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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52화 (5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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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적색 늑대는 이름처럼 붉고 거친 머릿결을 흔들며 라트를 움막 안으로 이끌었다.

    ‘생각보다 따뜻한데?’

    움막 안은 라트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따뜻했다. 저 모닥불 때문인가? 활활 타오르고 있음에도 연기가 거의 나지 않는 모닥불이라. 무슨 나무를 태우는 거지?

    “앉아.”

    족장은 움막 안에 있는 털이 풍성한 모피를 가리켰다.

    ‘호랑이 모피잖아.’

    설마 판타지 세계관에 호랑이가 있을 줄이야. 야생동물이라고 해봐야 늑대나 사슴, 그리고 사자 밖에 못 본 라트의 입장 상 호랑이 모피는 꽤 신기하게 다가왔다.

    맨 바닥은 차가우니까 저런 걸 방석 삼는 건가? 일단 앉으라고 했으니까 앉아야지. 꽤 푹신한 감촉에 라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지구에 있는 방석보다야 푹신하지는 않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이 난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여기에 오랫동안 앉아있다가는 바지가 털투성이가 될 거라는 정도? 뭐, 나가서 털면 되겠지.

    “대접할 게 이런 것밖에 없어서 미안.”

    뭐야 이건. 라트는 나무 컵에 들어있는 새하얀, 약간 누른빛을 띄우고 있는 액체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세계에서 생활한 지 겨우 2년, 이게 도대체 무슨 음식인지 알 턱이 있을 리가 없다.

    “이게 뭔가요?”

    “염소젖에 몇 가지 넣고 끓인 거.”

    ”감사히 마시죠.”

    향이 괜찮았기에 라트는 별 말없이 나무 컵을 받았다.

    “어, 맛있어요.”

    일반적인 우유가 아니라, 자판기 우유 맛이 난다고 할까? 추운 날씨 덕분인지, 따뜻한 우유가 거부감 없이 술술 넘어간다. 순식간에 나무 컵에 있는 우유를 전부 마신 라트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컵을 바라보았다.

    “한잔 더 마실래?”

    “예.”

    “입맛에 맞아서 다행이야.”

    적색 늑대가 피식 웃으면서, 나무 컵에 염소젖을 한가득 따라준다. 이건 좀 있다가 마셔야지. 곧바로 마셔버리면 아쉬움이 더할 거 같아.

    “저를 보고 싶어 하신 이유가 뭔가요.”

    그래서 곧바로 여인에게 본론을 물었다. 염소젖에 정신이 팔리기는 했지만, 야만인이 어째서 자신을 찾았는지 꽤 궁금하던 참이다.

    “그 새끼들을 얼마나 죽였는지 궁금해서.”

    [반복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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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색 늑대 부족의 우호도

    목표 : 소리가 들리지 않는 숲의 야만인 뼈 목걸이 제공, 남은 목표 : -

    보상 : 뼈 목걸이 수량에 따라 달라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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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나타나는 퀘스트 창에 라트는 입을 벌렸다. 뼈 목걸이가 로델세나 성의 평판을 올릴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야만인의 우호도를 올릴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야만인과 교류를 해둬서 나쁠 일은 없다. 로델세나 성이야, 라트의 명성이 높아지면 자동적으로 평판이 올라가겠지만, 야만인의 평판을 높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이들의 평판을 올리면, 이들과 교류하는 이종족과도 안면을 틀 수 있다.

    이종족과의 교류는 라트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 중 하나다. 다른 종족은 몰라도 엘프와의 교류는 반드시 필요했다. 유저가 마나와 오러, 두 가지를 모두 다룰 수 있게 제한을 풀어주는 게 바로 엘프들의 왕족인 하이 엘프였으니까.

    ‘좋아, 결정.’

    “잠시만요. 보자, 여기 있습니다.”

    야만인의 평판을 올리기로 결정한 라트는 인벤토리에서 지금까지 잡은 야만인 몹에서 얻었던 뼈 목걸이를 전부 내놓았다.

    “이게 다 몇 개야.”

    여인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라트를 바라보았다. 눈으로 대충 봐도, 바닥에 즐비한 뼈 목걸이 수는 수 백개. 어쩌면 천 개가 넘어갈지도 모른다.

    “어이 푸른 바람!”

    “왜 부르십니까?”

    “이 목걸이 좀 가져가.”

    적색 늑대의 말에 푸른 바람은 고개를 저었다. 천막 바닥에 널린 목걸이는 한 사람이 옮기기는 불가능한 개수다.

    “이건 저 혼자 못 들고 갑니다.”

    “사내놈이 이것도 다 못 들어? 그럼 애들 불러와서 가져가고, 숫자 좀 세서 알려줘.”

