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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56화 (56/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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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원래대로라면 곧바로 목표물을 쫓아야했지만, 대검을 들고 있는 남자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암살자에게 있어서 제일 우선시 되어야할 표적은 목표이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자는 정체가 탄로나면 안 되는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자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일단 주의를 돌리는 데는 성공.’

    이 세계에 이골이 난 라트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그의 정체를 입 밖으로 꺼냈다. 그가 나무 주먹에 붙잡혀 공작저로 날아가는 중인 엘리를 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 노인이 엘리를 노린다면 막을 수 있을까?

    라트는 잠시, 그의 힘을 가늠해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일대일이라면 모를까, 엘리를 노린다면 그녀를 잃을 수도 있다.

    “그건 댁이 알 거 없고.”

    그래서 일부러, 건방진 태도를 취하며 노인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그나저나 그림자 까마귀라니. 켈랑 왕국에 존재하는 전설적인 암살자 집단의 이름으로 일반인 아니, 켈랑 왕국의 귀족이라고 해도 그들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엘리가 죽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배후까지는 몰랐다. 평범한 플레이 도중이라면 엘리가 죽는 것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겠지.

    그래서 운이 좋아서 생포한 암살자가 있으면 천천히 누가 어떤 배후인지 알아내려고 했는데, 이렇게 쉽게 정체를 알 수 있을 줄이야.

    상대가 그림자 까마귀라면 배후를 알 필요도 없다. 그들은 오로지 켈랑 왕국의 왕실의 명에만 복종하는 자들이니까.

    커뮤니티 내에서 이들은 굉장히 유명한 집단이다. 유저는 어지간해서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집단이며, 켈랑 왕국에서 귀족으로 시작한 유저의 세력이 왕실에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 이들이 등장해서 유저를 처리하니까.

    아마,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이 새끼들은 수백만 번 죽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유저 입장에서는 짜증나는 존재였고, 그래서.

    ‘파훼법도 많이 알려졌지.’

    잡졸들이야, 모르지만 그림자 까마귀 중에서 나름대로 이름이 높은 자들의 파훼법 정도는 숙지하고 있다.

    나름 왕실에 귀속된 암살자 집단이다 보니, 하나 같이 강하기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진짜 괴물 같은 단주를 제외하면 상대할 자신은 있었다.

    어디까지나 상대할 자신은 있을 뿐이지만.

    ‘전대 가주, 찰리 블랙 쉐도우.’

    암살자지만, 그는 마법사다. 그것도 강화 마법과 전문으로 사용하는 마법사로 자신이 직접 훈련시킨 새에 강화 마법을 걸어서 상대를 암살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다가, 날아오는 새 새끼한테 뒤져서 원통해하는 유저들이 수없이 많을 정도로 악명 높은 존재다. 그래서 파훼법도 상당히 연구되었다.

    “말하지 않겠다면, 말하게 만들어주마.”

    가장 주의해야할 것은 저 새들. 어떻게든 새만 제압한다면, 전문 암살자가 아닌 마법사인 저 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다. 그럼 강화 마법을 받은 새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제일 좋은 방법은 새가 접근하기 꺼려하는 악취를 가진 열매를 인벤토리에 넣고 다니면 된다. 아니면 새들이 싫어하는 소리를 내는 기계를 가지고 다니던가.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답은 정공법뿐이다. 새를 하나씩 잡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다.

    ‘그게 힘들다는 게 문제지.’

    새의 크기가 원채 작은 것도 있고, 강화 마법까지 받은 덕분에 그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새를 잡기는커녕, 공격을 명중시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어떻게 새를 처리했다고 해도, 두 가지 정도 주의해야하기도 하고.

    “해보시던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을 지우고 남자는 자신만만하게 대검을 들어올린다. 엘리를 탈출시키는데 성공했다. 아무리 이들이 주도면밀하다고 해도, 공작저에 사람을 숨겨놓지는 못했겠지.

    목적은 완수했다. 그렇다면야 이제 남은 것은 내가 살아남는 것뿐이다.

    살아남는다? 그건 너무 재미없잖아. 기왕 이렇게 된 거, 눈앞의 상대를 죽이는 걸 다음 목표로 잡는 게 어떨까.

    ‘무리겠지.’

