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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74화 (7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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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여관에서 푹 쉬고 그 다음날 아침. 라트는 리오스를 마차에 태우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얻었다. 에르모스는 두 개의 오아시스 사이에 만들어진 도시이기에 물이 그렇게까지 부족하지는 않았기에, 물이 부족한 다른 성이 어딘지 알아보려는 속셈이었다.

그렇게 시장을 돌아다니던 중, 뜻밖에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군대가 우리 도시로 온다는 소식 들었어?”

“말도 마. 집사람이 벌써부터 배급나온 물 아낀다고 난리야.”

“오늘 아침에 포탈을 이용하려고 했다가 퇴짜 맞았어.”

“왜?”

“군대가 가기 전까지 사람들이 도시에서 나가는 걸 제한하겠다고 하더군. 영주님의 명령이니 따라야겠지만, 죽을 맛이라네.”

‘군대가 온다고?’

사라히 군대가 어째서 린느탐보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에르모스에 오는 거지? 사라히 왕국이 전쟁을 벌이는 건, 린느탐보프 반대편에 있는 핀스크 왕국이지 않은가.

왕국 전쟁이 아무리 통수와 음모가 만연하는 메인 퀘스트라고 하지만, 이건 굉장히 의외의 정보였다.

‘팔 수 있겠는데.’

군대가 온다면 자연스럽게 물의 소비량이 늘어난다. 에르모스가 사막에 지어진 도시치고 물이 제법 풍족하다고 하지만, 군대가 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도시에서 나가는 것도 제한됐겠다. 군대가 도시에서 빠져나기 전까지는 꼼짝없이 이곳에 갇혀있어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잘하면 이곳에서 물을 전부 팔 수 있을 거다.

‘다른 도시로 포탈을 타고 가서 물을 파는 것보다야, 시간 절약이지.’

도시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걸 제한하는 걸 보니, 에르모스로 오는 군대는 비밀 임무를 가지고 있을 거다. 당연히 신속하게 움직여야 하는 군대의 입장상, 물을 가지고 이동하지는 않겠지.

아마 통행 제한도 금방 풀릴 거다. 여행자는 몰라도, 자국의 경제에 영향을 주는 상인이나 상단을 오랫동안 붙잡아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평민이나, 상인한테 팔수도 있지만. 제일 좋은 건 이쪽으로 오는 군대에게 팔아버리는 거지.’

만족스럽다는 듯 손을 비빈다. 라트는 주로 전투에 관련된 직업을 플레이했으나, 상인 캐릭터를 안 키워본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내정을 하는 재미에 푹 빠져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상인 캐릭터에 투자했었지. 커뮤니티에 올라온 공략법들도 숙지하고 있고, 나름의 노하우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가장 좋은 방법은.’

시장에서 빈민가 쪽으로 마차를 돌리며, 엘프는 후각과 청각이 굉장히 예민하기에 리오스에게 창문을 열지 말라고 말한다. 빈민가에 도착하자, 특유의 썩은 내가 코를 자극했으나, 라트는 불쾌한 표정 하나 짓지 않고 근처에 있는 소년들에게 다가갔다.

“하, 한 푼만 주세요.”

얼마나 굶었는지, 뼈가 앙상한 소년들이 마차를 타고 있는 라트에게 손을 내민다. 날카로운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진다. 흔히 말하는 앵벌이다.

‘앵벌이를 시키려면 밥이라도 좀 먹일 것이지.’

라트가 인상을 찌푸리자, 소년들이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남자가 자신들을 불쾌하게 여긴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긴 모습이 불쌍하게 보여야 돈을 더 많이 주겠구나.’

“저쪽에 있는 놈 불러와.”

“네?”

“알 거 다 알잖아. 너네 대장 불러오라고.”

소년들이 당황하자, 라트는 한숨을 내쉬면서 시킬 일이 있으니까 부르는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제야 고개를 소년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으나, 이야기가 좋게 끝났는지 30대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가 연신 굽신거리며 라트에게 다가온다.

“나으리, 저에게 시키실 일이 있다고요?”

빈민가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건장한 몸을 가진 남자를 살핀다.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서 몸 여기저기에 문신과 칼자국을 새긴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들과 오래 상대할 필요는 없다. 오래 상대할수록, 상대방에게 탐욕을 부리는 이들이니까. 지구에서도, 그리고 이 세계에서도. 이런 놈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라트는 잠시 역겨움을 느끼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잘못이 있다면, 이런 짓을 직업으로 삼을 수밖에 없게 만든, 사회를 탓해야지.

“그래.”

인벤토리에서 50실버짜리 동전을 던져주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말씀만 하십시오. 죽일 사람이 있으십니까? 귀족이나 상인을 빼면 누구든 죽여드릴 수도 있습니다.”

관둬라, 죽일 사람이 있으면 내가 직접 나서고 말지. 자신보다 한참 약한 자들에게 일을 시킬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 게 아니고. 소문을 하나 내줬으면 한다.”

“소, 문이요? 어떤 소문 말씀이십니까?”

“검은 바람에 머물고 있는 타국 사람이 물을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다고 소문을 내주면 된다. 내 귀에 들어올 정도로 소문이 나면, 50실버를 더 주지.”

순간, 남자의 눈동자에 탐욕이 번들거린다. 착수금 50실버에, 고작 소문을 내는 일을 가지고 50실버를 더준다고 한다. 1골드라면, 빈민가에 사는 이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만질 수 없는 돈이지 않은가.

“할 수 있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언제까지 소문이 나면 될까요?”

탐욕이 번들거리던 눈동자가 다시금 바뀌었다. 저 눈빛은 기만이다. 여차하면 일을 설렁설렁하고, 추가금까지 받을 작정인가? 일을 제대로 못했으니 추가금을 주지 않겠다고 말하면, 협박이라도 하려는 건가?

