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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Bgm, Night Of The Piano
라트, 아니 최현준은 조부모에 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현준이 3살일 때쯤 조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가 애기일 때 조부모와 같이 찍은 사진은 있었지만, 현준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다시는 만날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아무런 기억도, 추억도 없으니까.
너무 오랜 전에 돌아가셨으니까. 그래서 조부모님이 돌아가셨음에도 떠올릴 것이 없어서 슬프지 않았다. 나이가 어릴 때는 제삿날에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와 어미니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뭐, 나이가 먹고 나서는 부모님이 어째서 눈물을 흘리는지 알 수 있었고, 윤리관을 교육 받은 덕분에 자신도 덩달아 슬픔을 느끼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모님의 슬픔에 동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일까?
현준, 아니 라트는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심장이 터질 거 같다. 속이 쓰리다. 그리고 슬픔과 함께 분노가 찾아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축하해, 빌어먹을 새끼야. 네가 운명을 바꿨어.
아니야. 부정의 말에 입가에 맴돌았지만, 차마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맞아, 라트라는 캐릭터 때문에 운명이 바뀌었다. 스승은 예정된 것보다 훨씬 빠른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아직 준비를 완전히 갖추지 못한 케이네가 하이 마스터 자리에 오르겠지.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엘릭서를 구해서 스승에게 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소용 없는 짓이다. 엘릭서가 기적의 물약이라고 불리지만, 남은 수명까지 회복시켜주지는 않는다.
엘릭서의 기능은 마신 자의 능력을 상승시켜주거나 질병을 회복시켜줄 뿐. 수명을 깎아먹으며 고된 일을 하고 있는 스승에게 엘릭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래서 창문을 통해 달빛이 내려오는 복도를 헤맨다.
목적지는 없어, 그저 움직이지 않고 침대에 누우면 주제도 모르고 흐느낄 거 같아. 그것이 자신에게 허락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걸음을 옮길 뿐.
“라트, 누나가 야식……. 너 울어!?”
그러던 와중, 라트를 발견한 케이네가 그를 반갑게 맞이해주려다가 그가 울고 있는 것을 보고, 허둥지둥 달려왔다.
“왜 울고 있어. 응? 누나한테 말해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할 수가 없었다. 스승이 은둔한다고 말하면 케이네도 슬퍼할 테니까. 스승도 그걸 원하지 않을 터다. 아니, 어쩌면 케이네도 이미 느끼고 있을 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더더욱 말할 수 없다. 예측을 확신으로 바꿔주는 잔인한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스승님이 돈을 너무 많이 썼다고 혼냈어? 누나가 가서 따끔하게 한 마디 해줄까?”
‘하하하.’
여전히 자신을 꼬마로 취급하는 케이네의 모습에 라트는 구슬프게 웃었다.
“울지 마, 누나도 슬퍼지잖아.”
“미안…….”
가족이라고 생각한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이, 자신의 존재 이유만으로 피해를 줬다는 현실이 너무나도 처참해서, 그래서.
아아, 달은 밝아. 그러나 달이 아무리 밝다고 해도, 밤의 어둠은 사라지지 않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단지 사죄 뿐.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는 것 말고. 그 이상의 행동은 할 수 없었다. 사죄한다고 해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
아니, 케이네와 스승님은 자신을 용서할 것이다.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말해줄 사람들이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들은 진실을 모르니까.
사정을 모르는 그들이, 자신을 용서해준다고 한들 마음속에 응어리진 죄책감이 사라질 리 없다.
웃기는 일이다. 슬픔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버팀목이 필요했지만, 그 버팀목이 자신 때문에 피해를 입은 케이네라니. 웃기지도 않을 희극이었고, 슬프지도 않은 비극이지 않은가.
“미…안해, 누나.”
이유를 알 수 없이, 그저 사과를 하는 라트의 모습에 케이네는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스승님과 연관된 일이겠지.
