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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젠장.”
포레스트 라이언의 뇌인 것 같은 덩어리가 옷에 묻자, 라트는 욕설을 내뱉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분노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중이지, 당장이라도 쓰러져도 이상할 것 없는 부상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라트가 포레스트 라이언의 단검에 당하자 엘리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덕분에 마법을 쓸 수 없었다. 아니, 쓸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생명의 연금술을 쓰지 못했다면, 라트는 포레스트 라이언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거다. 그리고 엘리가 마법을 준비하는 것보다, 포레스트 라이언이 엘리를 제압하는 게 더 빨랐겠지.
“이 바보야!”
엘리는 재빨리 주머니에 있는 체력 회복 포션을 꺼내서 라트의 가슴에 붙었다. 베리어 마법과 가죽 갑옷 덕분에 치명적인 상처는 면했지만, 뼈가 보일 정도로 심각한 상처였다.
“이 피 좀 봐. 어떡해.”
“안 죽으니까 호들갑 떨지 마.”
체력 회복 포션 덕분에 상처가 점점 회복됐지만, 아직 움직일 정도로 회복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죽을 상처는 아니었다. 포션 덕분에 흉터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눈앞에 있는 소녀가 울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죽지 않았고, 너는 다치지 않았다. 우리를 노리던 몬스터도 처리했다. 결과적으로는 다 잘 된 일이잖아.
“호들갑이라니! 너 지금 죽을 뻔했잖아!”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엘리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라트의 상처를 바라보았다. 포션 덕분에 상처가 아물고 있기는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상처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 고통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소녀는 그저 울 수밖에 없었다.
“왜 밀친 거야, 이 바보야! 베리어 마법이 있으니까, 난 안 다쳤을 거 아니야!”
“나도 공작님이 준 베리어 마법 스크롤을 썼잖아. 그게 한 방에 깨졌어. 그대로 내버려뒀으면 네가 죽었을지도 몰라.”
엘리가 뛰어난 재능을 갖춘 건 인정하지만, 그녀가 지금 나이에 공작이 준 스크롤보다 훨씬 견고한 베리어를 펼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그녀는 마법사다. 레벨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Hp가 낮을 수밖에 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소녀다. 라트는 포레스트 라이언의 공격을 맞고 목숨을 건졌지만, 그녀가 이런 공격을 당했다면 분명 죽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리고.”
아직 반론이 남았다는 듯, 엘리가 입을 열었으나 라트는 재빨리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말을 끊어서 미안하지만, 이 말을 해주는 게 먼저였다.
“저번에 말했지. 혹시나 네가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나더러 구해달라고.”
그래 분명 그랬었다. 그 당시, 엘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라트에게 구해달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라트가 대답을 하지 않자, 조금 화가 나서 그에게 대답을 재촉했었지.
“그 때 못한 대답, 지금 해줄게.”
결국 시녀가 나타났기에 그의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엘리는 그 대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피 흘리면서 그런 말하지 말고, 빨리 이거 마셔!”
흐릿하게 남아있는 물음의 대답보다, 라트가 먼저였다. 상처가 전부 낫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말을 하느라, 그는 피를 토하고 있는 중이었다.
포션을 상처 부위에 붙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엘리는 주머니에서 또다른 체력 포션을 꺼내더니 뚜껑을 따고 라트에게 건넸다.
그러나 라트는 그녀가 들고 있는 포션을 받지 않고,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위험에 빠지면 도와줄 거야.”
“이, 이거부터 마시라고!”
겨우 그 말이 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대화가 뭐라고 피를 토하면서 말하고 있는가. 그럴 시간에 빨리 포션이나 마시는 게 건강에 훨씬 도움이 될 거 아니야!
살벌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엘리의 반응에 라트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그녀가 들고 있는 포션을 받아 마셨다.
‘아, 이제 좀 살겠네.’
포션을 마시자 즉각 효과가 나타났다. 머리를 찌르던 고통이 점점 옅어졌고, 단검에 베였던 장기가 회복되었는지 목에서 피가 끓지도 않았다.
“이미 두 번이나 도와줬잖아. 다음번에는 안 도와줘도 돼. 만약 날 구하려다가 네가 다치면…….”
라트가 포션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서야, 엘리는 라트에게 대답을 해주었다. 그래, 이미 두 번이나 구해줬다. 이걸로 충분하고도 넘칠 만큼 받았다. 이 빚을 갚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감도 잡히지 않아.
다음번에 도움을 받으면 정말 어떻게 부끄러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라트가 다치자, 가슴이 아파왔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올 정도로.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도와줬으니까. 그게 아까워서라도 다음번에도 도와줄 거야.”
그런 엘리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라트는 담담하게 그녀의 말을 거부했다.
“반드시.”
이걸로 그 때 못했던 대답을 끝냈다. 그 때는 약속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약속할 수 있다. 강해져서 그녀를 구한다. 게임 상 반드시 죽음을 맡이하는 그녀의 운명을, 보란 듯이 바꿀 것이다.
“나, 지금 뭐라고 대답해야 돼?”
라트의 확고한 대답에 엘리는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졌다. 뭐라고 말할지 모르겠어, 그저 빨개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손으로 얼굴을 가릴 뿐.
