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9화 (29/229)
  • 0029 / 0229 ----------------------------------------------

    1부

    “그럼 네 비전은 뭔데.”

    “음.”

    이어지는 엘리의 물음에 라트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커스텀 스킬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해준다면 엘리는 기겁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설명해준다고 말했었다. 그녀는 자신과의 약속을 착실히 지켰다. 그렇다면 자신도 약속을 지켜야하지 않을까. 라트는 스승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커스텀 스킬의 힘을 엘리에게 말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담배가 몸에 안 좋은 건 알고 있지.”

    “응.”

    “그럼 담배를 피우면 생명이 깎이겠지?”

    “음. 포션을 먹으면 되잖아. 아니면 신법으로 치료를 받던가.”

    엘리가 스승과 같은 대답을 하자 라트는 피식 웃어버렸다. 그래,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담배는 생명과 크게 직관적이지 않다. 담배를 필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사람이 담배 때문에 썩은 폐를 내버려둘 리가 없지.

    포션을 먹던가, 신법을 이용해 치료를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그럼 뭐, 그렇겠지.”

    엘리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이 부분에 관해서 말씨름을 하기 보다는 그저 내 능력에 대해서 듣고 싶었는지 그냥 넘어가기로 한 것 같다.

    “나는 그 담배 연기를 내 생명으로 취급하고, 생명을 대가로 연성하는 거야.”

    “헤에.”

    라트가 설명을 끝마치자 엘리는 신기하다는 눈으로 라트를 바라볼 뿐,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기겁하지는 않았다.

    ‘하긴.’

    그녀는 마법사다. 아무리 연금술에 관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결국 마법사일 뿐이다. 엘리의 연금술 지식은 솔직히 말해서 옅었다.

    연금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연금술사가 라트의 설명을 들었다면 기겁했겠지만, 엘리의 옅은 지식으로는 그저 신기할 뿐인가보다.

    “내가 설명해줬으니까, 너도 이건 비밀로 해주는 거다.”

    “알았어.”

    “공작님께도 말씀드리면 안 돼.”

    “그렇게 할게.”

    제스맹이 루아타 공작에게 라트의 능력을 설명한다면 그건 필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의 입에서 이 이야기가 세어나간다면, 혹시나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라트는 엘리의 입을 확실하게 단속시켰다.

    “후우.”

    그 이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산행이 1시간 정도 이어지자, 예상대로 엘리가 땀을 흘리면서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다. 30분 전부터는 말도 꺼내지 않고 묵묵히 산을 오르는 중이다.

    지친 기색이 확실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내비치지 않게 노력하면서 군말 없이 산을 오르는 것을 보고 라트는 신기하다는 듯, 엘리를 바라보았다.

    ‘이쯤에서 투정 부릴 줄 알았는데.’

    공녀가 마차도 없이 산을 오르는 일은 없다. 익숙치않은 경험이니, 투정을 부릴 줄 알았다. 더는 못 가겠다고 바닥에 주저앉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그러지 않고, 라트를 따라오는 중이다.

    ‘고집이 쌘 건지. 자존심이 강한 건지. 그게 아니면 진짜 짐이 되고 싶지 않은 건지.’

    어쨌든 간에 그녀의 정신력은 굉장하다. 스테미너가 진작 한계에 도달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신력만으로 산을 오르는 중이지 않은가.

    정신력은 마법사에게 필요한 덕목 중 하나다. 아마, 그녀가 암살을 당하지 않았다면 두 대륙에 널리 명성을 알릴 정도의 마법사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될 수 있게 해줘야지.’

    무색의 연금술을 배운 덕분에 레벨 업을 할 수 있게 됐다. 메인 퀘스트 전까지 충분히 강해진다면 엘리를 암살하려는 무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버그를 쓴 것도 아니니, 그 개 같은 NPC가 나타나서 ‘더러운 해커 새끼야’라고 말하지도 않을 터.

    튜토리얼 기간 중에 레벨 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버그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너무 깊은 생각은 하지 말도록 하자.

    관계없는 사람이 죽는 것은 상관없지만, 내 근처에 있는 사람, 나와 친한 사람이 죽는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라트 혹시 물 없어? 나 목말라.”

    상당히 목이 탔는지, 엘리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물도 마시지 않고 1시간동안 산행을 했으니, 목이 탈만도 하지. 이쯤에서 슬슬 그걸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 라트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자, 이거 마셔.”

