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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69화 (69/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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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비단옷과 값비싼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고 있는 남자가 라트를 맞이했다. 여기저기 살펴봐도 흉터 하나조차 없어, 도저히 용병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다.

    “어서 오십시오, 데룬이라고 합니다.”

    이 남자가 용병이 아니라는 것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상인인가? 그러면 호위를 위해서 용병단에 의뢰를 한 건가? 전쟁이 벌어졌으니, 전쟁 물자를 댈 생각인가? 그게 아니라면, 세 번째 경우의 수인가.

    “라트라고 합니다.”

    라트는 머리를 굴리는 걸 멈추고 예의바르게 자신을 소개했다. 딱히 이 자들과 연관될 생각은 없다. 의문이 있기는 하나, 신경쓰지 않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때도 있다.

    예의를 갖춘 이유는 상대가 먼저 예의 있게 나왔으니까. 그 이상의 이유는 없다.

    “부하들이 실례를 저질렀다고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게 그놈들이 주도한 건지, 아니면 윗대가리가 지시한 일인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괜히 시비조로 말했다가 적대적인 관계가 되면 귀찮아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은 순순히 사과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다친 곳도 없으니 괜찮습니다. 적당한 말 한 필만 주시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다행이군요.”

    순간, 데룬이 음흉하게 웃는 것을 확인했으나 딱히 그것을 신경 쓰지는 않았다. 말 한 필로 실력을 가늠할 수 없는 상대와 충돌을 피할 수 있다는데 저렇게 웃을 수도 있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상인이라면 이득과 손실 정도는 빠르게 계산할 수 있을 터.

    “전쟁 통에 어디로 가시려고 하십니까?”

    “사라히 왕국까지 가고 있습니다.”

    “오~ 저희와 목적지가 같군요.”

    라트의 대답에 데룬이 눈을 빛내며, 은근한 표정을 지었다.

    “실력이 뛰어나신 것 같으니 저희와 같이 가시는 게 어떠십니까? 가는 길에 저희를 호의해주신다면 보수는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급한 사정이 있으니, 거절하겠습니다.”

    ‘어디서 코를 꿰려고 들어?’

    잠시 어이없는 표정으로 데룬을 바라보다가, 서둘러 그 표정을 지운다. 자신이 지금 가만히 있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이들과 엮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이렇게 코를 꿰려고 들 줄이야.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다.

    “안타깝군요.”

    진심으로 안타까운지, 데룬은 혀를 차면서 안타까운 시선으로 라트를 바라보았다. 부하들이 말하길 최소 오러 베너렛, 어쩌면 오러 익스퍼드에 달하는 실력자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근육의 양을 보면 검사 같다는 생각이 딱히 들지는 않았으나, 오러를 사용한다면 근육은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손에 박혀있는 굳은살은 그가 상당한 시간동안 검을 잡아왔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급한 사정이 있다는데, 어쩔 수 없죠.”

    이런 실력자와 동행한다면 쉽사리 사라히 왕국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아쉬운 마음이 들 뿐, 라트를 굳이 잡겠다는 생각은 없었는지 데룬은 살며시 물러섰다.

    “그럼 오늘 밤은 여기서 머무르고 가시는 게 어떠십니까? 비박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적어도 천막에서 주무시는 게 길바닥에서 주무시는 것보다 피로를 푸는데 용의할겁니다.”

    확실히 침낭에서 자는 것보다야, 천막에서 자는 게 훨씬 좋기는 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천막이라도 하나 사올 것을.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해서 오두막을 짓는 방법도 있지만, 딱히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감사하죠.”

    꼼짝없이 도로변에서 노숙을 하리라고 생각했기에 데룬의 제안에 고마움을 느꼈다.

    “꺄아아아악!”

    적막함만이 가득하던 곳에서부터 한줄기 비명 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이 소리는 분명 천막들이 가로막고 있는 중앙 쪽에서부터 들린 목소리다.

    “이런. 오늘 밤도 창녀들이 고생을 좀 하는 군요. 부하들 중에서 좀 거친 놈들이 있어서 말입니다.”

