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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73화 (7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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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프로필 창을 열어보니, 역시나 처음 이름 없는 신의 석판을 발견했을 때 8에 불가했던 신성 스탯이 9로 올라있었다.

    ‘있을 수 없어.’

    월드 세리아에서 유저의 스탯이 오르는 경우는 남은 포인트로 스탯을 찍던가, 엘릭서를 먹던가, 스탯을 올려주는 아이템을 장비할 때뿐이다. 수없이 검을 휘두른다고 해도, 스탯이 저절로 오르지 않아. 그런 건 듣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어째서 신성 스탯이 오른 건가? 알림창을 다시금 살펴본다. 사람들의 감사가 신성 스탯을 올려주는 건가. 그래서 신성 스탯이 오르면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는데?

    월드 세리아의 신들은 사람들의 신앙을 먹고 그 힘이 강해진다는 일본 라노벨스러운 설정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저 신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그 자리에 합당한 힘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이유? 그들의 입장에서 인간은 체스 말에 불과하다. 언제든 체스판을 엎어버릴 힘을 가지고 있지만, 룰에 입각하여 가지고 노는, 그런 존재.

    그런 취급에 침지 못해 머나먼 과거 인간이 신에게 대항한 적이 있다는 설정을 보긴 했지만, 결과는 참패. 현재 이 세계에서 신전의 영향력이 무시무시하게 강해진 원인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뭐, 체스 말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신들은 자신이 아끼는 이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힘을 내려준다. 예를 들면 지금 같이 말에 타고 있는 리오스와 같이 성자와 성녀라고 불리는 존재들.

    그들은 동일 스탯, 동일 기능 레벨이라고 해도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었다. 실제로 성자나 성녀로 플레이 해본 유저가 평하길 스텟과 기능 레벨에 비해 2배 정도 강하다고 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스탯이 어째서 올랐는지 그리고 이 스탯이 도대체 무슨 도움을 주는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

    [스탯 포인트로는 신성 스탯을 올릴 수 없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탯을 올려보려고 했지만, 재능이 표시되지 않은 스탯을 스탯 포인트로 올릴 수 있을 리가 없지. 머리가 아프다, 과연 숲의 현자에게 찾아간다고 해도, 신성 스탯에 대해 알고 있을지나 의문이다.

    “오빠.”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고민을 그만둔 라트는 자신을 부른 리오스를 바라보았다.

    “어, 응. 왜 불러?”

    “표정이 심각해보여서 불러봤어.”

    아, 내 표정이 그렇게 심각했나. 라트는 멋쩍게 웃으면서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잠깐 생각 좀 하느라고. 혹시 불편하니?”

    말을 타는 게 걷는 거보다 편하다고는 하지만, 상당한 체력을 소모하기 마련이다. 이런 여린 육체로 감당할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 들었다.

    “조금? 괜찮아, 참을만해.”

    참을만하다는 건, 괜찮다는 뜻이 아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차 한 대는 그냥 가져올 걸 그랬다. 리오스를 마차에 태웠다면, 적어도 말에 타는 거보다는 조금 더 편했을 거다.

    생각해보니까, 나야 길바닥에서 자도 괜찮다고 해도 이런 어린 아이를 길바닥에서 자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잠깐만 기다려.”

    “알았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라트는 나무가 있는 곳에 말을 세워두고 나무 사이로 들어가, 무색의 연금술로 마차를 만들었다. 집을 여러 채 만들면서, 세밀한 컨트롤도 늘어난 덕분에 생각보다 쉽게 만들 수 있었다.

    “우와!”

    리오스가 신기하다는 눈동자로 마차가 만들어진 광경을 바라보더니.

    “죄송해요.”

    별안간 라트에게 사과를 했다.

    “응? 왜?”

    “리오스 때문에 이런 거 만든 거잖아.”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죄송하다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건 어디까지나 라트가 원해서 한 일이니까. 그렇기에 라트는 피식 웃으면서 소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이럴 때는 고맙습니다, 라고 하는 거야.”

    “그런 거야?”

    “그래.”