그러나 그가 왜 이렇게까지 슬퍼하는지 짐작하지 못했다. 아니 짐작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은 눈앞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남자를 위로해주는 것이 먼저니까.
“괜찮아, 괜찮아.”
팔을 들어올려, 라트를 껴안은 케이네는 풍만한 가슴에 라트의 얼굴을 묻게 한다. 그리고 괜찮다고 말하면서 그를 다독였다.
눈물이 얼룩져 그녀의 가슴께를 타고 흐르는 촉감이 느껴졌지만,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저 슬퍼하는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디, 이 아이의 슬픔이 사라지기를 빌면서. 그가 자신에게 사과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부드럽게 그의 녹색 머릿결을 매만진다.
슬픈 아이가 구원받는 건, 동화의 이야기일 뿐.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아.
어린 아이가 보는 동화는 항상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그건 동화니까, 현실이 아니니까. 그래서 가능한 일이지. 현실에서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이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케이네는 천천히 라트를 자신의 방으로 이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이 아이가 밤새도록 울 것 같아서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이 세상에 홀로 남겨져, 기댈 것조차 없는 아이. 단 한 번도 칭얼거린 적이 없고, 때를 쓴 적도 없다. 그저 묵묵하게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
그것이 너무나도 안타깝게 느껴졌었다. 너무 일찍 철이 든 아이는 조숙하나, 미숙하다. 슬퍼할 줄 모르고, 눈물을 흘릴지 모른다. 불합리함을 먼저 겪었기에 빨리 수긍하고 적응한다.
라트가 제정신일 때 들었다면, 절대 아니라고 부정할 생각이었으나 케이네는 라트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아이답지 않은 모습, 너무 빨리 어른이 돼버린 소년.
그런 동생을 내버려두기에는 케이네는 너무나도 착했고. 그리고 지금 소년이 보여주는 모습이 모성애를 자극하고 있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위로하며, 그가 지쳐서 잠들 때까지 옆에서 있어주는 것뿐이다. 그러니 그렇게 해야겠지.
라트를 안은 채 자신의 방에 들어온 케이네는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눕혔고,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던 라트도 자연스레 그녀의 옆에 몸을 뉘였다.
“그칠 때까지 누나가 옆에 있어줄게.”
죄책감, 자책감에 가슴이 얼룩져. 눈물을 흘리느라 정신이 없었던 라트는 케이네의 따뜻한 말 한 마디에 더더욱 거세게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그치지 않으면, 마를 때까지 울렴. 계속 울다가 지쳐서 잠들면 돼.”
애정을 담아, 등을 토닥이고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 날 밤, 라트는 정말 긴 시간동안 할아버지 같았던 사람이 죽음을 예고한 것에, 생소한 감정이 들어 울었고. 케이네는 약속대로 라트의 옆에서 그를 위로해줬다.
* Bgm, End
*****
다음날 아침, 라트는 머리가 아픔을 느끼며 눈을 떴다.
“으.”
제대로 자지 못한 건가? 그보다 내가 어디서 잠들었더라? 분명 복도를 걸어다니다가 사저를 만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머리가 아프다. 몇 시간동안 울어서인지, 눈도 제대로 떠지지 않아.
몸을 일으키기 위해서 침대에 손을 대고 힘을 주려고 하자, 무언가 물컹거리는 촉감이 느껴졌다.
‘물컹?’
익숙하나, 생소한 촉감이 손을 타고 흐르자 라트는 아래를 바라보았다. 깜짝 놀란 덕분이지 떠지지 않았던 눈이 번쩍 떠졌고, 그제야 자신이 어디서 잠이 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벽이 아닌, 수려한 장식이 새겨지고, 귀여운 장식품이 놓여진 소녀의 방. 길드 내에서 이런 방을 사용하는 건 단 한 명, 케이네 뿐이다.
“미친. 내가 왜 여기서 자고 있어.”
