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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우는 연금술사-28화 (2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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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한편 엘리와 같이 이동됐다는 것을 깨달은 라트는 관자놀이로 머리를 누르며 쏟아지려는 두통을 억누르고 있었다.

    “하아. 도대체 왜 다시 들어온 거야?”

    “혹시 거기에 손수건을 떨어트렸나 해서.”

    머리를 긁적이는 꼴을 보니 엘리 본인도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머리가 아파온다, 이번 퀘스트에서 최대한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해볼 생각이었는데.

    그녀가 있으면 무색의 연금술을 쓰는 건 물 건너 간 셈…….

    ‘잠깐만.’

    라트는 머리를 매만지고 있는 엘리를 바라보았다. 엘리자넷 시르 루아타, 루아타 공작의 무남독녀이고 그의 후계자다. 그리고 라트는 그녀의 목숨을 한 번 구해준 적이 있다.

    그것도 커스텀 스킬인 생명의 연금술을 사용해서. 그 때 보여준 일을 비밀로 해달라고 했고 엘리는 확실히 그 약속을 지켰다. 그렇다면 무색의 연금술도 비밀로 해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혹시나 엘리가 루아타 공작에게 알릴 수도 있겠지만, 그건 상관없다.

    ‘루아타 공작은 신용할 수 있으니까.’

    그는 스승의 친우다. 어쩌면 라트가 몬스터 처리를 맡게 된 이유도 제스맹이 루아타 공작에게 넌지시 라트의 능력을 알려줘서 일 수도 있다.

    ‘진짜 그럴 수도 있겠는데.’

    검을 쓰는 연금술사라니, 솔직히 말해서 나조차 신용이 가지 않는다. 이번 사태를 비밀로 붙이고 싶다면 적당한 용병들을 구해서 일을 해결한 후, 그 용병들을 죽이는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건, 어쩌면 2년 후에 길드를 떠나야하는 라트에게 실전 훈련을 해보라는 스승의 배려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왜 아버님의 집무실에 있던 네가 텔레포트 마법에 휘말려서 여기 온 건데?”

    그렇게 물어봐도.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할지 망설여진다. 전쟁과 광산의 이야기를 숨기고 이야기를 해주면 영특한 엘리는 왜 루아타 공작이 폐광을 신경 쓰는지 그 이유를 물을 것이다.

    그냥 전부 말해줄까? 그녀의 입은 상당히 무겁고, 게다가 공작의 무남독녀다. 굳이 정보를 숨길 필요가 없겠지.

    “그러니까.”

    “네, 아버님.”

    라트가 설명을 시작하려는 순간, 엘리가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아버님이라니, 라트에게는 루아타 공작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루아타 공작과 이야기하는 듯이 시늉한다.

    ‘루아타 공작이 통신 마법을 사용했나보네.’

    확실히 대마법사라고 불릴만한 인물이다. 히칼 산맥이 파르스에서 아무리 가깝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꽤나 거리가 있다. 그런데 아무런 장비 없이 통신 마법을 사용해서 엘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줄이야.

    시시각각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공작에게 혼이 나고 있는 중인가보다.

    “그, 그게 손수건을……. 아! 역시 거기 있었죠?”

    엘리의 주장대로 그녀는 공작의 집무실에 손수건을 떨어트린 모양이다. 그것이 변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녀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아, 아니요. 죄송합니다.”

    물론 아주 잠깐이었을 뿐이다. 공작이 호통이라도 쳤는지, 엘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는 몸까지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라트는 그녀가 토끼같다고 느꼈다.

    “네, 네. 그럼 그렇게 할게요.”

    한참 후 공작의 꾸중이 끝나고 엘리의 처분이 결정됐는지, 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작의 뜻을 따르겠다는 말을 했다.

    “이야기는 대충 들었어. 아버님이 널 도와주고 귀환하래.”

    “그러냐.”

    입 아프게 사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네. 그리고 엘리가 도와준다면 라트는 환영할 일이다. 라트와 같은 나이인 그녀는 루아타 공작의 재능을 물려받은 덕분이지 마법을 상당히 잘 다뤘으니까.

    “그런데 폐광은 어디 있는 거야?”

    이게 무슨 소리야. 폐광이라면 아마 이 근처에.

    “어?”

    없잖아? 라트는 입을 벌리고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폐광은커녕 사람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숲에 갇혔다는 사실에 눈을 찡그렸다. 루아타 공작이 말하길, 분명 스크롤을 사용하면 폐광 근처로 이동한다고 하지 않았나.

