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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64화 (6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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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다음 날 아침 여관에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나온 라트는 말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바깥에는 병사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고 사람들은 전쟁의 공포에 휩쓸려 열띤 토론을 벌인다.

이 전쟁은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니라 무려 2년 간 준비 기간이 있었지만, 그들의 시선에서 보자면 수백 년 동안 평화가 유지되던 중 갑자기 전쟁이 일어난 거니까 저렇게 동요한다고 해서 놀라울 건 없었다.

결과만 본다면 하루라는 시간을 날린 셈이지만, 그래도 일반 NPC는 운명을 바꿔봐야 운명의 실이 연결되지 않는 사실을 알았으니, 소득이 있는 셈이다.

그러니 딱히 안타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남은 3개의 운명의 실은 도대체 누구와 연결하는가, 라는 고민이 생기기는 했지만.

‘기왕 린느탐보프에 온 거, 그 새끼들이나 처리하고 갈까.’

고민을 접어버린 라트는 린느탐보프에서 해결할 수 있는 퀘스트에 대해 고민했다.

핀스크 왕국 정도는 아니지만, 린느탐보프도 내부에 흑막 집단이 숨어있는 건 똑같다. 왕족이나 귀족 사이에 숨어있는 게 아니라 수도에 숨어있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것을 내버려두면 린느탐보프는 핀스크와 같은 꼴이 나고 만다.

‘원래대로라면 이쯤에서 그 놈들을 죽이려면 백작님의 위용이 필요하지만, 딱히 문제없겠지.’

유저가 아무리 레벨 업을 빨리한다고 해도 지금쯤이면 이제 막 레벨 10이 될까, 말까하다. 상대는 흑막 집단, 악신 중 한 명이자, 절망과 피의 화신인 오미너스를 섬기는 흑마법사들이다.

‘자기들을 오미너스의 피라고 불렀었지?’

간부는 한 명 밖에 없고 나머지는 졸개뿐이라고 하지만, 고작 레벨 10으로는 상대할 수 없다. 그래서 초반에 이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숨어있다는 증거를 찾아서 귀족에게 보고하고 그들이 흑마법사를 토벌하러 갈 때, 같이 가는 거다.

그러나 유저의 신분이 귀족이라면 모를까, 평민인 이상 귀족을 납득시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증거물을 모을 바에야, 그 시간에 레벨 업을 하는 게 낫다고 평하는 유저가 부지기수다.

뭐, 어디까지나 평범한 유저의 입장 상 그렇다는 거지. 라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귀족들과 함께 숨어있는 흑마법사를 토벌한다면 보상이 줄어들지만, 반대로 혼자서 흑마법사를 모두 죽인다면 괜찮은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장신구도 얻을 수 있었던 거 같은데.’

보물이나 마법사와 관련된 장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마나 소비를 줄인다던가, 마나 회복을 도와주는 장신구는 크게 관심이 있었다.

제국으로 넘어가서 제르카에게 장신구 세공을 맡기기 전까지 사용할 장신구를 구한다. 꽤 매력적인 이야기다.

“좋아, 결정.”

만약 운명의 실이라는 요소를 몰랐다면 지금쯤 이 대륙을 자신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 여기저기 변수를 활성화시킨다고 바쁘게 돌아다녔겠지.

잠자는 사이에 이름을 잊어버린 소년과 운명의 실이 연결됐다면, 죽음이 확정된 NPC를 구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는 당장 떠오르는 목표가 없다. 운명의 실도 문제지만, 변수를 활성화시킨다고 돌아다니다보면 운명의 실을 연결할 방법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당장 운명의 실을 해결하자니,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선택한 게 방법이 떠오를 때까지 소소하게 퀘스트를 클리어하려는 거였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답이 보이겠지.

“신분증을 보여주시겠습니까?”

포탈로 다가가자, 군기가 잡힌 경비병 두 명이 라트의 앞을 막아섰다. 평소라면 설렁설렁 포탈을 타라고 했겠지만, 전쟁이 시작됐으니 이러는 게 당연했다.

“여기 있습니다.”

“실례했습니다.”

패를 보이자, 경비병들이 고개를 숙이며 라트는 안으로 들여보냈다. 무려 모든 연금술사의 정점에선 하이 마스터, 그 명성이 제국에까지 알려진 제스맹 기느투스가 신분을 보증한 패다.

전쟁 물자를 만들기 위해 밤낮을 구분하지 않고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으나, 표면적으로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제스맹이 준 패이니, 전쟁 중인 타국에서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잠시 후 린느탐보프의 수도 스홀리트까지 도착한 라트는 가까운 마굿간에 말을 맡긴 후,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이쪽이네.’

