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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75화 (7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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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왜 백작님이 여기 있는 거야?’

    루브그흐 폰 글란츠, 사라히 왕국의 유일한 소드 마스터이자 전술의 천재. 그 명성은 대륙적으로 봤을 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라히 왕국 내에서 그의 명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라히의 필승 카드, 라고 봐도 좋을 남자가 여기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라히는 분명 차리친 왕국이랑 전쟁 중이라고 들었는데?

    “신기하군.”

    “무, 무엇이 말입니까.”

    눈앞의 남자가 얼마나 뛰어난 남자인지 알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는다. 붉은색 대지 전장에서 이 자를 이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략글이 나왔는가.

    그리고 그 공략글을 비웃듯, 새로운 전술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게다가 개인의 강함 또한, 지금의 라트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이방인이 나를 알고 있다는 듯이 쳐다봐서 말이야. 음?”

    글란츠 백작은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눈을 꿈틀거리더니 새하얀 이빨이 반짝이는 미소를 보였다.

    “그대는 내 여식과 관계가 있는 사람인가보군.”

    라트가 습관적으로 오른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는 제스맹 기느투스의 제자라는 것을 알려주는 물건이다. 백작은 그것을 발견하고 웃은 거였다. 여식, 도망치듯 가문에서 나가버린 케이네와 관련이 있는 남자라.

    “원래는 여기서 이야기를 좀 나누려고 했지만. 성까지 따라 와줄 수 있겠나?”

    본래는 여기서 가지고 있는 물을 사고 싶다는 의향만 비출 생각이었으나, 조금 흥미가 생겼다.

    “물론입니다.”

    굳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라트의 모습에 백작은 다시 한 번 웃더니 바깥은 향해 성으로 가자고 말한 후, 라트를 바라보았다.

    “여식이 나에 대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겁먹지 말게. 내가 그대를 잡아먹는 일은 없을 터이니.”

    ‘누나 때문이 아니라, 그냥 무서운 거라고.’

    라트 또한 월드 세리아라는 게임을 하면서, 이 자를 이기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던 유저 중 한 명이었다. 총 전적은 100전 31승 64패 5무. 일개 프로그램에게 전력으로 패배당한 경우가 수두룩했다.

    그래서 무서웠다. 프로그램일 때도 압도적인 전술을 보여주던 이가 살아서 숨을 쉰다면 도대체 얼마나 무서운 전술을 보여줄까.

    그리고 의문이 든다. 어째서 사라히 왕국의 필승 카드라고 불리는 백작이 최전선이 아닌, 이런 후방까지 온 것인가.

    ‘차리친에게 선전 포고를 한 게 거짓이라면?’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린다. 사라히와 차리친이 전쟁을 하는 것이 서로가 암묵적인 동의하에 조작된 거라면?

    사라히 왕국이 의도적으로 전쟁 선포를 해서, 핀스크 왕국과 전쟁을 벌이려고 하는 린느탐보프를 안심시키고, 비어있는 후방을 기습하는 게 진짜 목적이라면.

    ‘모든 게 맞아 떨어져.’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진다. 그리고 이번 작전은 확실하게 먹혀들겠지. 이것도 모두 글란츠 백작이 생각한 수인가?

    그렇다면 일정 패턴이 정해진 프로그램과 현실에서 살아 숨 쉬는 이의 역량 차이는 이렇게까지 갈린다고?

    ‘돌아버리겠네.’

    자신이 알고 있는 왕국 전쟁의 시나리오가 조금씩 뒤틀린다. 만약 사라이가 린느탐보프의 후방을 성공적으로 친다면, 린느탐보프는 빠르게 멸국의 길로 접어들 것이고, 사라히 왕국은 성공적으로 비옥한 영토를 얻을 수 있을 거다.

    다만, 그렇게 된다면 흑마법사들이 좀먹고 있는 핀스크 왕국을 도대체 누가 견제할 것인가. 핀스크 왕국이 건제하다면, 그들은 계속해서 학살을 자행할 터인데.

    사라이와 린느탐보프가 전쟁을 일으키는 건 확정된 일이었지만, 그건 린느탐보프 왕국이 핀스크 왕국을 멸망시키고 난 후 그 때까지 차리친 왕국과 전쟁 중인 사라이 왕국의 뒤를 칠 때, 적어도 3년 뒤에나 벌어질 일이었다.

    “고민이 많은 모양이군. 걱정 말게 나는 그저, 여식의 이야기를 좀 듣고 싶은 것뿐이니.”