“믿어준다고 해주면 돼.”
“믿어. 믿을게.”
돌아오는 라트의 말에 엘리는 손을 내리고, 그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어찌 믿지 않을까.
“생명의 은인의 말인데, 믿을 수밖에 없잖아.”
두 번이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다. 자신을 위해 고통을 인내한 남자의 말을 믿지 않으면, 누구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하아.”
라트는 품에 안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엘레는 한참이나 그의 품에서 훌쩍였지만, 울음을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탈수증이 올까 걱정이 될 정도다.
아무리 달래 봐도 그녀가 우는 걸 멈추지 않자, 라트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마음먹고, 그녀의 턱을 들어올렸다.
“웁!”
입술과 입술이 마주한다. 케이네에게 했던 입을 틀어막기 위한 과격한 키스가 아닌, 그저 입술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가벼운 키스였다.
입맞춤은 아주 잠깐이었고, 남자는 살며시 입술을 때며 그녀에게 웃음을 보였다.
“진정됐어?”
특단의 조치는 확실히 잘 먹혔는지, 그녀는 울음을 그치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열심히 눈을 굴리는 중이었다.
‘라트, 얼굴 가까웠어. 입, 따뜻해. 나, 지금. 키, 키스스?’
돌아가지 않는 사고를 굴려가며, 간신히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달은 엘리는 얼굴을 잘 익은 홍시같이 물들이더니.
“이, 이 바보가! 이런 곳에서 무드도 없이!”
라트의 배를 밀어버렸다.
“컥.”
아무런 예고도 없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라트가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크으윽…….”
포션을 들이부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완벽히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자극됐는지 라트는 고통에 신음을 내뱉으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미, 미안해! 나도 모르게 손이. 으으, 아팠지?”
그제야 라트가 다쳤다는 사실을 깨달은 엘리는 또다시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라트의 배를 쓰다듬었다.
“병주고 약주냐?”
“……미안.”
아무래도 질책은 여기까지 해야겠다. 여기서 더 질책했다가는 간신히 울음을 그친 엘리가 또다시 울까봐 겁이 났다.
“진정됐지?”
“응.”
“그럼 빨리 돌아가자.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라트는 주머니에 있던 귀환 스크롤을 꺼내고 엘리에게 팔을 내밀었다.
“내 손 꽉 잡아.”
그리고 엘리가 손을 잡은 것을 확인하자, 스크롤을 입으로 찢었다. 그러자 새하얀 빛이 라트와 엘리를 감쌌다.
“오, 돌아왔….”
라트와 엘리가 귀환하자, 서류를 정리하던 공작은 그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부은 눈으로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딸과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라트의 모습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본능적으로 광산에서 무슨 일이 있음을 알아차린 루아타 공작은 질문을 바꾸기로 했다.
“광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가죽 갑옷이 베였지? 그런 몬스터가 있을 리가 없을 텐데!”
공작의 목소리가 들리자, 라트는 재빨리 일어서려고 했으나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은 그런 그의 행동을 거부했다. 다리가 풀렸는지, 말이 듣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양해를 구하고 이 상태로 대답을 해야 하는 건가?
“그게, 그러니까.”
그런데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하지? 엘리와는 달리 라트는 정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냉정한 상태였지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을…….”
“아빠!”
루아타 공작이 라트에게 말을 재촉하려는 순간, 엘리가 소리를 지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문밖에 있는 시녀를 불러 그를 부축해주라고 명령한 후 공작,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세요. 라트는 지금 쉬어야 해요. 따라와.”
“야, 잠깐만.”
“조용히 하고 따라와.”
“네.”
엘리는 라트를 부축한 시녀에게 따라오라고 말한 후 그와 함께 집무실에서 벗어났다. 라트가 뭐라고 항변을 해보려고 했으나, 엘리의 박력에 밀려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공작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안이 벙벙해져 엘리가 사라진 문을 바라보았다. 딸이 자신의 말을 듣지도 않고 멋대로 행동하다니. 평소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빠라.”
평소 자신을 아버님이라고 호칭하고 절대로 자신에게 거역하는 일이 없는 딸아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며, 자신의 행동을 막다니.
“몇 년만에 들어보는 거지?”
공작은 어릴 적부터 엘리를 혹독하게 교육시켰다. 엘리가 자신의 후계자였기 때문도 있으나, 그녀가 다른 이보다 잘난 사람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교육의 여파로 엘리는 자신을 아버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자신을 어렵게 대하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딸을 사랑하는 공작은 그런 엘리의 행동에 마음이 아팠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아빠라고 불러준 것이 언제적 일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허허.”
그런 엘리가 자신을 아빠라고 불렀다는 것은 그만큼 정신이 없는 상황을 겪었다는 뜻일 터. 정황 상 추측해보건데 아마도, 라트가 또다시 딸을 구해줬을 것이다.
그것도 자기가 다치는 것을 감수하고서.
“사정은 내일 들어야겠군.”
고집대로라면 오늘 밤에라도 찾아가서 라트에게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나, 엘리가 저렇게 나오면 방법이 없다. 딸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한 명의 아버지인 공작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밀려있는 서류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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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이렇게 쓰는 건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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