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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46화 (46/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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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좋은 사냥터야.”

    하나, 둘, 쉬지 않고 야만인 몬스터의 목과 팔을 베고, 심장과 배를 찌른다. 무색의 연금술을 이용해 묶고, 찔러. 생명의 연금술을 이용해 폭사, 압사시킨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는 몬스터.”

    자비 없는 라트의 손속에 몬스터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저승길을 향할 뿐.

    “익숙하지 않은 피 냄새. 익숙하지 않은 죽음.”

    익숙할 리가 없지. 몬스터는 물론이고, 사람처럼 생긴 몹을 죽이는 건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칼을 주고 길거리를 배회하는 고양이나 강아지라는 죽이라고 해도 평생 동안 교육받았던 윤리관 때문에 분명 그 행동을 망설일 것이다.

    아, 그로테스크하지 않은가. 사람의 살점이 베여서 피분수가 몰아치고, 절단면 사이로 뼈와 붉은색 살이 보인다. 익숙하지 않은 광경, 그러나 익숙해져야하는 장면.

    그렇기에 라트는 구토를 억눌렀다. 앞으로 수많은 이를 베어야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고작 리젠 몹이 죽는 모습을 봤다고 해서 토를 한다면, 앞으로는 어쩌려고?

    그러니까 망설이지 않고 죽인다. 익숙하지 않은 행위를 하고 느끼는 혐오감을 배제한다.

    “그리고 쉬지 않고 달려오는 너희들.”

    피 냄새를 맡았기 때문인가. 선공몹인 야만인들은 계속해서 라트 쪽으로 몰려오고 있는 중이다.

    싫어, 아니 좋아.

    생명을 죽인다는 것은 아직도 꺼림칙했으나, 정신없이 움직일 수 있는 건 좋았다. 혐오감이 죄책감을 지운다.

    ‘죄책감을 지워?’

    “컥!”

    라트는 날카로운 직감 덕분에 야만인 중 하나가 자신의 뒤를 노리고 있음을 파악하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정확히 검을 뒤로 찔러 그의 배를 가르면서 고개를 저었다.

    맙소사, 출신 성분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자신을 가족같이 대해준 제스맹이 자신 때문에 죽게 생겼는데, 나 지금 그 죄책감을 혐오감으로 지우려고 했던 것인가.

    “만연하라.”

    무색의 연금술로 일대의 모든 야만인들을 속박한 라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뺨에 묻어있는 피 한 방울이 사르륵, 굴러 떨어져 그의 얼굴을 더럽힌다.

    “후우.”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 여유를 연기하며 담배를 태웠다.

    ‘뭐, 그럼 어때.’

    스승이 남긴 마지막 부탁은 확실하게 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승에게 속죄할 길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괜찮지 않을까.

    어젯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오열했던 이유도,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돌아다녔던 이유도,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고 싶어서이지 않았나.

    “크아아!”

    “어딜 꼬라봐. 뒤져.”

    붉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이빨을 내밀고 포효하는 야만인 몹의 행색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라트는 차갑게 그의 목을 베었다.

    신이여. 존재하나 군림하지 않는 존재시여. 부디, 어려울 때만 당신을 찾는 이 가련한 양을 도와주소서. 이 목소리를 듣고 있다면 허락해주소서.

    지금만큼은, 목숨을 걸고 사냥을 하고 있는 지금만큼은. 죄책감이 나를 지배하지 않기를.

    뒤쪽에 있는 야만인들의 머리 위에 생명의 연금술로 거대한 철판을 만들어 단숨에 그들을 눌러 죽인 라트는 처연히 미소를 그린다.

    “내 경험치가 되라고.”

    살인을 통해 죄책감을 지우려는 미친 광인이 될 생각은 없다.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몹이다. 살아있으나, 유저의 경험치가 되기 위해서 존재하는 몬스터였다.

    혐오감을 지운다. 목숨을 걸고 사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죄책감을 지운다.

    “우워어어!”

    “크륵!”

    “제대로 해보자 이거지?”

    앞쪽에서 또 다른 야만인 몹 무리가 출연하자, 라트는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냈다. 저 정도 숫자가 몰려온다면 이쪽도 제대로 해줄 용의가 있다.

    마나 포션을 먹어 마나를 채우고, 스테미너 포션을 먹어서 지친 몸을 달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화 물약을 먹어서 신체를 강화시킨다.

    평범한 배틀 알케미스트가 무서운 이유는 바로. 만들어놓은 물약을 먹어서 체력과 마나, 스테미너를 곧바로 회복하는 점이었다.

