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31화 (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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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라트는 광산의 끝 부분으로 향하는 길에 파이프에 담배를 채워 넣었다. 고블린이나 임프 같은 최하급 몬스터쯤이야 쇠구슬에 짓눌려 전부 죽었지만, 직감이 보스 몬스터가 남아있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목 안 아파?”

    “목만 아플까? 폐도 아파.”

    엘리의 물음에 라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구에서는 하루에 담배를 2갑씩 피는 헤비 스모커였으나, 이 몸은 담배에 익숙하지 않다. 체감 상 이제 겨우 반갑 정도 폈을까? 그런데도 목이 따끔거리고 폐가 휑한 느낌이다.

    “아파도 이 끝에 누가 있을 거 같아서 대비하는 거지.”

    “그 정도는 나도 눈치 챘어. 총을 쓰는 고블린이랑 임프라니, 들어본 적도 없는 걸. 그냥 걱정돼서 물어본 거야.”

    “쉿.”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광산의 끝부분이 눈에 들어오자 라트는 엘리를 조용히 시키고 조심히 그쪽을 살폈다.

    ‘뭐야, 아무도 없잖아?’

    라트의 염려와 달리 광산의 끝에는 보스 몬스터도, 흑막도 없었다. 단지 책상과 급하게 태웠는지 아직까지 제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는 널브러진 종이만이 조금 전까지 이곳에 누군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줄 뿐.

    “아무도 없네?”

    “혹시 모르니까 조용히 가자.”

    정황 상 쇠구슬 때문에 일어난 소란에 놀라 텔레포트를 사용해 도망쳤을 수도 있지만, 투명 마법을 사용해서 숨어있을 수도 있다. 라트와 엘리는 최대한 주의하면서 책상 쪽으로 다가갔고, 그 순간 라트는 익숙한 냄새를 맡고 인상을 찌푸렸다.

    ‘이 냄새는.’

    굉장히 익숙한 냄새였다. 음식 냄새나 피 냄새 같은 게 아니다. 상당히 위험한 냄새였다. 도대체 어디서 맡아봤더라?

    “이거 내가 좀 살펴봐도 돼?”

    엘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라트는 코를 킁킁거리면서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해멨다. 그러는 와중에 라트는 간신히 이 냄새를 어디서 맡아봤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흑색 화약 냄새잖아.’

    화약이 터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재빨리 담배를 끈 라트는 구석에 숨겨진 상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상자 안을 열어보자 역시나 흑색 화약이 가득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화약이다. 도대체 이 많은 화약을 어디다 쓰려고 했던 거지? 만약에 이게 터졌다면, 광산은 와르르 무너졌을 것이다.

    ‘광산을 무너트리기 위해서?’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눈이 번쩍 뜨였다. 지금 이곳은 조금 전까지 사람이 머무른 흔적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들이 이만한 화약을 준비해놨다는 것으로 한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다른 왕국 짓이군.’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나 이곳이 폐광이 아니라 풍부한 철이 매립돼있는 광산이라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졌고, 그 사실을 안 다른 왕국이 셀룬 왕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사람을 보낸 것이다.

    “몬스터가 광산을 점거한 건 몬스터 테이머 짓이겠네.”

    몬스터 테이머, 몬스터를 조련할 수 있는 상당히 희귀한 직업 중 하나다.

    ‘어쩐지 최하급 몬스터 주제에 너무 각이 잡혔다, 싶었어.’

    조련한 몬스터에게 명령을 내릴 수도 있고, 몬스터에게 고급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교육시킬 수도 있다. 대인전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들의 진짜 진가는 대군전에서 발휘되었다.

    그덕에 몬스터 테이머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낀 수많은 유저들이 그 직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도전했고, 그들은 결국 몬스터 테이머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몬스터 테이머가 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인간이 아닌 수인으로 시작해서 몬스터를 한 마리도 죽이지 않은 상태로 몬스터 테이머를 찾아서 스승으로 모시면 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튜토리얼 기간 중에 몬스터 테이머를 만났다는 알림창을 볼 수 있게 세팅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몬스터 테이머가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기 전에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거였지만, 이것도 결국 유저들에 의해서 밝혀지고 말았다.

    ‘노르스 대륙에서 몬스터 테이머가 있는 왕국은 켈랑과 차리친이라고 적혀있었지.’

    몬스터 테이머라는 직업에 상당한 흥미를 느꼈던 라트는 그에 관한 공략글을 유심히 봤었던 적이 있었고, 손쉽게 그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차리친은 설정 상 옛날부터 셀룬과 사이가 좋다고 했어. 반대로 켈랑은 셀룬과 사이가 굉장히 나쁘다고 했었고.’

