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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50화 (5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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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다음 날, 오후 늦은 시각. 라트는 심각한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왜 잊어버렸을까. 소녀를 보자마자, 어제부터 계속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먼저 입을 열려고 했지만, 소녀는 눈을 번뜩이며 라트가 입을 여는 것을 사전에 막아버렸다. 심히 곤란한 상황이다, 라트는 쓰게 웃으면서 지금까지 있던 일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어젯밤, 케이네에게 연금술을 가르쳐주는 일을 끝낸 후 스승과 케이네 앞에서 골드 로얄 엘릭서를 만드는 걸 보여줬다.

    모든 능력치를 10씩 상승시키는 어마어마한 엘릭서를 스승은 제조 과정만 보고서는 순식간에 따라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알맞은 시기에 알맞은 장소에서 알맞은 마력을 불어넣어야 하지만, 그것도 라트를 따라하면 되는 것이라 스승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니, 엘릭서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스승은 오랜만에 행복감에 젖었고, 그 모습을 본 라트는 엘릭서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케이네였다. 그녀의 실력으로는 당연히 엘릭서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지. 거기다 불타는 나무도 부족했고. 덕분에 케이네는 오늘부터 백색의 연금술을 공부하겠다는 말과 함께 울면서 공방을 뛰쳐나가 경매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늘, 케이네는 경매장에서 백색의 연금술과 관련된 수많은 서적들을 구입하더니 공방에 틀어박혀서 사온 서적을 미친 듯이 보기 시작했다. 뭐, 저녁 시간을 제외하고 그녀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든, 그건 라트와 관계없는 이야기니까.

    아침과 오후 시간 동안 리젠 존에서 몹을 잡은 라트는 길드로 돌아와서 자신의 공방에 들어서는 순간,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소녀와 겸언쩍은 표정을 짓고 있는 케이네를 볼 수 있었다.

    “둘이서 잘, 이야기해.”

    도망이다, 저건 분명 도망이었다. 소녀의 분노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서 동생을 내버려두고 도망치는 누나라니.

    케이네는 재빨리 라트를 지나쳐 공방에서 나가버렸고, 라트는 한숨과 함께 공방의 문을 닫았다.

    “오랜 만…….”

    “내가 분명 너보고 찾아오라고 한 거 같은데. 내 말이 우습게 들렸어?”

    “누나가 네가 바쁘다고 해서. 나도 좀 바빠서 나중에 찾아가려고.”

    “나중에 언제? 한 달? 아니면 두 달?”

    와, 무섭다.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거라서 더 무서웠다. 아니, 이게 본 모습이겠지. 라트는 자신을 응시하는 푸른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할 말이 없다.’

    이것이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 약 6개월 만에 재회한 엘리와 한 대화였다.

    “양심이 있으면 말없이 6개월이나 사라진 쪽에서 찾아와야 되는 거 아니야?”

    침묵 끝에 엘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을 좋아한다는 티를 팍팍 낸 소녀가 저렇게 서릿발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니.

    “미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솔직히 공방에 있는 엘리를 처음 봤을 때는 맞을 각오도 했었다. 그 케이네도 분을 이기지 못하고 배를 후려쳤는데, 엘리라고 그러지 않을까.

    오히려 더 심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엘리는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고 있을 뿐, 손찌검을 할 생각은 전혀 없어보였다.

    “미안한 줄은 알고 있나 보네?”

    “어.”

    케이네에게 나는 바쁘니까, 네가 알아서 찾아오라는 말을 전한 것도 일종의 투정이겠지. 6개월 동안 감감무소식이던 녀석이 인사를 하러 오는 게 당연하니까.

    “뭐가 미안한데?”

    “아무 말도 없이 6개월 동안 사라진 주제에 바로 못 찾아간 거.”

    “그렇게 잘 알면서!”

    “미안, 개인적으로 바빠서 깜빡했어.”

