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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42화 (4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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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제르카 토먼스, 성이 있기는 하지만 정식 귀족은 아니고 작위조차 받지 못한 명예 귀족이다.

본디 평민이었던 그는 우연히 좋은 스승을 만나 세공사로써 재능을 꽃피웠고, 그가 만든 장신구의 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을 깨달은 제국에서는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귀족이 될 수 있다는 주의를 내세워 그에게 성을 부여하고 명예 귀족으로 만들어줬다.

‘이래서 제국이 좋다니까.’

정말로 압도적인 재능이나, 업적인 없다면 어지간해서는 평민이 귀족이 될 수 없는 왕국과 달리, 제국은 능력만 있다면 노예라도 명예 귀족으로 대우해줬다.

“그쪽은 왜 불타는 나무를…….”

이게 문제가 아니라, 당장 문제는 어째서 서로가 불타는 나무에 눈독을 들이고 있느냐다.

“세르테노스 공작님께서 위대하신 1황녀 세나릭에프토리아 프리그 델 셰크티님의 다가올 생일 선물을 저에게 맡기셔서요.”

“아.”

세르테노스 공작, 제국의 기둥이라고 불리는 3공작 중 한 명이자 창술의 달인으로 유명한 공작이었다. 그런 그가 1황녀의 선물을 제르카에게 맡겼다니.

확실히 끈질기게 불타는 나무를 물고 늘어질 만도 했다. 그리고 vip룸을 사용할 만도 했다.

아마 제르카는 세르테노스 공작의 대리로 이 경매장에 방문했을 것이다. 무려 제국의 공작 대리다. vvip룸을 사용하지 못한 게 이상할 지경이다.

사실 셀룬 왕국의 경매장에 2개뿐인 vvip룸에는 이미 방문한 손님이 있었기에 제르카가 vvip룸을 사용하지 못하고 vip룸을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라트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그러는 그쪽은요?”

“스승님께서 심부름을 시키셔서요.”

틀린 말은 아니지. 경매장을 이용하라는 건 스승님의 제안이었으니까.

“아.”

라트의 말에 제르카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제스맹 기느투스, 셰크티 제국 입장에서 보자면 조그마한 왕국의 명예 후작일지도 모르나, 현실은 그게 아니다.

그는 모든 연금술사의 위에 서는 하이 마스터, 다시 말해 제국의 황실에서 고문을 맡고 있는 연금술사라고 해도, 그의 말에 연금술사 길드에서 영구제명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함 힘을 가진 연금술사였다.

보통 왕국에서는 연금술사의 취급이 좋지 않은 편이지만, 제스맹이 있는 셀룬 왕국과 재능을 중요시하는 셰크티 제국에서는 연금술사를 천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

물론 셰크티 제국은 연금술사 뿐만 아니라 재능이 있으면 누구라도 좋은 대우를 해주었기에 연금술사의 인식이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잠시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으나, 어찌됐든 그 기느투스 후작이 시킨 일이다. 다른 일이라면 공작의 힘을 빌어서 찍어 누르면 그만이지만, 그 공작도 무시할 수 없는 대연금술사의 명령이었으니 라트도 꿇릴 것이 없었다.

“곤란하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 중이에요.”

오랜만에 만난 흡연자 동지가 중요한 NPC였다는 것까지는 좋은 일었지만,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다.

한쪽은 무려 공작에게 황녀의 생일 선물을 의뢰받았으니까 필사적으로 장신구를 만들어야할 처지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한시라도 빨리 엘릭서를 만들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였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엘릭서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엘릭서 제조 기간은 무려 6개월.

지금부터 엘릭서를 만든다고 해도,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기 전까지 2개 밖에 만들지 못하는 처지다. 물론 스승님이 엘릭서를 만들어서 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과연 전쟁 준비 때문에 바쁜 스승이 제대로 엘릭서를 만들 수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사저는 엘릭서 레시피를 안다고 해도 백색의 연금술 기능 레벨이 딸려서 만들 엄두도 못 내지 않을까?’

아무튼 곤란한 상황이다, 그것도 매우 심하게 곤란하다.

두 남자는 서로가 양보할 생각이 없지만, 상대방을 얌전히 물러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하아.”

“하아.”

동시에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아.”

바로 그 때, 제르카가 물고 있던 파이프 담배의 불이 꺼졌다. 급하게 담배를 채워 넣는다고 제대로 꽉 누르지 않은 모양이다. 파이프 담배의 불편한 점 중 하나지.

