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30화 (3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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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모습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고블린 무리에게 다가간다. 괜히 몸을 숨기고 다가간다고 시간을 끌 수는 없다. 엘리의 마력을 고려해서, 사일런스 마법을 최대한 빨리 거둘 수 있게 해줘야하니까.

    그리고 라트는 지금 방심하고 있었다.

    현재 라트의 레벨은 20, 근력과 건강 스탯은 칭호의 효과를 받은 덕분에 20에 육박했다. 이 정도라면 어지간한 용병 수준의 스탯이다. 고블린 같이 약한 몬스터에게 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감이 위험을 알려왔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고블린 3마리에게 위험을 느끼는 게 아니라, 그들이 이렇게 체계적인 감시를 하고 있다는 것에 무언가 도사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자신을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고블린 두 마리의 목을 순식간에 베었다. 순식간에 혈향이 후각을 자극했고, 바닥을 나뒹구는 고블린의 목과 몸통이 시각을 자극했으나, 특별히 경각심을 가지지 않았다.

    ‘저게 뭐하는 짓이야.’

    동료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단검의 날을 접고 있는 고블린의 행태에 그는 더더욱 방심하며 고블린에게 달려들었고. 순간 자신이 죽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직감 기능의 효과로 죽음을 예감합니다.]

    ‘위험해!’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나, 위험을 느꼈기에 라트는 왼쪽으로 굴렀고, 라트가 바닥을 구르는 순간 어깨에 고통이 느껴졌다.

    “큭.”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라트는 재빨리 고개를 들어 고블린을 바라보았고, 놀라움에 입을 벌렸다.

    “총?”

    고블린의 손에는 아까까지 없던 총이 들려있었고, 총구에는 연기가 나오는 중이었다. 사일런스 마법 때문에 총성이 들리지 않아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아니, 설마 고블린이 총을 사용할 줄은 꿈에도 상상치 못했다.

    들고 있던 단검의 날을 접어서 총의 모습으로 바꾼 건가? 탄환이 하나뿐 인지, 그게 아니면 나아가 재장전까지 시간이 걸리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블린은 다시 단검의 날을 세우더니 라트에게 달려들었다.

    “어처구니가 없네.”

    고블린이 저런 무기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어깨가 다쳤을 뿐, 현재 라트의 스탯 상 고블린 한 마리에게 당할 리가 없다.

    차라리 그대로 도망쳐서 광산에 있는 몬스터들을 끌고 왔다면 모를까. 내가 다쳤다고 저렇게 달려들다니.

    “죽어.”

    단검을 사용하지 못하게 고블린의 머리에 검을 쑤셔 박았다. 고블린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힘없이 단검을 놓았다.

    그것을 바라보던 라트는 고블린의 머리에서 검을 뽑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인벤토리를 열어서 체력 회복 포션을 어깨에 쏟았다.

    “라트 괜찮아? 우웩.”

    라트가 고블린을 모두 정리하자, 엘리가 급하게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뇌수가 터진 고블린의 머리를 보고 구역질을 하더니 울상을 지었다. 죽을 위기를 겪지 않았다면 라트도 엘리와 마찬가지로 구역질을 했을 것이다.

    어깨가 치료된 것을 확인한 라트는 고블린이 들고 있던 단검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고블린이 어떻게 이런 무기를 가지고 있는 거야.”

    라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다. 고블린이 들고 있던 단검의 손잡이는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철로 만들어졌고, 날을 접으면 총구가 튀어나오는 형식이었다.

    문제는 손잡이 안에 탄환이 한 발 밖에 들어가지 않고 재장전을 하려면 손잡이를 완전히 분해해야하지만, 갑자기 총을 사용하면 그 누구라도 위험할 수 있다. 상대의 허를 찌르기에는 최적의 무기였다.

    이런 건 연금술, 그것도 치트리니타스 학파의 황색 연금술을 제대로 익힌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무기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서 고블린이 이런 무기를 들고 있을 수 있지?

    아니 그 전에. 어떻게 고블린이 이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숙지하고 있는 거지.

    “라트, 이거 총이야, 단검이야?”

    라트가 단검의 날을 폈다, 접다 하는 모습을 본 엘리는 조금 전 라트의 어깨에서 갑자기 피가 나오는 모습을 기억해내고 라트가 들고 있는 단검이 보통 단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총 겸 단검이지. 이렇게 날을 잡으면 총처럼 사용할 수 있어. 탄환을 하나 밖에 넣지 못하지만.”