    엘리가 소리를 지르려고 하자, 라트는 급히 다시 한 번 엘리에게 사과를 했다.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바빴다. 아니 일부러 바쁜 척을 했다. 바쁘지 않으면, 죽음을 예고한 스승 때문에 우울해 질 수도 있으니까.

    “하아.”

    화를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려고 하던 엘리는 라트의 사과에 분을 식히며 한숨을 내뱉었다.

    “엘릭서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왔다며? 케이네 언니한테 들었어. 그거 때문에 바빴던 거야?”

    “뭐, 그렇지.”

    엘릭서 때문에 바쁜 게 아니라, 1년 후 다가올 메인 퀘스트를 위해 레벨 업을 하느라, 그리고 스승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바빴던 거지만.

    “그렇게 연구를 좋아하는 거 보면. 너도 연금술사인가 봐.”

    “하하하.”

    라트는 쓰게 웃었다. 배틀 알케미스트를 지향하는 자신이, 게임 시스템의 가호 아래 모든 연금술을 다룰 수 있는 내가 저런 말을 들을 줄이야.

    “당분간 바빠?”

    “어.”

    바쁘다, 그것도 상당히 바쁜 나날이 이어질 터. 메인 퀘스트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1년 뿐이고, 그 1년 동안 케이네를 가르치면서 동시에 레벨 업을 해야한다.

    “아침 낮 사이에는 개인적으로 할 일이 있고, 저녁에는 사저에게 연금술을 가르쳐줘야하고.”

    목표 레벨은 60~70 사이. 케이네를 가르쳐야하기 때문에 밤까지 사냥을 계속할 수 없으니 1년 동안 뭐빠지게 구른다고 해도, 과연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구나.”

    라트의 확답에 엘리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6개월 만에 본 주제에 또 바쁘다고 말한다. 여유롭게 단 둘이서 보내고 싶은 여자의 마음을 몰라주는 남자가 조금 미워졌다.

    “그럼 널 만나려면 내가 찾아와야겠네.”

    “뭐, 그렇지.”

    솔직히 찾아온다고 해도, 만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쪽은 나름대로 빡빡한 스케줄을 가지고 있으니까.

    “웃지 마, 정들어.”

    “이미 정든 거 아니었어?”

    “으!”

    라트가 능글맞게 말하며 입술을 가리키자, 엘리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런 모습에 라트는 다시 한 번 웃었다.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에휴.”

    “가려고?”

    “응. 왜 그런지 몰라도 아버님이 굉장히 바쁘셔서. 나도 좀 도와드려야 해.”

    “고생하네, 서로.”

    엘리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라트의 뺨에 입술을 가져다댄다. 조그마한, 그러나 굉장히 따뜻한 온기에 라트는 잠시 놀라고 말았다.

    “뭔데, 이건.”

    조금 당황스럽다. 이런 걸 받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작별 인사. 그럼 갈게.”

    태연스럽게 말하고 있지만, 엘리는 엘리 나름대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라트가 한 마디라도 꺼냈다가는 그녀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펑, 터지겠지.

    그래서 라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길드 바깥까지 엘리를 배웅해주고 난 후, 케이네가 있을 공방으로 향했다.

    “나왔어.”

    동생을 버리고 간 누나는 읽고 있던 책에서 시선을 때고 라트를 바라보았다.

    “폭풍을 잘 버텼어?”

    “아니, 그다지.”

    나름대로 태평하게 엘리라는 폭풍을 견뎠던 라트였으나, 마지막에 불어닥친 부드러운 바람 때문에 조금 마음이 심란했다. 엘리가 자발적으로 그런 걸 하다니.

    라트는 아직까지도 그녀의 온기가 남아있는 볼을 문지르다가, 케이네가 왠지 수상하다는 표정을 짓자 급히 손을 땠다.

    “엘리가 그런 표정으로 찾아와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누나는 네가 당연히 엘리한테 한 번 간 줄 알았지.”

    눈치 채지 못 한 건지, 그게 아니면 별다른 일이 없다고 생각한 건지, 케이네는 라트가 볼을 문지르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잊어먹고 있었어.”

