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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뭐해, 빨리 와.”
장비와 재료를 책상 위에 늘어놓고 대충 연성진을 그린다. 그 후 부드러운 돌을 연성하기 전, 케이네를 불렀다. 왜 저렇게 멍을 때리고 있는지.
“아, 응!”
라트의 부름에 화들짝 놀란 케이네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라트의 손등에 손을 댔다. 그러자 라트는 주저하지 않고, 실행할 수 있는 연금 재료 중 부드러운 돌을 선택했다.
손에서 불꽃이 튀고 마력이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책상 위를 굴러다니던 재료들은 사라지고 주먹만한 부드러운 돌이 완성됐다.
‘너무 빠른가?’
생각보다 부드러운 돌을 연성하는데 걸린 시간이 짧았다. 이렇게 빨라서야, 사저가 제대로 연성의 편린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라트가 다시 한 번더 부드러운 돌을 연성해야하나 고민하던 찰나.
“흐응, 대충 이렇게 하는 거구나.”
그의 손등에서 손을 땐 케이네는 대충 감을 잡았다는 듯이 말하며 뒤로 물러섰다.
“고마워, 라트.”
“별 말씀을.”
그 짧은 시간에 연성의 편린을 맛봤다고? 라트는 어이가 없어서 케이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느 사이에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가, 부드러운 돌을 연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섬섬옥수 아래에 부드러운 돌이 덩그라니 놓여있었다.
“또 실패네.”
손가락으로 그것을 쿡쿡 찔러보던 케이네가 한숨을 내쉰다. 그래 확실히 실패작이다. 케이네가 만든 부드러운 돌은 고무처럼 탄력이 있기는 하나, 모양이 바뀌지 않으니까.
그러나 겨우 한 번 뿐으로 연성도 하지 못한 부드러운 돌을 대충이나마 연성했다는 사실에 라트는 입을 벌렸다.
‘미쳤네.’
케이네뤼카흐 폰 글란츠, 10년 후 제스맹 기느투스의 후계자로 널리 이름을 알리는 NPC이자 라트의 사저.
연금술사라는 직업 자체가 이 세계에서, 그리고 유저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는 직업이기에 그녀는 커뮤니티 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NPC다. 오죽하면 그 백작님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라트가 그 이름을 처음 들어봤을까.
그래서 사실 그녀의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게임 시스템의 가호를 받는 유저의 입장상, NPC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자신과 비교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래서 스승이 케이네를 항상 천재라고 말했고, 자신도 스승의 말에 납득하고 있음에도 그녀의 재능이 어느 정도인 줄 모르고 있었다.
확실히 연금술만 따진다면 명실상부한 천재다. 괜히 두 대륙의 유일한 대연금술사(아크 알케미스트)인 제스맹이 그녀를 첫 번째 제자이자 후계자로 삼은 것이 아니었다.
“누나는 연금술에 재능이 없을지도?”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 다른 연금술사가 들으면 누나를 죽이려고 할 걸.”
단 한 번, 편린을 느낀 것만으로 치트리니타스 학파의 두 번째 벽을 반쯤 부쉈음에도 재능이 없다니. 라트가 아닌 다른 연금술사가 들었다면 질투심에 살의를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그런 무서운 소리는 하는 게 아니야.”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우우.”
동생이 한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기에 케이네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귀족이고, 연금술에 재능이 있다. 당연히 나는 다른 이보다 뛰어나다는 전제 하에 생긴 자부심도 있었다.
라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모르는 사이에 라트와 자신을 비교하고 있으니, 당연히 자신이 연금술에 재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지. 라트의 재능이 너무나 출중할 뿐이다.
“조금 더 연성해보고, 막힌다 싶으면 말해. 한 번 더 보여줄게.”
“알았어. 그런데 동생님은 뭐하려고?”
“골렘 제조.”
“에에? 골렘이야 쉽게 만들 수 있잖아.”
케이네는 피식 웃으면서 근처에 있는 연성이 끝난 부드러운 철을 들어서 조그마한 인형 크기의 골렘을 만들었다. 그 모양새가 무색의 연금술을 배울 때, 스승이 만들었던 골렘과 유사하다.
“그런 골렘은 당연히 쉽게 만들 수 있지.”
라트 역시 순수한 철을 이용해서 케이네가 만든 골렘과 크기가 비슷한 골렘을 만들어 책상 아래에 뒀다.
“춤이나 추고 있어.”
