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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58화 (5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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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잠시만 기다리세요.”

    마크는 잠시 무어라 주문을 외우더니, 라트가 요청했던 공평함의 검을 소환했다. 것 보기에는 정말 평범한 아니, 평범함을 넘어서 구질구질해 보이는 장검이다.

    “솔직히 빈말이라도 좋은 검이라고 말하긴 좀 그러네요.”

    라트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고 말하며 검을 살폈다. 날이 제대로 손질되지 않아 군데군데 녹슨 부분이 눈에 띈다. 고급스러운 가죽이나 나무로 만든 손잡이조차도 없다. 그래, 사실 검이라고 부르는 것도 아까운 장비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칼날. 아니면 폐기 직전에 놓인 검. 그렇게 부르는 게 옳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검은 단 10자루 밖에 없는 소드 엠프레스 시리즈의 6번째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었다. 검으로 써먹을 수도 없는 칼날처럼 생겼으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변신 기능이라도 있으면 인기라도 있을 텐데, 에휴.”

    어딘가 굴러다니는 요상한 검처럼 주인이 원하면 멋진 검으로 변신하는 기능도 없다. 그저 이 모습이 끝. 그런데도 이 칼날이 아이템 중 최고 등급이라 불리는 신화 등급에 놓인 이유는 단 하나다.

    “진가를 못 알아보는 놈이 문제지. 기능이 워낙 좋잖아.”

    “그건, 그렇죠.”

    라트는 살며시, 마크의 손에 있던 칼날을 매만지자, 칼날이 떨리면서 라트를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잠깐만 만질 거니까 참아라.’

    바이올런의 축복을 받은 몸이라지만, 검사가 아닌 연금술사, 아직 오러를 다루지 못하는 라트를 공평함의 검이 좋게 볼 리가 없다. 신화 등급 아이템부터는 주인을 가리기 마련이다.

    상관없어. 아이템 정보만 확인하면 그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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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 : 소드 엠프레스 시리즈 6번, 공평함의 검(Sword of Impartial)

    등급 : 신화

    형태 : 검(?)

    특수 효과 : 중립을 지키는 공평함

    인챈트 : -  내구도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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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평함의 검을 살펴봤습니다. 지금부터 생명의 연금술로 공평함의 검을 연성하실 수 있습니다]

    “좋았어.”

    이걸로 생명의 연금술을 이용한 공격 수단이 하나 늘었다. 그 사실에 고조된 라트는 손을 불끈 쥐면서, 공평함의 검에서 손을 땠다. 처음부터 이런 검 같지도 않은 검을 손에 쥐고 싸울 생각은 없었다. 단지, 특수 효과 때문에 이것을 원했을 뿐.

    “정말 이걸로 좋으신 건가요? 이해를 못하겠군요.”

    “이걸로 충분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도 좋습니다만.”

    마크는 사실 조금 더 좋은 보상을 주려고 했지만, 겨우 이것만으로 좋다고 하는 라트의 모습을 보고 본인이 만족한다면 상관없겠지 싶어서 검을 역소환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씀하시죠.”

    “운명의 실이라는 게 뭐야? 모리아가 저주를 내린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저주, 라고 할 수 있죠. 사실은 저주라고 보기 힘들지만.”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저주이면서 저주라고 보기 힘들다니. 라트는 황망한 시선으로 마크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마크는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이내 설명을 계속한다.

    “운명의 실로 연결된 이들은 서로에게 종속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성 관계로 치면 연인, 동성 관계로 치면 브로맨스 같은 끈끈한 우정이라고 할 수 있죠. 아 물론 동성애자시라면 연인이 되셔도 상관없어요.”

    뭐야, 저주라고 해서 조금 겁먹었는데 별거 아니잖아. 어, 잠깐만 지금 이 새끼가 뭐라고 한 거지?

    “그거 지금 농담이라고 한 거냐?”

    “아니요, 저는 철저하게 유저의 취향을 배려……. 아닙니다.”

    백합이라면 눈요기가 될 줄 모르겠지만, 게이는 절대로 사절이다. 호모포비아도 아니고, 게이와 친해지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지구에서도 친구 중 한 명은 게이였으니까.