    괴물이라고 불리는 현 단주는 아니지만, 그림자 까마귀의 전대 가주도 상당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말이 마법사지, 기초 암살 실력은 뛰어나다. 당장 강화 마법을 걸고 자신과 맞붙는다고 해도 이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

    “다가오지 말고 가서, 엘리를 지켜!”

    그래서 이쪽으로 다가오려는 공작의 가신들에게 가서 엘리를 지키라고 일갈을 날렸다. 굳이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이길 수 있을까?’

    관찰력은 상대의 수준을 가늠하지 못하는 중이고 직감은 여전히 위험을 알려온다. 그러나 엘리의 안전이 보장된 덕분인지, 아까같이 불길한 예감은 들지 않았다.

    상대는 마법사, 그것도  불, 물, 땅, 바람, 번개, 무, 6대 속성이라 일컬어지는 주류 마법이 아닌, 아류 마법만 사용하는 자다. 그러나 그의 주류 직업이 마법사라고 해도, 부직업은 암살자다.

    그렇기에 낸 결론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기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기기 어렵다는 거지, 못 이길 상대는 아니야.’

    “아직도 그 여자아이를 걱정하는가? 그럴 시간에 자네의 목숨부터 걱정하는 게 어떤가, 하고 조언을 해주고 싶군.”

    “조언은 고마운데, 댁 목숨이나 걱정하는 건 어때?”

    도발한다, 나를 봐라. 나에게만 적의를 가져라. 주변 사람들은 말려들지 않게. 그게 너희의 방식이잖아. 목표만 죽이고 깔끔하게 사라지는 거.

    “도발이라면, 5점 주도록 하지. 참고로 100점 기준이란다, 꼬마야.”

    노인의 비웃음에 반응하지 않고, 라트는 남은 마나를 살폈다. 남은 마나는 대략 1000 정도. 무색의 연금술을 많이 사용하기도 했고 생명의 연금술을 상당시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당연한 일이지.

    나무는 착실하게 뻗어나가서, 공작저 지근거리까지 도달했다. 슬슬 담배 연기도 사라질 시간이니까, 이쯤에서 생명의 연금술을 해제해서 마나 소모를 줄이고 인벤토리에서 마나포션을 꺼냈다.

    ‘마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상대가 마음먹고 자신을 공격한다면 기껏 꺼낸 포션이 허무하게 바닥에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지.

    “신기한 힘이로군. 환상? 아니, 창조? 아니 창조의 힘을 다룰 수 있을 리가 없고, 그렇다면…….”

    환상 마법이 실질적인 물리력을 구사하려면 적어도 7서클에 도달해야한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남자는 대검을 다루는 검사. 검을 다루면서 저 어린 나이에 그렇게 높은 경지에 도달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창조? 아니, 그것은 인간에게 허락된 힘이 아니다. 오로지 신에게만 허락된 힘. 그렇다면 도대체 이 남자가 쓰는 힘은 도대체 무엇인가.

    “연금술이다.”

    “연금술이라고?”

    남자의 대답에 노인은 벙찐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농담인가? 아니야, 저 표정은 농담이 아니다. 그러나 연금술이 이런 힘을 낼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러니까 저 청년은 지금 자신에게 농담을 한 것이 분명하겠지.

    “푸하하하하!”

    그렇기에 노인은 호쾌하게 웃었다. 자신이 그렇게 깔보던 연금술로 이런 힘을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에 진실을 듣고도 외면했다.

    “올해 아니, 최근 10년 간 가장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

    아, 정말로 재미있는 농담이었다. 그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지만, 않았다면 살려줬을 정도로 재밌었어. 그래서 노인은 남자에게 한 가지 제안을 건넨다.

    “보답으로 그걸 먹을 시간을 주마.”

    얕보이는 건가?

    “후회할 텐데?”

    “살면서 후회를 해본 적이 없어서 말이다. 후회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면 좋겠군.”

    “그래?”

    들려오는 대답에 가볍게 웃으며 포션의 뚜껑을 열었다.

    하나로는 마나를 전부 채울 수 없었기에 포션이 바닥을 보이자 재빨리 다른 마나 포션을 꺼내들었다. 노인은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듯이 라트를 기다려주고 있다.

    “그럼 그렇게 해주지.”

    “좋은 대답이다.”