숲이나, 평야는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가 어려웠으나 도시는 다르다. 집의 모양, 길의 생김새 모든 것이 라트의 기억과 비슷했다. 몇 번 가보지 않은 성이라면 모를까, 수도같이 자주 들려야하는 도시는 모든 지리를 꿰고 있다.

금이 생긴 벽이라던가, 쓰러진 나무 같은 세세한 점이 다르기는 했으나, 길을 구분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왠지 익숙한 골목길이 눈에 들어오자, 라트는 눈을 반짝이며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여기네.”

으슥한 골목길에 있는 붉은색 지붕을 가진 멀쩡한 건물. 그 누가 이런 곳에 흑마법사가 있으리라고 생각하겠는가.

그 중에서 수도에 있는 이곳은, 린느탐보프에 숨어든 흑마법사들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괜히 다른 도시에 있는 녀석들부터 건드리면 이 녀석들의 방비가 강해지면 안 되니까, 본진부터 칠 생각이었다.

노르스 대륙에 있는 모든 왕국은 주신 홀리를 비롯하여 나머지 네 명의 신을 섬겼고 카르세이나 대륙은 홀리가 아닌 다른 신을 섬기긴 했으나 어찌됐든 흑마법사는 척결 대상이다.

죽이는 건 하등 문제가 없다.

경비병에게 신고하지 않아도 이 집에 있는 지하실을 발견한 순간 흑마법사가 숨어들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가 벌어질 수는 있어도 누가 흑마법사를 죽였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아보지 않을 것이다.

집과 거리를 가로막고 있는 나무문을 열려고 했으나, 역시나 문은 잠겨있었다. 이 문을 부수기 위해서는 근력 스탯이 최소 50은 필요하다. 보통 유저라면 이 시간에 그 정도 스탯을 맞추는 건 불가능했기에 문을 열 수 있는 암호를 품을 팔아야했다.

‘굳이 부술 필요도 없지만.’

근력 스탯은 충분하지만, 설령 근력 스탯이 부족했다고 해도 이 문은 결국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다. 튼튼하기는 하나 무색의 연금술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지.

여기서 굳이 마나를 소비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 라트는 인벤토리에서 버프용 물약을 전부 마셨다.

“아, 이것도 마셔두자.”

혹시나 싶어서 귀한 물약까지 전부 마신 라트는 미스릴 갑옷을 착용하고, 인벤토리에서 대검을 꺼내고 나서야 발로 문을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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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흑마법사 척결

목표 : 린느탐보프에 숨어있는 흑마법사를 척결하시오, 남은 목표 : 0/60

보상 : 경험치(중), 기타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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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라!”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무문이 부서지자 퀘스트 창이 나타났고, 동시에 마법이 쏟아진다. 검은색 화염, 적색의 번개 하나 같이 강력하기 짝이 없는 마법임에도 라트는 소리 없이 웃었다.

적어도 누구냐고 물어볼 줄 알았는데, 전형적인 클리셰에서 벗어난 행동을 보여주는 흑마법사들의 행동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만연하라.”

허공을 가르며 라트라는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던 마법들이 나무에 막혀 사라진다. 나무문으로 만든 기둥에 불이 나서 종극에는 재가 되었으나, 애써 사용한 마법이 무용지물이 됐다는 사실에 흑마법사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라트를 바라본다.

“불타라, 지옥의 아지랑이!”

바로 그 순간, 아래로부터 화염이 치솟았고, 흑마법사 중 가장 뒤에 있는 자는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재빨리 투사체를 발사하는 마법이 소용이 없다고 판단하고 바닥에서부터 즉시 시전되는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불길이 꺼지면 시체를 치워라.”

이 중에서는 가장 강한 흑마법사는 라트가 마법으로 강화시킨 문을 부술 정도로 뛰어난 전사라고 하지만, 저런 마법에 당했으니 온 몸이 불에 타, 고통의 몸부림을 치다가 시체가 될 것이라 여겼다.

그것이 오산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고개를 뒤로 돌린 것이 실수였다.

“만연하라.”

한줄기로 뻗어진 나무 꼬챙이가 뒤로 돌아선 흑마법사의 머리를 꿰뚫어, 그는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굉장하군.”

분명 마법에 직격했다. 사람인 이상, 타오르는 불꽃을 견딜 수는 없는 게 자명하다. 희귀한 아이템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남자에게 그런 아이템이 있다는 기운은 받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불에 타고 있으면서도 저렇게 태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건가.

