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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65화 (6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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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지하에 진입한 남자가 저지르는 일은 앞서 일어난 일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한 쪽의 저항조차 무시해버릴 정도로 처참한 학살.

    무거운 타격음이 울리고, 마력으로 인해 새빨갛게 변모한 검에서 뿜어진 뜨거운 공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그에 대항하여 곳곳에서 서리가 생겼으나, 강한 검격이 만들어낸 날카로운 바람은 대수롭지 않게 마법을 베어버리고, 가로막는 모든 장해물을 쳐부쉈다.

    그렇게 검이 달리며 적색의 궤적을 그려낸다. 미스릴로 만들어진 검신이 움직일 때마다, 꼴사나운 핏빛 꽃잎이 휘날렸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흑마법사들을 손쉽게 베어버리며 앞으로 전진한다. 좁디좁은 통로, 나무라고는 볼 수 없는 돌로 만들어진 통로다. 라트에게 있어서 이런 장소는 불리할 법도 했으나, 그것은 흑마법사도 마찬가지다.

    좁은 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중 위력적인 것은 별로 없다. 제대로 된 마법을 구사할 수 없고 심지어 적과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닌 마법사, 어중간한 검사보다 훨씬 약했고, 그렇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감히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이런 짓을 벌이는 거냐?”

    “알고 있으니까, 제발 쳐웃지 마.”

    “컥.”

    징그러우니까, 제발 그 웃으면서 죽는 것 좀 그만뒀으면 좋겠다, 라는 감상평을 남기며 라트는 바닥에 쓰러진 흑마법사의 목에 검을 꽂아 넣었다.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소름이 끼친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면서 웃을 수 있는가.

    무섭지 않나, 두렵지 않나, 고통스럽지 조차 않은 것인가. 생명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부정한 감정을 감당하고 웃을 수 있을 정도로 미치려면, 도대체 무슨 사상을 가지고 있어야하는가.

    “어처구니가 없네.”

    그래도, 이들이 원하는 건 대륙이 피의 강에 허우적거리는 걸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반항하는 중이었다. 죽는 게 무섭지 않으면, 반항이라도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체인 라이트닝!”

    들려오는 목소리에 라트는 본능적으로 튀어올라 뒤로 후퇴했다. 벽을 타고 전류가 흐르며, 스파크를 사방에 튀기더니 조금 전 라트가 있던 자리에 도달하여 전광을 만들어낸다.

    ‘기습 타이밍 한 번 끝내주네.’

    그러나 겨우 그 뿐이다. 라트는 캐스팅이 끝나고 무력해진 흑마법사에게 달려가,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잘려진 그의 얼굴은 워낙 순식간에 일을 당한 터라 미소를 짓고 있지 않았다.

    “이건 좀 봐줄만 하네.”

    사람을 죽이는데 거리낌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 죽이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결정적으로 죽이지 않으면 그 누구도 지킬 수 없다.

    그렇기에 사람을 죽이는 것에 망설임을 두지 않았고, 자신의 검 아래 죽은 이들을 불쌍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먼처 쳐들어온 사람은 자신이나, 언젠가는 싸워야했을 적. 그래, 이들은 모두 적이다.

    “레벨이 높은 흑마법사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야.”

    제대로 된 흑마법사는 속성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은 정신 계열 저주, 강령술, 그리고 오롯한 파괴 마법이었다. 그 어떤 자연 속성도 아닌 ‘어둠’이라는 이질적인 힘으로 모든 것을 지우는 마법. 세간에서는 파괴 마법이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후우.”

    이제까지 꽤 많은 흑마법사를 죽여 왔다. 남은 목표는 이제 겨우 5명. 그러나 목표하는 수가 적다고 해도 방심은 없다. 이 앞에 있는 놈들이야 말로, 진짜배기였으니까.

    이 후에 나올 패턴도 어느 정도 꿰고 있다. 대장 녀석의 능력이 뭐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다.대검을 총신으로 바꾸고 힐트(손잡이)부분을 잡은 채 라트는 앞을 향해 걷는다.

    그렇게 통로 끝에 도달하자, 마법진이 그려진 바닥과 그 위에 놓인 마법진, 사방에 놓인 촛불이 눈을 밝힌다. 누가 흑마법사 아니랄까봐, 제단도 정말 껄끄럽기 그지없다.

