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72화 (72/229)
  • 0072 / 0229 ----------------------------------------------

    1부

    바이올런의 성녀인 자이리오스는 어느 날 갑자기 신전에 나타난다. 그 전에 겪은 일은 리오스가 말하지 않기에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커뮤니티 내에서도 자이리오스의 과거 행적을 조사하는 유저들이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바이올런의 성녀 신분을 받는 일이야, 결정된 일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지만, 자이리오스가 나타나는 신전도 항상 랜덤이다.

    나타나는 신전이 랜덤이라는 건, 자이리오스의 과거도 항상 랜덤한 변수가 적용된다는 소리다. 쉽사리 과거를 추적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과거를 추적하는 이유? 간단하다. 신의 축복을 받아, 강해지는 것이 약속된 소녀다. 이런 소녀를 키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쉽게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겠는가.

    ‘로리콘 새끼들이 문제야.’

    로리콘 혹은 키잡 유저가 꿈꿔왔던, 게임 초반부에 자이리오스를 만난다는 상황에 봉착한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뭐, 자이리오스를 만난 건 좋아. 지금은 몰라도 후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지금은 하등 쓸모가 없다는 거다. 게임 장르가 RPG에서 프린세스 메이커로 변해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진다.

    ‘안 돼, 이런 미래, 난 감당할 수 없어.’

    그냥 신전에 데려다줄까? 신전과 부딪치고 싶지 않다면, 대충 그 근처에 놔두고 가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자이리오스의 모습에 차마 그 생각을 지웠다.

    ‘아, 맞다.’

    문뜩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리오스가 신전에 나타나는 건 거의 확정된 일이라지만, 가끔 리오스가 신전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리오스가 신전에 나타났다면 100% 확률로 한 가지 강제 이벤트가 발생한다.

    ‘운명.’

    그래, 운명에 확정된 일이라고 해도 좋았다. 강제 이벤트, 유저는 절대로 끼어들 수 없는 상황에서 성인이 된 소녀는 자신의…….

    ‘데리고 다닐 이유가 있어.’

    막혔던 첫 번째 조건을 수행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라트는 자이리오스가 짐덩이가 아닌 진 엔딩으로 가기 위한 조건을 클리어 할 수 있는 보석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짐덩이라고 생각을 했어도 버리고 갈 생각은 없었지만, 가치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부디, 이 아이를 맡아주게나. 동족이 눈앞에서 모두 죽은, 불쌍한 아이라네.”

    그래. 이 아이가 누구라고 해도, 처음부터 맡을 생각이었다. 라트는 죽어가는 자의 마지막 부탁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악인이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고마우이. 이제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겠구먼.”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엘프 소녀는 온기가 사라지고 있는 노인의 육신에서 살짝 떨어지더니, 무릎을 꿇고 양손을 모아 그의 죽음을 기린다.

    잠시 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라트가 소녀의 기도가 끝나는 것을 확인하고 노인의 시체를 들어 올리자, 리오스가 라트의 옷깃을 잡았다.

    “죽은 이에게, 안식을 줘.”

    “그러려고 하는 거야.”

    “그런 거야?”

    엘프의 장례식이 어떤지는 모른다. 게임 도중에 누가 그런 걸 신경 쓰겠어? 그러나 이곳의 사람들이 죽음을 기리는 방법은 지구와 유사했다.

    관을 짜고 그 안에 시신을 넣고 땅에 묻는다. 물론 그 안에 복잡한 절차가 몇 가지 섞였으나, 당장은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관을 만들어서 땅에 묻을 생각이었다.

    “나갈 거야. 머리 묶어.”

    “응.”

    자이리오스가 머리를 묶는 것이 끝나자, 라트는 노인을 든 채 천막 밖으로 나갔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천막 밖은, 우리가 갇혀있지 않던 여자들이 우리에 갇혀있던 남자 노예들을 풀어줬는지 눈물겨운 가족 상봉의 장이 열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라트의 등장에 모두가 그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를 표한다.