라트의 명령에 골렘은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춘다. 연성을 통해 쉽게 연금술을 펼칠 수 재료를 이용해 골렘을 만드는 거야, 굉장히 쉬웠다. 마력을 집중해서 코어만 생성해주면 되니까.
“가라!”
라트가 골렘을 만들자, 장난기가 돋았는지 케이네는 골렘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녀의 말에 반응하여 책상을 내려온 골렘은 귀엽게 달려오더니, 춤을 추고 있는 골렘의 배를 후려쳤다.
그러자 라트가 만든 골렘의 배 부분이 약간 찌그러짐과 동시에 무릎을 꿇는다. 그 모습을 보고 왠지, 어제 케이네에게 배를 얻어맞은 것이 생각나서 라트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골렘이 아니면, 어떤 골렘을 만들려고? 좀 더 큰 골렘? 그건 재료만 있으면 만들 수 있잖아.”
재료만 있다면 골렘의 크기는 충분히 키울 수 있다. 그러나 골렘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크기에 비례해서 마력을 계속 주입해줘야 한다. 그리고 휴대성도 굉장히 떨어진다.
라트가 생각하는 골렘은 그런 것이 아니다. 어느 온라인 게임에서 잉비라고 불리는 마법사가 사용하는, 주변의 사물을 이용해서 생성되는 골렘.
“세 번째 벽.”
통칭, 치트리니타스 학파의 세 번째 벽이라고 불리는 코어 대기형 골렘을 만들 생각이었다.
코어 대기형 골렘은 이름 그대로 평상시에는 코어 상태로 대기하고 있다가, 사용자가 코어를 던지면 주변의 사물을 이용해서 형체를 만든다. 평상시에는 코어 상태이기에 마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고, 전투 후 코어에 마력을 충전해주면 그만이다.
게임 시스템 상, 연금술사가 다룰 수 있는 골렘은 최대 두 체 뿐이다. 그 이상 골렘을 운용하려고 들면 머리가 무리가 간다나?
겨우 두 체 밖에 사용할 수 없으나 치트리니타스 학파의 최종 병기라고 불리는 만큼, 그 위력은 확실히 뛰어났다.
“이제 연금술을 배운 지 2년 차에 접어든 꼬마가, 세 번째 벽을 깨시겠다?”
라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케이네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미쳤다, 미쳤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 거야? 누나한테 쪼금만 그 자신감을 나눠주면 안 돼?”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
“뿌뿌!”
가져갈 수 있을 리가 있나. 라트의 저 자신감은 압도적인 재능과 단 한 번도 연성 실패를 해본 적이 없는 성공가도 때문에 나온 자신감인데.
그런 걸 저렇게 쉽게 가져가라고 말하는 라트의 말에 케이네는 볼을 부풀렸다.
“부드러운 돌에나 집중해. 오늘은 시간이 별로 없어. 저녁 먹기 전까지만 누나를 가르쳐주다가, 스승님께 엘릭서를 만드는 걸 보여드려야 하니까.”
“아, 맞다. 나도 볼 거야.”
“그러던가.”
스승은 물론이오, 케이네가 엘릭서를 만드는 걸 보는 것에는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단지, 그녀가 엘릭서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재료와 만드는 방법을 안다고 해도 엘릭서를 만들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라트야 엘릭서를 10병이나 마신 덕분에 백색의 연금술 기능 레벨이 굉장히 많이 올라서 엘릭서를 만들 수 있었지만, 과연 케이네의 실력으로 엘릭서를 만들 수 있을까?
‘알아서 하겠지.’
그냥 엘릭서를 어떻게 만드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케이네의 연금술 실력을 훨씬 다듬어질 것이다. 스승과 라트는 엘릭서를 만드는데, 자기는 만들 수 없다는 현실에 느낄 박탈감은 그녀가 스스로 해결할 문제다.
‘우선 마력석부터 충전해둘까.’
라트가 현재 대검에 낄 수 있게 카트리지 형식으로 세공해놓은 마력석은 총 6개다. 오늘 그 중 한 개의 마력을 전부 사용했으니 충전부터 해놔야지. 이런 일을 괜히 나중으로 미뤘다가는 골치 아파진다.
‘마력석 하나에 들어가는 마력의 총량은 4000.’
현재 라트의 마력이 약 6000 정도. 무려 가진 마력의 2/3를 잡아먹는다. 마력석 하나에 마력탄을 쏠 수 있는 횟수는 약 13번.
