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48화 (48/229)
  • 0048 / 0229 ----------------------------------------------

    1부

    로델세나 성으로 가는 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숲을 빠져나온 라트는 갑옷을 팔찌 모양으로 바꿨다. 착용감이 좋은 편이라고는 하나, 갑옷을 입고 걷는 것은 체력 소모가 심하니까.

    “이딴 건 전혀 쓸모없다고.”

    인벤토리에 대검을 넣고 나서, 담배를 태우며 얻은 아이템을 살펴보았다. 야만인의 낡은 도끼, 야만인의 털옷 등등 잡템 투성이다. 이런 아이템, 잡화점에 팔아봐야 개당 50쿠퍼는 받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이걸 연성해서 쓸 만한 무기로 바꿔서 팔자니.”

    마력이 아깝다. 그 마력으로 길드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 연금술을 펼쳐 괜찮은 아이템을 만들면 연금술 기능 레벨이 훨씬 빨리 올라갈 터다.

    어쩔 수 없지. 장비류는 돈은 별로 못 벌겠지만, 그냥 잡화점이나 대장간에 팔도록 하자.

    자 그럼, 이제 남은 건 뼈 목걸인데. 뼈 목걸이는 리젠 존에서 야만인을 처리하면 얻을 수 있는 반복 퀘스트 재료다.

    이걸 로델세나 성에 가져다주면 로델세나 성의 평판이 올라가서, 평판의 끝을 찍으면 영주가 유저를 매우 우호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런 퀘스트가 있는 성은 그나마 평판을 올리기 쉽지만, 반복 퀘스트로 평판을 찍을 수 있는 성은 별로 없다. 사실상 다른 영지의 영주의 평판을 올리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노가다, 혹은 특수 이벤트가 필요했다.

    그게 싫으면, 평판을 올려줄 수 있는 NPC를 유혹하던가. 남자 캐릭터를 플레이해서 영주의 부인을 따먹어도 평판은 올라간다. 아, 물론 발각되는 순간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은 항상 명시해두고.

    반대로 여자 캐릭터를 플레이한다면 영주의 불륜 상대, 지구에서 흔히 말하는 스폰녀가 될 수도 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영주 혹은 영주의 후계자라면 결혼하는 것도 가능하다.

    라트는 2d 도트 게임에서 연애 같은 걸 할 바에야 차라리 야겜을 하거나 야동을 보겠다고 생각했기에 연애에 대한 지식이 전혀 부족했지만.

    그래도 공략 난이도가 어마어마하게 높은 NPC나, 유명한 NPC를 어떻게 공략하는지, 기초적인 뼈대를 잡는 방법은 알고 있었다. 커뮤니티에서 하도 그런 글이 올라와서, 몇 번 살펴봤기 때문이다.

    뭐, 기초적인 뼈대만 알고 있을 뿐. 그 이후에는 정해진 선택지가 있는 게 아니라 유저가 어떻게 연애를 풀어나가는 가에 따라 사귀는 npc와의 사이가 발전하는지, 아니면 쇠퇴되는지 결정되는 방식이다.

    그 점이 진짜 연애를 한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RPG 게임임에도 여자를 공략하는 카사노바식 플레이를 하는 유저도 상당히 많았다. 그런 모드가 나왔을 정도니까, 그 인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필요 없겠지.

    ‘지금 같은 상황이면 그런 플레이를 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겠네.’

    월드 세리아의 npc들은 매력적인 모습을 구가한다. 일반적인 평민 중에서도 제법 예쁜 사람들이 많았다.

    여자 귀족의 경우는 혈통적으로 예쁘기도 했지만, 남는 게 돈과 시간 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왕족이나, 황족의 경우는 설명을 할 필요도 없다. 설정 일러스트에서도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졌고, 그리고 차갑게 그려졌으니까.

    아, 물론 대부분 매력적이기는 해도 추남, 추녀로 유명한 npc들도 있다. 물론 2d 도트로 볼 때는 이게 못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설정 일러스트에서는 확실히 토가 나올 정도로 못생긴 npc들이 분명 존재했다.

    그리고 못생겼으면 악역인 판타지의 전형적인 클리셰와 달리 추남이지만 마음이 매우 선한 npc도 있었고, 미녀도 아니고 평범하게 생겼음에도 악녀인 npc도 있었다.

    “카사노바라.”

    라트는 고개를 저으며,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스승과 케이네의 정해진 운명을 바꿨고, 앞으로 엘리의 운명을 바꿀 생각이다.

    그 후에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진엔딩을 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숨은 조건을 찾아다닐 생각이다.

    안 그래도 시간이 촉박한데, 주제에 연애는 무슨. 연애는 지구로 돌아가서 해도 충분하다. 그리고 연애를 하고 싶다고 해도, 근처에 있는 여자들은 자신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후우.”

    담배 연기와 함께 잡생각을 허공에 날려버렸다. 지금 당장은 사저에게 연금술을 가르치고, 강해지는데 집중한다. 이런 잡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는 입장이다.