    “발하라, 베르나스.”

    “데케, 로우.”

    허공에 떠오르는 두 개의 마력진. 단지 생성되었을 뿐임에도 압도적인 마력을 뿜어내는 마법진의 모습에 라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저것이야말로, 오롯한 파괴마법. 어둠의 힘을 입어 모든 것을 삼켜서 파괴하는 흑마법사들의 특기 중 하나다.

    공간이 깨지는 소리가 들림과 함께 마법진에서 나타난 검은색 늑대와 독수리가 모든 것을 뜯어 지울 기세로 돌진하자, 라트는 칼날을 들어 올려 방아쇠를 당겨 마력탄을 발사한다.

    쏘아지는 적색의 마탄과 짐승이 맞부딪쳐 웅장한 하모니를 자아낸다. 어떻게든 이번 마법은 막아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지. 이어지는 마법이 어디서 나타나는지 알기에, 라트는 검신을 돌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을 향해 마력탄을 발사했다.

    “커헉.”

    분명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곳에서 마력탄이 폭발하자, 두 개의 인영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폭발에 휘말려, 몸이 반쯤 녹아버리고 입가에서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니, 저대로 내버려둔다면 알아서 죽을 것이 분명하다.

    ‘선빵 필승.’

    “후우.”

    한국의 명언 중 하나를 떠올리며, 담배 연기를 뱉어내고 무색의 연금술로 허공에 발판을 만든다. 그리고 그 발판을 밟은 후, 자신에게 파괴마법을 사용한 흑마법사들이 캐스팅을 끝내기 전에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힘들다, 힘들어.”

    앞으로 남은 목표는 단 한 명. 그러나 이곳이 통로의 끝이었고, 주변에 살아있는 자는 그 누구도 없다. 도망친 건 아니다. 퀘스트 실패도 뜨지 않았고, 직감이 이곳에 누군가 있다고 알려오는 중이니까.

    “나오지 그래.”

    자신에게 선빵을 맞아 당한 두 명과 마찬가지로 투명 마법을 사용해 어딘가에 숨어있을 흑마법사 간부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도 나올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난 경고했어.”

    나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알아서 찾아내는 수밖에. 상당히 레벨이 오른 날카로운 직감과 관찰력을 이용하면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고 하나, 흑마법사가 숨어있는 위치 정도는 알 수 있을 터다.

    침묵을 지키며, 흑마법사가 어디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던 것이 5분 정도 지났을까?

    [정신 지배 마법에 사로잡히셨습니다. 일정 확률로 정신 지배, 정신 혼란, 혹은 무효 처리가 됩니다]

    갑자기 눈앞에 알림창이 나타났다.

    ‘노림수가 고작 이거였냐?’

    아, 맞다. 이곳에 있는 흑마법사 간부의 특기는 정신 계열이었다. 이제야 기억이 난 라트는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정신 지배라, 쪼렙 일 때는 굉장히 무서운 마법 중 하나다.

    가끔 레벨이 낮을 때 정신을 지배당해서 기껏 모아놓은 동료나, 아끼는 히로인을 제 손으로 죽이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샷건을 치고는 정신 지배에 걸리기 전으로 게임을 로드하고 내성에 성공할 때까지 로드를 반복하기도 했었지.

    [뛰어난 지혜로 인해 정신 지배 마법을 완전히 무효로 돌리셨습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쪼렙일 때의 이야기일 뿐. 마법 방어력을 올려주는 스탯은 없다지만, 정신 계열 마법은 시전자와 피시전자의 지혜 차이에 의해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

    지혜가 180이나 되는 라트가 정신 지배 마법에 당할 리가 없지. 그러나 흑마법사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라트는 정신 지배에 걸린 척 멍한 표정을 지었다.

    쪼렙이나, 지혜 스탯이 낮은 이에게는 한없이 강력한 정신 지배 마법의 문제점 중 하나. 시전자가 정신 지배 마법에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를 알 수 있는 건 상대방의 반응뿐이라는 점이다.

    “방심하다가 꼴좋게 됐구나.”

    ‘저기 숨어있었구나.’

    라트가 정신 지배에 걸렸다고 판단한 흑마법사는 투명 마법을 풀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대놓고 재단 근처에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 무식한건지, 아니면 똑똑한 건지.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말이 확실히 들어맞는 순간이다.

