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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54화 (5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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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시간이 흐른다. 혹자는 시간이 너무 안 간다고 아우성치고, 혹자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아우성친다. 라트는 후자에 속한 자였다. 정한 목표에 비해, 진전은 느리다.

    하루에 1/3을 사냥에 투자하고 있지만, 레벨 업은 더디다.

    ‘다른 유저가 봤으면 개소리 집어치우라고 했겠지.’

    그래, 다른 유저가 지금 라트의 상황을 봤다면 필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튜토리얼 기간 동안 레벨 업, 아니 자유자재로 행동을 할 수 있는 희대의 사기캐. 그런 평가를 내렸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만약 다른 이들이 작금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사기캐라고 부러워할 수 있을까? 익숙하다고 하나, 게임으로만 플레이했던 세상에 갇힌 지금 이 상황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의문은 우문일 뿐. 이 의문에 답할 수는 없다. 자신은 평범하게 적응하고 있지만, 과연 다른 이들이 적응할 수 있을 지는, 실험 대상이 없기에 답을 알 수 있을 리가 있나.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광기를 머금고 돌아버릴 정도로.

    항상 생각한다. 과연 내가 진 엔딩을 볼 수 있을까. 수많은 유저들이, 라트 본인조차도 진 엔딩을 보기 위해서 도전했고 실패를 맛봤다.

    과연 내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것 또한 의문이고, 우문이었기에 답을 할 수 없으나, 라트는 조그마한 희망과 거대한 불안을 품고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6개월이 지났다. 엘리와는 여전히 친구 관계고, 열심히 몹을 사냥하고 있다.

    그리고 라트는 자신과 스승이 만든 엘릭서를 마셨다. 그리고 놀랍게도 케이네는 엄청난 노력 끝에 엘릭서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실에 라트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황색의 연금술을 배우는데도 시간을 투자하면서, 고작 6개월만에 엘릭서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재능, 스승이 그녀를 천재라고 치켜세우는 이유가 있었다.

    덕분에 1년이 지나자, 엘릭서 3병이 만들어졌고 케이네는 기쁜 마음으로 라트에게 자신이 만든 엘릭서를 양도하였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두 대륙의 역사가 준동하려고 합니다. 메인 퀘스트가 시작됐습니다, 유저의 앞날에 부디 축복을]

    ‘축복 같은 소리하고 있네.’

    이것이 평범한 게임이었다면, 라트는 신나는 마음으로 게임을 즐겼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은 현실이었고, 진 엔딩을 보지 못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 현실이지. 지난 3년 간 자신이 죽인 생명은 몇 명이고, 손에 피를 묻힌 날이 얼마나 길었던가. 덕분에 강해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며, 라트는 자신의 프로필을 바라본다.

    이름 : 라트

    나이 : 19세

    칭호 : 에메랄드에 다가선 자(매력을 제외한 모든 스탯 + 10)외 1개

    레벨 : Lv 72

    Hp : 4060

    Mp : 10620

    경험치 : 0%

    재능

    근력 : 6/10, 건강 : 5/10, 민첩 : 5/10, 마력 : 10/10, 지혜 : 10/10, 매력 : 5/10, 행운 : 10/10

    스탯(남은 포인트 : 103)

    근력 : 20 + 125(+9), 건강 : 19 + 120, 민첩 : 15 + 105, 마력 : 112 + 80, 지혜 : 100 + 80, 매력 : 5 + 50

    영향력

    바이올런 : 10/10, 넥스 : 8/10, 아르카나 : 0/10, 홀리 : 0/10, 애니그마 : 10/10

    일반 기능

    양손검(Lv 72 + 근력, 민첩)

    한손검(Lv 73 + 근력, 민첩)

    관찰력(Lv 62 + 지혜, 행운)

    날카로운 직감(Lv 52 + 지혜, 민첩)

    고른 호흡(Lv 66 + 건강)

    속도 상승(Lv 58 + 민첩)

    담배 갈아 넣기(Lv 32 + 민첩)

    연금술 지식(Lv 152 + 지혜)