    마을에서 머무르면서 리오스에게 나이를 물어본 결과, 그녀의 나이는 약 40살. 인간의 나이로 치면 13살 밖에 되지 않은 소녀다. 엘프는 성장이 더딘 육체만큼 정신연령도 늦게 성장한다. 즉 정신연령도 13살과 비슷하다는 소리다.

    그런 소녀가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보다, 어리광을 부리는 것보다, 사과를 먼저 하는 게 조금 거슬렸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기에 저러는 걸까? 소녀에게 노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건 실례라고 생각해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 감사합니다, 오빠.”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머리카락으로 묶여 가려진 귀가 쫑긋거린다. 그 모습이 치명적으로 귀여워서 라트는 자신도 모르게 리오스를 껴안을 뻔했지만, 간신히 그걸 참을 수 있었다.

    ‘어린 동생이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라트는 외동아들로 자란 탓에 동생에 대한 조그마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자신을 동생으로 취급하던 케이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아, 그런데 남자새끼는 징그럽잖아. 사저는 징그러운 남자새끼를 그렇게 귀여워해준 건가?

    ‘누나의 취향은 도통 모르겠어.’

    케이네에 대해 짧은 감상평을 남긴 마트는 말에 즉석에서 만든 조그마한 마차를 고정시키고, 리오스를 마차 안으로 들여보냈다.

    “답답하면 여길 이렇게 열면 돼. 무슨 일 있으면 부르고.”

    “응.”

    창문의 사용법까지 알려준 라트는 마부가 되기를 자처하고 다시금 길을 떠났다. 당연하지만, 마차는 그냥 말을 타고 가는 것보다 속도가 느리다. 덕분에 하루를 보내고, 그 다음날 오후가 돼서야 자신을 습격한 자들을 만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3일하고도 반이라.’

    일에 휘말린 결과, 상당한 시간을 날려버리고 간신히 원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이기에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일이기에 딱히 후회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만약 노예가 된 사람들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왔다면, 가는 길 내내 찝찝함과 죄책감에 시달렸겠지.

    ‘이기적인 놈이 되는 건 내가 할 짓이 아닌가보다.’

    납득해버리자,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필요할 때는 이기적일 수 있지만, 라트 아니, 최현준이라는 인간은 항상 이기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 심성의 소유자다.

    자신과 관련이 있는 사람 한 명과 관련이 없는 여러 명의 사람 중 누구를 구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관련이 있는 사람을 구하겠지. 그 정도 이기심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를 들어서, 구할 수 있는 사람을 무시하고 지나칠 정도로 이기심이 짙지 않아. 결국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없기에 영웅이 될 수는 없었지만, 지극히 인간다운 생각이었다.

    “오빠, 우리는 어디까지 가는 거야?”

    ‘아, 리오스한테는 목적지를 말해주지 않았네.’

    “사라히 왕국까지. 숲의 현자님을 만나러 갈 거야.”

    “숲의 현자님? 그게 누구야?”

    리오스에게 현자라는 단어를 어떻게 이해시킬지 잠시 고민하던 중, 적당한 단어가 떠올린 라트는 입을 열었다.

    “엄청 똑똑한 사람.”

    “할아버지보다?”

    저 말이 죽은 노인을 칭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소녀의 얼굴에는 조금의 슬픔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왔기에 주변 사람의 죽음에 저리도 태연할 수 있는 걸까.

    “아마 그럴 걸?”

    지금 당장은 그렇게 신경 쓸 일이 아니기에 라트는 자신의 의문을 지운 채 리오스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고는 서둘러 마차를 몰았다.

    *****

    처음 계획은 산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었으나, 리오스의 안전 문제도 있고 마차로는 산을 넘어갈 수 없기 때문에 얌전히 길이 나있는 곳으로 빙빙 돌아서 갔다.

    혼자였다면 2개월 안에 충분히 목적지에 도착했겠지만, 마차를 이용하고 있고 산을 뚫고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라히 왕국의 국경을 통과해, 사막 위에 지어진 성 에르모르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다 왔다, 고생 많이 했어.”

    “고생은 오빠가 다했지, 헤헤헤.”