    “이건 포션이잖아. 물은 없으니까 포션을 마시라고?”

    라트가 포션병을 내밀자 엘리는 눈을 찡그렸다. 아무리 갈증이 난다고 해도, 맛없는 포션을 먹으라고 하다니.

    “스테미너 회복 포션이야. 빨리 마셔. 만들기 쉬운 거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아, 정 부담스럽다고 느끼면 나중에 돈으로 주면 돼.”

    스테미너 회복 포션이 만들기 쉽다고? 다른 연금술사가 들었으면 기절했을 말이지만, 게임 시스템의 가호를 받고 있는 라트에게는 만들기 쉬운 포션이 맞았다.

    “으. 이런 게 있으면 빨리 좀 말해주지.”

    “니가 아무런 말도 안하고 어디까지 따라오나 궁금해서.”

    엘리는 눈을 찡그리면서 라트를 노려보더니, 획하고 스테미너 포션을 채가더니 급히 병뚜껑을 열고 품위도 지키지 않은채 벌컥벌컥 마셨다. 어지간히도 목이 말랐던 것 같다.

    ‘진작에 줄 걸 그랬나.’

    라트는 무안한 듯이 뺨을 긁으면서 엘리의 옆에 서서, 포션을 전부 마실 때까지 기다려줬다.

    “아, 이제야 살 거 같아.”

    “몸은 어때?”

    “땀 때문에 옷이 좀 달라붙는 것만 제외하면 최고야.”

    그녀의 말에 라트는 고개를 살짝 내려서 엘리의 몸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간편한 옷이 땀 때문에 젖어 그녀의 몸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느 정도냐면 속옷이 어떻게 생겼는지 대충은 보일 정도다. 옷이 착 달라붙은 덕에 돌출된 가슴과 엉덩이 그리고 잘록한 허리가 눈에 띄이자, 라트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래, 다행이네. 그럼 다시 가자.”

    라트는 당황한 표정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지 급히 걸음을 옮겨 엘리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했다.

    “너는 안 힘들어?”

    다행이 라트가 자신의 몸을 엿봤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엘리는 순수하게 라트의 체력을 걱정했다. 자신은 스테미너 포션을 먹었으니 괜찮아졌지만, 마법사와 마찬가지로 스테미너가 연금술사인 그가 아무것도 마시지 않아서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다지.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스테미너 관리에 집중해.”

    연금술사이기는 하나, 건강 스탯에 포인트를 투자한 라트는 산행을 한다고 해서 크게 힘이 부치거나 하지 않았다.

    “하긴 라트는 연금술사면서 검도 쓰니까. 나랑 다르게 스테미너도 상당하겠구나.”

    라트가 검을 쓴다는 사실을 상기한 엘리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포션이 뭐뭐 있는지 확인이나 해볼까?’

    공방에 있는 포션을 모조리 쓸어 담기는 했지만, 정확히 어떤 포션이 몇 개나 남았는지 모르기에 라트는 인벤토리를 열어 포션을 확인했다.

    ‘체력 회복 포션(중)이 10개. 마나 회복 포션(중)이 13개. 상태 이상 회복 포션 6개. 상태 이상 면역 포션 1개. 스테미너 회복 포션은, 이제 2개 남았네.’

    스테미너 회복 포션은 광산에 도착하고 나서 서로 한 병씩 마시면 될 것 같다. 체력 회복 포션과 마나 회복 포션은 충분히 있으니, 부상을 입는다거나 마나가 부족한 경우는 생기지 않을 거다.

    ‘그리고 근력 강화 포션(소)가 3개. 건강 강화 포션(소)가 2개. 민첩 강화 포션(소)가 1개씩이라.’

    라트는 슬쩍 엘리를 쳐다보았다. 스테미너가 회복된 덕분인지 그녀는 여유롭게 자신을 따라오는 중이다. 마법사인 그녀가 이런 포션을 먹어봐야 하등 쓸모가 없다. 그러니까 이 포션은 나만 먹기로 하고.

    “자, 여기. 빨간색은 체력 회복 포션, 파란색은 마나 회복 포션, 하얀색은 상태 이상 회복 포션이야.”

    라트는 엘리에게 체력 회복 포션과 마나 회복 포션 그리고 상태 이상 회복 포션을 각각 2개씩 주었다.

    “그건 나도 알아. 근데 이걸 왜 나한테 줘?”