    표정이 약간 굳어졌으나, 대수롭지 않게 거짓을 자아내는 모습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당황했으나 속마음을 숨기는 것이 진정 상인다운 모습이다. 아마 직감과 관찰력 기능이 없었더라면 데룬이 거짓을 고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주무시는 곳에 한 명, 넣어드릴까요?”

    능구렁이가 담을 넘듯,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한 데룬은 다시 한 번 음흉하게 웃는다.

    “그것도 거절하겠습니다. 연인이 있어서요.”

    라트는 연인이 있는데, 다른 여자를 품에 안을 수 없다는 고지식한 생각을 하는 타입이 아니다. 될 수 있으면 많은 여자를 안고 싶은 건 남자의 로망이지 않은가.

    일부다처제가 허락되는 세계이니, 가능하면 마음에 드는 여자 네임드 NPC와 이어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창녀는 그런 여자에서 제외지. 다른 남자의 성기가 들어가서 질척질척해진 음부를 공유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 실례했습니다.”

    변명이 제대로 먹힌 것인지, 데룬은 표정을 굳히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가 가능한 세계이지만, 한 남자만을 바라보는 여자도 있었고 반대로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남자도 심심찮게 있는 세계이기에 당연히 사과할만한 일이었다.

    “나가시면, 부하들이 주무실 곳으로 안내해드릴 겁니다.”

    “그쪽 사람들이 죽인 말 시체는 어떻게 할까요. 고기가 먹고 싶어서 죽였다고 했는데.”

    “아, 그거 말입니까?”

    그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는 데룬의 작태에 라트는 조금 전 마주친 이들이 자신의 말을 죽인 이유가, 고기를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고기를 먹고 싶은 게 아니었다면, 퇴로를 끊기 위해서 말을 죽인 건가.

    “부하에게 넘겨주면 알아서 처리할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생각이 있으시면, 이걸 보여주고 중앙으로 오십시오.”

    데룬은 조그마한 쇠붙이를 내밀었고, 대화가 종료되었다. 라트가 천막 밖으로 나가자,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이가 라트가 잘 곳을 안내해줬다.

    “이거 가져가.”

    “감사합니다.”

    인벤토리에서 말 시체를 꺼내서 내밀자, 주변에 있던 자들이 전부 합세해서 시체를 끌고 간다. 지금까지 눈에 들어온 이들은 전부, 상인과는 연이 없어 보이는 이들이었다.

    용병으로 생각하기에는 뭔가 이질감이 느껴진다.

    ‘부하들이라고 했지.’

    상인은 보통 고용한 용병들에게 부하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용병도 상인을 고용주라고 하지, 대장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남자와 여기 있는 용병처럼 보이는 이들의 관계는 고용 관계가 아니라는 건가?

    “후우.”

    천막으로 들어가기 전, 느긋하게 담배를 태워, 허공에 사라지는 연기와 함께 상념을 지운다.

    ‘괜히 참견하지 말자.’

    최우선은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지키는 것. 그 다음 우선시 할 일은 진 엔딩을 보는 일이다.

    정상적인 유저로써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중이라면 서브 퀘스트의 냄새를 맡고 이놈들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조사를 했겠지만, 지금은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거니는 중이다.

    귀찮은 일에 말려드는 건 질색이다. 네임드 NPC가 곤경에 처했다면 모를까. 네임드 NPC에게 빚을 만들어두면 언제든 그 빚을 받아낼 수 있는 날이 올 테니까.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살려줘요!”

    담배를 거의 다 피워가던 중, 두 여성이 천막 밖으로 기어 나오더니 그 중 한 명이 라트를 발견하고 소리를 지른다.

    “가만히 있어, 이 년들아!”

    두 여성을 쫓아 급히 천막 밖으로 나온 남자가 손을 들어 올리려고 하자, 옆에 있던 여인이 그의 다리에 매달렸다.

    “저는 상관없으니까, 제 딸은 건드리지 말아주세요. 이렇게 빌게요, 제발!”