    기초 연금술(Lv 124 + 마력, 지혜)

    적색의 연금술(Lv 93 + 마력, 지혜)

    백색의 연금술(Lv 101 + 마력, 지혜)

    흑색의 연금술(Lv 98 + 마력, 지혜)

    황색의 연금술(Lv 116 + 마력, 지혜)

    희귀 기능

    마르쿨의 검술(Lv 9 + 근력, 민첩)  - 필요 기능 : 양손검 or 한손검

    * 공격적인 검술의 끝으로 알려진 검술로 방어를 하는 기술이 거의 없기에 실전된 검술입니다.

    신의 명상법(Lv 9 + 마력, 지혜) - 필요 기능 : 무無

    * 신들의 명상법으로 숨을 쉬는 것만으로 마력이 서서히 회복됩니다. 올바른 자세를 통해 명상을 하면 빠른 속도로 마력이 찹니다.

    무색의 연금술(Lv 9 + 마력, 지혜) - 필요 기능 : 기초 연금술

    * 자연을 연성할 수 있는 연금술. 현재 가능한 원소 속성 : 목(木)

    초기화(에디터 패널티)

    * 세이브 로드를 할 수 없으며, 한 번 죽으면 캐릭터의 모든 데이터가 삭제됩니다.

    커스텀 스킬

    수명의 연금술 - 담배(랭크 불명, Lv 9) - 초당 마나 60 소모 : 수명(담배를 피우는 행위)을 대가로 발현하는 연금술. 연금술의 기초인 이해, 분해, 합성을 무시하고 무엇이든 연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1년 사이에 엘릭서 5병을 먹어서 스탯이 고무적으로 올랐다. 그리고 목표했던 레벨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오러 로얄은 버겁겠지만, 오러 익스퍼드나 5~6서클에 도달한 마법사 정도는 손쉽게 상대할 수 있겠지.

    눈을 내려, 기능을 살핀다. 기능의 레벨도 고무적으로 올랐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완벽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일반 기능의 레벨 제한, 완벽이라고 일컬어지는 경지의 레벨은 200이다. 200 레벨을 찍으면, 그 기능 아래에 있는 그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고, 약간의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속성 마법 기능의 레벨이 200에 도달하면 희귀 기능에 속하는 메테오 같은 마법을 제외한 나머지 마법은 손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사용되는 마력이 조금 줄어든다.

    양손검 기능의 레벨이 200에 도달한다면, 처음 잡아보는 검이라도 간단하게 다룰 수 있으며, 공격력과 속도 보너스를 얻게 되는 식이다.

    희귀 기능과 커스텀 스킬은 레벨 10도 되지 못했지만,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희귀 기능과 커스텀 스킬의 레벨 제한이 몇인지는 그 누구도 밝히지 못했으니까. 그 정도로, 희귀 기능과 커스텀 스킬의 레벨을 올리는 건 힘들었다.

    더욱이 그 두 개는 레벨이 10의 배수가 될 때마다 조금씩 강화되고, 그 때가 가장 레벨을 올리기 힘든 시기였다. 그러니까 희귀 기능의 레벨 업이 더딘 건 딱히 불평할 일이 아니다.

    아, 불평이 생길 수는 있다.

    “오늘. 오늘이지.”

    오늘, 정해진 시나리오에 의해 엘리는 죽는다. 월드 세리아에서 죽음이 확정된 열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NPC 중 하나다. 그리고 죽음이 확정된 NPC 중, 엑스트라 NPC가 아닌 네임드 NPC는 세 손가락에 든다.

    만약 오늘 엘리를 구하지 못한다면 희귀 기능의 레벨 업이 더딘 것에 불평이 생길 것이다. 아니, 불평 뿐 아니라 절망하겠지.

    스승과 케이네보다야 얼굴을 적게 마주쳤다지만, 지구에서도 치안이 안전한 나라에 속하는 한국에서 살아온 라트의 입장 상, 친한 이가 살해당하는 걸 본다면, 슬픔에 잠식당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귀족으로 플레이를 해서 엘리가 위험하다고 알린다고 해도, 이 날 엘리가 죽는 것은 결정된 사항이다. 공작의 영지로 돌아가던, 저택에서 나오지 않던 결과는 마찬가지다.