    공작에게 속은 건가? 아니, 그건 아니다. 공작이 무슨 이유로 나를 속이겠는가. 그렇다면 엘리에게 자신을 도와달라는 말을 남겼을 리가 없다.

    ‘느낌이 싸한데.’

    직감이 황색 신호로 변한다. 왠지 일이 복잡해질 거 같다는 예감은 착각인가? 아니면 진짜일까.

    “라트 여기가 어디쯤인지는 알고 있어?”

    “잠깐만 여기 있어봐.”

    일단 위치를 확인하고 폐광을 찾는 게 먼저다. 라트는 근처에 있는 나무에 손을 댔다.

    “이것도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로 해줘.”

    “응?”

    엘리가 의문을 묻는 것보다 라트가 무색의 연금술을 사용하는 게 더 빨랐다. 순식간에 땅바닥에서 나무기둥이 치솟았고, 그 기둥 위에 있던 라트는 나무보다 훨씬 위쪽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흐음.”

    주변을 둘러보던 라트는 저 멀리, 파르성이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이곳이 히칼 산맥인 것은 확실하다.

    ‘아예 이상한 곳으로 온 건 아니고.’

    그렇다면 폐광은 어디일까? 한참동안 히칼 산맥을 살피던 라트는 간신히 광산처럼 보이는 곳을 찾았다. 언제라도 철을 캘 수 있게, 그러나 폐광처럼 위장하기 위해서인지 광산 입구는 허름한 나무로 만들어져있었다.

    ‘왜 저렇게 멀리 있어?’

    문제는 이곳에서 광산까지의 거리다. 족히 2~3시간은 걸어야 도착할 수 있겠지. 평지라도 2~3시간을 걸으면 상당히 지칠 텐데, 산행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읏샤.”

    다시금 무색의 연금술을 펼쳐 나무기둥을 원상 복구시켜 대지를 밟은 라트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엘리를 바라보았다.

    ‘엘리가 저기까지 갈 수나 있을까.’

    엘리의 스탯창을 볼 수는 없지만, 대충 예상은 간다. 그녀는 마법사이고, 공녀다.

    호의호식을 하면서 지내는 그녀가 건강 스탯이 높을 리가 없다. 물론 보통 사람보다야 건강 스탯이 높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일반인 수준이겠지.

    다행스럽게도 지금 엘리는 간편한 옷을 입고 있고 신발도 구두가 아닌 부츠를 신고 있으니까, 어느 정도 산을 오를 수는 있을 거다.

    ‘중간에 탈진하려고 하면 그걸 줘야겠다.’

    그걸 줘도 또 탈진하면? 그 때는 업고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산에 엘리를 혼자 내버려둘 수는 없고, 더욱이 귀환 스크롤은 한 장 뿐이니까.

    “야, 야!”

    “어? 아 미안, 잠깐 생각 좀 한다고.”

    혼자만에 생각에 빠져있던 라트는 엘리의 부름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방금 그건 뭐야. 그런 연금술은 들어본 적도 없어.”

    엘리는 싸늘한 표정으로 라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연금술을 전혀 모르는 마법사였다면, 라트가 보인 기행도 연금술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연금술을 아예 모르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공작과 제스맹이 친하기 때문인지, 기본적인 지식은 갖추고 있다.

    “너, 수상해. 저번에 담배 연기로 마법 비슷한 것을 쓴 것도 그렇고.”

    확실히 그 때 라트가 보여준 힘은 연금술사에게 허락된 힘을 아득히 뛰어넘은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설명을 해주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해가 지기 전에 이 일을 해결하고 공작저로 돌아가야 한다.

    “무색의 연금술이라고 불리는 건데. 자세한 건 걸어가면서 말해줄게.”

    “무색의 연금술? 그럼 저번에 그 담배 연기로 한 것도 무색의 연금술이야?”

    “아니. 그건 내 비전.”

    여기까지. 라트는 박수를 치면서 엘리의 말을 멈추고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여기서 폐광까지는 두 시간 아니, 네 속도로는 세 시간 정도 걸릴 거야. 산행이라서 지칠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세, 세 시간?”

    엘리의 경악에 라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건물 안을 돌아다니거나, 축제 때 도망쳐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걷는 일은 거의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세 시간이나 걸어야한다는 반응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내 속도가 뭐 어때서 세 시간이야. 두 시간으로 좁혀. 헤이스트.”

    그러나 라트의 생각과는 달리 엘리는 약간 자존심이 상했다는 듯, 자신에게 헤이스트 마법을 사용했다. 그에게 짐짝 취급을 당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 니 속도를 문제 삼은 게 아니라. 체력적으로 괜찮겠냐고 물은 거야.”

