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6 / 0229 ----------------------------------------------
1부
---
명칭 : 검은 영혼의 휴식처 등급 : 희귀
형태 : 반지 특수 효과 : 마나 + 1000
인챈트 : - 내구도 : 100%
---
---
명칭 : 사파이어 반지 등급 : 특별
형태 : 반지 특수 효과 : 마나 회복 속도 + 5%
인챈트 : - 내구도 : 100%
---
---
명칭 : 어둠의 길 등급 : 희귀
형태 : 목걸이 특수 효과 : 사용 마나 감소 + 5%
인챈트 : - 내구도 : 100%
---
“괜찮네.”
마나야 부족하면 포션을 마시면 그만이라서, 근력이나 민첩 스탯을 올려주는 장신구가 필요했지만, 그걸 구할 수 없는 지금은 꽤 쓸모 있는 아이템이다.
‘좀 사용하다가, 나중에 괜찮은 장신구로 바꿔야지.’
이름이 좀 께름칙하기는 하지만, 딱히 수상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으니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상자 안에 있던 장신구와 그 밖에도 흑마법서로 보이는 책을 모조리 쓸어 담은 라트는 묘한 시선으로 상자를 바라보았다.
장신구 아래에 있던 서류더미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 서류는 린느탐보프에 숨어있는 흑마법사들이 어디에 거주하고 있는지 쓰여 있는 서류다. 그런데 어째서 이 상자가 이상하게 느껴질까?
차분히 상자를 바라보던 중 관찰력 기능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겉에서 본 것보다 상자 안이 얕게 느껴졌다.
“뭐지?”
상자를 들어서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 라트의 눈에 이채가 서린다. 혹시나 했는데 이거, 이중바닥이잖아. 가벼운 마음으로 상자를 부수자, 바닥에 석판 조각 하나가 떨어졌다. 떨어진 석판 조각을 바라본 라트는 그 즉시 가벼운 마음을 지우고 경악한 듯, 석판을 바라보았다.
“이게 왜 여기 있어?”
흑마법사가 가지고 있을 석판 조각, 라트는 단 하나의 가정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악신의 석판, 제국 반란과 왕국 전쟁이라고 칭하는 첫 번째 메인 퀘스트가 끝나면 나타나는 두 번째 메인 퀘스트. 악신, 마왕이라고 불리는 것을 섬기는 마족이 지상으로 나오려고 하는 퀘스트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석판 조각이다.
이 석판을 전부 모으면 마계로 통하는 문을 열 수 있다. 그 때문에 인간계에 힘겹게 숨어든 마족들이 이 석판 조각을 모으고 있으며, 왕국 전쟁은 몰라도 제국에서 반란이 일어난 까닭은 바로 마족들이 주의의 시선을 돌리고 석판 조각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어째서, 마족과는 거의 연관이 없는 흑마법사들이 이 석판 조각을 가지고 있는가. 그런 의문을 가지고 석판 조각의 정보를 확인한 순간.
---
명칭 : 이름 없는 신의 석판 조각 등급 : ?
형태 : 석판 특수 효과 : ?
인챈트 : - 내구도 : 20%
---
라트의 몸이 마치 석화의 마안에 당하기라도 한 듯 굳어졌다.
‘이름 없는 신의 석판 조각이라고?’
악신의 석판은 아이템 정보에 악신의 석판이라고 표기된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 석판은 악신의 석판과는 전혀 다른 물건이라는 뜻이 된다. 도대체 뭐야, 이런 아이템은 본 적도 없고, 커뮤니티 내에서 들어본 적도 없다.
[이름 없는 신의 석판을 찾으셨습니다. 특수 스탯 신성이 생깁니다]
[축하합니다, 진 엔딩으로 향하는 두 번째 조건의 일부를 획득하셨습니다]
“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알림창에 라트는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을 하고 말았다. 이 석판이 두 번째 메인 퀘스트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물건이라는 거야 알아차렸지만, 지금 뭐라고 한 거야?
그러나 알림창은 라트의 의문에 답해줄 마음이 없는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진 엔딩을 보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이라니. 뜻 밖에 행운, 그러나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하고, 들어본 적도 없는 상황을 마주했기에 기쁨보다는 당황이 컸다.
‘이런 걸 왜 흑마법사가……. 아니, 그보다 이런 게 도대체 왜 이게 여기 있는 거지?’
몇 가지 전제 조건, 자신이 귀족이고 이 건물에 누가 있는지에 관한 증거를 하루 안에 전부 수집할 수 있는 최적의 루트를 알고 있다면, 메인 퀘스트가 시작된 직후 3일 안에 이곳을 처리할 수 있다.