“휴우.”

아직까지도 머리와 갑옷에 달라붙어 타오르고 있는 불길을 손으로 털어내며, 라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지?”

“그러게 말이야. 좀 알려주지 그래?”

죽음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인지, 흑마법사들은 웃으면서 질문을 던진다. 이래서 이것들을 상대하기가 싫다니까. 대륙이 피에 젖는 것을 원하는 이들은 자신이 죽더라도, 자신의 피로 땅에 피를 적시는 걸 즐긴다.

“좆같은 새끼들.”

한 순간, 대답 대신 검을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이곳에 있는 흑마법사들의 목이 떨어졌다.

어차피 1층에 있는 흑마법사들은 바깥의 동태를 살피는 놈들에 불과하기에 별 볼일 없다. 2층과 3층에 있는 녀석들도 마찬가지로 피라미에 불과하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이 건물 지하. 오미너스의 피에 속한 흑마법사 중 간부급인 녀석이 있다는 거지.

지하는 굉장히 깊고 방음 처리가 됐기에 바깥의 소란이 들리지 않는다.

딴에는 지하에서 벌어지는 의식이 세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지만, 덕분에 1층과 2층에서 아무리 소란을 일으켜도 지하에 있는 흑마법사는 소란이 일어난 것을 모르고 있다는 거다.

“귀찮게 스리.”

발쪽에서 아직까지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길을 털어낸다. 이 기지에 들어온 직후 무슨 패턴이 나오는지 알기에 화염 저항 포션을 먹어놓은 것이 정답이었다.

‘미스릴 갑옷도 한몫했지만.’

화염 저항 포션을 먹었다고 해도, 마법에 직격으로 맞았는데도 Hp가 50 정도 밖에 깎인 건 미스릴 갑옷 덕분이겠지. 2층에 있는 흑마법사들이 아래층에서 소란 때문에 분주히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오자,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계단 근처로 다가감과 동시에 입 속에서 담배 연기가 뿜어졌고, 폭발 소리가 귓가를 가득 매웠다.

“이런 프랑크랑 마이클이 당해버렸잖아?”

“키킥. 오미너스님께서 좋아하시겠군.”

가장 선두에 서던 이 두 명이 폭발에 휘말려 폭사 당했음에도 겁을 먹은 이들은 없다. 오히려 당당하게 웃고 있다. 죽을 수 있다는 희열에 미쳐, 자신 한 몸을 기꺼이 희생하여 대지에 피를 적실 수 있다는 쾌감에 사로잡혀 웃는다.

게임 상에서도 제정신이 아닌 것들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까 싸이코, 또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사실은 흑마법사 집단이 아니라, 단체로 약을 하는 집단이 아닐까?

“컥.”

“만연하라.”

그런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면서 주문을 외우고 있던 흑마법사에게 검을 던져서, 그 머리를 꿰뚫은 후 벽에 손을 기댄 채,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했다.

라트만을 응시하고, 그의 행동에 대응하려고 하던 흑마법사들은 정면이 아닌, 벽 쪽에서부터 나온 가시 무더기에 미처 반응하지 꿰뚫려 죽었다. 시체가 됐음에도, 그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라트가 눈을 찌푸린다.

“진짜 미친놈들 밖에 없나.”

그 시체 더미 중 하나의 머리에 박혀있는 대검을 뽑아든다. 2층도 정리했으니, 남은 건 지하뿐이다. 지하에 있는 간부를 잡고, 장신구를 모두 턴 후에 경비병에게 이 집에서 소란이 일어났다고 신고하고, 유유자적 빠져나가면 되겠지.

‘여기 있는 간부는 어떤 마법이 특기였지?’

아무리 게임에 이골이 났다고 해도, 머리는 슈퍼컴퓨터가 아니었기에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을 수는 없다.

‘강령술만 아니면 되는데.’

다른 건 일단 제쳐두더라도, 데스 나이트를 만들 수 있는 흑마법사를 만나는 건 사양이다.

심장이라는 약점이 있는 인간이야 무색의 연금술이나 생명의 연금술로 죽일 수 있지만, 어지간한 충격에 내성을 가지고 있는 시체로 만들어진 데스나이트를 상대하는 건 어지간히 까다로운 일이다.

‘내려가보면 알겠지.’

1층으로 내려와, 부자연스럽게 깔려있는 양탄자를 치우자 지하로 내려가는 문이 나타났고, 그 문을 발로 깔끔하게 부숴버린 후 라트는 지하를 향하 걸음을 옮겼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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