    “혹시 모르잖아. 내가 너랑 떨어져있는 상황에서 네가 다칠 수도 있고. 내가 부상 때문에 정신을 잃을 수도 있어.”

    “그럼 너는?”

    “그거 말고도 아직 많이 있으니까 걱정 마.”

    라트가 인벤토리를 열어서 포션 몇 개를 엘리에게 보여주자, 그녀는 안심하고 라트가 건넨 포션을 챙겨 주머니에 넣었다.

    “베리어는 쓸 수 있어?”

    “당연한 걸 물어보지 마.”

    하긴, 루아타 공작이 그렇게 맹훈련을 시켰으니 베리어 마법을 쓸 수 없을 리가 없지. 그렇다면 딱히 엘리를 보호할 필요는 없다. 베리어 마법도 쓸 수 있고 마나 포션도 줬으니, 날아오는 화살에 당하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최대한 나한테 붙어 있어.”

    “네이, 네이.”

    엘리는 시녀 중 한 명을 따라하는지, 고개를 숙이면서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이내 머리를 넘기면서 웃었다. 땀 때문에 젖은 노란색 머리카락이 햇빛을 머금는다. 혹자가 보면, 진짜 금일지 모른다고 착각할 정도로 그녀의 머리카락은 너무나 눈부셨다.

    “긴장 풀지 말고.”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아름답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조금 있으면 몬스터와 대치해야하기에 그녀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었다.

    “알고 있어.”

    정말로 알고 있는 걸까? 엘리는 실제로 몬스터를 만나본 적은 없다. 물론 그건 라트도 마찬가지다. 게임을 통해 잡은 몬스터는 수 만 마리가 넘어가지만, 실제로 몬스터와 마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1시간 정도가 지나서 마침내 광산 입구가 보이는 곳에 도착한 라트는 눈을 찡그렸다. 고블린 3마리가 광산 입구 앞을 지키며 눈을 번뜩이면서 주변을 감시 중이었다.

    “이거 마셔.”

    “응.”

    1시간의 산행 때문에 지친 엘리의 스테미너를 보강하는 게 먼저다. 엘리도 이렇게 지친 상황에서는 라트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조용히 그가 건넨 스테미너 회복 포션을 마셨다.

    “조금만 더 상황을 살펴보자.”

    “저기 봐.”

    엘리가 가리킨 곳은 광산 입구였고, 그곳에서 고블린 세 마리가 나타났다. 그러자 지금까지 광산 입구를 감시하고 있던 고블린들이 광산 안으로 들어갔고, 광산 입구에서 나온 고블린들이 주변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고블린이 체계적으로 감시를 하고 있다고?’

    고블린은 저렇게 지능이 높은 몬스터가 아니다. 저런 행동을 보이려면 최소한 오크 정도는 되야 한다. 아니 오크라도 저렇게 철저히 주변을 감시하지 않는다.

    ‘일이 제대로 꼬인 거 같은데.’

    직감이 황색 신호에서 적색 신호로 바뀐다. 왠지 이번 일은 몬스터들이 자발적으로 철 냄새를 맡고 이곳에 온 게 아니라, 원흉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광산으로 들어 가봐야겠는데.’

    괜히 소란을 일으켰다가, 감당하지 못할 몬스터나 혹은 사람이 나오면 심히 곤란하다. 라트는 인벤토리에 있는 버프 포션을 마시고, 공작이 건네준 강화 스크롤을 전부 찢었다.

    “광산 안에 있는 몬스터들이 이쪽 소리를 못 듣게 해줄 수 있어?”

    “10초만 기다려.”

    라트의 부탁에 엘리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고, 예고한대로 10초가 지난 순간 광산 입구 근처에 사일런스 마법이 펼쳐졌다. 사일런스 마법이라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광산 안쪽에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유지 시간은?”

    “벽이 있는 방이 아니라서 마력을 최대한 사용해도 5분 정도?”

    “1분이면 충분해.”

    아무리 체계적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고블린은 고블린이다. 무장을 봐라, 창을 들고 있는 놈 두 명에 하나는 창도 없는지, 단검을 들고 있다.

    현재 스탯이나, 기능 레벨을 고려하면 고블린 3마리는 1분 이내로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라트는 검을 뽑고 포션과 강화 마법으로 상당히 강해진 신체 능력을 기반 삼아 고블린 무리에게 달려들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