마법사로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이곳에 있는 장신구 중 하나만 얻는다고 해도 꿀이니까, 공략글이 베스트 게시물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기도 했었다. 다만, 지금 라트와 비슷한 시간에 이 퀘스트를 클리어한 유저도 이런 아이템을 본 적이 없다는 게 문제다.
‘어디서부터, 플래그가 꼬였지?’
그렇지 않고야,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아이템이 발견될 리가 없다. 도대체 어디서 문제를 일으킨 거지? 어지간하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였지만, 그래도 문제를 일으킨 곳이 워낙 많아서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신성은 또 뭐고.”
재능
근력 : 6/10, 건강 : 5/10, 민첩 : 5/10, 마력 : 10/10, 지혜 : 10/10, 매력 : 5/10, 행운 : 10/10, 신성 : ?
스탯(남은 포인트 : 106)
근력 : 20 + 125(+9), 건강 : 19 + 120, 민첩 : 15 + 105, 마력 : 112 + 80, 지혜 : 100 + 80, 매력 : 5 + 50 신성 : 8
프로필을 살펴보자, 알림창이 말대로 신성 스탯이 생겨있었다. 이 세계의 사제들에게 신성력이라는 개념은 없다. 마나를 이용해서 신의 이적을 빌려올 뿐이지. 그러니까 신성이라는 스탯은 사제와 관련된 스탯은 절대로 아니었다.
“후우.”
이럴 땐 담배뿐이야. 담배를 피면서 소수를 세며 마음을 침착하게 가다듬자, 머리를 냉정하게 만들 수 있었다.
플래그가 아무리 꼬인다고 해도, 전체적인 구도는 알아서 돌아갈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아이템은 메인 퀘스트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니까 메인 퀘스트 쪽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을까?
계속되는 추측에 머리가 아파오려고 하자, 라트는 고개를 저었다. 좋게, 좋게 생각하자. 이걸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늘어나지 않았는가.
“돌아가자.”
여기서 고민하고 있어봐야 탁상공론일 뿐이다. 후에 이 석판 조각을 알고 있는 NPC와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모든 의문은 그 때 해소하면 그만이었다.
흑마법사들이 거주하고 있는 서류를 내버려둔 라트는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서 경비병에게 이 건물에 소란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리고, 적당한 식당에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끼니꺼리, 가격은 상관없으니까 푸짐한 걸로.”
아침을 거르고 격렬한 운동을 한 덕분에 배가 몹시 고팠다. 이제는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식욕이 사라지지 않는 자신의 변화에 살짝 놀랐으나 곧바로 그 놀라움을 지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일지 모르면서, 고작 이런 변화에 놀랄 수는 없지 않은가.
잠시 후, 큼지막한 고기 덩어리와 빵이 나오자 라트는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사라히 왕국에 들려야 하나.’
사라히 왕국, 케이네의 아버지이자 백작님이라는 호칭으로 익숙한 루브그흐 폰 글란츠가 있는 왕국이다. 사저의 아버지를 보러 가려고 사라히 왕국으로 가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라히 왕국의 깊은 숲 속에는 게임에서 지능이 뛰어난, 스탯인 지능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가지고 있는 지식이 뛰어난 숲의 현자라고 불리는 NPC가 살고 있다.
그는 마법사도 연금술사도 아니지만, 가지고 있는 지식이 어마어마하게 방대했고 덕분에 게임 초창기에는 유저들이 그에게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사라히 왕국으로 갔었다.
뭐, 게임에 대한 공략이 거의 다 끝난 지금은 그런 NPC가 있는 줄 모르는 유저들도 있었지만. 그 현자라면, 이름 없는 신의 석판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 않을까?
로브를 깊게 눌러쓰고 절대로 타인에게 얼굴을 노출하지 않는 현자의 모습을 떠올린 라트는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 현자를 만나러 가는 건 좋다. 문제는 그 현자에게 질문을 하려면, 공짜로는 안 된다는 거다.
‘뭘 사가지고 가야 하지.’
질문에 따라 바라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다. 아마 이 석판에 대해서 물으려면, 꽤 많은 선물을 줘야겠지.
‘과자랑 차면 되려나.’
현자는 제물을 바라지 않는다. 차와 과자 같은 간식류, 아니면 자신이 보지 못한 책을 보답으로 받기를 원한다. 과연 과자랑 차를 선물해준다고, 질문에 답해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보다 더 많은 걸 바란다면 그 때가서 구하면 되겠지.
