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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71화 (7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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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살려……줘.”

    나무에 의해 연약한 살이 찢어발겨져, 거친 숨을 내쉬며 고통을 호소하며 손을 내미는 이를 바라본다.

    “우리가, 무슨, 죄가……있다고.”

    나뭇가지가 안구를 찔러, 끈적끈적한 액체가 피와 함께 흐르고 있는 자를 주시한다. 무슨 죄가 있는가, 거기에 대해서 답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한 마디다.

    이곳에서 나를 만난 게 죄다. 나를 건드려서 이곳에 오게 했고, 최종적으로는.

    “내 심기를 거슬리게 한 것이 너희의 죄다.”

    인륜을 저버린 자를 인간으로 취급해야 하는가? 인륜을 배반하고, 어미와 아비 앞에서 초경도 지나지 않은 소녀를 범하려고 하는 것이 과연 인간인가? 그럴 리 없지. 그렇기에 너희는 선을 넘었고, 나는 그것이 거슬렸을 뿐.

    “고작, 그런 이유로 우리를?”

    “그 이상의 이유가 필요해?”

    그래 고작 그것뿐이야. 왜, 다른 거창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어? 도대체 뭐가 문제야. 너희가 여기 있는 사람들을 잡아온 건, 이 사람들이 무슨 죄를 저질러서 그런 게 아니잖아.

    단지 이 사람들이 힘이 없어서, 고작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잡혀온 것뿐이다. 그러니까 너희도 똑같아, 너희가 힘이 없기에 나에게 죽는 거다.

    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같잖은 정의감 따위, 버린 지 오래니까. 그래, 그러니까 다른 이유는 없어. 나는 그저 너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고작, 고작 그런 이유로 우리들을!”

    “닥쳐.”

    적어도 너희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다. 고작 눈에 띄었다는 이유로, 고작 돈을 벌고 싶다는 이유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인간을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하고 있는 너희가 할 수 없는 말이야.

    날카로운 나무가시에 꿰뚫렸으나, 아직도 생을 마감하지 못한 것들에게 안식을 내민다. 안식을 받지 않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치는 이들에게는 강제로 안식을 선물한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죽음을 선사한 남자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노예상을 바라보았다.

    “유언은, 아니 그런 걸 상태가 아니네.”

    믿고 있던 거인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오랜 시간동안 함께한 부하들이 썰물처럼 흐르는 나무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당황을 넘어서서, 허탈해졌겠지. 무리가 가진 힘을 압도하는 상대를 만났으니까.

    “너도 그냥, 죽어라.”

    달빛이 반짝이며 삶을, 그리고 그 끝을 노래하는 것으로 참극은 끝이 났다.

    라트는 소녀가 노예 아니, 잡혀온 사람이 있다고 한 천막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기면서 수많은 이들을 죽였다는 생각을, 거기서부터 흐르는 죄악감을 털어낸다.

    이번 일은 단순히 벌레를 밟아버렸을 뿐이다. 그 이상의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인간이 벌레를 죽일 때 죄책감을 느끼나? 그런 이들도 있겠지만, 그들은 굉장한 선인이거나, 그게 아니면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겠지.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야.’

    정의감은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교육받아온 도덕과 윤리관 때문에 생긴 같잖은 정의감에 불과하다. 지나가다가 사람이 쓰러져있으면 119에 신고를 하고 가던 길을 갈 정도의 정의감. 그런 정의감으로 사람을 구하겠다고?

    ‘개소리지.’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 사람을 구했다는 뿌듯함과, 사람을 죽인 것에 죄책감이 동시에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인간이니까.’

    인간이기에 언제나 고뇌하고, 고민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발전해오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이 고민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라트는 그런 생각과 함께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자네…가 소란의 주인공인……가?”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자욱한 피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노인은 고문이라도 당했는지, 형틀에 묶여진 채로 온 몸에서 피를 흘리는 중이었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우리에 갇힌 소녀도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저 노인이 먼저다.

    ‘성한 곳이 없잖아.’