    딱히, 감사 받을 일은 없다. 이들을 구해주기 위해서 힘을 쓴 게 아니라, 단순히 벌레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죽였을 뿐이니까. 그러나 마음 한쪽이 따스해지는 이유는 왜일까.

    선행을 베풀었다는 자기만족에 라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인간은 편협하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사람의 감사를 받으면 심장이 뛰어, 충만함에 젖는다.

    “그 영감님은…….”

    “편하게 가셨습니다.”

    라트가 들고 있는 노인의 시체를 본 몇몇 이들의 표정이 굳어진다. 노인이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굳어진 표정 사이에 안타까운 시선을 섞어, 라트의 옆에 있는 소녀를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그럼 그 아이는.”

    “제가 맡기로 했습니다.”

    몇몇 이들은 다행이라는 눈빛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보살피고 싶으나, 당장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다. 입이 하나 늘어나면, 그만큼 힘들어지기 마련이지.

    “잠시만, 실례.”

    양해를 구하고 나무가 있는 쪽으로 다가간 라트는 무색의 연금술을 이용해 관과 삽을 만들었다. 관 안에 노인의 시체를 넘기고, 손수 땅을 판다. 무색의 연금술을 이용해 땅을 팔수도 있겠지만, 그건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두었다.

    높은 근력 스탯 덕분에 10분여 만에 관이 들어갈 정도의 깊이까지 땅을 팔 수 있었다. 몇몇 남자들은 힘이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라트가 무덤을 만들려고 하자, 손을 거들기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구덩이에 관을 넣고, 흙을 덮는다.

    “편히 쉬세요.”

    엘프 소녀가 청조한 목소리로 노인을 보내는 것을 끝으로, 마지막 남은 흙으로 구덩이를 메꾼 라트는 고개를 숙였고, 많은 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죽음을 안타까워한다.

    ‘이 정도 깊이면 시체가 훼손 되지도 않겠지.’

    주변에 벌레들의 시체가 많으니, 시간이 지나서 시체가 썩기 시작하면 분명 짐승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 점을 염두해서 수고스러우나 무덤을 만든 것이고.

    “후우.”

    일을 끝마친 라트는 연금술로 갑옷을 해체하고 담배를 물려고 했으나, 이내 어린 아이가 옆에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담배를 집어넣었다. 그런데 자이리오스가 몇 살이더라?

    “신기한 갑옷. 검도 엄청 커.”

    팔찌 모양으로 돌아간 갑옷을 보고, 엘프 소녀가 신기하다는 눈동자로 팔찌와 라트가 들고 있는 대검을 바라보았다.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치명적으로 귀여웠으나, 라트는 별다른 생각 없이 대검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고, 소녀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게임 상, 자이리오스의 근력, 건강, 민첩 재능은 10. 그리고 바이올런의 영향력은 12.’

    유저는 특별한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절대로 영향력을 10 이상 올릴 수 없다. 그러나 바이올런에게 선택을 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이리오스는 바이올런에게 짙은 영향을 받는다.

    영향력, 직업을 결정하는 수치이기도 하나, 영향력이 높아질수록 그 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직업을 대성할 수 있는 수치이기도 하다. 라트가 근력의 재능이 부족하다고 하나, 한손검 그리고 양손검 기능 레벨의 성장이 빠른 이유도 바이올런의 영향을 짙게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신의 영향력을 짙게 받고 있다는 건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소녀가 저런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또래답지 않게 갑옷과 대검에 관심을 가지는 거다.

    ‘이제 어떻게 한다.’

    고개를 돌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몇몇 남자들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것인지, 비쩍 곯아있었고 심한 일을 당했는지 걷기 힘들어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도 상당하다.

    “하아.”