    노르스 대륙에는 무려 6개의 왕국이 존재하고 각 왕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섞여서 굉장히 흥미로운 구도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정치판이 돌아가는 것을 즐기는 유저는 셰크티 제국이 유일한 패왕으로 떠오른 카르세이나 대륙보다 노르스 대륙에서 스타트하는 것을 좋아했다.

    ‘켈랑 왕국의 짓이군.’

    차리친이 우방인 셀룬을 건드릴 이유는 없다. 대륙 전쟁이 일어났을 때 홀로 그것을 감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니 이 사건의 범인을 켈랑 왕국의 사람이라고 단정한 라트는 인벤토리에 상자를 담았다.

    흑색 화약은 대포와 총을 사용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재료 중 하나다. 전쟁 준비로 잘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쁜 스승님께 흑색 화약을 가져다드리면 굉장히 좋아하시겠지.

    “라트. 이것 좀 봐볼래?”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보관 장소라고 장담할 수 있는 인벤토리에 화약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직감이 위험 신호를 알려오자, 라트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엘리에게 다가갔다.

    “왜 그래? 범인이라도 알아냈어?”

    켈랑 왕국의 짓이라는 심증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 물증이 있으면 켈랑 왕국 쪽에서 공식적으로 사과를 할 수도 있고, 셀룬 왕국에 소정의 보상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퀘스트 보상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가겠지. 그렇기에 라트는 엘리가 무언가를 알아냈기를 바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니, 중요한 문서는 대부분 불탄 거 같아. 그나마 멀쩡한 종이에는 텔레포트 마법을 방해하는 마법을 썼다는 게 적혀있을 뿐이야.”

    광산 근처로 텔레포트가 됐어야 했는데,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 떨어진 이유가 밝혀졌다.

    “안타까워라. 그럼 난 왜 부른 거야?”

    “이것 좀 보라고 불렀어. 연금술하고 관련된 서류 같아서.”

    잘하면 공적도를 올릴 수 있었는데, 라트는 입맛을 다시면서 엘리가 넘긴 종이를 살펴보았다.

    [총검 제작도를 습득하셨습니다.]

    ‘오.’

    방금까지 공적도를 없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에 실망에 빠져있던 라트는 종이를 보자마자 실망감을 지우고 그것을 살피는데 열중하기 시작했다.

    “연금술, 그것도 상당히 복잡한 연금술로 만드는 무기 맞지?”

    “맞아.”

    종이에 그려진 그림은 광산 입구에서 봤던 고블린이 들고 있던 조잡한 무기가 아닌, 거의 완벽한 총검의 설계도가 그려져 있었다. 어쩐지 판타지 배경에서 나올 무기가 아니라, 스팀펑크에서나 나올 법한 총검이다.

    검신 안에 총을 장착해서, 방아쇠를 당긴 순간 검날을 뜨겁게 만들어 오러 소드에 대적할 수 있게 한 건가? 거기다가 검을 분해해서 총으로 쓸 수 있는 방법도 설명되어있다.

    제한적이나마 총으로 쓸 수 있는 대검이라. 정말 이 검이 오러 소드에 대적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굉장한 무기였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후우.”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운 라트는 설계도의 몇몇 부분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기술 문제로 이걸 만들 수는 없었나보네.’

    설계도에는 정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그냥 이렇게 되면 이렇게 할 수 있다는 붕 떠있는 이론이 많았다. 후면에는 몇몇 연금술사가 터무니없는 무기와 이론이라면서 박대했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와, 나였으면 그시보못이라고 말했을 텐데.”

    “응?”

    “아, 아니야. 그냥 혼잣말이었어.”

    만약 이 설계도를 만든 자가 어딘가에서 나오는 신관이고, 연금술사들이 그 신관보다 아래였다면 분명 그대는 왜 시대를 보지 못하는가! 하고 일갈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이 무기는 굉장히 혁신적이었다. 설명하지 못하는 이론만 어떻게 정립한다면 굉장한 무기가 될 것이다.

    “좋은 선물을 얻었어.”

    길드로 돌아가면 연구해야할 게 생겼다. 그리고 이 연구를 완성한다면 자신이 한층 더 강해질 수 있다. 그 사실에 라트가 미소를 지으면서 설계도를 인벤토리에 넣으려는 그 순간.

    직감이 위험을 알려왔다.

    분명 몬스터는 전부 죽고, 이 사건의 주모자들은 전부 도망쳤을 것인데 어째서 직감이 위험을 알려오는 것인가.

    심장이 요동친다. 위험해, 여기 있으면 위험하다. 차라리 자신이 위험했다면 이렇게까지 심장이 떨리지는 않았겠지만, 직감이 위험하다고 알린 것은 자신이 아니라 엘리였다.