    “예.”

    잠시 후, 부하와 함께 뼈 목걸이를 옮기 푸른 바람은 목걸이가 정확히 몇 개인지 알리기 위해 다시금 천막으로 들어왔다.

    “1532개더군요.”

    “미쳤네.”

    천개가 넘어갈 것 같기는 했지만, 진짜 천 명이 넘는 수를 죽였을 줄이야. 붉은 머리의 여인은 다시 한 번 질렸다는 듯이 라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그저 어깨를 으쓱거릴 뿐, 남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 쪽 놈들하고 원수라도 진 거야?”

    “필요에 의해 죽였을 뿐입니다.”

    “무슨 필요?”

    레벨 업을 하기 위해서, 강해지기 위해서 죽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NPC들은 레벨 업이나 스탯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니까. 여기서는 대충 둘러대도록 하자.

    “이놈들을 내버려두면, 성으로 쳐들어오거든요.”

    “아하.”

    겨울이 되면, 로델세나 성에 야만인 몹들이 출현하는 일이 있으므로 거짓은 아니었다. 적색 늑대는 라트의 말에 납득했다. 그들도 겨울에 주인 없는 산맥에서 몬스터가 내려오는 걸 대비해서, 미리 몬스터의 개체수를 줄였으니까.

    “널 부른 건 감사를 표하고 싶어서야. 겨울이 다가올 때, 그놈들을 처리해주면 우리 쪽도 조금은 편해지니까.”

    “어떻게 감사를 표하시게요. 그냥 이렇게 대접 한 번?”

    “윽. 여름이었다면 성대한 대접을 해줬겠지만, 지금은 무리야.”

    라트가 나무 컵에 가득 담겨있는 염소젖을 가리키자, 여인은 혀를 찼다. 지금이 풍족한 여름 혹은 가을이었다면 모를까. 겨울이 다가오는 이 때 식량을 낭비할 수는 없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걸로 입을 닦기엔 나도 체면이 있어서.”

    축제를 벌일 수는 없지만, 굳이 염소젖을 대접하고 싶어서 라트를 여기로 부른 건 아니었다. 라트도 무려 천 개가 넘는 뼈 목걸이를 넘겼는데, 과연 족장이 무슨 아이템을 줄지 심히 궁금했다.

    “이걸 줄게.”

    [반복 퀘스트가 완료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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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 : 붉은빛 나무 반지  등급 : 특별

    형태 : 반지(나무) 특수 효과 : 힘 + 9

    인챈트 : -  내구도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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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괜찮은데. 안 그래도 장신구를 슬슬 구해야했는데. 제르카가 만들어 줄 수 있는 장신구에 비하면 효과가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당분간 사용할 수 있을 거 같다.

    ‘평범한 나무가 아닌데?’

    붉은빛을 머금고 있는 나무라니. 이런 나무는 사람들 사이에서 취급되는 나무가 아니다.

    “우리의 친구라는 걸 나타내는 반지야. 우리나, 아니면 우리랑 우호적인 부족한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평범한 나무로 만든 반지가 아니네요. 사람의 손에 닿지 않는 나무라……. 혹시 교류하고 계신 이종족이 있습니까?”

    “고양이랑 난쟁이.”

    “묘인족과 드워프라.”

    안타깝게도 여기 있는 야만인은 엘프와 교류를 나누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도 묘인족과 드워프와 안면이 생기면 언젠가 엘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제한을 풀 시간이 없지만, 메인 퀘스트를 하다보면 반드시 제한을 풀어야할 때가 오겠지. 그럼 지금부터 그 초석을 준비해놓는 게 좋을 터.

    “혹시 나중에 소개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건 무리야. 걔네들 우리보다 사람을 싫어하거든.”

    야만인은 기본적으로 문명인을 싫어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설정이다. 이 여인이 라트에게 우호적인 이유는 그들의 적을 처리해줬고, 뼈 목걸이 덕에 평판이 오른 덕분일 거다.

    “제가 대가가 드린다면, 고려해보시겠습니까?”

    “들어는 볼게. 날 만족시키는 건 어렵겠지만. 아, 혹시 몸이라도 대준다면 고려해줄 수 있어.”

    “그런 거 안합니다.”

    저 거대한 가슴을 보면 음심이 돋는 걸 참을 수가 없었지만, 안타깝게도 조금 있으면 길드로 돌아가야할 시간이다. 성행위를 한다고 시간을 날려먹을 정도로 여유로운 사람이 아니다.

    “그래? 안타깝네. 일단 대가를 보여줘.”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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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색 늑대에게 대가를 제공하라

    목표 : 어떤 방식으로든 적색 늑대에게 대가를 제공하라

    보상 : 이종족과의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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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오시죠.”

