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70화 (7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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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가볼까.”

주머니에서 데룬이 준 쇠붙이를 꺼내든 라트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결국 마음을 굳혔다. 그들이 하는 짓을 보자, 그 후에 어떻게 하는지를 결정해도 상관없어.

“여기는 외부인이 들어오실 수 없는 곳입니다.”

천막으로 막혀있는 중앙 쪽으로 걸어가자,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가 라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데룬이 준 쇠붙이를 보여주자 순순히 길을 비키고 나아가 라트가 들어갈 수 있게 천막을 걷어주었다.

천막을 넘어서자, 과연 이곳이 인세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외설스러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여자 한 명이 남자 세 명을, 반대로 여자 세 명이 남자 한 명을 상대하는 건 보통이오. 모녀나 자매로 보이는 여자들이 같은 남자에게 안겨 고통어린 비명을 내뱉는다.

고문을 당했는지, 몸에 상처자국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는 여자도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 우리에 갇혀있는 남자들은 자신의 가족이나, 연인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다.

“어이쿠. 안 오실 줄 알았는데. 이쪽으로 오시죠.”

그래 뭐, 이런 광경이 펼쳐지리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던 일이다. 예상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진 것뿐임에도 충격이 가시지 않았으나 지금 당장은 뭘 어떻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라트는 데룬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노예상이셨군요.”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라트를 속일 생각은 없었는지, 아니면 이 광경을 보여주고 라트를 한통속으로 만들 계략을 꾸미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데룬은 너무나도 간단명료하게 라트의 질문에 긍정했다.

“제가 신고하면 어떻게 하시려고 들어오라고 하셨습니까?”

“귀족도 아니시고, 국법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완벽한 정답이다. 라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떠십니까? 멋지지 않습니까?”

“그건 동의하지 못하겠네요.”

백 번을 양보한다고 해도, 눈앞에 벌어지는 육욕의 광경에는 멋지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그러나 딱히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을 뿐.

인간의 도리를 벗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세계, 힘이 정의인 이 세계에서는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일이기도 하다.

‘어떻게 할까.’

머릿속을 떠다니는 상념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부유한다. 힘이 없어 범해지는 이들을 구하는 게 옳은 일인가? 상대적으로 힘이 있어서, 힘이 없는 이들을 노예로 부리는 이들을 죽이는 게 옳은 일인가?

“하아.”

담배를 갈아 넣은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담배를 태우기 시작한다. 사저가 이 꼴을 본다면 담배 좀 작작 피우지 못하겠냐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왜 혼자서 여기 계십니까? 저들처럼 저기서 즐기지 않으시고.”

“저는 관음을 좋아합니다.”

“아, 예.”

거참 특이한 성벽이네. 짧은 감상평과 함께 상황을 관망하는 것도 잠시.

“싫어! 싫어어어!”

앳된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는 소녀가 나타나자, 라트의 표정이 굳어진다.

“좋은 말할 때 입 닥쳐라!”

“싫어요, 저리, 저리 가요!”

13살? 아니 그보다 어리다. 필시 아직 초경도 하지 못한 아이겠지. 저런 아이까지 범할 생각인가? 이게, 이게 힘을 가졌다고 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짓인가?

“그, 그 아이는 안돼요. 차라리 저를 아악!”

소녀의 어머니로 보이는 이가 필사적으로 남자를 말렸으나, 거친 발길질에 의해 바닥에 쓰러져 고통을 호소한다.

“엄마!”

“늙은 년이 어디서 지랄이야. 닥치고 있어.”

“그 아이는 안 됩니다! 제발, 제발!”

“입 안 다물어? 뒤지고 싶어?”

우리에 갇혀있던 아비가 필사적으로 손을 뻗으며 자비를 바라나, 돌아오는 말을 싸늘하기 그지없다.

“뭐, 뭔가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라트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자, 그의 기색을 살피던 테룬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린다. 그러나 라트의 귀에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문뜩 엘리와 케이네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물어볼 필요도 없다, 구하려고 했겠지. 노예상은 불법이고, 불합리한 일이니까. 뒷일은 괘념치 않고 당장 눈앞에 벌어진 참극을 수습하기 위해 나설 정도로, 그녀들의 심성은 고우니까.