    그래, 잡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그러니까 슬픔도, 나에게는 사치야.

    *****

    당장 로델세나 성의 평판을 올릴 필요는 없었기에 라트는 잡템을 전부 처분하고, 포탈을 이용해 파르스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와중 담배를 계속 태우던 라트는 길드에 들어설 때 쯤에야 담배를 껐다.

    “이제 괜찮아?”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을 생각으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 케이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침대에 앉아 라트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라트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괜찮아.”

    어제, 처음으로 케이네에게 눈물을 보였다.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까 사저가 자신을 저런 눈으로 쳐다보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동정이 아닌, 순수한 걱정. 그 모습에 라트는 다시금 심장이 욱신거렸지만, 필사적으로 그 느낌을 지웠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누나.”

    “우리 사이에 고맙기는. 괜찮다면 됐어.”

    옷장을 열자, 스승과 케이네가 사다준 옷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이 라트가 지금 입고 있는 옷도 그렇고, 이곳에 맨 처음 왔을 때 산 옷 몇 벌, 키가 크는 바람에 이제는 입을 수 없는 그 옷들을 제외하면 라트가 입는 옷은 전부 그들이 사다주었다.

    스승이야, 손주가 옷이 필요하니 사준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케이네의 경우에는 라트에게 이 옷을 입혀보고 싶어서 옷을 사다주는 느낌이었지. 왠지 인형이 된 것 같아서, 옷 좀 그만 사오라고 말하기도 했다.

    빌어먹을 애새끼의 투정이었지. 그게 애정인지도 모르고, 귀찮다고 말하다니.

    “아우, 냄새 나. 담배 좀 적당히 펴.”

    이제야 라트의 옷에 베인 담배 냄새를 맡은 것인지, 케이네는 코를 쥐는 시늉을 하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담배 냄새라, 길드 앞까지 담배를 태우면서 온 게 쓸데없는 일은 아니었다.

    야만인 몹을 잡느라, 라트의 몸에는 혈향이 진하게 배어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이 혈향을 맡지 못하게 계속 담배를 태웠고, 결과는 이렇게 돌아왔다.

    “그래야지.”

    그래도 역시 담배는 적당히 펴야지. 지금 케이네가 한 말은 지구에서는 어미니께 자주 들은 말이다. 그때는 내가 알아서 할게, 라고 냉정하게 말했었다. 아, 정말 왜 그랬지. 엄마는 날 걱정한 것뿐이었는데.

    “점심은 먹었어?”

    “대충.”

    사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아침을 대충 먹은 걸 제외하면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은 라트다. 그러나 목이 마르지 않아, 배도 고프지 않다. 지금 당장은 이 답답함을 씻어내고 싶었다.

    “누나 나 샤워할 거야. 나가줘.”

    “그래? 그럼 라트가 누나 공방으로 올래? 아니면 누나가 라트 공방으로 갈까?”

    스승님께 이미 이야기를 들은 건가. 그러나 케이네는 스승이 은둔한다는 건 모르는 말은 듣지 못한 거 같았다. 그 말을 들었다면 저렇게 태평하게 있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혹여 나중에 그 말을 듣는다고 해도 은둔의 원인이 라트에게 있다는 걸 모를 테니, 케이네의 분노가 자신에게 향하지는 않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왠지 안심이 됐고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누나 공방으로 갈게.”

    간신히 말을 꺼냈다. 그러나 케이네가 그것을 알지 못하게 담담하게 말한다.

    ‘통할까?’

    이 세계에서는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인 케이네다. 라트가 능숙하게 말을 했다고 하지만, 과연 그녀를 속일 수 있을까?

    “그래? 그럼 씻고 천천히 와.”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케이네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라트의 방을 나갔다.

    “후우.”

    케이네가 방을 나가자마자, 한숨이 세어나온다. 분명 슬픔이 사치라고 생각한 주제에, 왜 이 죄책감을 지울 수가 없는지. 입술을 깨물던 라트는 갈아입을 옷을 들고 방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연금술과 마법을 이용해 만들어진 샤워기 비슷한 것에 몸을 맡기고, 가득히 스며있는 피 냄새, 그리고 담배 냄새와 함께 죄책감과 슬픔을 씻어냈다.

    기나긴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자신의 공방으로 간 라트는 몇 가지 실험도구와 재료를 챙기고 케이네의 공방으로 들어갔다.

    “나 왔어.”

    “빨리 왔네.”

    아마도 30분 정도는 걸렸으니, 빨리 온 건 아니었다. 아, 케이네의 기준에서는 빨리 온 편이다. 그녀는 한 번 샤워하면 기본 1시간은 잡아먹으니까.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은 라트는 케이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폈다. 지금 그녀가 연성하려고 하는 것은 점토 같이 물렁물렁하지만, 강한 충격을 튕겨내는 성질을 가진 부드러운 돌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부드러운 돌이라, 순수한 철 아니, 핸드 캐논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연금 과정이 필요한 물질인데 과연 케이네가 만들 수 있을까?

    “또 실패했다.”