    “다치기 싫으면 얌전히 따라와라.”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들었던 손을 내리더니, 라트를 발견하고 겸연쩍게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미, 저들 사이에서는 라트가 어느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소문이 난 모양이다.

    ‘모녀 관계인가?’

    “후우.”

    천막 밖으로 나왔던 두 여성 중 한 명은 이제 막 자신의 나이 또래로 보였다. 옆에 있던 여자는 그녀의 어머니일 것이다. 창녀라면 저렇게까지 살려달라고 말하지 않겠지. 그들은 몸을 팔고, 웃음을 팔아서 돈을 버는 직업이니까.

    ‘세 번째 경우의 수. 노예상.’

    도적도, 용병단도 아니라면 나오는 대표적인 세 번째 경우의 수는 노예상이다.

    전쟁 중에는 나라의 치안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 틈을 노려서 수많은 노예상들이 생기고, 그들이 평민들을 노예로 잡는다고 해도 전장 속에 군대를 보낸 왕국은 딱히 그들을 제제할 방법이 없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활동을 장려하는 왕국도 있다.

    그런 왕국에서는 신선한 노예를 구입해서 병사로 써먹기 위해서 병사로 써먹기도 하고 혹은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한다. 창녀보다 돈이 적게 들기도 하고, 노예는 병사들보다 신분이 낮기에 죽인다고 해도 별 문제는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들 입장에서는 노예를 써먹는 게 훨씬 좋은 방법이지.

    “하아.”

    이들의 정체가 노예상이라는 걸 알자, 급격히 기분이 나빠진다.

    왕국이 평안한 시기에는 노예상은 함부로 활동할 수 없다. 왕도 아닌, 상인 주제에 평민의 신분을 노예로 격하시키고, 자국의 시민을 타국에 파는 짓거리가 용납이 될 리가 있나.

    그러니까 이런 전쟁 때야 말로, 노예상들이 움직이기에는 최적의 시기였다. 커뮤니티 공략글 중에서 왕국 전쟁 시기에 노예상으로 활동하여 어마어마한 골드를 벌어들일 수 있다는 글도 있을 정도니까.

    이게 게임이었다면 라트는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 게임에 수천 시간을 투자하면서 노예상을 워낙 많이 봐왔으니까. 그러나 이건 2d 게임 월드 세리아가 3d, 현실이다.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다가 갑작스럽게 노예가 돼서 전장으로 몰리는 그들의 기분은 도대체 어떨까.

    그들이 노예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쟁이 벌어져서? 우연히 노예상의 눈에 띄었기 때문에?

    ‘힘이 없어서지.’

    그 원인이 무엇이든, 저들이 노예가 된 것은 결국 힘이 없어서다. 그렇다면 저들을 구하는 것은 올바른가? 힘이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저들을 구할 수 있어.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가?

    힘이 있다고, 힘이 없는 이들을 구하는 것은 올바른 일인가? 노예상도 결국 힘이 없어서, 돈이라는 힘을 얻기 위해서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과연, 힘이 없는 이를 구했다고 한들, 이들이 이후에도 이런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기는 한가.

    모두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는 결말은 오로지 동화에서만 나올 수 있는 말이야. 현실은 동화가 아니지. 그렇기에 누군가를 구한다고 해도, 그 뒤에 벌어질 일이 어떨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구한 이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다면, 결국 자기만족을 위해서 사람을 구하는 꼴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꿈틀거리는 이 감정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째서 이들이 노예상이라는 걸 안 순간부터, 기분이 나빠졌는가.

    “빌어먹을.”

    그것을 알면서도 어째서, 조금 전 자신을 향해 필사적으로 구해달라고 소리치던 여자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가. 눈을 감고, 마지막 한모금의 담배를 내뿜었다.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하아.”

    담배를 갈아 넣으면서 한숨을 내쉰다. 갈피를 잡지 못한 마음을 다잡아보려고 했으나 여전히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둥둥 떠다니는 중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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