    총이라는 무기는 이 세계에서 별로 알려진 무기가 아니다. 소수의 몇몇 연금술사들만이 만들 수 있는 무기이기 때문에 총을 다루는 이들이 별로 없다.

    어떤 이들은 재장전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활보다 못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대로 만들어진 총의 위력은 확실히 위협적이었다.

    “이런 무기는 연금술사밖에 못 만드는 거 아니었어?”

    “맞아. 그것도 참신한 발상을 가진 연금술사의 작품이야.”

    몇몇 게임에서 총과 검의 역할을 같이하는 무기가 있긴 했지만, 설마 여기서 이런 무기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미스릴을 사용해서 어떤 무기를 만들지 힌트를 얻은 기분이 들 정도다.

    ‘돌아갈까?’

    광산 안에 어떤 위협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 돌아가는 것이 맞았으나, 레벨 업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라트는 고개를 돌려 엘리를 바라보았다. 다른 건 몰라도 그녀를 데리고 광산 안으로 들어가는 게 옳을까, 싶었다.

    ‘위험하면 바로 귀환 스크롤을 찢으면 되지.’

    한참을 고민하던 라트는 결국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광산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위험한 상황을 대비해서 인벤토리 안에 있던 귀환 스크롤을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게 주머니에 넣었으니, 이걸로 약간 안심.

    “긴장해. 이 몬스터들은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니까. 베리어 사용하고, 마나가 부족하다 싶으면 바로 포션 먹어.”

    “응.”

    라트의 말에 엘리는 곧바로 베리어를 사용했고, 라트도 마찬가지로 공작이 줬던 베리어 스크롤을 찢은 후 파이프 담배를 꺼내들어 불을 붙였다.

    “그것도 쓰려고?”

    “어. 위험하다 싶을 때 꺼내면 너무 늦잖아.”

    광산 안쪽에는 나무가 없기에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할 수 없지만, 그 길이 꽤나 좁아서 생명의 연금술을 쓰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담배를 입에 문 라트는 엘리에게 천천히 따라오라는 말을 남기고 먼저 광산 안으로 들어섰다.

    광산 안쪽은 횃불이 여기저기 걸려있었기에 그렇게까지 어둡지는 않았다.

    ‘키가 작은 고블린이 횃불을 저렇게 높기 달아놓지는 못했을 거고. 최소한 나보다 큰 몬스터가 광산 안에 있다는 건데.’

    “후우.”

    언제든 연금술을 쓸 수 있게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광산의 퀘퀘한 냄새 때문에 담배 냄새가 그렇게 독하지는 않게 느껴졌다.

    천천히 광산 안으로 들어가던 중 고블린과 임프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걸 발견한 라트는 걸음을 멈췄다.

    “쉿.”

    우선 갑자기 멈춘 까닭을 물어보려는 엘리를 조용히 시키고 저것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고민했다. 그냥 달려들어서 검으로 처리하기에는 광산 안에 도사리고 있을 위협이 조금 걸렸다.

    그러나 광산 길목이 워낙 좁은 탓에 저 몬스터 무리를 무시하고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엘리. 혹시 이중 캐스팅 할 수 있어?”

    “가능해.”

    그 나이에 이중 캐스팅까지 가능하다니. 그녀는 라트의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럼 베리어를 유지한 채로 사일런스 마법을 써줘.”

    엘리가 이중 캐스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면 베리어를 끄고 사일런스 마법을 써달라고 했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엘리의 신변이 걱정돼서 함부로 나서지 못했을 거다.

    “응.”

    사일런스 마법이 사용되자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는지 몬스터들은 돌연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고 주변을 경계하다가, 라트와 엘리를 발견하고 무기를 들었다.

    “늦었어.”

    입에 담배를 문채 담배 연기를 내뱉은 라트는 생명의 연금술을 이용해, 무기를 들어 올린 몬스터들의 머리 위에 거대한 철판을 만들었다.

    허공에 만들어진 철판은 공기를 누르며 떨어져, 아래에 있던 몬스터들의 몸을 짓눌러 죽였다.

    “건너올 때까지 유지시켜줄게. 빨리 와.”

    굳이 찌부러진 몬스터의 사체를 보고 싶지 않았던 라트는 굳이 마나를 좀 더 소모해서 철판을 유지시키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사일런스 마법을 거둔 엘리가 철판을 건너는 것을 확인하고 생명의 연금술의 사용을 중지했다.

    똑같은 방식으로 세 무리를 처치할 때쯤, 고블린 한 마리가 도망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몰래 들어가고 싶었는데.’