    애당초 이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기에, 노예상을 그냥 내버려두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유를 불문하고 자신은 이들을 구했다. 그리고 이후는? 구하고 내팽개친다면 결국 내가 역겹다고 느낀 벌레들과 다를 바가 뭐가 있는가.

    다를 게 없어. 구해줬다고 하나, 그 뒤를 생각지 못하는 이들을 내버려둔다면 이들은 또다시 절망하겠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절망할 것이다.

    이대로 그냥 가면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행위겠지. 그렇게 된다면 나나 그들이나 똑같은 짓을 하는 거다.

    “잠깐만 여기 있으렴.”

    “응.”

    리오스가 알았다고 하자, 라트는 사람이 없는 곳까지 가서 담배를 물었다.

    ‘그들과 나는 달라, 나는 저들을 구해줬으니까.’

    물론 라트가 그냥 간다고 해도, 저들 중 그 누구도 라트를 쉬이 원망하지는 못할 것이다. 짐승과도 같은 취급을 받던 상황 속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으니까.

    그러나 그들과 동격이 된다는 생각에, 사람을 구했다는 책임감 때문에, 라트는 쉽사리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쯧.”

    ‘이래서 끼어들고 싶지 않았는데.’

    연관된 사람을 구하는 것도 못하는 게 인간이다. 많은 사람을 구하는 이는 영웅이지. 그러나 그런 영웅도 곁에 있는 동료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 곁에 있는 자의 죽음으로 많은 이들을 구하는 것이 바로 영웅.

    그런 병신 같은 짓을 할 생각은 없어. 나는 수많은 사람보다, 주변에 있는 한 사람의 목숨이 더 소중하니까. 그러나 성격상 이미 구한 사람을 모른 채 하고 지나갈 수 있는 비정하지 못한다.

    특히나 저들같이, 미래를 볼 수 없는 이들을 내버려둔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아서, 그래서.

    “후우.”

    흩어져가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며, 결심을 굳힌 라트는 사람들 사이로 돌아갔다.

    “혹시 여기서 린느탐보프 왕국 시민이 아니신 분이 계십니까?”

    라트의 물음에 오로지 리오스만이 그 질문에 침묵할 뿐, 모두가 자신이 린느탐보프에 살던 사람이라고 답한다. 살고 있던 마을을 노예상에 의해 불탔다고 하니, 마을로 돌려보내는 건 무리다.

    ‘어제 머물렀던 마을로 데려가야겠다.’

    그나마 이 근방에서 가장 큰 마을로 데려간 후, 그쪽에서 가장 가까운 성으로 연락을 취하면 이들을 왕국에서 알아서 이들을 구제하려고 할 것이다. 노예상은 불법이었고, 자국민이 그런 꼴을 당했으니 국왕이 스스럼없이 나설 터다.

    이후의 계획을 정한 라트는 우선 엉망이 된 천막 속으로 들어갔다. 분명 이렇게 많은 이들이 이동하고 있었으니, 식량이 남아있을 거다.

    일단 그 식량으로 굶은 이들을 배불리 먹여야한다. 뭘 좀 먹어야, 마을까지 걸어갈 수라도 있을 거 아니야.

    “역시나.”

    엉망이 된 천막 사이에서 식량을 찾은 라트는 그것을 모두 인벤토리에 넣은 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져갔다. 먹을 것을 본 순간 사람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어났으나, 라트의 중재에 의해 소란이 잦아들었고, 조용한 식사가 이뤄졌다.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사이에 라트는 다시금 천막 사이로 들어갔다. 정확히는 천막을 헤치고 나왔다.

    ‘말들이 이쯤에 있었던 거 같은데?’

    다행히 홀로 세워진 나무에 매여 있는 6마리의 말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소란에서도 말들은 조금도 다치지 않고 거친 콧김을 내뿜는다. 거칠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딱히 문제는 없겠지.

