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33화 (3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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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엘리가 안내해준 방에서 몸을 추스른 라트는 공작과 공작부인 그리고 엘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주머니가 주는 음식이 굉장히 맛있었기에 길드에서 주는 밥에는 딱히 불만이 없었지만, 역시 공작저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궤를 달리했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산해진미가 펼쳐져있는 모습에 라트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얼마 전 공작저에서 점심 식사를 했던 것을 떠올리고 오늘도 맛있는 음식을 먹겠구나, 하고 기대한 것이 잠시 전이다.

    ‘거북해 죽겠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라트는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지 못하고 말 그대로 쑤셔넣는 중이었다.

    “이거 마셔, 이건 먹고.”

    “호호호호.”

    “크흠.”

    그도 그럴 것이 엘리가 떡하니 자신의 옆에 앉아서 음식을 챙겨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종이나 할 법할 행동을 공녀가, 그것도 공작과 공작부인이 보고 있음에도 하고 있으니, 라트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음에도 체를 할 것 같았다.

    “자, 이것도 남기지 말고 다 먹어.”

    뭘 이리 많이 먹으라는 건지. 벌써 위는 꽉 차 올랐고, 식도까지 음식물을 꾸역꾸역 차오르고 있음에도, 엘리는 계속해서 라트에게 음식을 권했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맛있다. 평생동안 한 번도 먹지 못할 지도 모를 정도로 맛있어.

    ‘그럼 뭐하냐고.’

    루아타 공작은 아까부터 기침을 하면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고, 공작부인은 이 상황이 뭐가 즐거운지, 그에게 웃음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도, 너무 많이 먹으면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날 돼지로 만들 셈이냐!”

    “시끄럽고. 몸에 좋은 거니까, 다 먹어.”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 해도 너무 많이 먹으면 해롭다. 도저히 더는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 라트는 공작과 공작부인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그의 눈빛에 공작은 고개를 틀어버렸지만, 다행스럽게도 공작부인은 그의 구조요청을 무시하지 않았다.

    “엘리자넷. 사람이 그렇게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서 아파요. 나머지는 내일 아침에 먹으라고 하렴.”

    그녀의 자비로움에 살았다고 생각한 라트는 이어지는 말에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구조요청을 무시하지 않고 도와주신 건 감사하지만, 결국 이 고통을 내일로 미룰 뿐이잖아!

    “한창 클 나이에는 이 정도는 먹을 수 있지 않아요, 엄마?”

    “클 나이 지났거든! 너랑 동갑이거든!”

    어떻게든 라트에게 무언가를 더 먹이려는 엘리를 보고 소름이 끼친 라트는 나이프와 포크를 놓아버렸다.

    “더는 안 먹어. 아니 못 먹어. 차라리 죽여줘.”

    무려 4명이 먹을 음식을 혼자서 먹어치웠기에 배가 빵빵해지다 못해 터질 지경이다. 포만감이 온 몸에 퍼진다. 만족스럽다 못해, 불쾌함이 머리를 찌른다.

    그리고 배도 아파, 지금 느끼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포레스트 라이언에게 배때기가 배였을 때 느낀 고통은 새 발의 피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췌.”

    라트의 파업 선언에 엘리는 혀를 내밀면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 먹고 가.”

    “……싫다고 하면?”

    “이거 다 먹을래?”

    “자고 갈게요. 아니, 자고 가게 해주세요.”

    라트 앞에는 지금까지 먹은 음식만큼 남은 음식이 놓여있었다. 이걸 다 먹을 바에야 얌전히 엘리의 말을 듣는 게 나았다.

    그리고 엘리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도 알고 있다. 분명 자기 때문에 내가 다쳤으니, 몸에 좋은 음식을 잔뜩 먹여서 회복에 도움을 주려는 생각일 것이다.

    ‘과유불급인지도 모르고, 마구마구 먹인 게 문제지.’

    소화제라도 먹지 않으면, 복부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간밤에 잠을 설칠게 분명했다. 그리고 잠을 못자면, 소화가 정상적으로 되지 않아서 내일 컨디션은 엉망이 될 거다.

