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34화 (34/229)
  • 0034 / 0229 ----------------------------------------------

    1부

    라트는 고개를 저으며 시녀가 준 파이프 담배를 바라보았다. 굉장히 고급스러운 장식이 새겨진 파이프 담배다. 장식도 장식이지만, 보석도 박혀있다. 이런 걸 사용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파이프다.

    ‘나무로 만들고 나서 금으로 도금한 건가?’

    파이프 담배는 기본적으로 나무나 특정한 돌로 만들어야 향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금속으로는 만들지 않았다. 지금 이 파이프 담배도, 담뱃대 부분은 금으로 도금하지 않았다.

    “파이프 담배를 미스릴로 도금해도 괜찮겠는데?”

    그렇게 한다면 전투 중에 파이프 담배가 부러질 일은 없을 것이다. 나무로 만든 파이프 담배에 미스릴을 도금하면 혹시나 충격 때문에 파이프 담배에 금이 갔다고 해도, 무색의 연금술로 고칠 수 있을 거다.

    “포레스트 라이언한테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야.”

    그 몬스터가 아니었다면, 공작저에서 파이프 담배를 빌릴 필요도 없었고, 그랬다면 이런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

    정원에 도착한 라트는 파이프 담배에 담뱃잎을 채운 후 불을 붙였다. 일반적으로 파이프 담배를 태울 때는 속담배가 아닌 입담배를 해야 했지만, 뭐 어떤가.

    하도 궐련을 폈기 때문에 속담배가 익숙했고, 더욱이 이 세계는 담배 때문에 폐가 썩어도 다시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물론 지금도 속담배를 할 때 머리가 조금 띵해지기는 했지만, 익숙해지면 괜찮아 질 거다.

    “후우.”

    “또 담배야?”

    정원까지 오는데 시간을 약간 소비했는지, 라트가 담배를 태우기 시작하자마자 엘리가 정원으로 나왔다.

    “혼났어? 표정이 왜 그래?”

    “멋대로 집무실에 들어갔으니, 당연히 혼났지. 그래도 별 소리 안 들었어.”

    “그러냐.”

    별로 혼나지 않았다고 보기에는 입술이 한가득 튀어나와있었지만, 라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일이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다.

    마치 시간이 잠시 멈춘 듯, 대화가 종료되었다. 흘러가는 바람만이 시간이 정상적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 뿐. 두 남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같은 곳을 응시하였다.

    “있잖아, 나 첫 키스였어.”

    두 사람 사이에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금 흐른다.

    “그랬겠지,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첫 키스를 그런 분위기에서 하는 남자가 어디 있냐, 이 바보야. 담배맛 첫키스라니, 으으. 최악이야.”

    그렇게 말하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잘못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무드가 없는 건, 여자가 아닌 남자가 쓴 로맨스 판타지를 읽은 XY의 염색체의 비애라고 해두자.

    “내가 바보면, 넌 울보거든. 안 그랬으면 계속 울었을 거면서.”

    “아니야!”

    “아니긴. 그대로 내버려두면 울다가 탈진할 거 같아서 어쩔 수 없이 해준 건데.”

    “어쩔 수 없이?”

    아, 말실수를 했다. 엘리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자신을 바라보자 라트는 머리를 긁적였다. 첫 키스까지 가져간 주제에 그걸 어쩔 수 없이 했다고 말하다니. 내가 생각해봐도 최악이다.

    “흠흠. 물론 니가 그만큼 예쁜 탓도 있지만.”

    “내가 예뻐?”

    넌지시 그녀의 외모를 칭찬하자, 엘리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다행히 방금한 말실수는 넘어가주기로 한 모양이다.

    ‘이거다.’

    “한 2년만 더 지나면 너랑 결혼하고 싶은 남자들이 줄을 설걸?”

    그러나 그녀가 말실수를 들추지 않으리라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기에 라트는 그녀의 외모를 계속해서 칭찬하기로 했다.

    “그거야 그렇겠지. 나랑 결혼해서 데릴사위로 들어오면, 공작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분명 똑같이 외모를 칭찬한 말이었음에도 이번에는 부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역시 여자의 마음은 모르겠어.’

    남자는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저으며 여성의 말을 부정했다.

    “지위 말고, 네 외모만 보고 그렇다는 거야.”

    “음~ 그럴까?”

    “응.”

    망설임 없는 확답에 얼굴이 더더욱 붉어지는 것을 느낀 엘리는 화끈거리는 뺨을 매만졌다. 그러던 중, 자신의 반응이 왠지 익숙하다고 느꼈다.

    왜 그럴까?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어렵지 않게 답을 찾았다. 극히 최근에 이런 반응을 봤기 때문이었다.

    ‘나 지금 오늘 아침에 케이네 언니가 라트를 바라볼 때 보여준 반응이랑 똑같이 행동 중이잖아!’