    그러나 그 정도 이해를 해줄 수 있을 뿐이다. 나를 게이로 취급하려고 드는 것은 거절하고 싶다.

    “종속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개념인데.”

    “당신이 죽으면, 운명의 실로 연결된 상대도 죽습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죠.”

    갑자기 간담이 서늘해졌다. 별 것 아닌 저주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위험한 저주였다.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쥐고 있는 상황, 서로를 신뢰할 수밖에 없기에 종속이라고 표현하는 거예요. 이해가 되셨나요?”

    “어.”

    라트가 죽으면 그가 애써 살려놓은 엘리가 죽는다. 반대로 엘리가 죽으면, 그 순간 게임 오버다.

    ‘확실히 저주 같지 않은 저주이긴 하네.’

    라트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돌려보내드리겠습니다. 아마, 바깥에서는 2시간 쯤 지났을 겁니다.”

    그리고 더 이상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듯, 절대자는 라트를 돌려보내겠다고 완고히 선언한다.

    “벌써 2시간이나 지났어? 30분도 안 지난 거 같은데.”

    “시간의 축이 다르니까요.”

    그런가. 하긴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부터가 신기한 일이니까. 익숙해지지 않는, 익숙해지기 싫은 감각을 일깨우는 공간이다.

    “부디 그대가 진 엔딩을 볼 수 있기를. 유저 라트 아니.”

    그리고 주문을 전부 외우고 라트의 주변에 새하얀 빛이 감돌기 시작하자, 그는 광대처럼 우스꽝스러운 인사를 하면서 마지막 말을 속삭인다.

    “최현준씨라고 불러드리는 것이 낫겠죠?”

    “너, 지금 뭐라고!”

    갑작스럽게 마크의 입에서 자신의 본명이 튀어나오자, 라트는 그를 붙잡기 위해 뛰어들었으나 그보다 새하얀 빛이 라트를 감싸는 것이 더 빨랐다.

    *****

    “뭐라고 했어!”

    입으로부터 끝내지 못한 말이 튀어나옴과 동시에 라트는 자신이 허무의 공간이 아닌,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개새끼가!”

    속았다, 제대로 속았다. 처음, 이상함을 물었을 때 마크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그래서 그가 평범한 NPC라고 단정 짓고 말았다.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공평함의 검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어서, 그래서.

    ‘병신 같은 새끼.’

    자신이 이곳에 온 원인을,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이들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놓쳐버렸다.

    “하아.”

    담배, 이 착잡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는 담배가 필요했다. 라트는 담배를 찾기 위해서 곧바로 주변에 눈을 돌렸다. 길드가 아닌 공작저, 엘리를 구할 때마다 신세를 머물렀던 방이다.

    엘리랑 관련된 일이면 항상 픽픽 쓰러져서 이곳에 실려 왔었지. 라트는 허탈하게 웃어버렸다. 마크의 연기를 간파하지 못했고, 또 다시 이곳에 실려 온 자신의 처지가 우스워서였다.

    신기하게도 갑옷은 팔찌 모양으로 되돌가 있었다. 연금술을 사용하지 않으면 갑옷이 다시 팔찌 모양으로 돌아올 일은 없을 텐데.

    라트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공작의 가신 중에 연금술사는 없다. 그는 언제든 스승님에게 부탁을 할 수 있는 친구니까. 그렇다면 이 저택에 스승님이나 사저가 와있다는 소리다.

    “설마 또 그걸 마셔야 되는 건 아니겠지?”

    이런 말을 내뱉었다는 것 자체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시인하고 있는 거다.

    미친, 라트는 욕설을 내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약 2년 전쯤 마셨음에도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그 쓴 포션을 또다시 마셔야 한다는 생각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이번에 기절한 건 다쳐서 기절한 게 아니라 마크가 자신의 의식을 소환했기 때문이었으나, 라트가 케이네에게 이런 말을 한다고 해도 분명 변명이라고 생각하겠지.

    ‘기절하기 전까지 담배를 들고 있었는데.’

    담배가 필요해. 지금 한 대 태우지 않으면 짜증이 도질 것 같다. 근처에 있는 탁자 위에 담배가 놓여있었고, 대검 역시 그 근처에 반듯하게 세워져있는 것을 본 라트는 대검을 인벤토리에 넣고 담배를 집어 들었다.