    그래봐야 포션이 떨어지면 무능하고, 포션이 있다고 한들 감당할 수 없는 상대를 만나면 포션도 먹지 못하고 죽는다. 그리고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배틀 알케미스트는 마나를 깨우친 연금술사였기에 오러를 다룰 수가 없다.

    그러니까 배틀 알케미스트가 트롤이라는 거지.

    ‘나 같은 사기캐가 아니면. 확실히 트롤이지.’

    에디터를 통해 생명의 연금술과 바이올런의 총애를 얻었다. 보통 연금술사는 절대로 배울 수 없는 무색의 연금술을 배웠다. 엘릭서를 먹어서 모든 스탯을 뻥튀기 시켰다.

    그리고 포션 뿐만 아니라, 모든 연금술에 정통한 덕분에 이런 무기와 갑옷을 만들 수 있었다. 트롤을 목적으로 만든 캐릭은 많은 기연 덕분에 훌륭하게 사기 캐릭으로 성장했다.

    이 리젠 존의 최소 권장 레벨은 40. 40레벨의 유저가 꽤 버거워하면서 몹들을 죽일 수 있는 곳이다.

    포션을 먹어서 회복과 버프를 끝낸 라트는 이번에는 야만인이 여기까지 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달려들었다. 정신없이 검을 휘두른다.

    공격을 피하거나 막는 건 최소한으로. 미스릴 갑옷의 방어력은 굉장히 뛰어나기에 야만인이 아무리 발악한다고 한들, 라트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더, 공격적으로.’

    마르쿨 검술의 묘미는 공격에 있었다. 방어 기술은 극단적으로 적다. 오로지 공격에만 치중되어있고, 그만큼 방어에 약했다. 방어를 할 바에야 그 시간에 더욱 거칠게 공격을 하는 검술이다.

    ‘더 빠르게.’

    무색의 연금술로 그들의 다리를 묶지 않았음에도 라트는 거침없이 몹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레벨 40에도 미치지 못한 자가 최소 권장 레벨이 40인 구역에서 학살을 벌이고 있다니.

    월드 세리아의 밸런스는 절묘하기 그지 없다. 그들이 최소 권장 레벨을 40이라고 적어놨으면 40레벨 이하의 유저는 이 리젠 존을 버거워 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라트는 전혀 버거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야만인들을 죽이고, 또 죽인다. 반항은 허락하지 않아.

    그들이 도끼를 들어 올려 라트의 등을 찍어 누르고 다리를 베려고 노력했으나, 갑옷조차 뚫지 못하는 가벼운 공격에 당할 리가 없다.

    ‘사기캐네.’

    만약 이 사실을 커뮤니티에 알릴 수 있다면, 모든 유저들이 라트에게 사기캐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

    그래 기왕 바꾼 그 운명이라는 거, 확실하게, 완벽하게 바꿔줄게. 완전히 바꿔서, 내 입맛에 맞는 세계로 만들어주겠다.

    자신을 가로막는 야만인을 난도질한다. 검을 돌려 단 번에 5마리의 몹에게 상처를 입힌다. 방어는 없다, 그런 것까지 신경 쓰기에는 지금 내 머리가 너무 아파.

    [희귀 기능 마르쿨의 검술의 묘리를 터득하셨습니다]

    [희귀 기능 마르쿨의 검술 레벨이 2 상승했습니다]

    “다, 죽어.”

    눈앞에 나타난 알림창을 무시하고, 라트는 담배 연기를 내뿜더니, 화려한 폭발을 일으켰다. 이 정도 폭발이라면 남아있는 야만인들도 전부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폭발 소리를 들은 몹들이 이곳으로 몰려들 것이 분명했다. 조금 더 많은 몹들이 이곳에 왔으면 좋겠다. 미친 듯이 몸을 움직여서 죄책감을 떨쳐내고 싶었다.

    “빨리 기어와, 이 새끼들아.”

    생각한대로 폭발 소리를 들은 야만인들이 무리지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을 발견한 라트는 게슴츠레 피어오르는 환희에 몸을 맡긴다.

    “존나 느리네.”

    그것도 잠시 야만인 무리가 생각보다 자신과 떨어져있다는 사실에 인상을 찡그렸다. 저기까지 달려가고 싶지 않아, 최대한 로델세나 성과 가까운 곳에 있어야 돌아가기 편하다.

    사냥 때마다 귀환 스크롤을 사용하면 돈이 남아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걸어서 이동하고 싶었다.

    그리고 연금술을 사용한다고 해도, 몹의 수가 너무 많았다. 폭발소리가 제법 화려했기 때문인가? 100마리가 한 번에 이쪽으로 오는 거 같다. 지금까지 벤 몹의 숫자가 약 30마리 정도인 걸 생각하면 경이적인 숫자다.