탄환으로 사용하면 3~4서클 정도의 위력이 나오고, 검을 강화하면 사용하면 유지 시간이 5분 정도 된다.
판타지 세계관에서는 어지간해서는 등장할 수 없는 완벽한 총검(건 블레이드)에 액체 금속으로 만들어서 형체를 자유자재로 갑옷까지. 다른 이들이 본다면 탐욕에 눈이 멀 장비다.
그래봐야, 기초 연금술을 쓸 수 없으면 아예 사용하지도 못할 장비지만. 검의 모양을 총처럼 바꾸는 것도, 팔찌를 갑옷 형태로 만드는 일도 전부 연금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제작사 측에서 원하던 배틀 알케미스트는 포션을 이용해서 적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좋은 장비로 적을 상대하는 직업이 아닐까?’
배틀 알케미스트, 제작사 측에서 공인한 공식 직업 중 하나다.
그러나 오러를 다룰 수도 없는 주제에 마나를 이용한 공격 능력도 없는 연금술사로 직접 전투에 나서라니. 많은 유저들이 제작사 측의 발언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저는 오러와 마나 중 하나만 다룰 수 있는 제한을 깰 수 있다. 다만, 이 제한을 깨는 방법이 굉장히 까다롭고 그 까다로운 제한을 푼다하면 차라리 마검사를 하고 말지, 배틀 알케미스트를 할 필요는 없다.
라트도 그런 생각을 했기에 이 캐릭터를 처음 만들 때 완벽한 트롤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트롤 캐릭터니까, 그런 커스텀 스킬을 만들었지. 사실 생명의 연금술을 따위로 취급할 수 있는 커스텀 스킬은 수없이 많다.
그런데 그 생각이 무색의 연금술을 배우고, 이런 장비를 얻다보니까 뒤바뀐다. 만약 근접 무기를 사용하는 이들의 실력이 비슷하다면, 승패는 장비의 질로 결정된다.
연금술사는 그 질 좋은 장비를 만들 수 있는 직업이다. 드워프가 만든 장비와 비슷한 아니, 그 이상의 장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들이다.
무색의 연금술을 배우지 못했다고 한들, 이런 장비를 입고 오러를 다룬다면 확실히 강력한 배틀 알케미스트로 거듭날 수 있을 거다.
“흠.”
오늘 사용한 마력석 카트리지의 충전이 끝나자, 라트는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면서 떨어진 마나를 회복했다.
신의 명상법은 희귀 기능답게 단순히 숨을 쉬는 것만으로 마력을 회복할 수 있지만, 명상을 하면 그 회복 속도가 3배 정도로 올라간다.
기능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굉장히 불친절한 게임이기 때문에 자세한 회복 속도는 알 수 없지만, 명상을 하고 안하고의 차이는 체감 상 3배 정도는 됐다.
명상을 통해 10분 만에 마나 4천을 회복한 라트는 이내 순수한 철을 연성하기 시작했다.
아무거나 연성해도, 기능 경험치는 충실히 차오른다. 그렇다면 순수한 철을 연성해서 스승님께 드려서, 그가 조금이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줄 생각이었다.
“순수한 철 연성 속도가 스승님하고 비슷하네?”
“아직 스승님을 따라가려면 멀었어.”
빈말이 아니라, 제스맹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왕실에 재료를 지원받았다고 하지만, 그는 치트리니타스 학파의 궁극, 나아가 연금술의 도달점이라고 불리는 현자의 돌을 연성한 대연금술사니까.
“그래도 누나보다는 빠르잖아.”
“그거야, 그렇지.”
“스승님께 드리려고?”
라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케이네는 따뜻한 미소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스승님이 잠시라도 쉴 수 있게 배려를 해주려는 동생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한 100개 정도 만들고 한 번 더 부드러운 돌을 연성하는 것 좀 보여줄래? 누나 잠깐, 다른 공방 좀 다녀올게.”
배틀 알케미스트를 지향하는 라트와 달리 순수한 연금술사의 길을 걷는 케이네는 다른 공방에서 개인적인 실험을 하고 있었다.
아직 실험 단계라서 제스맹과 라트에게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라트는 케이네의 실력을 믿었기에 제법 재밌는 것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6개월 동안 진전이 좀 있었어?”
“조금? 1년 정도 후면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나?”
1년이라, 라트는 가능하면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기 전에. 적어도 자신이 이곳에서 떠나기 전에 케이네의 실험의 결과를 볼 수 있기를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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