    ‘하아.’

    지금부터라도 소화에 집중해야한다. 공작저라면 분명 소화제로 쓸 수 있는 포션 정도는 구비하고 있을 터. 나중에 루아타 공작에게 넌지시 소화제가 있냐고 물어보도록 하자.

    “그래 입맛에 맞았나?”

    “예. 배려해주신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다행이로군. 누구 때문에 공작저에 있는 고급 식재료란 식재료는 전부 사용해서 만든 음식이니까, 입맛에 맞지 않았다고 했으면 실망했을 걸세.”

    “하하하하.”

    공작의 날카로운 시선에 몸을 움찔거린 라트는 마른 웃음을 내뱉었다. 엘리와 라트를 번갈아보면서 뼈있는 말을 한 것을 보니, 아무리 봐도 루아타 공작은 질투를 중이었다.

    엘리가 라트에게 지극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걸까? 딸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버지는 시대를 초월하고 언제나 있나보다. 딸에게 사랑받고 싶었다면, 엘리를 오냐오냐 키웠으면 됐을 텐데.

    그건 공작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건가.

    ‘소화제를 받는 건 글렀다.’

    어찌됐든 공작의 태도를 보아, 소화제를 받는 건 글렀다고 판단한 라트는 마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길드로 돌아가면 소화제쯤이야 간단히 만들 수 있지만, 공작저에는 시약대조차 없으니, 포션을 만드는 건 무리일 테지.

    “너도 좀 먹지 그래. 나한테 음식 준다고, 하나도 안 먹었잖아.”

    “응. 이제 먹을 거야.”

    라트가 먹는 것을 그만두자, 엘리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공녀답게 품위를 지키는 식사였다. 공작과 공작부인은 이미 식사를 끝내고, 자애로운 표정으로 엘리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사랑받고 있네.’

    고등학교 생활이 고통스러웠다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식의 편안한 미래를 위해, 더욱 혹독하게 그를 공부시키려고 했을 뿐이다.

    공작 그리고 공작부인도 마찬가지일 터다. 월드 세리아는 남녀관계가 제법 평등한 세계였지만, 만약 엘리가 공작이 된다면 셀룬 왕국 최초로 여자 공작이 탄생하는 것이니, 주변의 시선이 곱지는 않을 거다.

    그러나 엘리가 주변의 시선을 무마할 수 있는 실력이 있다면? 곱지 않은 시선은 자연스레 경외의 시선으로 바뀔 것이 분명했다. 공작도 그 점을 염두하고 엘리를 혹독하게 가르쳤겠지.

    공작과 공작부인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부모님이 보고 싶어져서 우울해졌다.

    만약 이곳의 시간과 지구의 시간이 동일하게 흘러간다면, 부모님은 자신을 얼마나 걱정하고 계실까.

    “표정이 왜 그래?”

    “그냥.”

    차마 부모님이 보고 싶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기에, 엘리의 물음을 얼버무린 라트는 한숨을 내쉬고는 속이 답답해짐을 느끼고 물을 마셨다.

    “식사도 끝난 것 같으니, 오늘 폐광에서 있었던 일…….”

    라트의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것으로 판단한 공작은 이제 폐광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듣고 싶었다.

    “을 듣는 건 내일 아침 식사 후로 미루지. 그 때까지 이곳에 있어도 괜찮겠나?”

    그러나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엘리가 매서운 눈으로 공작을 바라보았기에 공작은 침음을 삼키며 라트에게 이야기를 듣는 것을 내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예. 스승님께는 공작님이 따로 언질을 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그리고.”

    공작이 박수를 치자, 시녀 한 명이 갈색 액체가 든 잔을 가져오더니 라트의 앞에 놓았다.

    “이건 뭡니까.”

    설마 지금 이걸 먹으라는 건가? 이제는 물만 조금 들어가도 토가 나올 정도로 배가 가득 찼는데? 공작이 이런 식으로 엿을 먹일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소화에 도움이 되는 약일세. 제스맹의 제자가 공작저에서 배탈이 나서 끙끙 앓았다는 소문이 나면 곤란하지 않나.”

