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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67화 (67/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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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린느탐보프의 외각 성에서 사라히의 외각 성까지는 도보로 3개월, 말을 탄다고 해도 중간에 산이 있다는 걸 고려해서 약 2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비된다. 도대체 무슨 플래그가 꽂혀서, 사라히 왕국이 벌써부터 전쟁에 돌입했는지 알 수가 없다.

    ‘변수가 너무 많아도 문제라니까.’

    보통은 전쟁이 일어나고 5개월 정도 몸을 사리는 사라히 왕국이지만, 그들이 초반부부터 전쟁에 참가하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변수 때문에 차리친 왕국이 먼저 사라히 왕국에게 전쟁을 선포한 경우.

    그 외의 경우도 몇 가지 있지만,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사라히 왕국이 전쟁 준비를 확실히 해놔서, 다른 왕국과 전쟁을 해볼만하다고 판단을 내렸을 때다.

    원래 사라히 왕국은 백작님을 맹렬히 빨아재끼는 유저들이 없었다면, 스타팅 지역으로 그렇게 좋은 왕국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땅이 좋지 않아. 국토의 30%가 사막이기에 굉장히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고, 가난하기에 왕국 전쟁에서 멸망의 위기를 자주 겪는 나라였다.

    아마 루브그흐 폰 글란츠라는 명장이 없었더라면, 사라히 왕국은 모든 변수를 포함한다고 해도 십중팔구 멸망당했을 게 분명하다.

    ‘그만큼 군사력에 목숨을 걸고 있는 나라이기는 하지.’

    시장에서 먹을 수 있는 식량과 현자에게 선물을 할 것을 구입한 라트는 사라히 왕국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평가를 끝냈다.

    사라히 왕국은 다른 왕국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국토를 가지고 있지만, 사막 때문에 다른 왕국에 비해 발전이 느리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나라의 영토에 상당히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돈이 없기에 다른 나라에 비해 병사들의 질이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전쟁 중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기에 주인 없는 산맥을 먼저 차지해서 질 좋은 광석을 얻으려고 하는 게 그들의 주된 방식.

    ‘국왕파가 귀족파를 눌렀나?’

    가진 것이 많기에 전쟁을 꺼려하는 귀족파, 타국에 비해 자신의 나라가 약한 것을 알기에 국익을 우선시하고 전쟁을 원하는 국왕파.

    안 그래도 다른 나라에 비해 약한 왕국이 다른 왕국처럼 파벌까지 갈려있으니,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그러나 혹시나, 전쟁 직전에 국왕파가 귀족파를 눌렀다면? 그러면 그들이 왕국 전쟁 초반부에 전쟁의 물결에 몸을 맡긴 것도 이해가 된다.

    “뭘 드릴까요?”

    “노숙할 때 쓸 수 있는 침낭이요.”

    어지간하면 마을에 들려서 잠을 잘 생각이었지만, 노숙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에 미리미리 침낭을 구입했다. 그 외에도 담배를 비롯해서 몇 가지 용품을 구입한 라트는 그제야 떠날 준비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아, 물도 좀 가져갈까?”

    말을 타고, 성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중 문득 생각이 들었다. 국토의 30%가 사막인 사라히 왕국에는 식수 때문에 고생하는 성이 몇 개 있다. 여기서 물을 판다면? 월드 세리아판 봉이 김선달이 나타나는 순간이다.

    ‘특히 식수가 부족한 귀족이라면 물을 사겠다고 난리를 치겠지?’

    지금 당장은 돈에 딱히 관심이 없지만, 나중 일은 그 누구도 모른다. 갑자기 돈이 필요한 순간이 생기면, 그 때가서 스승님께 손을 벌릴 바에야 벌 수 있는 아이템이 생겼을 때 돈을 벌어두는 게 좋았다.

    근처에 있는 강가로 달려간 라트는 무색의 연금술로 거대한 나무통 10개를 만들고 그 안에 물을 담은 후 인벤토리에 넣었다.

    여기서는 이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물이, 사라히 왕국의 몇몇 성에서는 금보다 비싼 액체로 변모하게 된다는 사실에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물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가 없으니까.’

    그 외에도 식수로 사용할 겸, 조그마한 통 몇 개를 만들어서 물을 넣은 라트는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말에 올라탔다. 그러나 잠시 동안 자신이 무언가 해야할 일을 하지 않은 것 같은 위화감이 들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지?’

    메인 퀘스트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아서 생긴 쓸데없는 기우심 때문인가? 아니야, 그건 아닐 거다. 라트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전쟁 초반부, 전쟁의 판도를 뒤엎을 수 있는 대형 퀘스트가 나타날 때까지는 어림잡아서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유저가 그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소소하게 벌어지는 전쟁을 무시하고 레벨 업에 치중할 수 있지 않았던가.

    ‘1년 안에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놔야지.’

