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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41화 (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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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이 새끼가 진짜.”

    문제는 하나 남은 불타는 나무였다. 엿을 먹이려고 하는지, 그게 아니면 정말 불타는 나무가 필요한지는 모르겠으나, 계속 최고 입찰가를 부르고 있음에도 누군가가 라트보다 더 상위 입찰가를 부르는 중이었다.

    상위 입찰가가 나타나면, 입찰 시간이 최소 대기 시간인 1분으로 돌아간다. 이 짓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통에, 불타는 나무는 원래 시세의 1.4배를 넘어선 가격까지 뛰어올랐다.

    ‘누가 먼저 떨어지는지 보자는 건가? 치킨 레이스도 아니고.’

    “이 사람, 되게 끈질기게 따라 붙네. 누굴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짜증나.”

    “누나도 그렇게 생각해.”

    확실한 건 짜증이 난다는 거다. 이쯤 됐으면 지쳐서 떨어져 나갈 만도 하건만. 도대체 왜 이렇게 따라 붙는지. 진짜 엿이라도 먹이고 싶은 셈인가?

    불타는 나무는 희귀한 재료지만, 그렇게 많은 곳에 필요한 재료가 아니다. 엘릭서를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라면 기껏 해봐야 장신구를 만드는데 쓰이는 재료다.

    그러나 이런 희귀한 재료로 장신구를 만드는 일은 거의 없다. 불타는 나무의 본래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채로 인체에 화상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매우 섬세한 작업이 필요했으니까.

    “누나, 나 담배 좀 피고 올게.”

    “포기 하는 거야?”

    “그럴 리가. 누나가 대신 계속 최고 입찰가를 부르고 있어. 절대 지지 마. 올라와있는 불타는 나무는 이거뿐이야.”

    당장 올라와있는 불타는 나무는 이 한 묶음뿐이다. 불타는 나무 5개. 이 경매에서 낙찰을 받지 못하면 언제 불타는 나무가 경매장에 올라올 지는 모리아 밖에 알지 못한다.

    그 정도로, 불타는 나무는 희귀한 재료였고 동시에 그다지 잘 팔리는 재료가 아니었으니까.

    “알았어.”

    케이네도 그 사실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고, 라트는 방을 빠져나왔다.

    “혹시 뭔가 필요하십니까?”

    “아니요. 좀 답답해서 나왔습니다.”

    복도에는 수많은 안내인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구라면 모를까, 이런 건물에 흡연 구역이 있을 리가 없지.

    담배를 피우고 싶다면 아무 장소에서나 마음껏 피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밖에 나온 이유는 케이네에게 담배 냄새를 맡게 하기 싫어서도 있고, 다른 사람 앞에서 담배를 태우는 것이 민폐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상구로 갈까.”

    복도에도 사람이 많으니, 담배를 태우기는 좀 그랬다. 흡연 구역이 없는 건물에서는 비상구에서 담배를 태우던 기억이 남아있었기에 라트는 저도 모르게 비상구로 향했다.

    비상구에는 역시나 사람이 없었고, 열려진 창문을 타고 들어온 바람이 볼을 간질인다.

    “하아.”

    1시간 동안 치열한 경매를 이어온 덕분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 라트는 인벤토리에서 파이프 담배를 꺼낸 후 익숙한 손놀림으로 홈에 담배를 집어넣었다.

    ‘궐련이라도 있으면 편할 텐데.’

    궐련, 하다못해 시가라도 있으면 매번 이렇게 귀찮게 담배를 갈아 넣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세리아의 기술로는 담배를 종이에 마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건지, 그게 아니면 제작사 측에서 판타지 세계의 담배는 파이프 담배죠! 같은 시답지 않은 생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궐련은 존재하지 않았다.

    뭐, 순수하게 담배를 빨리 피우고 싶다는 생각 하에서는 궐련이 굉장히 편하나, 전투 중에는 파이프 담배가 편하다. 일단 한 번 태우기 시작하면 짧아도 30분, 길면 한 시간이나 담배를 태울 수 있으니까.

    [반복된 행동으로 담배 갈아 넣기 기능이 생성되었습니다.]

    “우와, 이딴 쓸모없는 기능도 있어?”

    담배를 갈아 넣는 걸 마치자, 기능이 생성되었다는 알림창이 나타났다. 희귀 기능은 모르나, 보통 기능은 반복된 행동을 하다보면 생기기 마련이다. 검과 활 같은 무기도 이런 식으로 수없이 사용하다보면 기능이 생긴다.

    “진짜 쓸데없는 기능이네.”

    그래도 그렇지, 담배를 갈아 넣는 기능이라니. 내가 얼마나 꼴초면 이런 기능이 생기겠는가. 그래, 좋게 생각하자. 전투 도중에 담배를 다 태웠다고 해도, 빠르게 담배를 갈아 넣을 수 있게 된 거잖아.