    “위험…….”

    담배를 문 라트가 엘리에게 위험을 알리려고 했지만, 그보다 일그러진 공간을 본 것이 더 빨랐다. 역시 투명 마법으로 누군가 숨어있었던 건가. 공간의 일그러짐이 점점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온다.

    이 속도라면 엘리는 도망칠 수 없다. 그녀를 다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엘리는 그저 내 욕심 때문에 여기까지 따라온 거다. 어떻게, 어떻게 하지!

    생각보다 본능이 더 빨랐다. 라트는 정신을 차린 순간, 자신이 엘리를 밀쳐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공간의 일그러짐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사실도.

    여기까지 접근한 것을 보니, 상대는 마법사가 아닌 근접 공격을 사용하는 자다. 이미 공격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방어라도 해야 했다.

    라트는 본능적으로 입에 꼬나물고 있는 담배를 빨아들이면서 검을 들어 올렸고.

    “꺄아아악!”

    비명 소리와 함께 피가 요란하게 바닥에 흩어졌고, 파이프 담배가 그 위를 구르며 참극을 알린다.

    “크윽.”

    상대는 라트가 검을 들어 올리자, 머리를 노리려던 것을 멈추고 들고 있는 단검으로 그의 심장을 찌르려고 했지만, 베리어 마법 덕분에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베리어 마법은 단 일격에 깨져버렸고 그 공격 덕분에 가슴에서 골반까지 이어지는 상처를 입었다. 죽지는 않았지만, 죽을 만큼 아프다. 라트는 그 고통을 억누르며, 자신의 앞에 서있는 거구를 바라보았다.

    사람이 아닌 몬스터. 사자 머리에 풀로 뒤덮인 몸통. 족히 2m는 될 법한 거대한 키.

    ‘포레스트 라이언.’

    최소 중급, 강한 놈이라면 중상급 수준의 몬스터가 등장하자 라트는 입술을 씹었다. 몬스터 테이머가 남겨놓은 몬스터가 분명했다.

    ‘처 웃고 있어?’

    포레스트 라이언은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단검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들어, 겨우 이 정도 상처를 입혀놓고 이겼다고 웃고 있는 면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라트!”

    엘리의 비명소리에 포레스트 라이언이 살짝 그녀를 바라보고, 비릿하게 웃으면서 상징과도 같은 송곳니를 꺼내며 혀로 입술을 핥는다.

    욕망에 번들거리는 그 표정을 보자,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여기서 당한다면, 엘리는 이 몬스터에게 능욕당할 것이다.

    능욕당하고, 무참하게 살해당할 것이 분명했다.

    ‘저 새끼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것만으로도 화가 날 지경인데, 엘리를 보고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저 면상이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겼다고 생각했어? 겨우 이걸로?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면. 안타깝지만, 슬픈 오산이다. 이 하등한 몬스터 새끼야.

    “후우.”

    담배가 잘리기 전에, 한 모금 빨아놨거든.

    담배연기가 자욱하게 흩어져, 포레스트 라이언의 머리를 향해 뭉실뭉실 올라간다. 무슨 연기인지 순간 당황했으나, 아무런 유해성이 없는 연기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뒤로 물러서지 않고 단검을 들어올렸다.

    그게 패착인 줄도 모르고.

    “죽어.”

    피와 함께 살기가 담긴 말을 내뱉은 라트는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했고, 포레스트 라이언의 눈과 입 부근에 집중적으로 폭발을 일어났다.

    “크아아아!”

    폭발 때문에 눈과 입에서 피를 쏟아낸 포레스트 라이언은 바닥에 쓰러져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게임이라면 모를까. 현실에서는 그 어떤 몬스터라고 해도 눈과 입 안쪽은 급소다.

    폭발에 의해 포레스트 라이언은 눈을 잃었고,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되었으며 상징과도 같은 송곳니가 완전히 박살났다. 아마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알아서 죽을 것이다. 시각도, 후각도 사라진 몬스터는 굶어죽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저대로 내버려두자니,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았다.

    “크우웁!”

    인벤토리를 열어 흑색 화약을 꺼낸 라트는 포레스트 라이언의 얼굴을 걷어차 버리고 그의 입에 흑색 화약을 가득 먹였다. 그리고 품속에서 성냥을 꺼내 불을 붙인다.

    “주제도 모르고 내 친구한테 욕정을 느낀 대가야, 이 개새끼야.”

    라트의 손을 떠난 성냥은 정확히 포레스트 라이언의 입가에 들어갔고, 그가 한발 물러선 순간 깔끔한 폭발 소리와 함께 포레스트 라이언의 머리였던 고기 덩어리가 사방에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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