    라트의 굳어있는 표정을 본 리오스가 옷깃을 잡아당겼다. 불안한 건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굳은 얼굴을 펴고 조금 웃었다.

    글란츠 백작은 귀족이면서도, 귀족 특유의 권위주의에 찌들지 않은 사람이다. 케이네와 같이, 공명정대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지금 하고 있는 말도 사실이고, 라트가 가지고 있는 물을 강탈하려는 짓은 하지 않을 거다.

    공명정대한 사람이니까, 라트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섣부른 행동은 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대화를 통해 그를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도박을 해볼까.’

    만약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 글란츠 백작이 아닌 다른 귀족이었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만, 그이기에 도박을 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걱정 때문이 아니라, 백작님이 여기 계신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

    “예.”

    백작은 조금 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라트를 바라보았다. 이제 막 성인이 된 것처럼 보이는 청년이지만, 신비로운 눈동자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다는 느낌이 든다.

    그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과연 이 남자가 어디까지 생각했을지 궁금해진 백작은 입을 열었다.

    “자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군. 한 번 말해보게.”

    “린느탐보프를 치실 생각이시군요.”

    “오호.”

    조금의 감탄, 라트가 이방인이고 여식과 관계되지 않았기에 내뱉은 감탄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당장 저 목을 베었을 거다.

    라트 입장에서도 이 말을 내뱉은 건, 어디까지나 모험이었다. 백작이 린느탐보프 왕국의 영토를 차지한 것에 만족하게 두면 안 된다. 그 이후에 핀스크 왕국을 견제하게 만들어야, 자신이 알고 있는 시나리오와 비슷한 양상으로 돌아갈 테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지?”

    “백작님은 사라히 왕국의 유일한 소드 마스터, 왕실의 입장에서 보자면 최고의 패입니다. 그런 분이 전쟁을 선포한 차리친 왕국 국경이 아닌, 이곳에 오셨다면, 그 이유는 명확하죠.”

    백작의 기세가 조금 날카로워지자, 라트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차리친 왕국에게 전쟁 선포를 한 건, 어디까지나 세간을 속이기 위해서, 그리고 린느탐보프 왕국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말해보게.”

    “전쟁 중 가장 위험한 후방에 있는 사라이 왕국이 전쟁을 선포했으니, 린느탐보프의 경계는 당연히 느슨해질 겁니다. 그걸 노리신 거 아닙니까?”

    백작의 살기가 조금씩 일렁이기 시작한다. 겁을 주기 위함인가, 그것이 아니면 진심인가. 아마도 전자겠지, 나에게 흥미를 느끼고 시험해보려고 하는 것이 분명하다.

    “흥미로운 가설이지만, 우리 왕국은 상대적으로 다른 왕국보다 힘이 떨어지네. 린느탐보프와 전쟁을 벌이면서, 전쟁 선포를 당한 차리친 왕국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차리친 왕국에는 그만한 선물을 주고 서로 입을 맞추면 그만입니다. 실제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 중이고요.”

    마른 입술을 혀로 핥으며, 라트는 최후의 말을 입에 담았다.

    “백작님 같은 분이 계시는 사라이 왕국이 미쳤다고 양면 전쟁을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

    “정답이네.”

    그 순간, 백작은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옆에 있는 검을 뽑아 라트의 목에 들이댔다. 너무 빨라서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오러 마스터는 다 이래?’

    자신이 제법 강하다고 생각했다. 오러 마스터는 몰라도 익스퍼드까지는 이길 수 있을 것이고, 오러 마스터와 붙는다고 해도 시간을 끌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등이 서늘하다. 장소가 좋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도, 조금 전 백작이 보여준 움직임을 보고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이 남자와 정면으로 붙는다고 해도, 감당할 수 없다.

    “영리하군.

    “꺅!”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리오스가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으나, 백작은 냉정하게 살기를 흘리며 라트를 바라본다. 수많은 시간을 백작과 함께 보냈을 검이 새하얀 자태를 뽐낸다.

    “너무 영리해서, 살려두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하면 자네의 목을 베려는 나를 용서해줄 텐가?”

    마지막에 마지막, 라트는 굳은 표정을 풀어버리고 웃어버렸다. 아, 역시나 예상대로 글란츠 백작은 지금 자신을 시험하고 있는 중이다.

    이 남자는 어떤 상황이라도 불의의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 청렴결백한 사람이다. 정보가 세어나갈 걸 염려해서 자신을 죽인다고 하면 모를까, 영리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일 귀족은 아니야.