    마차에서 내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리오스는 해맑게 웃었다. 그 모습에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사막으로 들어온 지 1개월. 덕분에 그동안 전혀 씻지 못해서 꾀죄죄한 몰골을 가지고 있고, 아직 그 아름다움이 완전히 개화하지 않은 꽃봉오리같은 소녀이기는 하나, 그 아름다움은 보통 인간과는 견줄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미에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고 하나, 아마도 리오스가 성인이 되면 그 근처에는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콜록, 콜록.”

    지금까지는 마차 안에 있어서 모래를 마시지 않았던 리오스가 갑자기 불어 닥친 모래 바람에 기침을 내뱉었다. 주위 사람들을 살펴보니, 모두가 천 조각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다.

    확실히 모래 바람은 건강에 좋지 않지. 지구에서도 황사가 기관지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주는지 많은 토론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우선 숲의 현자를 만나는 것보다 물부터 팔 생각이었다.

    “일단 마차에 타있어.”

    “응. 콜록.”

    여관으로 가기 전에 우선 옷부터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라트는 리오스가 마차에 타자마자,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서 옷가게를 찾았다.

    “옷 사주는 거야? 리오스는 필요 없는데.”

    “사막에서는 저런 옷을 입어야 돼. 그러니까 입고 싶은 걸로 고르렴.”

    물을 전부 팔 때까지 당분간 여기서 머물러야한다. 사막에서는 사막에 맞는 옷을 입지 않으면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금방 피곤해지기 마련이지. 입가를 가릴 수 있는 천과 옷을 계산하고 리오스를 바라본다.

    지금까지 자신의 옷을 골라본 적이 없는 걸까. 그게 아니면 돈이 걱정되는 걸까. 소녀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맞는 옷이 있는 곳을 돌아다니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어떠니?”

    “비싸 보여.”

    아니, 그다지 비싼 옷도 아닌데. 진짜로 비싼 옷들은 실크로 만든 옷이다. 직모로 만든 평범한 옷은 그렇게 비싸지도 않아. 그럼에도 리오스는 고개를 젓는다.

    “돈은 신경 쓰지 말고. 마음에는 들어?”

    “응. 그렇지만, 이 옷. 할아버지가 준 옷인걸. 버리고 싶지 않아.”

    아아, 그런 문제였나.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이 소녀는 자기 나름대로 지금까지 자신을 돌봐준 노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쩐지 옷을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했더니.

    라트는 살며시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기서는 이런 옷을 입고, 여기서 벗어나면 할아버지가 주신 옷을 입어도 돼.”

    라트의 말에 리오스는 활짝 웃으면서 그럼 라트가 들고 있는 옷이 좋다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옷을 갈아입고 환하게 웃으면서도 입고 있던 옷을 소중하게 껴안고 있는 리오스의 모습에 라트는 입맛이 조금 쓰다고 느꼈으나, 이내 혀를 차면서 쓰디쓴 맛을 지웠다.

    소녀가 성장하면서 언젠가 저 옷을 입지 못할 날이 올 거다. 그 때는 소녀의 정신도, 마음도 성장해있겠지. 그러니까 닥쳐올 미래를 말해줄 필요는 없다.

    밖으로 나가기 전 리오스의 입가를 천으로 가리자, 더 이상 모래가 코와 입으로 들어가지 않았기에 리오스는 기침을 멈췄고 얼굴의 반이 가려져 그 미모가 보이지 않게 되자, 사람들의 주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선 여관부터.”

    새 옷을 입었다지만, 한 달 동안 씻지 못해서 찝찝했기에 마차를 끌고 모래 바람에 의해 ‘검은 바람’이라고 쓰여있는 간판이 삐걱이는 여관으로 향했다.

    여관에 들어서자 차마 리오스가 라트의 동생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는지 여관 주인이 따가운 눈총으로 바라보았지만, 리오스가 라트를 오빠라고 부르며 살갑게 대하는 모습에 그 눈총을 거두었다.

    ‘난 페도가 아니라고!’

    보는 이들이 많아 차마 소리를 지를 수 없었기에 마음속으로 절규하는 그대는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슬픔 짐승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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