    오로지 유저만이 그녀가 죽는 시간을 늦출 수 있을 뿐. 그것도 겨우 늦추는 것뿐이지, 보통 그녀가 죽는 건 변하지 않는다.

    “가자.”

    평범한 유저라면, 그 당시에는 레벨이 1 밖에 되지 않으니까. 그러나 지금 자신은 어떤가.

    싸울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다. 강해졌으니까, 이제 마음먹은 대로 엘리를 구할 차례다. 황혼이 머무르는 저녁, 라트는 아무런 경고를 하지 않았다면 엘리가 지금쯤 시장어귀를 지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굳은 결심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슬프게 우는 까마귀만이 그의 외로운 행진에 호응해주었다.

    “후우.”

    길드에서 벗어나자마자, 담배를 입에 물었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태우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이러지 않고서야 긴장되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을 것 같았다.

    막을 수 있을까? 구할 수 있을까. 또다시 상념을 뒤집는 의문. 모든 결심을 송두리째 흔드는 우문.

    ‘구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구한다.’

    시장에 들어서자, 저 멀리서 걷고 있는 엘리의 모습이 들어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의 곁에서 알아서 물러났기 때문에 그 모습은 강조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시간에 어째서 공녀인 엘리가 시장에 있느냐고? 우연히도 그녀가 타고 있는 마차의 바퀴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걸어서 공작저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우연일리가 없지. 라트는 쓰게 웃었다. 분명 암살자가 손을 써놓은 거다. 그녀를 호위하는 것은 기사인 세스라 하나 뿐. 그리고 표적은 너무나도 쉽사리 눈에 들어온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먹잇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4명, 검은색 로브로 전신을 감추고 있는 이들이 서서히 평민 사이를 헤치며 엘리에게 다가간다. 저들이다, 시나리오대로 간다면, 엘리는 저들에게 목숨을 잃는다.

    여기서 유저가 할 수 있는 소리를 쳐서 세스라의 주의를 그들에게 돌리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녀의 목숨은 겨우 몇 분 정도 유지될 뿐.

    그렇게 한다면 세스라도 죽고, 엘리도 죽는다. 그러니까 그런 방법을 쓸 생각은 없다. 그럴 이유도 없다. 이 날까지 강해진 이유 중 하나는, 그녀에게 정해진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후우.”

    새하얀 담배 연기가 두둥실 떠다니다가, 사라진다.

    흑색 로브를 입은 자들이 점점 엘리와 가까워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트는 과일을 팔고 있는 노점상에게 다가갔다.

    “어서 오십쇼!”

    “여기 있는 거 전부 사지. 이 노점상까지, 전부.”

    “예?”

    뜬금없는 소리였지만, 라트가 5골드를 넘겨주자 주인의 얼굴에서 탐욕이 나타났다. 5골드, 평민은 평생 동안 만지지 못할 액수다.

    “거스름돈은 팁이니까, 거슬러줄 필요 없어. 그것보다 빨리 달아나. 소란이 일어날 거야.”

    지난 1년 동안, 평민에게 하대를 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러나 주인은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따.

    물고 있는 파이프 담배, 입고 있는 옷.

    어느 것 하나 비싸 보이지 않는 것이 없어. 아무리 봐도 라트의 모양새가 귀족 같아 보였기에 남자는 5골드를 손에 쥔 채 가게에서 물러났다.

    5골드라면 노점상 같은 건 어떻게 된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의 말대로 무언가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말려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도 있었다.

    주인이 사라진 노점에 손을 댄다. 흑색 로브를 입은 자들과 엘리 사이의 거리는 이제 5m도 채 남지 않았다.

    ‘조금 더.’

    3m. 코앞까지 이른 거리라고 할 수 있지만, 라트는 아무런 일도 벌이지 않고 조금 더 때를 기다리면서 버프 포션을 들이켰다.