    “감사합니다.”

    다행히 엿을 먹이려는 게 아니라 순수한 호의였다. 언질을 주지 않았음에도 소화제를 가져다준 공작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라트는 재빨리 잔에 든 액체를 전부 마셨다.

    ‘매실 맛이 나네?’

    이곳에 매실이 있을 리가 없지만, 액체는 신기하게도 매실 맛이 났다. 그러나 매실과는 달리 소화 효과는 급격히 나타났다. 더부룩하던 배가 조금 괜찮아졌다.

    동시에 트림이 나올 것 같았다. 긴장의 끈을 푼 순간, 아마도 거하게 트림을 할 거다.

    “우리는 엘리와 따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 그걸 다 마시고 정원을 산책하는 게 어떤가.”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작은 그저 엘리와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겠으나, 그 덕에 배려 아닌 배려를 받은 라트는 일어서서 고개를 숙인 후 식당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복도로 나오자마자, 트림을 하면서 배를 문지른다.

    “죽겠다.”

    엘리의 기세에 휘말려 과하게 먹었다. 소화제가 없었다면 끙끙거리거나, 구토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달려가지 않았을까?

    ‘담배 피고 싶다.’

    배가 부르니 담배가 땡긴다. 근 1년 동안 스승 때문에 담배를 최대한 멀리 했지만, 근 한 달 동안 몇 번이나 담배를 태웠기에 식사 후 담배 한 대가 간절했다.

    “아, 그 새끼가 담배를 베어버렸지.”

    인벤토리를 열어서 담배를 꺼내려고 했던 라트는 포레스트 라이언이 하나 뿐인 파이프 담배를 베어버렸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눈을 찌푸렸다.

    생각해보니까 생명의 연금술은 일반적으로 좁은 곳에서 효율을 발휘한다. 파이프 담배야 새로 사면 그만이지만, 적에 의해 파이프 담배가 손상될 상황이 반드시 생길 터다.

    이번에는 운이 좋아서 생명의 연금술을 사용해서 포레스트 라이언을 처리할 수 있었다지만, 앞으로도 운이 좋을 수는 없다.

    물론 내 행운 재능은 10이니까, 어지간해서는 항상 행운이 따르겠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다.

    “어쩐다.”

    이번 퀘스트로 얻은 게 많다. 앞으로 만들어서 사용할 무기의 윤각이 대략적이나마 잡혔고, 생명의 연금술이 무력화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결정적으로 현재로써는 근처에 나무가 없으면 무색의 연금술은 무용지물이다.

    “저기.”

    복도를 걷던 중, 시녀 한 명이 이쪽으로 다가오자 라트는 급히 그녀를 불러세웠다.

    “말씀하세요.”

    “파이프 담배 하나 얻을 수 있을까요?”

    “말씀을 낮춰주세요.”

    “그건 좀 곤란한데요, 하하. 제가 평민이라서 나이가 더 많은 분께 하대하는 건 익숙지 않아요.”

    라트가 겸연쩍게 웃자, 시녀는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곤란해요. 공작가의 은인께서 말씀을 낮춰주시지 않으시면, 마님께서 혼내실 지도 몰라요.”

    혼나는 건가. 그럼 어쩔 수 없군.

    “파이프 좀 얻을 수 있을까?”

    “곧바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방으로 가져다 드릴까요?”

    “따라가서 받을게요. 아니, 받을게.”

    이 세계에서 생활한 것은 겨우 1년 남짓, 그렇기에 나이 많은 사람에게 하대하는 것은 역시나 익숙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귀족으로 스타트했으면 또 모를까. 평민으로 시작했으니 더욱 그랬다.

    “그럼 따라오시길.”

    라트가 하대를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시녀는 군말하지 않고, 그를 안내했다.

    “이런 건 너무 부담스러운데.”

    ============================ 작품 후기 ============================

    추우처언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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