    이제는 32레벨까지 오른 담배 갈아 넣기 기능 덕분에 라트는 재빠르게 파이프 안에 담배를 채워 넣을 수 있었다.

    ‘사실 이거 완전 쩌는 기능이 아닐까.’

    처음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기능이라고 생각했으나, 궐련이 없는 이 세계에서 궐련만큼 간편하게 담배를 채워 넣을 수 있다는 점은 굉장한 메리트다.

    담배를 곧바로 태우고 싶은데, 파이프 안에서 재가 된 담배를 털고, 다시 담배를 갈아 넣는 작업을 수월하게 할 수 있지 않은가.

    “후우.”

    기능의 보정을 받아 순식간에 담배를 채워 넣은 라트는 불을 붙이고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마크는 아마, 다시는 보지 못하겠지.’

    라트가 비공인 에디터를 쓴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마크는 더 이상 라트를 부르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이 씁쓸함을 잊어야했다.

    아쉬움은 아무리 빠르게 느낀다고 해도, 이미 아쉬움을 느낀 일은 지나갔기에.

    ‘최현준씨라고 불러드리는 것이 낫겠죠?’

    마크의 마지막 말이 생각을 헤집는다. 이 세계에 처음 왔을 때 대화를 나눈 알림창도 그렇고, 마크도 그렇고, 당장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을 이 세계로 끌어들인 흑막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흑막이 있다고 함은 그들이 원하는 걸 해냈을 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진 엔딩을 보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라.’

    루아타 공작이 등장하면서 나타난 알림창도 그렇고, 마크가 준 퀘스트도 그렇고 첫 번째 조건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면 두 번째, 나아가 세 번째 조건이 있을 수도 있다.

    ‘전혀 감을 못 잡겠다.’

    그리고 이것이 결론. 당장 코앞까지 다가온 목적이던 엘리의 목숨을 구하는 것은 성공했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엔딩이 없는 게임에서 방법도 알려주지 않고 엔딩을 보라니.

    게다가 힌트라고 주는 것이 조건이라는 시시콜콜한 것이라서 더더욱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방향이야 정해졌다. 퀘스트를 따라, 운명이 정해진 NPC의 운명을 바꾸면 된다. 그런데 평범한 NPC의 운명을 바꿔도 과연 운명의 선이 연결되기는 할까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그건 실험을 해보면 그만이었다.

    다만, 이 조건이라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것이 전혀 감이 잡히지 않을 뿐이다.

    “후우.”

    ‘전쟁은 모레부터 서서히 시작되겠지. 죽음이 확정된 NPC 중 엘리를 제외하고 가장 빨리 죽는 건, 린느탐보프와 핀스크 왕국의 국경 지역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에 있는 꼬마던가.’

    네임드 NPC도 아니고, 이름조차 모르는 꼬마다. 프로그램을 뜯어본 유저의 말로는 그 꼬마의 이름이 칼이라고 했던가? 아니 쿨이라고 했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꼬마가 엘리를 제외하고 가장 먼저 확정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아는 이유는 이 꼬마가 살고 있는 마을이 기병대에 휩쓸리는 이벤트 중에 죽기 때문이었다.

    전쟁의 참혹함을 나타내는 이벤트였기에 유저들 사이에서는 꽤나 인지도 있는 고정 이벤트 중 하나다.

    고작 500의 기병대 때문에 마을이 불지옥으로 변하고, 그곳에 살던 이들이 하룻밤 사이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그리고 이 이벤트 중 가장 먼저 죽는 것이 바로, 이름을 모르는 꼬마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NPC들은 랜덤 변수로 죽음과 삶이 결정되지만, 그 꼬마만큼은 죽음이 확정돼있었다.

    ‘내일 린느탐보프로 가야겠어.’

    전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나, 셀룬 왕국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켈랑 왕국과 우호적인 핀스크 왕국으로 포탈을 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목적지는 자연스럽게 린느탐보프로 결정되었다.

    ‘이게 운명의 실인가?’

    생각의 정리가 끝나고 나서야, 라트는 자신의 팔에 매달려,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가로막혀있는 벽을 통과해서 저 멀리까지 뻗어있는 붉은색 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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