    그제야 케이네의 모습이 사랑에 빠진 소녀와 같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도 그러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엘리는 입술을 씹었다.

    “너, 케이네 언니하고도 키스했지. 그것도 극히 최근에.”

    “점쟁이냐? 시장에 판 깔아줄까?”

    저게 여자의 직감이라는 건가? 소름 돋을 정도로 무서웠다.

    “부정 안 해? 당연히 아니라고 줄 알았는데.”

    “이미 확신하고 있는 상대한테 부정이라니. 그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어. 부정해봐야, 의심은 꼬리를 물고 점점 커지기 마련이니까. 후우.”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라트는 케이네와 키스한 날을 떠올렸다. 연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드라마도 연애가 곁들어진 것은 잘 보지 않았다. 연애물이라고 해봐야, 로맨스 판타지 몇 편 읽었을 뿐인 사람한테 도대체 뭘 바라는 지.

    ‘확실히 공작저에서 사용하는 파이프는 뭐가 달라도 다르네. 향부터가 틀려.’

    라트는 왠지 부끄러움이 느껴져 생각을 달리하여, 머릿속으로 파이프 담배를 극찬한다.

    “케이네 언니가 경쟁 상대라니.”

    “뭐라고 했어?”

    “아니야, 아무것도.”

    파이프 담배의 향을 즐기느라 엘리의 말을 듣지 못했기에 라트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했냐고 물었으나, 엘리는 고개를 저으면서 쓰게 웃었다.

    “케이네 언니, 예쁘지?”

    “그 질문도 부정하기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만.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거야?”

    “네 솔직한 생각.”

    뜬금없는 질문에, 솔직한 대답을 해주길 원하는가. 라트는 멍한 표정으로 엘리를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사저는 예쁘지. 1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름다웠어. 지금은 훨씬 아름다워졌고.”

    그의 말이 길어질수록 엘리의 표정이 시시각각 우울해져간다.

    “너만큼이나, 예뻐. 이걸로 만족하셨는지?”

    “충분히.”

    그러나 청년의 마지막 말에 아리따운 소녀는 우울함을 지워버리고 화사한 미소로 도답했다.

    아리따운 얼굴에서 꽃과 같은 미소가 번지자, 라트는 일순 시선을 빼앗기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름답다, 너무나 아름다워. 그래서 저 미소를 지켜주고 싶었다.

    “저기, 라트. 그, 있잖아.”

    라트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자, 엘리는 다시 한 번 얼굴을 붉히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러니까, 음, 저기.”

    “뭔데?”

    필사적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나, 본인의 생각대로 쉽사리 그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인지 엘리는 스스로가 답답하다고 느꼈다. 아무도 없는 정원, 별빛과 달빛이 내리는 운치 있는 밤.

    최고의 조건이었고,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나랑!”

    “공녀님.”

    “후에!”

    안간힘을 다해서 입을 열려고 했던 엘리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돌렸다.

    “무, 무슨 일이야 세스라!”

    어두운 밤, 눈에 확 들어오는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등장한 여기사 세스라는 공녀에게 머리를 숙였다.

    “부인께서 부르십니다.”

    “엄마가? 으으, 왜 하필 이럴 때.”

    조금만 더 있었다면 말을 꺼낼 수 있었을 것인데. 하필이면 이런 절묘한 타이밍에 엄마가 자신을 찾을 게 뭐람.

    “최대한 빨리 오라고 하십니다.”

    “알았어, 안내해.”

    세스라를 뒤로 물리고, 라트에게 하고자하는 말을 전할까 고민도 해봤지만, 엄마가 급히 오라는 건 분명 이유가 있겠지 싶어서 한숨을 내쉬며 세스라에게 안내를 명하고는.

    “내일 봐.”

    라트에게 고개를 돌려 인사를 전했다.

    “그래, 잘 자라.”

    엘리와 세스라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라트는 한숨을 내쉬고 파이프 담배를 물었다. 아무리 연애를 해보지 않았다지만, 엘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다.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울먹거리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어찌 모르겠는가. 그러나 짐짓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른 척 했다.

    “연애는 사치지, 사치야.”

    나중이라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 연애를 하는 건, 사치나 다름없다. 남은 시간은 이제 2년 조차 남지 않았으니까. 물론 아깝다, 아쉬웠다. 그녀와 함께한다면 즐겁겠지. 그러나 그건 나중의 즐거움으로 미뤄도 된다.

    강해지지 않으면, 엘리를 잃을 테니까.

    “코어 같은 건 따로 줍지 않아도 알아서 루팅이 되나 보네.”

    인벤토리를 열어 파이프 담배를 집어넣은 라트는 오늘 처리했던 몬스터들이 가지고 있을 코어와 재료들이 인벤토리에 들어있는 것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코어야 마법사가 아니면 그냥 돈을 벌 수 있는 잡템에 불과하지만, 포레스트 라이언의 가죽과 발톱은 중상급 재료란 말이지.’