그녀들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생각하자 굳은 얼굴에서 조금 풀어졌고, 조심스럽게 라트를 바라보던 테룬은 그가 미소를 짓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너무나도 이른 안도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아.”

주위가 얼어붙었다. 단순한 한숨, 그러나 그 한숨 안에 내포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다른 행동을 하려고 하는 이는 그 누구도 없다.

정의감? 아니, 그런 어줍잖은 감정으로 나서려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불만인가? 아니, 그것도 아니지. 그런 사소한 감정 때문에 귀찮은 일에 휘말릴 수는 없잖아.

그렇다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이 복잡한 감정은 무엇인가.

‘역겨워.’

그래, 역겹기 그지없다. 징그러운 벌레를 바라보는 인간이 드는 생각과 같이, 이 상황은 역겹기 그지없다. 엘리와 케이네의 얼굴을 떠올리자,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너무나 명확하게 정리되어서 웃었을 뿐이다.

저 사람들을 구하려고 이러는 게 아니다. 단순히 역겨워서, 이 해충들이 역겹다고 느껴져서, 그래서.

진심으로 밟아 죽이고 싶어졌다.

‘인간이 해충을 죽인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어.’

“라, 라트님?”

데룬이 그를 불렀으나, 라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서서히 소녀를 팔에 끼고 있는 남자를 향해, 적의 없이 다가갔다. 적의가 없는 모습에 그 누구도 라트를 제제하지 않았다.

아아, 어찌 적의를 보이겠는가. 어찌 적의를 보이겠는가. 하찮은 벌레를 밟아 죽이는 일에는 수고만을 곁들일 수 있을 뿐인데.

“아, 혹시 이 년을 안고 싶으십니까? 그러시다면 오늘 밤은 양보해드릴 수 있습니다.”

살기조차 보이지 않는 라트의 모습에 남자는 라트가 소녀를 안고 싶다고 생각해서 이쪽으로 왔다고 생각하고, 팔에 끼고 있는 소녀를 라트에게 내밀었다.

그것이 자신의 최후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도가 지나쳤어.”

인벤토리에서 대검을 꺼내, 그의 심장을 찌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 누구도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심장이 찔려, 죽음의 숨소리를 내뱉는 남자와 대검을 들고 있는 라트를 번갈아가며 바라볼 뿐.

“이 개자식이!”

그 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남자가 라트에게 달려들었지만, 그도 결국 라트의 검 앞에 먹이가 되어 피를 흩뿌렸다.

“엄마 옆에 붙어있으렴.”

바닥에 쓰러진 소녀를 일으켜세워서, 소녀를 애타게 부르고 있는 어머니에게 돌려보낸 남자는 등을 돌려, 노예상과 그의 부하들을 주시한다. 그 눈빛에는 적의도, 살의도 없다. 혐오스러운 것을 봤기에 역겨움만이 가득할 뿐.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갑자기?”

데룬 아니, 이름조차 언급하기 싫은 벌레의 물음에 입가를 비튼다.

“나를 노예로 잡으려다가, 날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좋게 돌려보내려고 했던 너희가 갑자기 왜 그러냐고 물어볼 자격이 있어?”

“그, 그건.”

급소에 찔린 듯 당황하여 말을 더듬는 노예상의 모습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날리며 팔찌에 연금술을 이용해 미스릴 갑옷을 장착했다.

“야, 빨리 무기 가져와! 아무리 소드 익스퍼드라도 다 같이 붙으면 승산이 있어!”

“그래, 맞아!”

벌거벗었기에 무장을 하지 못한 이들은 무기를 찾기 위해 천막 사이로 몸을 날렸다. 그래, 마음껏 무기를 들어라. 그리고 알아라, 그것이 얼마나 허튼 짓임을.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수르카!”

키가 제법 큰 편인 라트의 머리가 가슴팍 정도 밖에 닿지 않는 거인이 소란을 이기지 못하고 천막 사이에서 나타나자 노예상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저 벌레가 이들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강한 벌레인가?

“저 남자를 죽여!”

“뭐야, 도축 중이었어? 도끼를 챙겨오길 잘했군!”