    총 세 개의 포션을 전부 마신 남자는 자신의 뒤쪽에 포션병을 던졌다. 그 모습을 보고 노인은 혀로 입술을 핥았다. 서로의 행동이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되어, 조그마한 전쟁이 막을 열린다.

    “가라.”

    노인의 명령에 그의 곁에 있던 새들이 일제히 날개를 파닥이는 소리조차 없이 라트에게 다가와 죽음의 선고를 내리려고 한다.

    새들을 쫓아낼 방법은 없으니 정공법으로 이 새들을 처치해야한다. 정공법이라니, 라트는 쓰게 웃었다. 사기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공법을 생각할 줄이야.

    ‘유저들이 들었으면 당장 나를 죽이려고 했겠지.’

    “하아.”

    한숨과 함께 연기가 뿜어진다. 생명의 연금술을 사용하려는 건가? 시도는 좋지만, 강화 마법을 받은 새다. 폭발을 일으켜도 아무렇지 않게 라트를 공격할 놈들이다.

    나무를 만들어서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한다고 해도, 강화 마법 덕분에 새들은 나무를 뚫을 수 있을 터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생명의 연금술로 나무를 만든 것일까.

    “또 나무인가. 내 정체를 알면서도 그것이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걸 모르다니. 어리석다!”

    라트가 생명의 연금술로 나무를 만들자, 노인의 힐책이 이어진다.

    그것을 무시하고, 라트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새들 중 급소를 노려오는 새들만 대검으로 막거나, 베어버렸다. 급소가 아니면 몇 대 정도는 맞아도 상관없다.

    미스릴제 갑옷이 데미지를 반감시켜줄 테니까. 처음부터 무색의 연금술을 이용해서 방어를 할 생각은 없었다.

    “만연하라.”

    무색의 연금술로 노리려고 하는 건, 저 노인이니까.

    “웃!”

    아무리 암살 기술을 익혔다고 해도, 상대는 마법사. 방어구도 끼지 않았으니, 급소에 맞으면 쓰러지기 마련이다. 한 번이라도 공격을 적중시키면 그만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 저 노인이 방심을 하지.’

    “제법인데, 그럼 이건 어떠냐.”

    노인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나무 꼬챙이를 피한다. 동시에 새들이 진형을 갖추고 라트에게 달려들었다. 절대로 피할 수 없게, 막을 수 없게. 제일 좋은 방법은 자리에서 벗어나서 새들을 따돌리는 거지만.

    ‘이 자리를 지키는 게 제일 우선.’

    이 자리를 벗어나면 저 노인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최선은 이 자리를 지키는 것.

    “후우.”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뿜어지는 담배 연기 사이로 새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조금 더, 조금 더 와라. 그것이 너희의 무덤이 될 터이니.

    “죽어라.”

    새들의 지근거리까지 다가온다. 죽음이 찾아오는 것을 느낀 라트는 냉소하며 생명의 연금술로 자신의 눈앞에 미스릴 벽을 만들었다.

    무리 강화 마법을 받은 새들이라도 미스릴을 뚫을 수는 없다. 오히려 미스릴에 머리를 처박아서, 죽고 말겠지.

    “미스릴이라고!?”

    노인은 당황한 눈동자로 라트를 바라보았다. 방심했다, 두 번이나 담배 연기로 나무를 만들었기에 당연히 연기로는 나무 밖에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실책이었다.

    ‘이걸 노린 건가.’

    한순간 공을 들여 훈련시킨 새들이 전부 죽자, 노인은 황망하다는 시선으로 미스릴 벽 아래 떨어진 새들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일부러 담배 연기로 나무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줘서 자신을 방심시켰다는 건가? 저게 저 나이의 청년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인가?

    “이 놈!”

    새들의 비명소리와 머리가 터지는 소리가 그칠 때쯤, 라트는 생명의 연금술을 해제했다. 노인은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라트를 노려보는 중이다.

    아니, 저것은 거짓된 분노였다. 저 노인은 숙련된 암살자, 감정을 보이지 않는 훈련을 받아왔다. 그런데도 저렇게 화를 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를 방심시키기 위해서지.

    “왜 화를 내시는지.”

    그렇게 나오시겠다면, 따라줘야겠지. 라트는 노인을 응시하고,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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