    “후우. 살 거 같다.”

    폐 깊은 곳까지 담배 연기가 닿자, 미약하게 느껴지는 고통을 즐긴다. 그리고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어지러움에 미소를 지었다.

    참고로 말해두겠는데 라트는 니코틴의 느낌을 즐기고 있을 뿐, 고통을 즐기는 마조히스트는 아니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거참 끈질기네.”

    바로 그 때, 남자 한 명이 비상구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신만의 공간에 누군가가 침투했다는 사실에 눈을 찌푸릴 만도 했지만, 비상구의 문을 열면서 하는 말을 통해 남자가 자신과 같은 처지임을 안 라트는 미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저쪽도 분명 아무도 없을 거라는 생각하고 여기왔는지, 처음에는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라트의 손에 들린 담뱃대를 보고 순식간에 불쾌한 표정을 풀었다.

    ‘분홍색 머리, 검은색 눈동자. 와, 굉장히 느끼하게 생겼네. 와, 남자면서 겁나 화려한 반지랑 목걸이를 찾고 있네. 옷차림을 보아하니, 노르스 대륙 사람은 아니고. 제국 사람인가?’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그러나 단지 첫인상일 뿐. 월드 세리아를 플레이하는 도중 만만해 보이는 사람이 굉장히 중요한 NPC인 경우도 겪어 봤고, 그와 반대의 상황도 여러 번 겪어봤기에 라트는 상대방에 대한 평가를 보류했다.

    ‘왠지 낯이 익은 조합이기도 하고.’

    “그쪽도 누가 계속 상위 낙찰가를 부르나보네요.”

    “네. 그쪽도 그래요?”

    남자의 물음에 라트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방 역시도 라트와 마찬가지로 동변상련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죠. 짜증나 죽겠어요. 오늘 올라온 게 그거 하나뿐이라.”

    “저도 그래요. 내일 다시와도 물건이 올라올 가능성은 희박해서 되도록 구하고 싶은데, 하아.”

    남자가 담배를 꺼내자, 같은 흡연자끼리 불을 빌려주는 건 지구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기에 라트는 자신도 모르게 성냥을 꺼내들었다.

    “불 빌려드릴까요?”

    “그래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친절하게 불을 붙인 성냥을 내밀자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후우우. 아, 이제 좀 살 거 같네요.”

    살 거 같다, 인가. 상대방이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답습하자, 라트는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역시 흡연자의 심정은 흡연자 밖에 모른다.

    아, 그렇다고 담배가 좋다는 소리는 아니다. 담배는 안 피는 게 제일 좋다. 한 번 손대면 절대로 끊을 수 없는 국가 공인 마약이니까.

    “그런데 담배를 피실 거면 방에서 피셔도 될 텐데. 왜 굳이 여기까지 나와서 피세요?”

    그러는 댁은? 이라고 역으로 묻고 싶었지만, 라트는 오랜 만에 마음이 맞는 흡연자 동료를 만났다는 사실에 기분이 풀어졌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방에 가족이 있어서요. 건강에 나쁜 걸 굳이 옆에서 필 필요는 없잖아요.”

    “그럼 복도에서 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저만 건강 나빠지면 되지, 괜히 다른 사람들 건강까지 해칠 수는 없으니까요.”

    물론 엘리 옆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기는 했지만, 두 번은 전투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고 한 번은 담배를 태우는 와중에 엘리가 멋대로 찾아온 것이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저랑 같은 생각이시네요.”

    호오, 아직 지구에서 생활하는 습관이 남아있기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라트와 달리, 이 남자는 분명 월드 세리아의 NPC 중 한 명일 거다.

    그런데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니. 굉장히 혁신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담배의 유해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일 터.

    분명 왠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분명 중요한 NPC 중 한 명일 텐데.

    ‘누구일까?’

    라트는 담배 연기를 한껏 들이마시면서 이 남자가 누구인지 기억을 뒤져봤다.

    월드 세리아의 중요 NPC는 도합 1만 명이 넘어간다. 라트가 아무리 게임을 많이 했다고 해도, 그 많은 수를 전부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평상시 봐왔던 2d 도트가 아닌, 현실적인 얼굴을 봐야하기에 그 괴리감이 굉장히 컸다. 그저 머리와 눈 색깔을 보고, 낯이 익나, 익지 않나만 판단할 수 있을 뿐. 그 이상은 상대방에 관한 정보가 있어야 유추할 수 있었다.

    “담배 연기를 마시다니, 속 안 쓰리세요?”

    “하다보면, 이쪽이 좀 더 담배기운이 확하고 올라와서 좋아요.”