“담배가 보자. 어라?”

아직 니코틴이 부족한 걸까. 그게 아니면 생각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 제르카는 갈아 넣을 담배를 찾았으나, 이내 방에 담배를 놓고 왔다는 사실에 얼굴을 구겼다.

귀찮지만, 어쩔 수 없이 담배를 찾으러 방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다.

“담배 좀 드릴까요.”

“아, 네. 감사합니다.”

경매 경쟁자라고 하지만, 흡연자 입장에서 놓고 온 담배를 가지러 간다는 게 얼마나 짜증나는 상황인지 잘 알고 있는 라트는 인벤토리에서 담배를 담은 통을 꺼내서 제르카에게 선뜻 내밀었다.

챙겨놓은 담배야 많으니까, 나눠주는 건 일도 아니다.

“어?”

‘나눠준다, 나눈다. 미친, 이렇게 간단한 걸.’

“잠깐만요.”

“설마 그쪽도 담배가 다 떨어졌나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어쩌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을 열었다.

“불타는 나무 말인데. 다섯 그루가 다 필요하신 거예요?”

“아니요, 세 그루 정도만 있으면 될 거 같아요.”

그래, 상식적으로 장신구 하나를 만드는데 불타는 나무가 다섯 그루나 필요할 리가 없다. 그러니까 나누면 되는 거다. 제르카가 세 그루가 필요하다면 라트는 적어도 한 그루만 있으면 됐다.

엘릭서를 만드는데 필요한 불타는 나무는 한 그루였으니까.

“그럼 됐네요.”

“네? 뭐가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건가. 하긴, 자신도 너무 생각을 좁게 하지 않았나. NPC와 아이템을 나눠 가진다니, 평범하게 게임을 할 때는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니까.

“저도 불타는 나무가 5그루나 필요하지는 않아서요. 저나 제르카씨가 불타는 나무를 입찰하고 나서 제가 2그루, 제르카씨가 3그루 받으면 되잖아요. 돈은 따로 상대한테 주면 되는 거고.”

“아! 그럼 되겠네요.”

라트의 해답을 들은 제르카는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하시네요. 아니 제가 멍청했군요. 이런 간단한 생각을 못하다니.”

그래, 발상 자체는 아주 간단했다. 단지 무조건 경매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황녀님의 생일 선물을 만들어야한다는 초조함 때문에 이런 간단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럼 입찰은 제가 할게요. 연금술사 길드 쪽에 재료가 올 테니까, 길드 근처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내일 받아 가시죠.”

“그렇게 할게요. 히야, 살았다. 꼼짝없이 계속 상위 입찰을 불러야하나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저도 그랬어요.”

이대로 갔다면 계속 상위 입찰을 불러서, 경매에서 이긴다고 해도 상처뿐인 승리만 거머쥐었을 거다. 필요한 재료도 얻고, 경쟁할 필요도 없고, 돈도 아낄 수 있고.

‘입찰가가 좀 많이 오르긴 했지만, 어쨌든 서로 윈윈이네.’

“아, 잠깐만.”

라트는 담배를 태우느라 여기서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는 걸 상기했다.

“사저더러 계속 상위 입찰을 부르라고 했는데.”

미친, 이러는 동안 케이네가 분명 상위 입찰을 계속 누르고 있을게 분명하다.

“아, 그건 저도 마찬가지.”

서로의 눈이 마주한다. 두 명다, 상대방이 매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걸 확인했다. 말은 필요 없다, 라트와 제르카는 대신 경매를 맡고 있는 사람을 말리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진짜 끈질기네. 이쯤 되면 짜증을 넘어서, 화가 날 지경이야.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아, 누나 잠깐, 잠깐!”

라트는 급히 케이네를 말리고 현재 입찰가를 바라보았다. 뭐야, 왜 90골드 밖에 안 올라가 있지? 비상구에서 아무리 못해도 20분 정도는 보낸 거 같았는데?

“뭐야, 왜 이렇게 입찰 가격이 안 올라가 있어?”

“그거야 라트가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1골드씩만 올렸으니까. 내가 그러니까 저쪽도 입찰 가격을 1골드씩 올리던데?”

살았다, 케이네가 조금이라도 돈을 아낄 생각을 했다는 점에 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90골드가 적은 돈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쪽이랑 타협 봤으니까, 이제 입찰 안 눌러도 돼.”

“진짜? 어떻게?”