    “지금부터는 베리어를 유지하면서 공격 마법을 써. 절대로 베리어를 풀면 안 돼.”

    “알았어. 너도 조심해.”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자, 고블린과 임프가 총과 활을 들고 이쪽을 겨냥하고 있었다.

    “아직 공격하지 마.”

    엘리가 파이볼을 쓰려고 하자, 라트는 그녀의 행동을 가로막았다. 공작이 준 베리어 스크롤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모르겠으나, 이 뒤에 누가 있을지 모르니 최대한 베리어를 유지하면서 가야한다.

    담배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자 그것이 신호인 듯 몬스터들은 총과 화살을 거침없이 쏘아댔지만, 너무 늦었다. 라트가 생명의 연금술로 몬스터 무리와 자신을 가로막는 거대한 강철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엘리 4초 정도 지나면 바로 파이어볼을 써.”

    “응.”

    정확히 4초 후 탄환과 화살이 강철벽을 두드리는 것이 멎어들자, 라트는 강철벽을 사라지게 했고 엘리가 곧바로 파이어볼을 던졌다.

    총에 있는 화약 때문에 파이어볼은 평소보다 더욱 거친 폭발음을 만들었다. 순간 광산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을 정도다. 위력도 확실히 증가해서 고블린과 임프는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통구이가 돼버렸다.

    “폭발 소리 때문에 전부 이쪽으로 오는 거 같은데?”

    광산 뒤편에서 요란한 발소리가 들리자 엘리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라트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갑자기 좋은 방법이 생각났거든.”

    남아있는 마력을 확인한 라트는 미소를 지었다. 몬스터들이 광산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했지만, 이쪽으로 와주면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후우.”

    라트는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몬스터들의 인영을 살폈다. 임프, 고블린, 옐로우 캣, 그리고 슬라임인가. 아무래도 진짜 흑막은 등장하지 않을 모양이다.

    뭐, 몬스터의 수만 줄일 수 있으면 상관없지. 그렇게 생각한 라트는 생명의 연금술을 사용했다.

    “아. 확실히 그거면 한방에 다 처리할 수 있겠네. 좋은 방법이야.”

    엘리는 어이가 없는지, 입을 벌렸다. 그의 말대로 확실히 좋은 방법이다. 이거라면 몬스터가 몇 마리라고 해도 일망타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라트는 웃으면서, 만들어낸 것을 발로 걷어찼다. 그러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것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라트가 생명의 연금술로 연성한 것은 바로 거대한 쇠구슬이었다.

    ‘뒤져봐라.’

    생명의 연금술의 지속 시간은 라트의 마력이 고갈 되던가 혹은 담배 연기가 완전히 사라질 때쯤이다. 일단 연성하면 그 형태를 유지하는 무색의 연금술보다 효율이 떨어진다.

    그러나 몬스터들이 이쪽으로 온다면 생명의 연금술의 지속 시간 안에 모든 몬스터가 쇠구슬에 깔려 죽을 것이다.

    보통은 유저가 당할 함정에서나 나올 상황을 몬스터에게 경험시켜준다는 생각에 라트는 미소를 지었고, 그와 반대로 쇠구슬이 굴러가는 곳에서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래는 최대한 보지 말고 가야겠네.”

    “아래를 안 본다고 저것들이 퍽이나 안 보이겠다.”

    쇠구슬에 찌부러진 몬스터의 시체를 보고 엘리는 또다시 울상을 지었으나, 라트는 익숙해졌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걸어나갔다.

    ‘이건 게임이야.’

    그래, 이건 게임이다. 라트는 게임 속에 갇혔고,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진엔딩을 봐야한다. 진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일단 강해져야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수련을 하지 않았던가.

    ‘앞으로도 수많은 몬스터를 죽여야 하는데, 이런 곳에서 울상을 지을 수는 없어.’

    “넌 아무렇지도 않아?”

    “어. 사람도 죽여 봤는데, 몬스터가 대수겠어?”

    몬스터 뿐 아니라, 앞으로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한다. 그러니까 아무렇지 않아,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 한다. 그래야 미치지 않을 수 있다.

    “아.”

    축제날 자신을 구하기 위해 라트가 사람을 죽였던 것을 기억해낸 엘리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라트의 뒤를 따랐다.

    ============================ 작품 후기 ============================

    사과 주스님 후원 쿠폰 10장, 간지훈 후원 쿠폰 1장 감사합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원고료 쿠폰이 너무 많이 들어왔네요...쿠폰을 주신 독자 여러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 그리고 오타 지적 환영합니당!

    그럼 저는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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