    보통 파이프 담배는 속담배를 하면 안 된다. 시중에서 파는 궐련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진한 니코틴을 자랑하니까.

    그러니까 지금 라트가 한 말은 반은 맞는 말이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니코틴이 강한 만큼, 속담배를 하면 담배기운이 확 올라오는 것은 맞았지만, 입담배를 하면 생명의 연금술을 쓸 수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속담배를 하고 있을 뿐.

    순수하게 파이프 담배를 즐길 생각이었다면 속담배가 아니라 입담배를 했겠지.

    “웩. 쿨럭, 쿨럭. 와, 이거 엄청 독한데요.”

    “제가 특이한 겁니다. 따라하시다가는 큰일 나요.”

    “네, 그런 거 같네요. 핑하고 도는데요. 콜록, 콜록. 세상이 노랗게 변하는 거 같기도 하고.”

    당연히 독하지. 라트도 게임 시스템의 가호를 받고 있었기에 속담배가 가능한 거지, 지금 이 몸이 평범한 몸이었다면 상대방과 같은 상황에 처했으리라.

    “그나저나, 어? 오른손에 있는 팔찌 좀 구경해 봐도 될까요?”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게 팔찌시다?’

    사람이 사람을 관찰할 때는 자신의 직업병에 따라 사람을 보기 마련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창녀나 창부는 보통 상대방의 인상을 살피고, 대장장이나 검사는 손을 살피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남자는 장신구를 먼저 살폈다.

    “여기요.”

    라트가 손목에서 팔찌를 빼내자, 팔찌는 조금 전까지 라트의 손목에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듯이 반지 정도 크기로 줄어들었다.

    “이, 이거! 그거죠? 유일한 대연금술사 제스맹 기느투스님의 제자 증표!”

    “네, 뭐.”

    그리고 노르스 대륙의 사람이 아님에도 이 장신구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렇다는 건 이 사람은 생산직 쪽에 굉장히 조예가 깊은 사람 혹은 관련된 직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터.

    흔하지 않은 분홍 머리 남자. 그것도 굉장히 느끼하고, 온 몸에 장신구를 치렁치렁 달고 있는 사람. 그리고 생삭직에 몸을 담고 있는 NPC라.

    ‘대충 누구인지는 알았어.’

    필요한 정보가 갖춰지자, 라트는 지금 자신과 이야기하고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NPC가 vip 룸을 이용할 수 있었나?

    “기느투스님의 제자는 여자 한 명 뿐이라고 들었는데.”

    “2년 전에 제자가 됐습니다. 파르스에서는 제법 소문이 났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어요. 연금술사라는 직업이 그렇게 귀추가 주목되는 직업이 아니니까요. 라트, 평민입니다.”

    “아, 저는…….”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된다. 조금 전에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아차렸으니까.

    “제르카 토먼스. 제국에서 굉장히 유명하신 세공사시죠?”

    제르카 토먼스, 셰크티 제국의 수도에서 일하는 유능한 세공사. 커뮤니티에서 1급 세공사라고 평가하는 NPC 중 한 명이다.

    그가 만든 장신구는 근력과 민첩, 그리고 건강 스탯을 많이 올려줘서 바이올런이나 넥스의 영향력을 짙게 받은 유저들과 NPC들이 즐겨 찾았다.

    ‘안 그래도 한 번 찾아가려고 했는데. 여기서 만날 줄이야.’

    제국에 있어야할 그가 어째서 여기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만든 장신구를 구입할 생각이었던 라트는 이것이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라트가 자신의 말을 끊자, 상대방은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알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르스 대륙에선 제가 그렇게 유명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그쪽 방면으로 관심이 좀 있으니까요.”

    게임 내 거의 모든 중요 NPC의 정보를 외우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기에 라트는 대충 둘러댔다. 세공에 관심이 있다는 말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장비는 대충 거의 다 만들었지만, 장신구는 세공사에게 맡겨야하니까.

    ‘잠깐만? 세공사? 불타는 나무?’

    “혹시, 지금 낙찰 받으시려는 게 불타는 나무신가요?”

    “맞아요. 그걸 어떻게 아셨죠? 아, 혹시!”

    “네.”

    아무래도 서로 그 새끼라고 표현한 상대를 찾은 것 같다.

    ============================ 작품 후기 ============================

    어제 잠시 멘탈에 금이가서 코멘 답변을 못했었는데, 물고기 인간님 오류를 제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넥스 8/10이 맞는데 제가 메모장에 적어놓은 프로필 틀에 넥스 0/10으로 되있어서...으..감사감사..

    오타 제보해주시는 독자 분들도 매번 감사합니다. 추천 선작 한번씩 눌러주시고 저는 오늘..............아 몰라...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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