    “역시.”

    무리지, 무리야. 케이네의 재능은 뛰어나나 부드러운 돌은 치트리니타스 학파의 최종 비기라고 취급되는 골렘을 제외하면 가장 어려운 연성 난이도를 자랑하는 물질이다.

    부드러운 돌의 연성 난이도가 어느 정도로 높냐면, 순수한 철을 공장처럼 찍어내고 있는 제스맹도 부드러운 돌 1kg를 연성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신력을 소모할 정도다.

    “에에! 역시라니, 너무해!”

    라트가 자신이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자 케이네는 울상을 지었다. 순수한 철이 치트리니타스 학파의 거대한 벽이라고 불린다면, 부드러운 돌은 두 번째 벽이라고 불리는 물건이다.

    그리고 마지막 벽은, 현재 라트가 목표로 하고 있는 골렘을 만드는 거다.

    “그럼 내가 성공할 줄 알았는데, 아깝다고 해줄지 알았어?”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해!”

    거참 까다로운 누나네. 라트는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일단 누나한테 말해둘게 있는데. 나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걸 잘못해. 스승님하고 다르게 나는 직감으로 연성하는 타입이거든.”

    직감은 무슨. 그저 게임 시스템의 가호를 받고 있을 뿐이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지만, 실제로 직감으로 연성을 하는 연금술사들이 있었기에 케이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트가 이론을 제대로 못 외우는 무식한 타입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어.”

    복수냐! 조금 전에 역시라고 말했다고 복수한 거지. 와, 대놓고 무식한 타입이라고 매도당할 줄이야. 케이네의 깜짝 공격에 라트는 머리를 긁었다.

    “어떻게 착실한 이론파인 스승님에게 배웠는데, 라트는 직감파가 된 걸까?”

    “그러게.”

    직감으로 연성을 하는 건 어찌 보면 도박이나 다름없다. 확실한 이론이 없으면 언제 연성이 실패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게임 시스템의 가호를 받는 라트는 지금까지 연성을 실패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니지, 지금 이런 한가로운 말을 할 때가 아니다. 케이네에게 연금술을 가르쳐주면서 골렘을 만들 수 있게 황색의 연금술 기능 레벨을 올려야한다.

    그리고 오늘 밤 중에 스승님 앞에서 엘릭서를 만드는 것도 보여드려야하고. 할 일이 태산이란 말이다.

    “아무튼!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누나가 연성이 막히는 걸 어떻게 연성하는지 보여주는 것 정도일건데.”

    “그 정도면 괜찮아.”

    “그럼 부드러운 돌을 연성하는 걸 보여줄게. 아, 그냥 손등 만져. 그게 낫겠다.”

    다른 연금술사가 연성 도중인 연금술사의 손등을 만진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가 크다. 연성 도중 손등을 만지면 연성의 과정이나, 들어가는 재료 그리고 배합의 편린을 맛볼 수 있다.

    재능이 있는 연금술사라면, 그 정도 힌트만 있어도 충분히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진짜로? 그러다 누나한테 골수까지 빨아 먹히면 어쩌려고?”

    라트는 쓰게 웃었다. 저렇게 말하면서 약간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케이네의 모습이 웃겼기 때문이다.

    순수한 철은 최대한 불순물을 제거하면 최상급의 재료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외의 재료나 도구는 연금술사마다 조금씩 연성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그 조금의 차이로 최상급과 하급이 나뉘었다.

    라트는 게임 시스템의 영향 덕분에 아무렇지 않게 최상급의 부드러운 돌을 만들 수 있었다.

    케이네도 그 사실을 알기에 동생이 노력해서 알아낸 최상급 부드러운 돌의 배합 방법을 자신이 강탈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가 그러는 거면 상관없어.”

    케이네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지만, 라트는 인벤토리에 들어있는 연금술 도구와 재료를 꺼내고 있었기에 미처 그걸 보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머리가 너무 아프면 오히려 잠을 못 자는군요....그냥 한 편 써서 올렸습니다..으..이제 제발...잠 좀....그리고 추천 좀..

    광산에 있던 사람이 1명 뿐이라고 생각하신 독자님들이 계시는데. 문장에 암시만 해두었지만, 광산에 있었던 자들은 총 3명입니다.

    한 명은 연금술사(화약과 몬스터가 사용하던 장비를 준비) 다른 한 명은 몬스터 테이머(몬스터 제공),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마법사(포레스트 라이언에게 투명 마법을 걸어주고, 텔레포트 마법을 방해하는 마법을 사용함)...

    원고료 쿠폰 주신 독자 여러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아까 전에 너무 머리가 아파서 후원 쿠폰을 주신 분들께 감사를 못 드렸네요.

    파나마운하 20장, Luionix님 3장, 빛낫던시뱅님 10장, 그리고 niellee님 600장.....연참 안 해요, 안 할거야, 쉴 거야!!

    작가가 억지로 연참을 하면 그 반동으로 이렇게 두통 때문에 고생하게 됩니다...제가 공장도 아니고 쉬어야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