식사를 마친 라트는 값을 치르고 식당 밖으로 나와서 시장으로 향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 두 남자가 앞을 가로막았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래, 실례했지.’
갑자기 앞을 가로막은 것치고는 예의바른 모습이었기에 라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들의 모습을 살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비단 옷을 입은 것만으로 이들이 불량배, 양아치 같은 족속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시선을 올려, 그들의 목걸이에 홀리의 신표라고 할 수 있는 십자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본 라트는 이들이 신전에 연관된 사제라는 것을 깨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까먹고 있었다.’
왜, 왜, 왜 잊어먹고 있었는가. 린느탐보프의 수도, 스톡홀름에는 홀리의 성자가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성자의 능력을 바로, 어떤 일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힘이다.
그래서 유저가 스톡홀름에서 난리를 부리고, 그 흔적을 지운다고 해도 성자의 능력 때문에, 들통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무슨 일이시죠?”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어서, 짐짓 태연하게 물음을 던져보았으나, 다음 순간 사제의 입에서 나온 말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성자 안톤님께서 그대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
두 사제의 뒤쪽에는 성기사 5명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따라가기 싫다고 하면 강제로라도 따라오게 할 생각으로 보인다. 딱히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봐서, 따라가도 별 문제는 없겠지만.
‘아직 신전하고 연관되고 싶지는 않은데.’
유저가 사제나 성기사 같이 신전과 연관이 깊은 직업이라면 모를까,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초반부에 신전과 연관되고 싶어 하는 유저는 아무도 없을 거다.
신에게 봉사, 라는 명명 하에 귀찮은 퀘스트를 내주는 신전을 누가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연관을 가지고 싶어 하겠는가.
설정 상 모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신들은 모두 공평한 관계다. 그런 주제에 신들의 주신이 홀리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말에 따라 신에게 봉사해봐야, 우와 너 믿음이 쩌는 구나. 보답으로 내가 축복을 내려줄게. 하는 신이 있을 리가 없다.
“거절하겠습니다.”
나중은 몰라도, 지금 당장 신전과 연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에 거절의 뜻을 내비추자, 뒤쪽에 있는 성기사들의 시선이 험악해졌다.
“무려 성자님께서 뵙고 싶어 하시는 겁니다. 다시 한 번 고려해주시겠습니까?”
“시간이 없어서요.”
시간이야 넉넉하지만, 신전에 투자할 시간은 없다. 사제나 성기사라면 모를까, 퀘스트를 깨봐야 경험치 밖에 주지 않는 째째한 신전하고 누가 연을 맺으려 하겠어.
그리고 직감이 신전에 가면 안 된다고 알려오기도 했다. 인벤토리에 들어있는 석판 때문인가? 그게 아니면 새로 생긴 신성 스탯 때문인가. 그걸 알 수는 없으나, 아무튼 지금 당장 신전으로 가는 건 거부하고 싶다.
“저기, 잠시만.”
“성자님께서 뵙고 싶어 한다고 싫어하는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가도 됩니까? 그게 주신 홀리의 가르침인가보죠?”
자신의 팔을 잡으려고 하는 사제를 뿌리치고, 뒤쪽에서 험악한 표정으로 서서히 걸어오고 있는 성기사들에게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그러자 사제를 포함한 주변에 있는 신전과 연관된 이들의 표정이 일그러졌으며, 주변 사람들이 이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목이 쏠렸는데, 강제로 데려가기는 곤란하겠지.
“실례했습니다.”
딱히 자신이 떠남에도 말리지 않는 것을 보면, 성자 안톤이 자신을 부른 이유는 흑마법사들을 처리해준 것에 고마움을 느끼고 보상을 주려고 한 모양이다. 보상은 좋다. 그러나 보상을 계기로 코가 꿰이고 싶지는 않아.
시장에 가서 무언가를 사고 싶은 마음도 가셨기에 말을 가지고 포탈까지 이동한 라트는 그 즉시, 숲의 현자가 살고 있는 곳 근처의 도시로 포탈을이동 하려고 했으나,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전쟁 중인 타국으로는 포탈을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어지간하면 전쟁 초반부에는 사리고 있는 사라이 왕국이 벌써 전쟁에 돌입했다고? 도대체 무슨 플래그가 꽂혀서? 뭔가 심각하게 일이 꼬였다는 것을 직감한 라트는 한숨을 내쉬면서, 어쩔 수 없이 사라이 왕국과 가장 가까운 성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