    흑마법사들의 세력을 깎는 소소한 일부터 시작해서, 흑마법사들이 있는 곳에 어째서 이런 석판이 있는지도 알아볼 생각이다. 그리고 레벨 업도 착실히 해놔야겠지.

    ‘아, 그 사람도 찾아봐야하는데.’

    문뜩 무색의 연금술을 배우고 싶다면 자신을 찾으라고 했던 쪽지가 기억난 라트는 머리를 싸맸다. 분명 자신을 회색의 연금술사라고 칭했었지? 쫓기는 몸인 건 확실해보이지만, 괜히 지금 카르세이나 대륙으로 이동해서 제국 반란과 관련된 플래그가 꽂히면 골치가 아파진다.

    그러나 과연 그가 제국 반란 중에 죽지 않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무색의 연금술은 지금도 강력하지만, 나무가 없으면 아무짝에 쓸모없는 무능한 연금술이 되어버린다.

    그를 만나서 완전한 무색의 연금술을 배우지 않는 이상, 반쪽짜리에 불과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생명의 연금술과 합쳐져서, 기가 막힌 효율을 뽑아내고 있는 중이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카르세이나 대륙으로 갔다가 제국 반란에 휘말리기라도 굉장힌 일이 벌어진다.

    잘못하다가는 반란이 끝나기 전까지 혹은 반란이 성공해서 새로운 제국이나 왕국이 세워지기 전까지 노르스 대륙으로 돌아올 수 없는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트는 깔끔하게 카르세이나 대륙으로 가는 선택지를 지워버렸다.

    ‘그래도 그렇게 도망 다닐 정도면, 쉽게 잡히지는 않겠지.’

    겨우 며칠 떨어졌다고 엘리가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데, 반란에 휘말려서 몇 년 동안 노르스 대륙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 전에 미치지 않으면 다행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아, 맞다. 편지!”

    그제야 자신이 뭘 빼먹었는지 기억한 라트는 말을 다시 돌려 성으로 돌아갔다. 셀룬이 켈랑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서 포탈로 직접 이동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편지를 보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우체국에 들려, 엘리와 케이네 그리고 스승님께 보내는 편지를 작성해서 전송 마법을 통해 편지를 보낸다고 말하고 수수료로 1골드를 지급한 라트는 그제야 사라히 왕국으로 떠날 수 있었다.

    ‘답변을 받는 건 무리지만, 내 소식을 전해주는 거 정도는 해줄 수 있으니까.’

    가족 같은 케이네와 제스맹도 그렇겠지만, 이제 막 연인이 된 엘리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을 터다.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자 흡족하게 웃으며 말을 몰았다.

    *****

    중간, 중간 눈에 보이는 큰 마을에 들어가서 지친 말을 쉬게 하고, 식사를 한 후 잠에 빠지는 패턴이 일주일 정도 흘렀다.

    큰 마을은 서서히 눈에 보이지 않기 시작하고, 중간 규모 혹은 작은 마을만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조금 있으면 사라히 왕국과 린느탐보프 왕국의 국경이 겹치는 구역에 도달하는 신호였다.

    “이제 편히 잠자는 건 글렀네.”

    아마 조금 더 가면, 작은 마을도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당분간 여관은 고사하고 작은 마을의 헛간에서 잠을 자는 것도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여겨지겠지.

    “너도 고생길이 훤하다, 임마.”

    일주일 사이에 조금 정이 들었는지, 라트는 말의 갈기를 쓰다듬어주면서 달리는 것에 박차를 가한다. 이런 도로변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게 너무나 안타까웠다.

    사라히 왕국과 린느탐보프 왕국의 국경지역에는 산이 있기에 계속 도로를 이용하려면 중간쯤에 빙빙 돌아가야 한다. 당연히 그럴 생각은 없다.

    산 속으로 가는 게 훨씬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산에서 나오는 몬스터를 잡으면 레벨 업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계속 도로를 이용할 리가 없지.

    해가 저물도록 말을 몰다가, 주변을 돌아보자 마을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와, 슬슬 마을이 보이지 않을 거라고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예상을 하자마자 노숙행이라니.

    “엘릭서를 구할 때도 노숙은 안했는데.”

    그 때는 운이 좋아서 조그마한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는 일이 많았다. 엘릭서를 발견하면 곧바로 귀환 스크롤을 찢어서 근처 성에 도착할 수 있기도 했고.

    “으, 노숙은 싫은데.”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을 해야 한다는 점에 라트는 인상을 찌푸렸다. 길바닥에서 자면 혀도 돌아가고, 몸도 쑤시고, 어쩌고저쩌고. 갖은 불평을 쏟아내는 중이지만, 말도 생명인데 쉬게 해줘야지. 더 혹사하다가는 바닥에 쓰러질 것이다.

    ‘어쩔 수 없지.’