“나중에 설명해줄게.”

상위 입찰을 누르고 1분 후, 경매에 성공한 라트는 제르카 쪽이 약속을 지켰다는 것을 알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저쪽이 신뢰를 할 수 있게 해줘야지.

라트는 책상 아래에 있던 종이와 깃펜을 꺼내서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야? 재료 전부 구했으면 가자. 아니면 뭐 좀 먹고 갈래?”

“어. 할 일도 있고, 배도 고프니까. 아무거나 시키고 있어줘.”

좋아, 다 적었다. 마지막으로 서명란에 자신의 이름 대신 스승의 이름을 적은 라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케이네의 대답도 듣지 않고 방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복도를 서성이고 있는 제르카를 발견한 라트는 그에게 다가갔다.

“바로 옆방이었네요.”

“그러게요. 여기 계약서입니다. 이런 일을 구두 계약으로 남기면 혹시나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잖아요.”

“안 그래도 계약서를 쓰자고 하려고 했는데. 어디 보자.”

명성이 전혀 없는 라트의 이름으로 서명을 한 게 아니라, 스승의 이름을 서명한 계약서다. 이 정도라면 제르카도 충분히 만족하리라고 확신했다.

“네, 확실하네요. 좋은 계약 감사합니다.”

확신대로, 제르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계약서를 품속에 집어넣었다.

“후우, 생각보다 입찰가가 많이 안 올라가서 살았어요.”

“동감이에요.”

라트가 이렇게까지 제르카에게 잘해주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오랜 만에 마음이 맞는 흡연자 동료를 만났다는 거. 아, 솔직히 말해서 이 이유는 별 의미가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여기서 제르카에게 호감을 얻어 놓으면 나중에 그에게 장신구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할 수 있어서다. 근력, 건강, 민첩을 주로 올려주는 장신구라니, 굉장히 탐나는 물건이다.

“제르카, 그쪽 분은 누구셔?”

제르카와 같은 분홍 머리에 검은색 눈동자. 그리고 여자. 제르카와는 달리 수수한 장신구를 끼고 있지만, 그 수수한 장신구가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이쪽이 루니아구나.’

“일행이신가요?”

누구인지는 잘 알고 있지만, 라트는 짐짓 모르는 척 제르카에게 여성의 정체를 물었다.

“아, 제 여동생인 루니아입니다. 루니아, 이쪽은…….”

“기느투스 후작님의 두 번째 제자, 라트라고 합니다.”

“루니아 토먼스에요.”

루니아 토먼스, 오빠와 마찬가지로 1급 세공사로 분류되는 NPC다. 제르카 쪽이 근력, 건강, 민첩을 주로 올려준다면 루니아 쪽은 주로 매력을 올려주는 장신구를 많이 만든다.

그래서 사교계에서 주로 활동하는 유저나 귀족. 그리고 하렘, 혹은 카사노바 플레이를 지향하는 유저들은 루니아가 만든 장신구를 많이 찾았다.

‘나한테는 쓸모없지만.’

매력=가장 쓸모없는 스탯이라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라트에게 있어서 루니아의 장신구는 쓸데없는 장비다. 여동생 쪽 장비보단, 역시 오빠 쪽 장비가 굉장히 탐난단 말이야.

“저희 쪽 방에 들어가서 식사라도 같이 하실래요? 성공적인 계약도 축하할 겸.”

“어쩔래, 루니아?”

“좋아.”

루니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라트는 자신에게 배정된 vip룸의 문을 열었다.

“레이디 퍼스트.”

“감사해요.”

그녀가 만든 장신구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여동생에게 함부로 대했다가는 애써 제르카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준 게 물거품이 될 것이다.

‘제르카 토먼스는 여동생 바보 NPC로도 유명하지.’

익숙지도 않은 매너 있는 행동을 하는 건 오로지 제르카에게 좋은 장신구를 받기 위함이었다.

생산직 NPC와 친밀감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NPC에게 장비를 만들어달라고 했을 때 친한 사람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했다는 문구가 뜨면서 훨씬 좋은 장비가 만들어지니까.

여기서 최대한 제르카와 친해지고, 나중에 좋은 재료를 얻어서 세공을 맡기면 된다.

카르세이나 대륙의 메인 퀘스트인 제국 반란이 터진다고 해도, 제국의 수도에서 살고 있는 제르카와 루니아는 어지간해서는 목숨을 잃지 않는다는 것도 모두 계산한 행동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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