    노인은 얼굴 뿐 아니라, 온 몸에 칼자국이 나지 않은 곳이 없어, 벌레들의 작태에 인상을 찌푸리며,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낸다. 저 정도 상처라면 포션으로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 만들어둔 포션도 상당히 많았기에 딱히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까운 포션을, 낭비하지 말게.”

    그러나 다음 순간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라트가 포션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을 막았다.

    “선의는 고마우나 포션을 먹는다고 더 살 수 있는 몸이 아니야. 내 말에 대답부터 해주게. 자네가 이 소란의 주인공인가?”

    짙은 죽음이 몰려온 목소리.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이 아니다. 원래부터 남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자의 목소리였다.

    “그렇습니다.”

    “그래, 그런가.”

    굉장히 안도한 듯, 노인은 편안하게 웃으면서 라트를 바라본다. 죽음이 드리웠음에도 처연한 모습에, 스승님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라트는 입술을 깨물고, 포션 뚜껑을 열어 노인의 몸에 뿌리기 시작했다.

    “허허허, 포션은 소용이 없다고 말했는데.”

    “아프시잖아요. 그리고 죽더라도, 몸 성한 채로 죽는 게 보기 좋잖아요.”

    “그래, 그렇군. 자네 말이 맞아.”

    무엇이 그리도 웃긴지 노인이 호쾌하게 웃는다. 그것이 구슬프게 들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노인의 몸에 있는 상처를 전부 치료한 라트는 그를 속박하고 있던 형틀을 부쉈고, 노인은 일어설 힘도 없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맙네.”

    마지막에 마지막, 선의를 베풀어준 것에 감사를 느낀 노인은 눈앞에 있는 청년을 향해 고개를 숙이더니, 마법을 해제했다.

    “리오스, 이리 오거라.”

    자신을 가두던 우리가 사라지자 소녀는 쫄래쫄래 노인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조금 전까지 소녀를 가두고 있던 우리는 이 소녀를 보호하기 위한 마법인 거 같다. 대상이 죽는다고 해도, 마력이 남아있는 한 계속해서 유지되는 마법인가?

    그렇다면 저 소녀를 우리에서 꺼내기 위해서, 노인을 이렇게까지 고문했다는 건가. 정말이지, 속사정을 알면 알수록 인간에게 해로운 해충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 놈들이다.

    그나저나, 리오스라니.

    ‘왠지 익숙한 이름이야.’

    어디서 들어봤더라? 지금까지 노인에게 신경을 쓰느라 시선을 주지 않던 소녀를 바라보았다. 귀여웠다. 저 또래 소녀는 대부분 귀엽지만, 저 아이의 귀여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저대로 어른이 된다면, 엄청난 미인이 되겠지.

    보라색 눈동자, 핑크색 머리카락, 양쪽으로 길게 세워지게끔 묶어져있다. 마치, 무언가가 지지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머리 모양이다.

    리오스라는 이름도, 저 조합도 굉장히 익숙하다. 그런데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오를 거 같으면서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할아버지, 이 오빠 눈 굉장히 신기해.”

    노인의 품에 안긴 소녀가 신기하다는 듯, 라트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다양한 눈 색깔이 있는 이 세계지만, 백색 눈동자는 굉장히 희소한 편이다. 그래도 그렇지, 대놓고 신기하다고 말할 줄이야.

    이것이 어린 아이 특유의 솔직함인가?

    “그래, 그렇구나.”

    노인이 껄껄 웃으면서 어린 소녀의 말에 동의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리오스. 할애비는 이제 너와 함께 갈 수 없을 것 같구나. 이 오빠를 따라가겠느냐?”

    “응.”

    ‘뭐야.’

    보통 저 나이 때는 할아버지 아니, 아는 사람을 떠나 모르는 이를 따라가라고 하면 꺼려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소녀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납득했다.

    아니 그것보다, 나를 따라가라고?

    “저기, 제 의견은…….”

    “부탁함세.”

    단호한 부탁에 라트는 입을 다물었다.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단호한 부탁, 거부할 수 있는가? 거부할 권리가 있기는 한가? 그리고 내가 저 소녀를 맡지 않는다면, 홀로 남은 소녀는 어떻게 되는 걸까.

