모래에서 벗어나는 거야?”

    “오냐.”

    “신난다!”

    지금부터 갈 곳은 사라이 왕국의 영토에서도 비옥한 초원과 숲이 펼쳐진 장소다. 라트의 말에 리오스는 신이 나는 듯, 방방 뛰었다. 불평을 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사막의 환경이 익숙하지 않았나보다.

    그게 아니면 엘프라는 종족의 특성상 숲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빠. 여기서 떠나면, 또 마차에서 자야해?”

    “아니. 잠은 아마 여관에서 잘 수 있을 거야.”

    숲의 현자가 살고 있는 산은 사라이 왕국의 중앙 부근에서 조금 더 동쪽으로 가면 된다.

    거대한 도시는 물론이오, 중간 규모 마을이 곳곳에 널렸을 터이니 린느탐보프에서 사라이 왕국까지 오던 길에서처럼 마차에서 자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마차가 불편했나보네.”

    “그, 죄송해요. 오빠가 더 불편했을 건데.”

    ‘불편하면 그냥 불편하다고 말하면 되는데.’

    나이는 리오스가 더 많을지 몰라도 육체 나이나, 정신 연령을 고려하면 아직은 꼬마에 불과한 리오스가 불평보다는 사과를 먼저해오자 머리를 긁적인다.

    노인의 말에 따르면 리오스가 살던 엘프 부족은 전멸했다고 했었다. 그리고 무엇에 의해 그 부족이 전멸했는지도 알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을 잃은 소녀가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그것을 생각하면 조금, 씁쓸했다.

    “오빠?”

    라트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리오스가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라트를 바라보았다.

    “리오스가 잘못했어, 표정 풀어.”

    “아니야, 아니야. 너 때문에 이러는 거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오빠 하나도 안 불편했어. 리오스가 고생 많이 했지.”

    “진짜로?”

    “그럼.”

    처음 소녀를 맡았을 때, 그저 운명의 실을 연결하기 위해서. 진 엔딩을 보기 위해 소녀를 이용해먹을 생각으로 맡았다.

    그런데 소녀가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자신을 향해 웃을 때마다 어쩐지 씁쓸했고, 그래서 기분이 더러워졌을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 작품 후기 ============================

    로리는 소중해에에ㅔ에ㅔㅔ에에에 특히나 합법 로리는 더더욱 소중합읍읍응브읍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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