    “아.”

    그제야 라트의 말을 이해한 엘리는 전방을 바라보았다. 사방이 오르막이고 거기에 수풀로 뒤덮어져있는 길이다. 평지보다 체력소모가 심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가는데 까지는 가볼래.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아.”

    “그래.”

    엘리의 아집에 라트는 다시 한 번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공녀님답게 자존심이 강하다. 문제는 그 자존심이 평범한 귀족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강하다는 거지.

    아마 평범한 귀족 영애였다면 못 간다는 부정의 소리를 늘어놨을 것이다.

    “그럼 따라와.”

    오르막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라트는 그나마 이곳이 히칼 산맥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히칼 산맥은 설정 상 몬스터가 없는 곳이다. 물론 맹수가 있기는 하지만, 맹수 정도는 엘리가 마법을 쓰지 않아도 쫓아낼 수 있다.

    몬스터의 위협이 도사리는 다른 산맥이었다면 어땠을까. 예상이기는 하나, 엘리가 스테미너를 관리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탈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따라올 만해?”

    “너무 느린 거 같은데.”

    헤이스트 마법 덕분인지, 라트는 엘리를 배려해주지 않음에도 그녀는 손쉽게 라트를 따라오는 중이다. 저 추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의문이지만.

    당장은 엘리를 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 감사하자.

    “저기, 라트.”

    “왜 불러.”

    “나중에 케이네 언니한테 미안하다고 전해줄래?”

    뜬금없이 왜 케이네에게 사과를 전해달라고 하는 거지? 라트는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엘리를 바라보았다.

    “언니한테 위험한 일이 아닐 거라고 장담했는데, 아버님이 이런 일을 시킬 줄은 몰랐어.”

    이어지는 엘리의 말에 라트는 머리를 긁적였다. 위험한 일이라, 확실히 몬스터를 처리하는 일은 위험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라트는 딱히 이번 퀘스트가 위험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위험한 일이었다고 생각했으면 내가 거절했을 거야.”

    오히려 실전 훈련을 할 수 있으니 좋을 뿐이다. 그러나 라트의 말에도 엘리의 표정이 풀어지지 않는다. 하긴 호언장담을 했다는데, 그것이 무너졌으니 미안한 마음이 생기겠지.

    “그래도 사과는 전해줄게.”

    라트의 대답에 엘리는 안심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아까 했던 이야기 좀 계속해봐. 무색의 연금술은 뭐고? 그리고 네 비전은 또 뭔데.”

    아, 맞다. 아까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해준다고 했었지.

    “무색의 연금술은 고대의 연금술사들이 사용했다는 연금술인데.”

    라트는 스승에게 들었던 것 그대로 엘리에게 설명해주었다.

    “그럼 지금 당장은 나무 밖에 연성하지 못하는 거야?”

    “그렇지.”

    비밀 수련장에 쪽지를 남겼던 연금술사를 만난다면 모를까. 지금 당장은 나무 밖에 연성하지 못한다.

    “신기하다. 자연을 연성할 수 있는 연금술이라니. 만약에 계산을 도와준다는 아티펙트가 발견돼서, 다시 만들 수 있게 된다면 다른 연금술사들도 무색의 연금술을 쓸 수 있는 걸까?”

    “글쎄다. 이론이 상당히 복잡해서 장담은 못하겠는데.”

    라트는 스승이 줬던 책을 기억해내고 고개를 저었다. 목 속성을 연성하기 위한 이론만 해도 무려 2천 페이지가 넘는 책을 봐야한다. 그런 고생을 사서 하려는 연금술사가 과연 있기나 할까?

    현재 체제가 갖춰진 4개의 연금술도 모두 뛰어난 편이다. 라트같이 강한 힘을 원하는 별종 연금술사를 제외하면 무색의 연금술을 배우려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연금술사는 없을 거다.

    “그런데 기느투스 후작님도 쓰는 걸 힘들어하시는데, 넌 안 힘들어?”

    “꽤 힘들지만, 괜찮아. 내가 무색의 연금술에 재능이 있는 거 아닐까, 싶어.”

    “역시 힘들기는 한가 보네.”

    힘들기는 개뿔. 라트는 천역덕스래 거짓말을 한 자신의 모습에 양심이 바늘에 찔리는 고통을 맛보았다.

    게임 시스템 덕분에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아마 제가 마법사였다면, 메테오도 간단하게 사용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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