    “후우.”

    갑자기 담배가 태우고 싶어졌으나, 나이 어린 소녀가 있기에 차마 담배를 꺼내서 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처음 본 저를 어떻게 믿고 손녀를 맡기려고 하십니까.”

    “손녀라. 그래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먼.”

    ‘손녀가 아니야?’

    노인이 소녀가 자신의 손녀가 아니라는 듯이 말하자 라트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손녀가 아님에도 저 소녀를 구하기 위해서 그 모진 고문을 모두 감내했다는 건가. 도대체 이 소녀의 정체가 뭐기에?

    “자네는 믿을 수 있네.”

    무엇을 믿고? 오늘 처음 본 나를 어떻게 믿을 수 있다는 건가. 오랜 세월을 살다보면 가질 수 있다는 혜안 기능이라도 있는 건가?

    “자네는 이곳에 들어왔을 때 리오스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어. 다친 나를 염려하고, 치료해주려고 했지. 그런 자네라면, 믿을 수 있네.”

    라트는 늙은 사람이 그런 끔찍한 몰골로 묶여있으면 누구라고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지만, 보통은 인간을 넘어선 소녀의 초월적인 미모를 보고 시선을 뺏기기 마련이었다.

    노인이 지금까지 만나온 모든 이들이 그랬다. 눈앞에 있는 이 청년을 제외하고는.

    “이 아이는 엘프일세, 그것도 하프 엘프가 아니라 순혈 엘프지.”

    “엘프요?”

    라트가 깜짝 놀라서 반문하자, 노인을 대신해서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머리를 푼다. 무언가를 지지대 삼아서 머리를 양쪽으로 묶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지지대가 바로 엘프 특유의 기나긴 귀였다.

    엘프, 노르스 대륙에서는 주인 없는 산맥에서 거주하는 이종족. 과거 그들은 대륙 곧곧에 살고 있었고 인간들과 교류를 나눴으나 그들의 수명과 아름다움 때문에 인간들은 그들을 노예로 잡기 시작했다.

    번식의 문제 때문에 인간에 비해 수가 적어서, 인간에게 저항할 수 없었던 엘프들은 결국 삶의 터전을 버리고 주인 없는 산맥으로 쫓기듯 도망쳤다는 설정이다.

    덕분에 인간 사회에서 엘프의 존재는 매우 희귀하다. 엘프의 피가 섞여있는 인간이야 지금도 많은 편이지만, 순혈 엘프가 인간 사회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귀족들의 주시를 받기는 충분하다.

    “네가 순순히 귀를 보여주다니, 저 오빠가 마음에 들었나보구나?”

    “착한 오빠 같아.”

    뭐가 착하다는 거야. 사람을 구한다는 순수한 생각조차 부정하다가, 결국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닌, 벌레를 밟아 죽인다는 이유를 들어서 난리를 피운 작자다.

    “이 아이의 이름은 자이리오스이네.”

    “네?”

    라트의 입에서 놀라움이 튀어나왔다. 조금 전 리오스라고 불리는 소녀가 엘프라는 것을 안 것보다 더욱 놀란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소녀를 바라본다.

    기억에 남아있는 중요한 NPC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어린 소녀의 모습이라서 지금까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확실히 이 소녀는 굉장히 중요한 NPC 중 한 명이다. 두 대륙의 역사에 지대한 공을 세우는 네임드 NPC이자, 커뮤니티 내에서 루브그흐 백작과 동등할 정도로 인기 있는 NPC지. 지금은 아니지만, 적어도 5년 후에는 그렇게 된다.

    5년 후, 메인 퀘스트 2번째 파트가 시작될 때 가장 먼저 앞장서서 마족을 도륙하는 자. 모든 전사에게 축복을 내리는 신, 바이올런의 성녀.

    후에 구원의 검이라고 불리는 성녀가 뜬금없는 상황에서 뜬금없는 시간대에 어린 소녀의 모습을 가진 채 라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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