    이 재료를 이용하면 쓸 만한 장신구나 갑옷을 만들 수 있다.

    장신구를 만들려면 세공업자에게 재료를 맡겨야하고 세공 NPC 별로 효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지지만, 어떤 NPC에게 맡겨야 최상의 장신구를 만들어줄 수 있는지는 꿰고 있으니 문제는 없다.

    이름 : 라트

    나이 : 17세

    칭호 : 에메랄드에 다가선 자(매력을 제외한 모든 스탯 + 10)

    레벨 : Lv 28

    Hp : 1150

    Mp : 2000

    경험치 : 0%

    재능

    근력 : 6/10, 건강 : 5/10, 민첩 : 5/10, 마력 : 10/10, 지혜 : 10/10, 매력 : 5/10, 행운 : 10/10

    스탯(남은 포인트 : 47)

    근력 : 10 + 10, 건강 : 9 + 10, 민첩 : 5 + 10, 마력 : 106 + 10, 지혜 : 40 + 10, 매력 : 5

    영향력

    바이올런 : 10/10, 넥스 : 8/10, 아르카나 : 0/10, 홀리 : 0/10, 애니그마 : 10/10

    일반 기능

    양손검(Lv 18 + 근력, 민첩)

    한손검(Lv 24 + 근력, 민첩)

    관찰력(Lv 13 + 지혜, 행운)

    직감(Lv 8 + 지혜,

    고른 호흡(Lv 11 + 건강)

    속도 상승(Lv 9 + 민첩)

    연금술 지식(Lv 38 + 지혜)

    기초 연금술(Lv 52 + 마력, 지혜)

    적색의 연금술(Lv 49 + 마력, 지혜)

    백색의 연금술(Lv 48 + 마력, 지혜)

    흑색의 연금술(Lv 46 + 마력, 지혜)

    황색의 연금술(Lv 54 + 마력, 지혜)

    희귀 기능

    마르쿨의 검술(Lv 4 + 근력, 민첩)  - 필요 기능 : 양손검 or 한손검

    * 공격적인 검술의 끝으로 알려진 검술로 방어를 하는 기술이 거의 없기에 실전된 검술입니다.

    신의 명상법(Lv 6 + 마력, 지혜) - 필요 기능 : 무無

    * 신들의 명상법으로 숨을 쉬는 것만으로 마력이 서서히 회복됩니다. 올바른 자세를 통해 명상을 하면 빠른 속도로 마력이 찹니다.

    무색의 연금술(Lv 3 + 마력, 지혜) - 필요 기능 : 기초 연금술

    * 자연을 연성할 수 있는 연금술. 현재 가능한 원소 속성 : 목(木)

    초기화(에디터 패널티)

    * 세이브 로드를 할 수 없으며, 한 번 죽으면 캐릭터의 모든 데이터가 삭제됩니다.

    커스텀 스킬

    수명의 연금술 - 담배(랭크 불명, Lv 3) - 초당 마나 60 소모 : 수명(담배를 피우는 행위)을 대가로 발현하는 연금술. 연금술의 기초인 이해, 분해, 합성을 무시하고 무엇이든 연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레벨하고 기능 레벨이 많이 오르기는 했는데, 아직도 멀었다는 게 문제란 말이야.”

    그 다음으로 프로필을 살펴본다. 레벨 패널티 때문에 근력과 건강은 하나씩 밖에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고, 민첩의 경우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민첩을 찍자니, 후에 희귀 기능을 배울 수도 있다는 걸 고려해둬야 했다.

    “병신 같은 트롤 캐릭터를 만들 때 이런 꼴을 당할 게 뭐람.”

    트롤 컨셉이 아닌, 천재 컨셉으로 캐릭터를 만들었다면 이런 상황에 빠지지 않았을 거다.

    검사였다면 레벨 업 시너지를 덕분에 슬슬 오러 익스퍼드보다 2단계 낮은 오러 베철러 초입에 들어섰겠지. 마법사라면 아마 한속성이나마 4서클의 경지에 도달 했을 터.

    그 정도로 강했다면 포레스트 라이언에게 다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엘리도 울지 않았겠지.

    결국 문제는 이도저도 아닌 캐릭터를 문제는 만든 본인의 탓이다.

    아니 내 탓이 아니지. 하필 이런 캐릭터를 만들었을 때 이런 상황에 빠트린 놈들의 잘못이다.

    “어떻게 한다.”

    캐릭터를 바꿀 수도 없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제스맹과 케이네, 그리고 엘리까지. 평범한 플레이라면 만나지도 못했을 사람들과 친해졌으니까.

    그렇다고 이대로 있자니, 연금술사에게는 분명 한계가 존재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