“에르모스에 군대가 오기 전까지. 그 전까지 제대로 소문을 못 내면, 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아주 약간 살기를 일으키면서 남자를 노려본다.

어차피 통행이 제한된 도시, 농담이 아니라 여차하면 빈민가를 이 잡듯이 뒤져서 이 남자를 죽일 수도 있다. 남자도 그걸 알고 있겠지.

물론 귀찮아서, 그런 짓은 하지 않겠지만, 이 남자가 설렁설렁 일해서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되기에 미리 경고를 남긴다.

“……명심하겠습니다.”

경고는 성공적으로 먹혀들었다. 남자의 굳은 얼굴 사이로 식은땀이 흐른다. 눈앞에 있는 상대가 호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긴장한 표정한 건가.

그래, 너희같이 도시를, 경제를, 좀먹고 사는 놈들은 그런 표정이 어울린다.

“군대가 오면 저 아이한테 날 찾아오라고 해. 그 때까지 성과를 보고, 추가금을 줄지 결정하지.”

“예.”

일을 끝마친 라트는 그 즉시 여관으로 돌아갔고, 며칠이 지났다. 라트가 바라던 대로 소문은 확실하게 퍼져나갔고 1만이 넘는 수의 군대가 도시에 도착하자 라트는 자신을 찾아온 소년에게 50실버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다시 며칠이 지나는 동안, 라트는 마음껏 침대 위를 뒹굴었다. 가지고 있는 연금술 재료도, 장비도 없다. 도시 밖으로 나가서 몬스터를 사냥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할 게 없으니, 오랜 만에 왠지 지구에서 만끽하던 생활을 다시금 만끽하는 중이다.

사람이 부지런하게 움직인다면 마음의 평화가 없어. 마음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침대에서 꼬물꼬물 굴러다니는 게 최고지.

“오빠, 할 일이 있다면서? 이렇게 누워있어도 되는 거야?”

반대편 침대에 앉아있던 리오스가 조금, 한심한 눈빛으로 라트를 바라본다.

하기야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1층 식당에서 밥을 먹고 방에 돌아와서 누워있기만 했으니 저런 시선을 보내는 것도 조금 이해가 간다.

그래도 외관 상 13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소녀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니까, 왠지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분명 이 게임의 장르가 달랐다면, 호감도가 떨어졌다는 알림창이 떴을 거다.

상대는 어린 아이야,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 아이. 자신이 세운 계획을 알아챌 리가 없지. 그래, 그러니까 아프지 않아. 마음속으로는 부정했으나, 마음이 아픈 것은 착각이 아닐 지다.

“조금만 더 있으면 알아서 찾아올 거야.”

“누가?”

“그런 게 있어. 아마 오늘 안에 찾아올 걸?”

이미 라트가 물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소문은 1층에 있는 식당에서도 화자가 될 정도로 널리 퍼졌다. 그리고 1만 명의 군대가 부지불식간에 들이닥쳐, 도시에 공급되는 물이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다는 말도 나오는 중이다.

‘슬슬 찾아올 때가 됐는데.’

바로 그 때, 문이 열림과 동시에 5명의 병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대가 물을 가지고 있다는 자인가?”

‘거봐.’

라트는 리오스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풀고, 감탄한 듯이 라트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이 게임의 장르가 프린세스 메이커였다면 호감도가 올랐다는 알림창이 나타났겠지.

피식 웃어버리고, 그제야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병사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그대를 뵙고자 하는 분이 계신다. 이방인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거부는 할 수 없다.”

“이 아이를 데려갈 수 있다면 따라가겠습니다.”

처음부터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이걸 위해서 물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낸 거니까. 다만, 리오스를 여기에 혼자 내버려두자니 나쁜 아저씨한테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녀를 데려갈 수 있다면 따라간다는 조건을 말한다.

“상관없다. 따라오도록.”

‘쿨해서 좋네.’

라트는 별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리오스의 손을 잡고 병사들을 따라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라트가 임시로 만든 마차와 비슷한, 초라하다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안쪽에서 강렬한 인기척이 느껴지자, 라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족이 이런 마차를 사용할 리가 없는데.’

분명 이 성의 영주, 혹은 군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이 자신을 찾아오리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상인을 대신해서 보낸 건가. 아니, 상인이라면 이보다 훨씬 호화로운 마차를 타고 다닐 거다.

그럼 이 안쪽에 있는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냥 안내인인가?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느껴지는 인기척이 너무 강렬하다.

직감이 알려온다, 이 안에 있는 자는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들어가라.”

병사의 재촉에 라트는 리오스를 먼저 마차에 태우고 곧이어 마차에 탑승했다. 마차 안은 사람 4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으나 리오스의 체구가 작은 덕분에 라트는 비좁음을 느끼지 않았다.

아니, 비좁다는 생각을 할 수 조차 없었다고 말해야겠지. 마차에 타있는 사람을 보자마자, 머리가 얼어붙었으니까.

“자네가 물을 가지고 있다는 이방인이군.”

수염을 기르지 않음에도 중후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미중년. 그리고 투박한 검집에 들어있으나, 그 손잡이는 절대로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는 검이 옆에 놓여있다.

고개를 올려, 남자를 바라본다. 황금색 눈동자, 은색 머리카락. 케이네와 같은 조합, 절대로 흔하지 않는 조합.

“나는 루브그흐 폰 글란츠 백작이라고 한다.”

사저의 아버지, 커뮤니티 내에서 인기 투표 1순위를 달리는 NPC 중 한 명인 백작님께서 라트를 맞이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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