    라트는 자신이 줄 수 있는 대가를 야만인이 살고 있는 곳을 봤을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퀘스트가 뜨지 않았다고 해도, 교류가 생긴 야만인이니 해줄 생각이었고.

    천막 밖으로 나온 라트는 나무로 만들어진 울타리에 손을 댔다.

    “뭘 하려고?”

    “보고 있어요. 만연하라.”

    썩은 나무가 원래대로 아니, 전보다 훨씬 좋은 상태로 바뀐다.

    “와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기적이다…….”

    “미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수많은 야만인들이 감탄을 내뱉었고, 적색 늑대도 감탄과 경외가 섞인 욕설을 내뱉었으나, 변화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울타리는 조금 더 두꺼워져서, 겨울 내내 산 아래로 내려올 몬스터를 막을 수 있는 최적의 모습으로 변했다.

    “와, 어이가 없네. 독수리 날개 할아범도 이런 짓은 못하는데.”

    순식간에 낡아빠진 울타리가 새것처럼 변했다. 안 그래도 첫 눈이 내리기 전에 손을 좀 볼 생각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도움을 받을 줄이야. 그것도 이런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너, 정체가 뭐야?”

    “라트, 연금술사입니다.”

    “처음 들어보는 직업인데. 희귀한 직업이야?”

    “아니요, 평범한 직업입니다. 아, 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연금술사는 많지 않지만요.”

    혹시나 야만인들 사이에서 연금술사라면 이런 짓을 서슴없이 할 수 있다는 이상한 상식이 생길까봐, 라트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그렇구나.”

    “제가 이런 걸 해줬다는 건, 다른 부족에게는 비밀로 해주시겠습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이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다른 부족에서 기를 쓰고 라트를 찾으려고 할 거다. 어쩌면 납치를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친우를 상징하는 반지까지 준 사람을 곤란에 빠트릴 수는 없지. 여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주는 건 이걸로 끝?”

    “아니요. 몇 가지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정보?”

    정보라니, 그런 건 있어봐야 아무런 쓸모가 없다. 겨울내내 식량을 구할 수 있는 사냥터가 있다는 정보라면 또 모를까. 여인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으나, 라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말을 이었다.

    “1년 후, 왕국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목적은 주인 없는 산맥을 차지하기 위해서죠.”

    “뭐?”

    라트의 말에 여인의 표정이 급변했다. 왕국 전쟁이 일어날 거라니. 그것도 주인 없는 산맥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니. 간신히 얻은 삶의 터전을 왕국에게 뺏길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닌가.

    어쩌면 교류하고 있는 이종족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일이다.

    “아. 딱히 그쪽 부족이나, 이종족을 건드리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휴우. 그럼 도움이 되는 정보가 아니잖아.”

    안심하기는 아직 이르지.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라면 이런 말을 꺼냈을 리가 없다.

    “내년, 주인 없는 산맥에서 소란이 일어나면 몬스터들이 첫 눈이 내리기 전에 내려올 겁니다.”

    “아. 확실히.”

    올해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겠지만, 내년 이맘때쯤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소란을 피하기 위해서 몬스터들이 평소보다 일찍 산을 내려올 수도 있다.

    라트가 왜 이런 정보를 주는지 깨달은 여인은 호탕한 미소를 짓더니, 그의 등을 두드렸다.

    “엄청난 정보잖아?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내년에 대비도 없이 몬스터와 싸워야했겠는데.”

    “이 정도면 저를 묘인족과 드워프에게 소개시켜 주시겠습니까?”

    드워프는 엘프와 사이가 안좋기로 유명한 이종족이지만, 묘인족이라면 엘프와 선이 닿아있을 지도 모른다.

    묘인족이 엘프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해도 일단 주인 없는 산맥에서 숨어 지내고 있는 이종족과 안면을 익힌다면 엘프의 거처를 있을 거다.

    굳이 이들에게 이런 정보를 주면서까지 이종족과 안면을 익히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이런 인연을 만들지 않고, 이종족과 만나기 위해 주인없는 산맥을 돌아다니면 1년이고 2년이고 이종족의 거처를 발견할 수 없으니까.

    ‘이 정도면 되겠지.’

    “그, 확실히 걔네들을 소개시켜줘야 할 정도로 도움을 받기는 했는데.”

    그러나 라트의 예상과 달리 적색 늑대는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며 말끝을 흐렸다. 설마, 이 정도나 대가를 치뤘는데도 부족하다는 건가?

    ============================ 작품 후기 ============================

    2편 연재 완료...낮쯤에 한 편 더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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