    2m. 흑색 로브를 입은 자들이 손을 품속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저무는 황혼의 빛이 무언가에서 반사되었다. 그래, 지금이다.

    “만연하라.”

    나무로 만들어진 노점에서 6개의 기둥이 생겨, 라트의 조종에 따라 멀리 뻗어나간다. 그 중 다섯은 엘리를 노리려고 하는 놈들을 향해 날아가고 있고, 그하나는 라트 본인이 타고 있었다.

    “아악!”

    “크윽, 이게 무슨!”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려고 하던 이들은, 갑자기 출현한 나무 기둥에 손목을 맞아서 단검을 떨어트렸다. 철로 만들어진 검이 바닥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자, 공녀를 호위하는 여기사의 시선이 날카로워진다.

    “누구냐!”

    ‘정체를 묻기 전에 손부터 써야할 거 아니야!’

    이들에게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 이들은 숙련된 암살자, 사람을 죽이는데 이골이 난 프로다. 폭탄이나, 연막탄 같은 걸 쓰면 골치가 아파져.

    나무 기둥과 함께 엘리의 앞까지 도달한 라트는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내서 그들의 목을 베어버렸다.

    “꺄악!”

    “살인이야! 사람을 죽였어!”

    주변에서 아우성이 터졌으나, 남자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소녀, 아니 이제는 소녀라고 부를 수 없는 아리따운 여인을 감싸 안았다.

    “라, 트? 이게 지금 무슨 일이야?”

    “나 믿지.”

    “어, 응.”

    “그 말을 듣고 싶었어.”

    여긴 사람이 너무 많다. 암살자들의 주 무대. 봐라,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 숨어있는 암살자들이 이쪽으로 단도를 날리고 있지 않은가.

    “이 놈들! 공녀님께 무슨 짓이냐!”

    괜히 엘리의 수호기사가 아닌지, 세스라는 날아오는 단도들을 모두 쳐내고, 분노의 일갈을 터트린다. 그러나 막는 것도 한계가 있다. 여기서 싸우는 건 불리하다.

    현재 파르스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는 왕과 왕족이 살고 있는 왕성. 그리고 그 다음으로 안전한 곳은 엘리가 살고 있는 공작저였다.

    “세스라, 엘리는 내가 데려간다.”

    “네?”

    기사의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

    “만연하라.”

    라트는 자신이 타고 온 나무 기둥에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해서 지붕 위로 날아올랐다. 세스라가 제법 강력한 NPC라는 건 이견을 달 수 없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사 대 기사의 싸움일 때 뿐이다.

    암살자의 더러운 술수에는 놀아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엘리를 구하기 위한 최선의 수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그녀를 공작저로 데려가면 된다.

    “설명해줘.”

    곱게 라트의 품에 안겨있으면서도, 아리따운 공녀님께서는 설명을 부탁했다.

    ‘그럴 시간이 없는데.’

    지붕 위로 날아올라서, 사람들 사이에 숨어있는 암살자에게는 당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얼마나 많은 암살자들이 있을지 모르는 이상 안심할 수는 없다. 무려 한 왕국의 공녀를 죽이는 일이다.

    어중이떠중이 몇 명을 보내지는 않았을 터.

    “짧게 설명할게. 저 놈들의 목적은 널 죽이려는 거야.”

    “왜?”

    “공작님을 미치게 하려고.”

    라트의 대답에 엘리는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겠지, 엘리는 모르니까. 공작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모른다.

    공작 때문에 매일 죽을 것 같은 수련을 해야한다. 자유 시간도 얼마 없다, 그 짧은 자유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라트를 보러 오는 그녀이니, 공작이 밉게 느껴질 수도 있고, 그의 사랑을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루아타 공작은 엘리를 사랑한다. 딸 아이가 죽었다는 것에 미쳐서, 푸른 귀신으로 불리지 않았던가.

    “날 죽인다고 아버님이 미치실까?”

    “내 말 믿는다고 했지? 그럼 의심하지 마.”

    “으, 알았어.”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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