인간을 상대로 도축이라는 소름끼치는 표현을 사용한 거인은 라트보다 훨씬 거대한 도끼를 치켜세우고 자신의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니까 무식한 놈들은 이게 문제야. 적당히 머리가 좋고 적당히 강한 놈들은 상대와 자신의 격차를 알기에 몸을 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무식한 놈들은 그런 게 없다. 적이 있으면 그저 달려들기 마련이다.

횡을 그리면서 자신의 목을 노리는 도끼를 바라본다. 격차가 어느 정도인지, 생각도 하지 않고. 지금까지 만나온 적들을 이겨왔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 몸을 맡기고 도끼를 휘두르는 벌레를 바라본다.

강철이 서로 부딪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노예상을 비롯해서 거인을 믿고 무기를 찾으러 가지 않은 모든 이들이 경악의 시선을 보낸다.

“어, 어떻게 저럴 수가.”

“이거 꿈이지? 내가 지금 악몽을 꾸는 중이지?”

들고 있는 대검으로 도끼를 받아친 것도 아니다. 갑옷으로 무장되어있다고 하나, 라트는 아무렇지 않게 맨손으로 도끼를 붙잡고 비릿하게 웃었다. 제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결국 벌레 무리 중에서 가장 강할 뿐이다.

지금까지 만나온 상대에 비하면, 이 새끼들은 터무니없이 약해.

“무슨!”

거인 또한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도끼를 회수하려고 했으나, 라트의 악력을 이기지 못해 도끼를 빼내지 못한 채 헛된 몸부림을 계속한다.

“가져가라.”

도끼를 그렇게 가져가고 싶다면, 가져가게 해주지.

손에 힘을 주자, 도끼의 날에 조금씩 금이 가더니 종극에는 그 날이 산산조각이 나서 바닥에 흩어졌고 도끼를 빼내기 위해 몸부림을 치던 거인은 바닥에 쓰러지며 주변에 흙먼지를 일으켰다.

“너, 너는 누구냐!”

지금까지 이런 상대는 없었다. 그 누구라도 해도 자신의 거대한 도끼를 무서워했고 그 날 앞에 피를 헌납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거인은 날이 부서진 자신의 도끼와 그 원흉인 라트를 번갈아보면서 정체를 물었고.

“인간.”

저들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 들려옴과 동시에 그의 얼굴에 차가운 대검이 찾아와 죽음을 고했다.

“도망쳐, 모두 도망쳐!”

“인간이 아니야. 누가 저런 괴물을 데려온 거야!”

노예상과 함께하던 이들은 거인이 죽은 것에 겁을 먹고 조금 전까지 희롱하던 노예를 내팽개치고 달아난다. 단 한 명, 노예상만이 도망치지 않고 황망한 시선으로 쓰러진 거인을 바라보고 있을 뿐.

“노예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냐?”

“맙소사, 수르카가 저렇게 허무하게.”

패닉 상태에 빠졌는지, 질문에 답도 하지 않고 시체로 변모한 거인을 바라본다. 저런 상태라면 질문에 답을 해줄 수는 없겠네.

“저쪽 천막에 잡혀온 언니랑 할아버지가 있어요!”

“고마워.”

어미의 품에 안겨있던 소녀가 데룬을 대신해서 답을 알려주자 라트는 소녀에게 감사를 전하고, 손을 땅바닥에 가져간다.

‘저쪽 천막만 안 건드리면 되겠지.’

“만연하라.”

라트가 현재 무색의 연금술로 연성할 수 있는 속성은 오로지 목속성 뿐. 그리고 천막을 세우는 뼈대는 나무다. 무색의 연금술을 펼칠 재료는 충분하다. 가시처럼 날카로운 나무들이 곳곳으로 뻗어나가, 모든 것을 사로잡는다.

“만연하라!”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빠르게. 도망치고 있는 놈들, 이쪽으로 다가오는 놈들, 이 소란 속에서도 자고 있는 놈들까지! 주제도 모르고 나를 노린 놈들을, 눈을 거슬리게 만든 역겨운 벌레들에게 죽음이 무엇인지 알려줘라.

시전자의 명령에 따라 가시를 품고 내뻗어진 나뭇가지들은 이곳에 있는 이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휘감아 거친 살결과 그 속에 내포해있는 부드러운 인육을 찢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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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올렸으니 자러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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