물컹거리는 촉감은 당연하게도 케이네의 가슴이었다. 정신없이 자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라트는 간밤에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사저가 날 자기 방까지 데려왔었고.”
그래, 케이네가 울고 있는 자신을 방까지 데려와서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안아준 상태로 내가 잠들 때까지 등을 토닥여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줬었지.
지금 이렇거 정신없이 자고 있는 것도, 계속 라트의 옆을 지켜서 본인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거기까지 기억해낸 라트는 갑자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름을 느꼈다.
“미친 거 아니야?”
아무리 나를 동생처럼 여기고, 내가 울고 있었다고 해도 그렇지. 여자가 외간 남자를 함부로 방에 들이고 같이 자다니.
라트가 제정신이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괜, 찮아, 라트. 음냐.”
“하아.”
이래서야 화를 낼 수도 없겠다. 케이네는 그저 자신을 위로해주려는 순수한 의도였을 뿐이다. 그리고 새벽 내내 계속된 그녀의 위로 덕분에 슬픔이 어느 정도 가셨다.
어제는 죄책감 때문에 제대로 통제되지 않았던 머리가 깔끔하게 돌아가는 중이다.
“그러면.”
머리가 돌아가면 생각을 해야지. 스승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사실을 다시 상기하자, 심장이 욱신거렸으나 어제보다는 아프지 않았다.
그렇다면 스승이 은둔하기 전까지 케이네를 길드 마스터에 어울리는 연금술사로 만들어야했다. 그러나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겨우 1년 뿐.
대충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저녁 시간 대부분은 케이네를 가르치는 시간으로 써야한다.
‘사저한테 연금술을 가르쳐주면서 내 연금술 기능 레벨도 올리면 되는 거고.’
그럼 이제 남은 낮 시간동안 무엇을 할지 결정해야한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낮 시간 동안은 최대한 몬스터를 잡아서 레벨을 올려야한다.
“던전으로 갈까, 아니면 리젠 존으로 갈까.”
가능하면 낮에는 몬스터를 잡고 포탈을 이용해서 파르스로 돌아와서, 저녁에는 케이네를 가르쳐야한다. 그렇다면 포탈을 사용할 수 있는 거리에서 멀지 않은 던전이나, 리젠 존이어야 한다는 건데.
그렇다면 던전은 무리다. 던전이 포탈이 있는 거대한 도시 근처에 있을 리가 없다. 그럼 결국 남은 건 리젠 존 뿐. 그러나 레벨을 올릴 마땅한 리젠 존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지간하면 리젠 존을 옮기지 않고, 한 곳에서 계속 죽치고 있고 싶은데.
“아. 로델세나 근처에 야만인 리젠 존이 있었지?”
사냥터 정보에 관한 기억을 더듬던 라트는 자신의 레벨에 맞는 리젠 존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분명 그 야만인 리젠 존 권장 레벨이 40부터 80까지였다.
고민을 끝낸 라트는 침대에서 일어나, 잠시 케이네를 바라보았다. 라트를 위로해주느라 피곤했는지, 그녀는 일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잘 자, 누나.”
자연스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손을 거둔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지만, 할 일이 태산이다. 이렇게 한가하게 보낼 때가 아니다.
경매장에 보내올 재료도 받아야하고, 이 근처 여관에서 숙박한 제르카와 만나서 불타는 나무를 나눠야한다.
‘그리고 야만인 리젠 존을 찾아야지.’
“어라?”
머릿속으로 할 일을 나열하던 라트는 왠지 해야 할 일 하나를 빼먹은 것 같은 위화감이 들었다. 그것도 느긋하게 할 일이 아니라 가장 급한 일이었던 거 같은데.
“뭐였더라.”
에이, 급한 일이면 알아서 생각나겠지. 위화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라트는 케이네의 방에서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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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기교를 좀 부려봤습니다. 넵....그냥 그랬다고요...
사정이 허락한다면 bgm을 들으면서 같이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습니다..물론 글쟁이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 강요는 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