    “잊어버릴게 따로 있지.”

    케이네는 라트를 잠시 흘겨보다가, 다시금 책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가 보고 있는 책은 저명한 알베도 학파의 연금술사가 지은 책이다.

    엘릭서를 못 만드는 게 그렇게도 억울했던 걸까? 라트는 그녀의 열정에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지금부터는 수련 시간이니까 가능하면 책을 덮어줬으면 좋겠는데.

    그 점을 지적하려다가, 홀로 바닥에 내팽겨쳐있는 책 하나를 발견했다.

    “누나, 이 책은 뭐야?”

    “아. 그거 온기리드 왕국에서 들어온 책일걸? 잘못사서 환불할까 고민 중이야.”

    온기리드 왕국, 서양식 문화가 팽배하는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동양식 문화가 존재하는 나라다. 뭐, 스타팅 지역으로 그렇게 인기가 있는 나라는 아니었다.

    카르세이나 대륙에는 패자인 셰크티 제국이 있으니까.

    ‘오호.’

    그저 호기심에 책을 살펴보던 라트는 눈을 반짝였다. 아마 케이네는 백색의 연금술과 관련된 책을 모조리 사들이면서 의술과 관련된 책도 산 모양이다. 그 돈은 전부 스승님의 돈으로 나갔지만, 스승님은 그저 허허, 하고 웃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튼, 케이네가 환불하려는 책은 굉장히 흥미로운 책이었다. 침술이라니. 이거 온기리드 왕국의 비전서 중 하나잖아. 어떻게 이런 책이 경매장에 올라온 거지?

    “이거 나 주면 안 돼?”

    “상관은 없지만. 그런 거에 관심 있었어?”

    “조금.”

    조금이 아니라 엄청나게 관심이 있다. 온기리드 왕국의 침술은 피로를 회복하는데 굉장히 탁월하다. 게다가 패널티가 있기는 하지만, 일시적으로 신체 능력을 상승시킬수도 있다. 굉장히 매력적인 능력 중 하나지.

    “그럼 가져. 어차피 스승님 돈이고.”

    “우와, 누나 냉정해.”

    “너나 스승님이나, 누나를 위로해주지 않았잖아! 얼마나 슬펐는지 알아?”

    아, 맞다. 엘릭서를 만들지 못하는 케이네를 보고 위로의 한 마디를 해주지 못한 망정 스승님과 함께 웃어버렸었지. 확실히 케이네 입장에서는 상처가 될 만한 일이었다.

    “미안. 자 됐지? 그럼 책 집어넣고, 빨리 부드러운 돌 연성해봐.”

    “으, 스승님처럼 말하지 마.”

    그런 성의없는 사과로 상처가 지워질 리 없건만. 케이네는 라트를 째려보면서 책을 덮었다.

    “어서.”

    “알았어, 알았다고. 엘릭서도 못 만드는 하찮은 연금술사는 말이라도 잘 들어야지.”

    “누나.”

    “반은 농담이야.”

    라트가 정색하자 케이네는 혀를 내밀었다. 반은 농담이라는 건, 반은 진심이었다는 뜻이다. 라트는 한숨을 내쉬면서 부드러운 돌을 연성하는 케이네를 바라보았다.

    “어때?”

    “최하급 아니, 아직도 미완성 수준이네.”

    그녀가 만든 부드러운 돌의 아이템 정보를 확인한 라트는 인벤토리에 있는 재료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루 만에 이렇게 진전이 있는 게 대단한 거다.

    완성된 편린을 맛봤다고 해서, 하루 만에 부드러운 돌을 연성할 수 있게 됐다면, 라트라도 놀랐을 것이다.

    “자. 잘 느껴봐.”

    오늘도 어김없이 수업이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원고료 쿠폰 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당. 으.........늦잠을 좀 자는 바람에 글 올리는 게 좀 늦었네요.

    오늘은 2~3편 정도 올려볼게요. 가는 길에 추천 선작 한 번씩 눌러주시면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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