    “어째서 웃지?”

    “사저에게 들은 바로는 백작님은 고작 이런 이유로 사람을 죽이실 성격은 아닌 것으로 압니다.”

    그렇기에 웃었다. 이 남자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실제로 만난 건 처음이나 게임에서는 수없이 많은 시간을 백과 싸웠다.

    이 남자의 곁에서 보낸 시간도 수없이 많아, 친근감까지 느껴질 지경이다. 귀족은 우월하다는 생각에 빠진 썩은 귀족이라면 모를까, 이 남자는 고작 그런 이유로 자신을 죽이지 않을 것을 안다.

    “그것 또한 정답이다.”

    예상대로 이 모든 것이 시험이었다는 듯, 백작은 검을 거뒀다. 애당초 시험이 목적이었는지, 검을 목에 대지도 않았기에 살이 베인 상처조차 없다.

    “하하하, 여식이 내 성격을 확실히 꿰고 있군. 역시 똑똑한 아이란 말이야.”

    호탕하게 웃으며 케이네를 칭찬하는 모습 속에서 약간의 씁쓸함이 묻어나는 걸 볼 수 있었다.

    사저의 이유를 들어서, 백작의 성격을 말한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린다. 사저는 라트에게 아버지와 관련된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자신이 백작의 성격을 알고 있는 타당한 이유를 대려면, 케이네를 팔아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 왔나보군. 내리도록 하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마차는 성에 도착했는지 멈춰 서자, 백작은 먼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어서 바깥으로 나온 라트가 리오스를 안아 들어서 땅에 내려준다.

    “그 아이는, 같이 데려갈 생각인가?”

    “예.”

    “그럼 그렇게 하게.”

    아무래도 좋다는 듯, 백작은 군인들을 향해 중요한 손님이니 무례한 짓을 하지 말라고 언급을 한 후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한다.

    “오빠, 괜찮아?”

    리오스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자, 라트는 피식 웃으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이거 진짜 버릇이 될 거 같네. 남자들이 왜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에 로망을 가지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오빠는 괜찮아. 좀 놀랐지?”

    “엄청 놀랐어.”

    하긴 비명을 질렀을 정도이니, 리오스가 느꼈을 심정이 이해가 되긴 했다. 그런데 같이 다니던 노인이 죽었을 때도 슬픔조차 보이지 않던 소녀가, 어째서 라트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는 놀란 것일까.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지금 당장은 그 까닭에 대해서 물어볼 수 없는 상황이니까. 라트가 리오스에게 손을 내밀자, 소녀는 당연하다는 듯, 청년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백작을 따라 성 안으로 들어간다. 여린 소녀의 보폭을 고려해주는 걸까? 백작은 군인의 발걸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걷는 중이다.

    “충!”

    목적지인 방 앞에 도착하자, 그 앞에 있던 병사들이 창을 번쩍 들어 올리며 예를 표했다. 그 모습에 두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하나는 병사들은 모두, 군기가 잡혀있는 정예군이다. 굳센 표정과, 갑옷 사이로 비춰지는 잘 다듬어진 몸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고된 훈련을 견뎌왔는지 알 수 있었다.

    “긴히 이야기를 나눠야할 사람이니, 손님이 와도 들여보내지 말도록.”

    “받듭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라이 왕국에서 백작이 어느 정도의 위용을 가지고 있는 지다. 여기까지 오면서 마주친 병사들 모두가 진심으로 백작을 존경하며 인사를 했었다.

    ‘역시 백작님이라는 말밖에 안 나오네.’

    지금은 그 명성이 널리 퍼지지 않았지만, 이번 메인 퀘스트를 거치면서 백작의 명성은 어마어마하게 높아진다.

    다만, 린느탐보프의 기습 때문에 벌어지는 이벤트인 붉은색 대지 전장이 일어날 가능성이 한없이 낮아졌기에 조금 슬퍼졌다.

    다른 건 제쳐두더라도 현실에서, 500의 병력으로 2500에 달하는 병력을 어떻게 쓸어버리는지 꼭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들어오게나.”

    뭐, 붉은색 대지 전장이 매번 일어나는 이벤트도 아니고.

    남자 NPC 인기 1순위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백작과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게 됐으니, 쌤쌤인가. 그런 시답잖은 생각과 함께 라트는 리오스와 함께 백작의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부터가 가장 중요하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으면 추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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