    100마리면, 리젠 존에 있는 몹 중 1/3 정도는 이쪽으로 오는 건가?

    ‘수를 좀 줄여놔야겠는데.’

    라트는 파이프 담배를 인벤토리에 넣고 들고 있는 대검에 연금술을 사용했다. 그러자 대검이 양쪽으로 쪼개졌고, 손잡이가 곡선을 그린다. 그 모양새가 마치, 총과 같았다.

    ‘조준 완료.’

    목표는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야만인 무리다. 아직 사격술 기능을 손에 얻지 못했지만, 저렇게 숫자가 많아서야. 아무렇게나 쏴도 몇 명은 맞을 것이다.

    손잡이 중앙 부근에 달려있는 방아쇠를 당기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양쪽으로 쪼개진 칼날 사이에서 화염이 내뿜어졌다.

    그리고 빛을 머금은 탄환이 대기를 부드럽게 타고 날아가, 야만인 사이에 떨어졌다. 사격술 기능을 배우지 않았기에 이 정도 거리가 떨어져있으니 맞출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라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맞지 않아도 된다. 저건 그냥 탄환이 아니라, 마력석에 담겨 있는 마나를 탄환으로 만들어 발사하는 거니까.

    탄환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후속타는 존재하고, 그 후속타의 위력은 3서클 마법 중에서도 악명 높은 화염 속성 마법인 익스플로전과 맞먹는다.

    땅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수많은 야만인들이 폭발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허공에 떠오르고, 지상에 처박힌다. 그 중 몸이 성한 놈은 없다.

    ‘저 놈들이 여기까지 도착하는데 대략 5분 정도.’

    총구의 발열을 생각하면 마력탄은 1분에 한 번, 5분이라면 5발정도 쏠 수 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여기까지 도착할 수 있는 야만인들은 40명 남짓이겠지.

    1분 후, 라트가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겼고 마력탄은 어김없이 야만인들을 향해 날아갔다. 운이 좋은 걸까? 탄환은 선두에서 서서 달리고 있는 야만인을 향해 정확히 날아간다.

    탄환의 후속타는 3서클이지만, 탄환에 직접 맞는다면 그 위력은 대략 4서클 정도일 것이다. 40레벨 짜리 몹이 감당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그렇기에 라트는 미소를 지었으나, 잠시 후 그 미소를 지웠다.

    “마력탄을 벴어?”

    분명 마력탄에 직격할 것이라고 생각한 야만인은 라트의 생각을 비웃듯 거대한 도끼를 들어서, 마력탄을 베어버렸다. 물론 마력탄을 벴다고 해서 그 효과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는 야만인의 뒤를 따르던 이들이 폭발에 휘말려 장렬히 전사했다.

    대검을 땅에 내린 라트는 마력탄을 벤 야만인을 주시했다. 정확히는 그의 도끼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희미하기는 하지만, 그의 도끼에는 푸른색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다.

    “미친, 오러잖아.”

    탄환의 위력은 약 4서클. 그렇다면 마력탄을 벨 정도라면 최소한 오러를 다룰 수 있는, 익스퍼드 바로 아래 단계인 베너렛 정도는 돼야 한다.

    베너렛의 경지에 오른 몹의 최소 레벨은 약 60 정도. 근방에 있는 몹들의 어그로를 끌 생각이었지만, 설마 저렇게 레벨이 높은 몹까지 어그로를 받을 줄은 몰랐다.

    “후우.”

    오러를 다룬다고 함은, 일반적인 무기로는 상대할 수 존재다. 상대방보다 검술이 더 뛰어나다고 해도, 신체적 능력이 앞선다고 해도, 오러는 그것을 무색하게 만든다.

    무기로 무기를 벨 수 있게 해주는 힘을 가진 것이 오러다. 똑같이 오러를 다루지 않는 이상, 오러가 씌워진 무기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잘 됐네, 실험해보고 싶은 것도 있었고.’

    굳이 검으로 상대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오러를 다룬다고 해도, 무색의 연금술과 생명의 연금술을 이용하면 어렵기는 해도 잡을 수는 있을 거다. 그러나 실험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러니까 작전 변경이다. 최대한 몹들의 어그로가 풀리지 않게끔 도망 다니면서 최대한 야만인의 수를 줄이자. 될 수 있다면 오러를 사용하는 야만인만 남을 때까지.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10명이 남을 때까지는 도망 다니기로 마음을 굳혔다.

    ============================ 작품 후기 ============================

    5편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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