    말들이 있는 곳 근처에는 박살이 난 마차 2대가 있었고, 라트는 그것을 보고 눈을 반짝였이더니 무색의 연금술로 박살난 마차를 복원시켰다.

    이 마차에는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사람들을 태울 생각이었다. 마차를 복원하는 것까지 마친 라트는 사람들 사이로 돌아가서 망가진 천막 중 몇 개를 다시 세웠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근처에 있는 마을로 데려다드리겠습니다.”

    라트의 말에 사람들은 잊어버렸던 웃음을 되찾았다. 삶의 터전이 불타고, 짐승과도 같은 대우를 받으며, 연고도 없는 타국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야할 일이나, 이들은 모두 앞길이 막막했다.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이들이 부지기수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남자가 근처에 있는 마을까지 데려다준다고 하자, 이제야 꽉 막혔던 앞길에 한 줄기 빛이 스미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살아남았고,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에 감격하여 울음을 터트린다. 부모를, 자식을, 연인을 얼싸안는다. 그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려고 했으나, 라트는 무표정을 고수했다.

    순순한 의도로 이 사람들을 구한 게 아니니까. 그러니까 나에게 웃을 자격은 없어.

    “오빠, 심각한 얼굴이야.”

    그나마 자이리오스의 말에 쓴웃음이라도 지을 수 있었다. 잠시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라트는 일찍 자라는 말을 남긴 후 혹시나 짐승이 나타날까, 밤이 새도록 불침번을 섰다.

    *****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끝마치고 걸을 수 없는 이들을 마차에 태웠다. 그리고 한쪽 마차는 라트와 리오스가 앉아서 마차를 몰았고, 다른 마차는 다행이도 마차를 몰 수 있는 이가 있었기에 그에게 맡겼다.

    마차가 있다고 하지만, 걸을 수 있는 이들은 모두 걷고 있기 때문에 속도는 현저히 느렸다. 라트 혼자서는 하루 만에 도달한 거리가, 여러 명에서 움직이다보니 이틀씩이나 소비되었다.

    마을에 도착하자 마을 사람들에게 이들의 사정을 설명하고, 근처에 있는 도시에 이 소식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3시간에 걸쳐 마나를 채우면서 무색의 연금술로 그들이 임시로 살 수 있는 말을 만들어주고, 마을 촌장에게 혹시나 소란이 일어나면 잘 중재해주라고 부탁하며 자신이 탈 말을 제외한 다른 말을 모두 주었다.

    임시 거처를 만들었을 때는 밤이 되었기에 마을에서 하룻밤 머무르고 다음 날이 되었다.

    리오스와 함께 마을에서 떠나기 전, 라트는 자신이 구한 모든 사람들에게 10실버씩을 쥐어줬다. 처음에는 사양하던 사람들도, 돈이라도 있어야 다른 곳으로 가도 편하게 정착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라트가 준 돈을 챙겼다.

    “이제 떠나시는 겁니까, 마법사님?”

    마법사라. 라트가 보여준 행위를 보고 남자가 구한 사람들도, 기존의 마을 사람들도 모두 라트를 마법사님이라고 호칭했다. 하긴 연금술이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는 이가 있을 리가 없지.

    “네.”

    “주신 홀리의 은총이 마법사님의 앞날에 머무르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라트에게 구원을 받은 이들이, 라트가 자국민을 구했다는 걸 알고 있는 이들이 떠나려고 하는 라트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어떤 의미로는 장엄하기까지 하다. 그들의 환대를 받으며 마을 밖을 나서는 순간.

    [인간의 머릿속에 평생토록 각인될 선행을 베푸셨습니다. 신성 스탯이 1 증가합니다.]

    “어?”

    별안간 나타난 알림창이 나타나자 라트는 당황하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선작과 추천, 원고료 쿠폰 항상 감사드립니다.

    Q과연여친있을까님 2장, 더몬스터님 10장, 후원 쿠폰 감사합니다. 그럼 글쟁이는 2000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