    근처 나무에 말을 묶은 라트는 나무통에 물과 사료를 쏟아서 말에게 먹으라고 준 후, 야영을 준비했다.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와 잡초를 주워서, 가지고 있는 성냥으로 불을 지피고 침낭을 깐다.

    그리고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요량으로 인벤토리에서 육포를 꺼낸 후 모닥불에 살살 굽기 시작했다.

    “컴퓨터가 그리워!”

    이걸 먹으면 곧바로 잠을 잤다가, 여명이 트는 순간에 일어나서 다시 길을 나서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 그지없다. 길드에 있을 때는 잠이 올 때까지 연금술이나 검술 수련을 하면 됐다.

    6개월 동안 엘릭서를 찾을 때도, 잠이 올 때까지 검술 훈련을 했었지. 그러나 지금은? 잠이 올 때까지 검술 훈련을 했다가 내일 낮까지 잠들면 곤란하기에 무조건 일찍 잠에 들어야했다.

    잠이 오지 않아서,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살펴보거나 웹툰을 보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졸리지는 않으나 할 게 없으니 자야하는 날이 올 줄이야.

    “스마트폰도 그립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외딴 곳에서 잠을 자려고 하니, 오랜 만에 첨단문물이 그리워졌다. 이곳에 처음 와서 약 한 달간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없는 생활에 고생했던 기억이 나자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도, 별은 밝네.”

    지구에서는 해외로 여행을 가지 않는 이상 절대로 볼 수 없는 밝은 별이 수놓아진 하늘을 바라보며, 첨단문물에 대한 그리움을 살며시 지우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육포를 입에 물었다.

    “라면이 땡기는 밤이야.”

    육포를 먹고 있으니 캠핑을 하는 느낌이 났기에, 갑자기 라면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캠핑하면 라면이잖아? 물론 이 육포도 엄청나게 비싸고, 비싼 만큼 맛이 괜찮았지만, 지금 아련히 생각나는 건, 싸구려 라면 한 그릇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지. 컴퓨터니, 스마트폰이니, 라면이니, 그것은 그저 그리움의 표상일 뿐, 진짜로 그리운 것은 바로 집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살던 집 구조가 떠오르지 않는다. 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길드에 있는 자신의 방이었다. 3년이라는 기간 동안 그리움이 지친 것인가? 그게 아니면 집을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이 세계가 마음에 든 건가?

    “지랄.”

    이미 집에 대한 그리움은 대부분 희석됐다는 건 알고 있다. 그나마 아직까지도 이런 생각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부모님의 존재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고아였다면, 진즉 지구에 관련된 기억을 지워버리고 이곳에서 살 수 있는 기반을 찾느라 바쁘게 돌아다녔을 것이다.

    신분 차이 때문에 평민이 살기는 어려운 곳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은 제스맹의 제자이고 공작의 후계자인 엘리와 연인 관계다. 그리고 당연히 평민과 귀족이 사랑의 결실을 맺는 동화같은 이야기에 기댈 생각은 없다.

    제국이 아닌 왕국에서도 평민이 귀족이 되는 방법 정도는 알고 있다. 신분 차이 때문에 엘리와 헤어져야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거다.

    잠깐만, 나 지금 엘리랑 헤어지지 않기 위해서 귀족이 되려고 한 건가?

    ‘돌아버리겠군.’

    아무래도 지구로 돌아갈 생각은 머릿속에서 거의 사라졌나보다. 결국 진 엔딩을 보려고 하는 이유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기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 게이머로써 열망 때문이겠지.

    “어?”

    그 순간 날카로운 직감이 위험을 알려왔다. 재빨리 검을 꺼내들고 주변을 살피던 중 무언가가 날아오더니, 허겁지겁 사료를 먹고 있던 말의 머리를 꿰뚫는다.

    “아…….”

    머릿속에 분노와 당황이 가득차서,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쓰러진 말을 바라보았다. 입을 뻐끔거리고 있으나 얼마 가지 않아 저 생명은 다하고 말겠지.

    “나와…….”

    말 덕분에 걸을 필요 없이, 여기까지 편하게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당황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분노가 자리잡는다. 이제 조금 정이 들어서 내일 쯤 이름이라도 지어줄 생각이 있었는데.

    “나오라고, 어떤 새끼들인지 면상 좀 구경하게!”

    이 미친 새끼들이. 어떤 놈들인지는 몰라도 노릴 거면 차라리 날 노릴 것이지. 왜 애꿎은 말을 노리고 지랄이야. 도대체 이런 인적이 드문 곳에 누가 자신을 습격하려고 하는지 의문이 들었으나, 지금 당장은 의문보다 분노가 먼저였다.

    ============================ 작품 후기 ============================

    오우, 깜빡 졸았다데스...그대로 잤으면 글 못올릴 뻔 했다 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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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이군?님 10장, 루이요님 1장 빈030님 2장, TheAvenger님 10장, 반박불가님 1장 후원 쿠폰 감사합니다..으..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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