    “이 녀석을 어쩐다. 죽이자니 아깝고, 아 그래. 전쟁터에 내몰아서 더 많은 피를 불러오면 되겠군.”

    다시 생각해봐도, 흑마법사들은 전부 또라이인가? 아니면 오미너스의 피에 속한 흑마법사들만 이렇게 미친놈들일까.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동료를 죽인 상대를 곧바로 죽이지 않고, 더 많은 피를 대지에 뿌리기 위해 이용해먹을 생각부터 하다니.

    ‘역겨워.’

    그 사상이, 생각하는 방식이, 역겨워서 견딜 수가 없다.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오는 놈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라트는, 그가 지근거리에 다가오자 그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었다.

    양쪽으로 갈라져서, 총 역할을 하고 있는 검이라지만 그 끝은 날카로웠기에 아무런 방비도 하지 못한 상대의 심장을 꿰뚫고 그 목숨을 취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어, 어떻게?”

    “너 같은 또라이한테 정신 지배를 당할 리가 없잖아? 이래보여도 내가 연금술사라서, 머리가 꽤 좋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칼끝을 천천히 돌려 그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나오기를 고대한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그는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아픔에 인상을 찡그리지도 않는다.

    그저 웃을 뿐.

    “하하……. 아버지, 오미너스의 품으로.”

    “미친 새끼.”

    역시, 미쳤다는 말 말고는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칼을 뽑자, 마지막 남은 흑마법사가 허무하게 대지에 쓰러졌고,

    [린느탐보프의 수도 스홀리트에 숨어있던 모든 흑마법사를 처치하셨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Exp가 지급됩니다.]

    알림창이 나타나 퀘스트가 완료됐음을 알렸다.

    “으, 이놈들은 실제로 보니까 진짜 미친놈들이네. 장담하는데 죽여도 죄책감이 안 드는 건 너희뿐일 거야.”

    나름대로 죽을 뻔한 적도 있었고, 상처를 입은 적도 많았다. 그 때마다 드는 감정은 언제나 공포, 느껴지는 감각은 고통이었다.

    그래서 그런 감정과 감각을 느끼면서 웃을 수 있는 자들은 도대체 얼마나 미친놈들인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앞으로 이런 놈들과 몇 년 동안 만나야한다는 거다.

    “쯧.”

    혀를 차면서, 죽은 이들의 시체를 살펴보았다.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녹아버린 시체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구의 시체는 전부 웃은 채, 미소를 짓고 있다.

    이 장면만 보면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제 한 목숨 희생한 위대한 영웅들로 보인다. 그에 반해 자신은 학살자처럼 보이고. 그런 생각이 들자,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템 파밍이나 하자.’

    께름칙하게 보이는 재단으로 향해, 그것을 발로 걷어찼다. 걷어차인 재단이 벽에 부딪쳐 허무하게 부서졌고 조금 전까지 제단이 있던 곳 아래에 조그마한 상자가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오미너스의 재단을 걷어차셨습니다. 이 무례한 행동에 오미너스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주시하던가.’

    어차피 메인 퀘스트에서 악의 길을 걷지 않는 이상, 언젠가 악신에게 주시 당하게 된다. 엘리와 케이네 그리고 제스맹이 있는 이상 악당이 될 생각이 없었기에 사실상 악신이 나를 아니꼽게 받아보는 건 이미 확정된 사실이지.

    어차피 악신의 주시를 받는다고 해도, 유저가 믿는 신이 알아서 보호를 해준다. 라트의 경우는 영향력이 10에 달하는 신이 두 명이나 있었기에 바이올런이 보호를 해줄지, 애니그마가 보호를 해줄지 조금 궁금하다.

    ‘보자. 열쇠가.’

    간부를 죽였으니까, 분명 이 상자를 열 수 있는 열쇠가 인벤토리에 들어왔을 것이다.

    “찾았다.”

    인벤토리에 들어온 아이템이 꽤 많았기에 열쇠를 찾는데 조금 시간을 허비한 라트는 곧바로 상자를 열었다.

    ============================ 작품 후기 ============================

    그렇습니다, 오늘 친척 모임에 다녀온 거시다...!

    그것도 그렇고 최근 슬럼프인가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으.......

    언제나 재밌게 봐주시는 분들 감사드립니다. 오타 지적은 언제나 감사히 받고 있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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